진료실 풍경 (3)·끝
진료실 풍경 (3)·끝
  • 김부경 고신의대 교수(고신대복음병원 내분비내과) admin@doctorsnews.co.kr
  • 승인 2019.12.08 18:4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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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부경 고신의대 교수(고신대복음병원 내분비내과)

내 조그만  진료실에는 매일 수십 명의 환자들이 스쳐간다. 몇 주 또는 몇 달에 한 번씩, 수년 동안 만나고 있는 의사는 생판 남은 아니지만, 한편으로는 자신의 인생에 절대 들어올 일이 없는 완벽한 타인이다.

환자들은 가끔 그런 나에게 인생의 한 단면을 보여주곤 한다. 전시회에 걸린 한 장의 사진처럼 내 진료실에는 환자들이 남긴 수많은 인생의 한 컷이 남아있다. 

< 네 번째 컷 >

"선생님, 김치 먹어?"
아니, 이분이 내가 김치를 못 먹는다는 사실을 어떻게 알고 이런걸 물어보시는 거지? 사실 나는 생김치를 못 먹는다. 그렇지만 더 놀라운 사실은 내가 제일 좋아하는 음식은 김치찌개와 김치전이다. 그러니까 엄밀히 말하자면 김치를 못 먹는 것은 아니다. 
"어…"
내가 머뭇거리자 환자가 가로챘다.

"아니~ 내가 김치를 담갔는데, 글쎄 너무 맛있는 거야. 근데 그거 줘도 안 먹으면 너무 아깝잖아. 괜히 줬는데 안 먹으면, 남들은 없어서 못 먹는건데에~. 그래서 선생님이 김치 잘 먹는다고 하면 줄려고. "
"아∼ 그런 거면 저야 엄청 잘 먹죠. 주시면 너무 잘 먹죠. 저도 없어서 못 먹죠. 말씀만이라도 이미 너무 감사해요."

사실 정말로 그 말만 들어도 너무 기뻤다. 그 환자는 몇 년 전만해도 죽고 싶다고 하시던 분이다. 합병증으로 눈도 거의 보이지 않는데다, 혈당 조절은 포기한 상태고, 오실 때마다 한숨을 쉬며 '요즘은 왜 이렇게 죽고 싶은지 몰라' 하셔서, 한동안 보이지 않으면 불안했다.

무슨 일이 있었는지 모르겠지만, 요즘은 혈당 조절도 아주 잘하시고 예약 날짜에 맞춰 꼬박 꼬박 오셔서 좀 좋다 싶었는데, 김치를 담가서 주시기 까지 하신다니 확실히 삶의 의욕이 생긴 것이 분명하다. 김치는 못 먹지만 김치찌개는 잘 먹는 내가 이렇게 기뻐하고 있다는 것을 그분도 아실까? 무엇때문인지 모를 그 삶의 의욕이 평생 유지되면 좋겠다. 

< 2019년의 마지막 컷 >

"할머니, 여기까지 오시는 것 너무 멀지 않으세요?"
"예, 멀어요. 버스를 4번 갈아타야 되요. 여기 오려면 새벽같이 나와야 되요."
"그럼 가까운 병원에 가실래요?"

"아니, 나는 여기 오는 것 아니면 할 일이 없어요. 내가 여기 와서 몇 마디 말 하는 것 말고는 몇 날 며칠이고 하루 종일 말할 일이 없어요. 여기 오고, 교회 가고 하는 것 말고는 없어요."
"그럼 더 자주 오시도록 해드릴까요?"

"아니, 그럼 힘들어요. 그냥 똑같이 해줘요. 내가 언제까지 여기 올 수 있을지 모르겠어요. 요즘은 매일 새벽기도가서 하나님 나라에 갈 것 기도해요."
우리 외할머니가 떠올랐다. 우리 외할머니도 늘 그렇게 말씀하셨다. 

"아이고, 어서 우리 아버지 집에 가고 싶어라. 요새는 날로 어서 아버지 집에 가게 해달라고 날마다 기도한다." 
외할머니가 마지막에 남기신 것은 손때 뭍은 성경책과 낡은 손가방 하나였다. 우리 외할머니는 그렇게 가고 싶은셨던 아버지 집에서 이제 행복하실까? 

곱게 말씀하시던 할머니. 자식들은 모두 도시로 떠나고, 할아버지는 먼저 하늘나라로 가시고, 시골집에 혼자 남은 할머니의 하루. 평생을 소망한 천국으로 갈 날을 손꼽아 기다리는 소망. 할머니를 못 뵌 지 꽤 된 것 같다. 할머니는 매일 기도하시던 대로 하늘나라에 가신 걸까? 

그곳은 아픔도 눈물도 없고, 만나고픈 사람들이 있는 그런 곳일까? 나도 그렇게 천국을 소망하며 살 수 있을까? 욕심 없이, 불평도 없이, 감사하며….  

지난 한 해 저의 글을 읽어주시고, 사랑해주신 모든 분들께 감사드립니다.
저도 참 따뜻했습니다. 
남은 2019년도 따뜻하세요.

김부경 교수의 청진기 연재는 이번호를 마지막으로 끝을 맺습니다. 그동안 사랑해주신 독자 여러분들께 감사의 인사를 전해드립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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