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현직 판사, "법원 의료감정 문제 심각" 지적
현직 판사, "법원 의료감정 문제 심각" 지적
  • 이정환 기자 leejh91@doctorsnews.co.kr
  • 승인 2019.12.24 06: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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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법불신 가장 큰 영역 의료소송…"개선되지 않아 자괴감 든다" 고백
28년 전과 비교 의료소송 현실 개선 없다 토로…의료사고 국가배상책임 제안
ⓒ의협신문
ⓒ의협신문

현직 판사가 법원의 의료감정 절차 공정성과 중립성에 심각한 문제가 있다고 지적하면서 감정인들을 부당한 청탁이나 압력으로부터 보호할 수 있는 제도적 안전장치를 마련할 필요가 있다고 강조했다.

이 판사는 개별 소송 영역들 가운데 사법 불신이 가장 큰 영역은 아마도 의료소송일 것이라며 의료법학계 원로학자들이 28년 전에 의료소송의 문제점과 의료법학의 과제를 정리한 이후 의료소송의 현실이 거의 개선되지 않아 법관으로서 자괴감마저 든다고 고백했다.

이상덕 재판연구관(대법원·판사)은 12월 21일 대법원에서 대한의료법학회와 법원 의료법분야연구회가 공동으로 주최한 2019 동계공동학술대회에서 법원 의료감정의 문제점을 꼬집고, 의료배상책임을 국가배상책임으로 규율하는 방안을 제시했다.

이 재판연구관은 "유독 의료소송에서는 '과연 이게 정말로 맞나'라는 생각이 들 정도로 자신 없는 판결을 선고하는 경우가 많다"며 "의료소송에서 판결을 선고하는 법관 스스로 '자신 없음'이 나만의 경험은 아니다. 의료소송을 담당한 상당수의 법관이 같은 경험을 하고 있다"고 법관들의 고충을 전했다.

현재의 시스템으로는 법원이 의료분쟁을 제대로 판단하기 어렵기 때문에, 법원으로서도 재판권을 잘 행사할 방법을 진지하게 고민해야 한다고 제시했다.

이 재판연구관은 "개인적 의견으로 의료소송의 문제점을 근본적으로 해결하기 위해서는 의료행위에 내재된 위험을 사회화해 의료사고를 공적 보험에서 보상하는 방안이 바람직하다"며 "관련 법률의 제·개정이 필요한 입법 정책적인 문제"라고 말했다.

따라서 "이런 방향으로 나아가는 과도기적 해결방안으로 의료배상책임을 국가배상책임으로 규율해야 할 필요성이 있다"고 강조했다.

이 재판연구관은 의료감정의 문제점으로 ▲빈번한 감정촉탁 반려와 감정 절차의 지연 ▲감정 절차의 공정성과 중립성 확보방안 ▲감정서와 진료기록 자체의 부실 등을 짚었다.

낮은 감정료(감정인에 대한 보수)를 부실 감정과 감정절차 지연의  주된 원인으로 지목했다.

진료기록 감정료는 과목당 30만원(신체감정료 과목당 20만원)에서 2017년 5월 1일부터 100% 인상, 현재 60만원(신체감정료 과목당 40만원) 가량이다.

이 재판연구관은 "주요 대학병원 교수들이 감정하는데, 독촉 전화를 하면 그때서야 바쁘다는 이유로 반려하는 경우가 비일비재하고, 반려 후 새로운 감정인을 선정하다 보면 개별 사건에 따라 2∼3년의 시간이 허비된다"고 말했다.

그러면서 "감정인 선정 단계에서는 감정 절차의 공정성과 중립성이 어느 정도 담보되지만, 쌍방 당사자가 감정인에게 부적절하게 접촉해 청탁하거나 압력을 행사하는 것을 법원이 알면서도 막을 수 있는 제도적 안전장치가 없다"고 지적했다.

"법원은 법원 밖에서 벌어질 수 있는 문제 상황에 대해 누차 경고를 받고 있음에도 그것은 법원과 무관한 일이라거나 법원이 책임질 일이 아니라며 방관하고 있다"라고도 비판했다.

이 재판연구관은 "법원에 제출하는 대다수의 1차 의료감정서는 개인적으로 느끼기에는 매우 부실하다"며 "설명이나 판단 근거 제시가 충분하지 않고, 감정 사항(질문)에 명확한 답을 하지 않은채 판단을 회피하거나 유보하고 있다"고 지적했다.

정반대의 감정 의견이 제시된 경우, 법관에게 어느 것이 타당한지를 판별한 능력이 없는 것도 큰 문제로 꼽았다.

이 재판연구관은 "얼핏 상충하는 것처럼 볼 여지가 있는 애매한 두 가지 감정 의견이 제시되는 게 보통인데, 이 때문에 법관들은 웬만하면 재감정 요구를 받아들이지 않으려 한다"며 "이것이 감정 신청인의 입장에서 법관이 상대방을 편든다는 생각을 가지는 주된 요인"이라고 말했다.

법관에게 전문성이 없어 오판했다는 불만도 당사자나 대리인들을 통해 많이 제기되고 있다며 법관의 전문성 문제도 제기했다.

이 재판연구관은 "법관이 해당 영역의 사건을 처리해 본 경험이 전혀 없거나 1∼2년에 불과해 의료소송을 전문으로 하는 변호사보다 전문성이 부족한 문제가 발생한다"며 "의사를 법관으로 뽑는 방법이나 법관을 의과대학에 위탁교육하는 방법 등 의사와 같은 전문성을 갖춘 법관을 양성하는 것은 요원한 상황"이라고 진단했다.

"현재의 의료소송 시스템 및 불법행위책임 법리로는 법원이 의료분쟁을 제대로 이해하고 재판하기 어렵다"고 지적한 이 재판연구관은 며 "중·장기적으로 입법 정책적 차원에서 의료행위에 내재한 위험을 사회화해 의료사고를 공적 보험에서 보상하는 제도를 도입하는 것이 바람직하다"고 제안했다.

의료서비스가 국민건강보험이라는 공적 보험을 통해 제공되는 이상, 의료서비스의 하자로 인한 손해배상책임도 공적 보험이 부담하는 것이 당연하다는 논리다.

요양급여를 제공하는 과정에서 의료사고가 발생한 경우에는 일단 국가배상책임을 적용해 의료인의 고의·과실 유무를 따지지 않고 일차적으로 건보공단이 건강보험 재정에서 배상하고, 의료인에게 고의 또는 중과실이 있는 경우에만 구상할 수 있도록 하자는 것.

이 재판연구관은 "만약 국가나 건보공단이 의료사고에 대한 배상책임을 부담하지 않으려면 민간 의료기관을 건강보험 요양기관으로 강제 동원하지 말거나, 의료사고 위험도를 요양급여비용에 실질적으로 반영해야 한다"며 국가배상책임 적용의 이론적 근거를 제시했다.

그러면서 "의료사고에 국가배상책임을 적용하는 경우 공동체(공적 보험)의 책임을 인식하고, 피해자 보호(국가배상책임 성립요건의 완화), 의료인 보호(경과실 공무원 면책), 사회적 갈등의 최소화라는 목표를 어느 정도 달성할 수 있을 것"으로 전망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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