중국산 한의학의 국산 둔갑의 효과
중국산 한의학의 국산 둔갑의 효과
  • 강석하 과학중심의학연구원장 admin@doctorsnews.co.kr
  • 승인 2020.01.20 23:06
  • 댓글 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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강석하 과학중심의학연구원장

한의사들은 한의학이 고유의 유산이며 일제로부터 박해를 받았기 때문에 한방을 지원하고 한의사의 권리를 확장해달라고 주장한다. 비논리적이고 거짓으로 가득한 주장이지만 현실에서는 잘 통한다. 심지어 비의료인들을 상대로 한 자리에서 "과거엔 일제의 핍박, 그 이후부터 현재까지 '모 단체'의 핍박"이라는 구도 주입에 주어진 시간의 상당부분을 할애하는 모습을 목격하기도 했다.

일제가 우리 민족을 억압하기 위해 한의학을 핍박했을 리가 없다. 일본은 자기들이 사용했던 의학을 중국에서 유래한 것으로 여겨 '漢方'으로 불렀고, 조선도 한의학이 고유의 것이라는 인식이 없었다. 

이런 개념은 1980년대부터 한의학의 한을 漢에서 韓으로 개명하는 등 한의사들의 작업에 의해서 창조된 것이다. 과거의 국어사전들을 보면 한의학이 고유의 것이라는 개념은 1990년경에 처음 등장하며 그 전에는 중국에서 전래한 의술로 설명한다.

ⓒ의협신문
ⓒ의협신문

한의학의 핵심 이론과 개념인 음양·오행·경락·기·오장육부 등은 중국에서 전래되었다. 치료법인 침, 뜸, 부항도 중국에서 왔다. 조선시대 의과 과거시험 범위도 거의 대부분 중국 의서들이었다. 동의보감도 거의 대부분이 중국 서적을 인용한 내용으로 채워져 있다.

한약도 마찬가지다. 조선에서는 한약재를 구하기 어려워 세종대왕은 우리 땅에서 나는 '향약'으로 대체할 수 있도록 <향약집성방>을 편찬하게 했다. <향약집성방> 서문에 "사람이 병들면 반드시 중국의 얻기 어려운 약을 구하니 (중략) 약은 구하지 못하고 병은 이미 어떻게 할 수 없게 되는 것이다"라며 당시 사정을 언급하고 있다. "신농과 황제 이후 대대로 의관을 두어 만백성의 병을 맡아 보게 하였다"라는 서문 첫문장에서 의학의 기원을 중국 신화에 두고 있음이 나타난다.

한의학에 사상의학·팔체질·약침술 등 우리나라에서만 통용되는 것들도 일부 있기는 한데 역사가 아주 짧다. 한의사들 중에서도 불신하는 사람들이 적지 않고, 해외에서는 존재감이 없다. 

1월 2일 대한한의사협회는 '의사규칙 반포 120주년 기념식'을 개최하며 "일제의 잔재를 말끔히 씻어내고 (중략) 진료에 있어서 한의사의 역할에 제약을 없애는데 총력을 다할 것"이라고 선언했다. 

한의협은 "관립의학교에서는 한의학을 중심으로 당시 우리나라에 들어온 서양의학을 받아들여 통합의학을 가르치고, 통합의사를 양성하는데 주력했다"고 주장했는데 근거로 민간 신문인 황성신문의 관립의학교에 대한 기사의 "내과는 태서(서양의학)와 동양의술을 참호하여 교수한다"는 구절을 제시했다.

잠깐 '동양의술'이라는 단어에 주목해보자. 한의학이 우리 고유의 것이라는 인식이 없었다는 증거다.

한의협의 <의사규칙>관련 주장은 문제가 많다. 

그 때는 서양의학교육을 조선에서 받은 의사가 한 명도 없었다. 의사규칙 1조에는 맥후진찰, 침구보사 같은 한의학 용어가 등장해 기존 조선의 의사에 대한 설명임을 알 수 있다. 2조에서는 "의사는 의과대학과 약학과을 졸업하고 내부시험에 합격하여 면허를 득한 자"라고 하니 앞으로 배출시킬 의사에 대한 규정이다. 한의협은 이 내용과 앞서 말한 민간 신문인 황성신문의 "태서와 동양의술을 참호"라는 대목을 근거로 '통합의사'라는 개념으로 왜곡했다. 

그런데 1899년 7월 5일자 <고종실록>을 보면  <의학교규칙>을 시행했다며 "학과는 동물, 식물, 화학, 물리, 해부, 생리, 약물, 진단, 내과, 외과, 안과, 부영, 위생, 법의, 종두, 체조과)를 둔다. 국내 의술이 발달하기를 기다려 다시 연한을 정하여 매우 절실한 의술을 교수한다"라고 적혀있다.

과목명이 모두 서양학문이다(황성신문 내용대로 내과에 한의학이 약간 포함돼 있을지 모르겠다). 국내 의술이 발달하지 못해서 매우 절실한 서양의술 교육을 개시하겠다는 의미다. 고종은 이미 한의학 교육 기관을 없앴고, 의학교 입학생은 기존의 한의사들이 아니었다. 따라서 "한의학을 중심으로 서양의학을 받아들여 통합의사를 양성했다"는 한의협의 주장은 날조에 가깝다.

1904년 고종은 몇몇 한의사들의 요청을 수용해 한의학 교육기관인 동제의학교 설립을 승인했는데, 1년 만에 예산이 끊겨 중단 위기에 처했다는 기록을 보면 관심은 없었던 것 같다. 

한의사를 없앤 일본과는 달리 이 땅에서는 주권을 차지한 일본이 서양의학 교육으로 충분한 수의 의사를 양성하지 않고, 엉망인 의료 상황에 규제가 필요해 임시방편으로 의생 면허를 교부하는 바람에 우리나라에는 한의사 제도로 이어지게 됐다. 한의사야말로 일제의 잔재가 아닐까?

의학과 의료는 질병과의 전쟁이며 목숨이 달린 문제다. 조상 타령 자체가 어이없지 않은가? 무기 판매상이 형편없는 성능의 중국산 구닥다리 무기를 국산으로 둔갑시켜 당신들 조상님의 유물이라고 권하니까 군대에 보급해야겠다고 박수치는 꼴이 지금 우리의 모습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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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프다 2020-01-24 00:54:38
너무 아프게 때리지 마세요. 아픕니다. ㅋㅋㅋㅋㅋㅋㅋㅋ 구구절절 명문

* 기사속 광고는 빅데이터 분석 결과로 본지 편집방침과는 무관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