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과실 인정 후 환자 계속 입원…진료비 한 푼도 못받는다
과실 인정 후 환자 계속 입원…진료비 한 푼도 못받는다
  • 이정환 기자 leejh91@doctorsnews.co.kr
  • 승인 2019.11.28 17:3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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법원, "손배책임 비율 상관 없이 과실 따른 입원이라면 진료비 못 받아" 판단
법원(하급심)서 입원중인 환자에게 진료비 청구할 수 없다는 판결 사례 증가
ⓒ의협신문
ⓒ의협신문

병원 측의 의료과실이 인정된 후 환자가 치료를 위해 해당 병원에 계속 입원했을 때 병원이 환자에게 진료비를 내라고 청구할 수 있을까?

법원은 병원 측의 의료과실로 인해 환자가 계속 입원한 상황에 해당하기 때문에 병원 측은 환자에게 진료비를 청구할 수 없다고 판단을 굳히고 있다.

예를 들어 의료과실에 따른 병원의 책임이 60%이고, 환자가 미납한 진료비가 1000만원이라면, 그중 환자 측의 책임 비율 40%에 해당하는 400만원의 진료비는 환자가 병원에 납부해야 하는 것이 원칙이라고 볼 수 있다.

그러나 법원 판결은 병원 측은 환자 측으로부터 진료비를 한 푼도 받지 못하는 것으로 확정하고 있는 추세다.

이런 법원 판결이 주목받는 것은 법원 판례로 인해 앞으로 여러 병원에서 퇴원을 해야 하는 환자들이 진료비를 내지 않아도 된다는 이유로 병원에 계속해서 입원을 할 수 있다는 것이다.

또 손해배상 비율을 떠나 병원 측의 의료과실로 인해 손해가 발생한 것이라면, 그 손해로 인해 이후 발생하는 진료비는 병원이 청구할 수 없다는 것이다.

1993년 대법원 판결 시발..."환자에게 진료비 지급 청구 못해"

의료과실이 있는 병원 측의 진료비 청구를 인정하지 않는 것은 1993년 대법원 판결(대법원 92다15031)이 시발점이 됐다.

원고는 피고 병원에서 척추결핵으로 판단받고, 그 치료를 위해 피고 병원에서 주치의 집도하에 척추전방유합술을 받았다.

그 수술 직후에 원고에게 하반신이 마비되는 증상이 나타나 그 후 2회에 걸친 재수술을 받았지만 결국 회복하지 못했다.

원심은 의사의 수술과정상 과실을 인정하고 피고 병원에 사용자로서의 책임이 있는 것으로 판단했다. 또 치료비채권과 원고의 손해배상채권을 대등액에서 상계한다는 피고 병원의 주장을 배척했다.

대법원도 "의사가 선량한 관리자의 주의의무를 다하지 않은 탓으로 오히려 환자의 신체기능이 회복불가능하게 손상됐고, 손상 이후에는 후유증세의 치유 또는 더이상의 악화를 방지하는 정도의 치료만 계속되어 온 것뿐이라면 의사의 치료행위는 진료채무의 본지에 따른 것이 되지 못하거나 손해전보의 일환으로 행해진 것에 불과해 병원 측으로서는 환자에 대해 수술비 내지 진료비 지급을 청구할 수 없다"고 선고했다.

2015년 법원, "8년간 입원중인 환자 진료비 한 푼 못받는다" 구체화

2015년 대법원 판결(2011다28939. 2015. 11. 27)에서는 이런 판결 경향이 구체화된다.

환자 A씨(51세 남자, 월 소득 약 1000만원)는 경추 4∼5번 추간판탈출증, 경추 5∼6번, 경추 6∼7번 추간판부분탈출증, 척추공간협착증 등에 의해 목, 팔 저림 및 통증 증세가 있고, 피고 병원에서 마취통증의학과 의사로부터 신경근차단술 시술받았다.

그런데 시술 직후 호흡 마비, 의식 소실, 전신 마비 증세가 발생했으며, 심폐소생술 시행 후 자기공명영상(MRI) 등 검사 결과 척수경색, 연수-흉수 부종 소견이 확인됐다.

