건강을 위한 바른 소리, 의료를 위한 곧은 소리
updated. 2024-03-19 17:45 (화)
"의사 정원 확대, 기가 차서 말도 안 나온다"
"의사 정원 확대, 기가 차서 말도 안 나온다"
  • 여한솔 전공의 (이대목동병원 응급의학과 R1) admin@doctorsnews.co.kr
  • 승인 2019.12.29 18:45
  • 댓글 4
  • 페이스북
  • 트위터
  • 네이버밴드
  • 카카오톡
이 기사를 공유합니다

우리나라 최고 의대 모 대학병원장의 '의사 정원 확대를 통한 대형병원의 의료인력난 해소'라는 글을 보고 이게 정말 우리나라 최고대학 최고 병원의 병원장으로서 할 이야기인가 싶어서 아연실색했다. 

"적은 의사가 많은 환자를 짧은 시간에 진료하는 것이 문제이다, 박리다매를 통해 수익을 확보해야 하는 구조이다 보니 환자 의사 모두 불만이다. 수술할 외과 의사 부족은 어제오늘 이야기가 아니다, 무턱대고 늘리자는 게 아니라 적정 진료를 위한 의사 수를 추계하고 부족한 분야에 먼저 배정하는 양성 체계를 구축해야 한다." 

그래 백번 양보해서 이 말은 절반은 맞고 절반은 틀렸다.

절반은 맞다

그렇다. 현재 대학병원의 의사 수는 턱없이 부족하다. 밀려오는 외래를 통해 입원하는 환자들, 그리고 대형병원이 소재하는 곳의 환자들과 지방에서 서울까지 사설 구급차를 타고 대학병원으로 밀려드는 응급실 환자들. 이들을 감당해내기에는 기존 대학병원의 인프라로는 턱없이 부족한 실정이 되었다.

응급실에서 근무하는 나로서는 항상 느끼는 바인데, 굳이 대학병원에서 치료받지 않고 각 지역의 거점병원이나 2차급 준종합병원에서도 얼마든지 치료받을 수 있는 환자들이 하루에도 수없이 전원의뢰를 통해 밀려들고 있는 형국이다.

아마 이 글을 쓰신 분이 속한 병원은 내가 속한 곳보다 이러한 현상이 더 심할 것이기에 미루어 짐작건대 이들을 커버할 수 있는 의사 수는 절대적으로 부족할 것이다.

그러나 절반은 틀렸다

단순한 경제협력개발기구(OECD) 통계치만 들먹이면서 우리나라의 의사 수가 부족하다는 논리는 빈약하기 그지없다. 이 현상은 절대적인 의사 수는 결코 부족한 것이 아니라 대한민국 의사 인력 배치를 잘못할 수밖에 없는 의료시스템의 커다란 붕괴에 기인한 것이다.

시골 동네들까지 침투해 있는 수많은 의원을 보라. 그리고 중증환자들로 가득 차야 할 상급병원에는 건강검진 받으러 다니는 부티나는 가운 입은 사람들부터 만성질환 약을 90일에서 최대 360일까지 처방받는 환자들로 수두룩하다. 

더군다나 이 병원은 불과 얼마 전 모 외래의원이랍시고 동네병원에 다녀도 무방한 환자들을 우리나라 최상급병원으로 유도하면서 의사 인력이 부족하다는 핑계를 대니 웃길 수밖에. 

더군다나 중증환자를 돌보기에 여념 없어야 할 상급병원 의사들은 턱없이 열악한 대우를 감수하면서 환자들을 살려내겠다는 의지 하나만으로(정년보장이라는 좋은 이유도 있다) 형편없는 근무환경을 버티고 있는 실정이다.

