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효과가 없다고 증명되지는 않았다"
"효과가 없다고 증명되지는 않았다"
  • 강석하 과학중심의학연구원장 admin@doctorsnews.co.kr
  • 승인 2020.01.06 06: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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근거없는 비과학적 치료를 옹호하는 사람들은 근거가 없다는 비판에 대해 "연구를 통해 효과가 증명되지는 않았지만, 효과가 없다고 증명되지도 않았다"는 주장을 한다. 동시에 '사례'를 제시하며 현혹한다. 

효과가 없다고 증명되기 전까지는 인정해도 된다고 믿는 사람들도 꽤 많다. 이런 주장은 타당하지 않으며, 이를 인정한다면 어떤 치료법에 대해 효과가 없음을 입증하는 일은 현실적으로 불가능해져서 환자를 속이는 일을 막을 수 없게 된다.

어떤 질환에 대한 침술의 효능을 검증한 임상시험에서 가짜침과 비교했을 때 차이가 없다면 침술의 효과는 단지 플라시보 효과에 불과하며 고유의 효과는 없다고 평가할 수 있다. 그런 경우 한의사들은 "나는 그 연구와는 다른 혈자리에 침을 놓으니까 내 치료법이 효과가 없다는 연구는 아니다"라고 핑계를 댈 수 있다. 

어떤 질환에 대한 한약의 효능을 검증한 임상시험에서 위약과 비교했을 때 효과에는 차이가 없는 반면 한약을 복용한 집단에서 위험한 부작용 발생이 많았다면 한약은 효과가 없고 위험하다고 평가할 수 있다. 그런 경우 한의사들은 "내가 사용하는 한약 조성은 그 연구와는 다르므로 내 한약이 효과가 없거나 위험하다는 것은 아니다"라고 핑계를 댈 수 있다. 

필자가 종종 복용하는 세티리진염산염(cetirizine 2HCl) 제제의 설명서는 아래와 같은 효능효과가 기재돼 있다.

1. 계절성 및 다년성 알레르기성 비염·알레르기성 결막염·만성 특발성 두드러기·피부 소양증

2. 하이드로코티손 외용제와 병용에 의한 습진·피부염

세티리진염산염은 위의 효과들에 대해서만 검증을 통과한 것이다. 이 약을 폐암 환자에게 "폐암에 효과가 없다고 입증되지는 않았다"라고 핑계를 대며 암을 치료할 수 있다고 권하면 가격이 싸니까 속는 셈 치고 시도하는 일이 현명하지는 않을 것이다.

의약품 허가를 얻기 위해서는 실험실에서의 기초실험과 3단계의 임상시험을 통해서 안전성과 유효성을 입증해야 한다. 2014년 <Nature Biotechnology>에 발표된 신약 허가 성공률에 대한 논문에 따르면 처음 임상시험을 시작한 후보물질이 대표효과(lead indication)에 대한 검증을 통과해 허가되는 비율은 15.3%였다.

영국 엑시터대 에드짜르트 에른스트 명예교수의 '이상한 나라의 의학자'ⓒ의협신문
영국 엑시터대 에드짜르트 에른스트 명예교수의 '이상한 나라의 의학자'ⓒ의협신문

반면에 대표효과가 아닌 추가적인 다른 효과(non-lead indication)들에 대한 임상시험을 통과하는 비율은 4.9%에 불과했다. 즉, 허가된 약들 중에도 다른 효과에 대해서는 검증을 통과하지 못한 경우들이 꽤 있다. 그리고 실험실에서 과학적 근거를 확인해서 임상시험에 투자한 물질들도 검증을 통과하는 비율이 이렇게 낮은데 비과학적 치료들은 검증을 하면 결과는 뻔하지 않은가?

제대로 된 근거가 없는 치료법은 사례를 근거로 내세우고 대중들에게 설득력 있는 근거로 여겨진다. 하지만 현대의학에서 근거가 되지 못한다는 것이 상식이다. 임상시험 연구에서는 대조군에서도 효과를 봤다는 환자들이 있고, 심지어 가짜약을 먹다가 부작용을 이유로 중도탈락하는 환자들도 있다. 자신이 복용한 약이 가짜인 줄 모르고 불편한 증상이 발생한 이유가 임상시험에서 복용한 약 때문으로 착각한 것이다.

대체의학 검증 연구의 권위자인 영국 엑시터대 에드짜르트 에른스트 명예교수는 <이상한 나라의 의학자>에서 영적치유에 대한 임상시험에서 겪은 흥미로운 경험을 소개했다. 치료를 받으러 왔다 마주친 참여 환자가 "치유 덕분에 몸 상태가 아주 좋아져서, 몇 년 만에 처음으로 휠체어 없이 걷고 있습니다"라고 자신에게 말해서 충격을 받았다고 한다. 

이 임상실험에서는 진짜 치유사가 환자 앞에서 치유, 연기자(가짜 치유사)가 환자 앞에서 치유, 진짜 치유사가 환자에게 보이지 않는 곳에서 치유, 실제로는 치유사가 없지만 환자에게 치유사가 보이지 않는 곳에서 치유하고 있다고 속임, 이렇게 네 그룹으로 나눠 효과를 비교했다.

휠체어가 필요 없게 되는 등의 놀라운 사례들은 네 그룹 모두에서 나타났고, 모든 그룹에서 통증이 완화됐다. 그러나 통증 완화 효과에 각 그룹간의 유의미한 차이는 없었다. 영적치유의 효과에 영적치유사는 필요가 없었다.

1990년대 초 영국에서는 영적치유가 인기가 있어서 영적치유사협회에 등록된 치유사만 1만 4000명이나 되었다고 한다. 당시 카이로프랙터, 접골사, 침술사, 동종요법사 및 약초사들을 다 합친 것 보다 많았고, 일차진료를 하는 의사의 수와 맞먹을 정도로 많았다고 한다. 무수한 사례들에 힘입어 영적치유가 인기를 얻었지만, 임상시험을 통해 효과가 없음이 밝혀졌다.

거센 비판을 받은 '안아키' 한의사도 추종자들이 모인 인터넷 카페에는 자기 자녀가 효험을 봤다는 사례가 즐비하다. 과학적 개연성조차 없이 사례만을 내세우는 치료법은 아예 무시하는 편이 현명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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