무엇보다도 지난 십수년간 전공의들의 무자비한 희생으로 버텨온 것 또한 부인할 수 없는 사실이다. 이제야 겨우 '전공의의 수련환경 개선 및 지위 향상을 위한 법률(전공의법)'로 전공의들의 가혹한 근무시간을 제한해 양질의 수련환경을 조성하고자 했더니 몇 년간의 유예기간은 유야무야 넘어간 채 '의사 수가 부족하다'는 핑계를 내세우며 불법 무면허 의료인력을 대거 고용하여 그들이 에크모를 돌리고 환자들의 척수에 굵은 바늘을 찔러대는 참극을 모르쇠 지켜보고만 있었다는 것인가. 

의료계의 핵심인사라는 사람들이 떠드는 비열한 핑계를 보고 있자니 너무나 비통한 마음이다(더군다나 모 병원은 전공의의 수련계획조차도 제대로 짜지 못해 110명이나 되는 전공의들이 어쩌면 억울한 '추가 수련'을 하게 될지도 모르는 위기를 자초한 곳 아닌가).

자기들의 입맛에 맞게만 OECD 기준을 내세우는 현실은 참으로 우습다. 실제로 국민 수 대비 의사 수의 증가 비율은 물론 전체 총 의사 인력의 숫자 또한 10년만 흐른다면 OECD 평균에 다다를 터인데 이러한 부분에 대한 지적은 온데간데없다.

의사 수를 OECD 기준에 맞추려고 노력한다면 GDP 대비 의료비를 부담하는 비율이나 의사의 근무시간과 노동조건, 수가에 대한 부분도 똑같이 지적해야 하지 않겠는가.

이른바 현재 의사 수가 부족하다는 과들(비뇨의학과·흉부외과·외과 등등)의 경우를 예로 들자. 의대 정원을 늘린다고 해서 현재에도 지원율이 턱없이 부족한 비인기과를 할 사람이 늘어나리라 예측하는 근거는 대체 무엇인가? 의대 정원을 한없이 늘리더라도 현재의 체제개선 없이는 비인기과는 여전히 비인기과로 남을 것이고 블록마다 곳곳에 있는 의원들의 숫자만 늘어날 것이 눈에 훤한 일이다.

진짜로 상급병원의 의사 인력이 부족한 것은 사실이다. 필자가 이 병원의 병원장으로서 권위를 갖고 일하고 있다면 제도권에 있는 사람들에게 이렇게 주장하고 싶다. 

"정부는 하루속히 전국의 의료대란이 일어나기 이전에 의료전달체계를 정립하여 무조건 수도권으로 몰려드는 환자들을 지방거점 및 지역별로 분산할 수 있는 대책을 하루빨리 내놓아야 한다. 그리고 현재의 의료수가체계로는 장례식장 원내 편의시설 운영 등 부대사업 없이는 도저히 입원전담전문의 등 대체 의료인력을 고용할 수 없는 실정이니 일전에 대통령이 언급한 비정상 수가의 정상화에 의지를 갖고 대책을 내어달라. 전공의들에게 더 나은 수련 및 교육환경을 제공하고, 장기적인 관점에서 양질의 전문의를 양성함으로써 추후 중증환자들을 막힘없이 돌볼 수 있는 체계를 마련하라"고….

아무리 생각해도 의료계의 미래는 잿빛 먹구름 낀 하늘 같다. 좀처럼 답이 보이질 않는다.

오늘도 응급실에서 상급병원의 서울 전역 중환자실 자리가 없어 전국의 응급실을 떠도는 수많은 중증환자와 보호자들을 보고 있자니 울분을 금하질 못하겠는데, 그 와중에 '의대 정원 확대'라니. 기가 차서 말도 안 나온다.

■ 칼럼이나 기고 내용은 <의협신문>의 편집 방침과 같지 않을 수도 있습니다.


개의 댓글

0 / 400
댓글 정렬
BEST댓글
BEST 댓글 답글과 추천수를 합산하여 자동으로 노출됩니다.
댓글삭제
삭제한 댓글은 다시 복구할 수 없습니다.
그래도 삭제하시겠습니까?
댓글수정
댓글 수정은 작성 후 1분내에만 가능합니다.
/ 400

내 댓글 모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