결국 경추 3번 이하 완전 마비 상태로 하루 2차례 기계를 이용한 기침 유발, 기관절개, 위루 설치, 방광루 설치 등의 상태가 됐고, 피고 병원에서 계속 입원 치료를 받는 상태에서 병원을 상대로 손해배상청구 소송을 제기했다.

서울고등법원은 원고의 사고일부터 진료비 총액 총 9억 6602만 390원 중 환자부담총액 7억 2655만 28원에 이르는 점을 참작해 피고 병원의 손해배상책임을 60%로 제한했다.

그러나 대법원은 원고의 체질적 소인이나 기왕증으로 인해 상태가 악화했다고 보기 어렵다며, 손해배상책임을 다시 판단하라고 파기 환송했다.

원고의 후유증세의 치료과정에서의 큰 비용이 들었다거나, 치료 기간이 장기화했다고 하더라도 이는 피고 병원 의료진의 과실로 발생한 손해전보의 일환일 뿐이니, 손해의 발생·확대에 기여한 피해자 측의 요인이라고 할 수 없다고 판단한 것.

이에 서울고등법원은 파기환송심에서 피고 병원 측의 손해배상책임을 80%로 상향했다. 병원 측의 환자를 상대로 한 진료비 지급 청구는 인정하지 않았다.

파기환송심은 이 사건에 대해 시술 전후의 환자 상태, 척수경색이 발생한 경위 등을 참작해 피고 병원 의료진의 과실에 의해 환자가 사지마비 상태에 이른 것으로 판단하고 병원 측의 책임을 80%로 인정, 약 12억원 및 8년간의 이자를 지급하라고 판결했다.

이 사건에서 환자 측이 8년간 피고 병원에 입원한 상태로 계속 진료를 받아오면서 미납한 진료비(환자본인부담금)가 총 7억 2600여만원에 이르렀는데, 소송 진행 중 병원 측은 이처럼 환자 측이 미납한 진료비 채권으로 병원 측의 손해배상 금액과 상계를 하겠다고 주장했다.

그러나 법원은 "의사의 진료비 채권은 의사가 환자의 치유를 위해 적절한 진료 조치를 다 해야 하는 의사의 진료채무를 이행해야 '진료비 채권'이 발생하는 것"이라고 밝히면서 "의사가 진료상 주의의무를 다하지 않음으로써 환자에게 회복 불가능한 손상이 발생했고, 그 손상 이후에는 후유증의 치유 또는 증상의 악화를 방지하기 위한 치료만 계속한 것이라면, 병원 측은 환자에게 진료비 지급을 청구할 수 없다"라고 판시했다.

그러면서 병원 측의 상계 주장을 모두 배척하고 판결금 전액을 지급하라고 판결했다. 결국, 피고 병원 측은 환자 측으로부터 진료비를 한 푼도 받지 못하는 것으로 확정됐다.

2018년(대법원 2017다288115. 2018. 4. 26) 들어서는 의료과실이 있는 병원이 입원 중인 환자에게 진료비를 청구할 수 없다는 판결이 굳어졌다.

이 사건은 의료사고를 입은 피해자가 입원 중인 상태에서 병원을 상대로 3번에 걸쳐 치료비와 일실수익을 청구하는 소송을 했다.

그런데 2차 소송에서 2013년 이후 발생할 것으로 예상되는 치료비를 청구하지 않아 2차 소송이 확정됐다.

그러자 병원 측은 2013년 이후 발생한 환자의 진료비를 청구하는 소송을 제기했다.

원심은 의료과실이 있는 병원이 배상해야 할 손해는 2차 의료소송에서 모두 전보됐다고 보아 의료과실이 있는 병원의 진료비 청구를 인용했다.

그러나 대법원은 "환자가 2차 소송에서 향후 치료비 청구를 누락한 것이 그 청구권을 포기한 것이라고 평가할 수 있는 특별한 사정이 없는 한 병원 측은 환자를 상대로 진료비를 청구할 수 없다"며 원심을 파기했다.

환자 퇴원 안해 병원 골머리...초기부터 제대로 대응 필요

이와 관련 이동필 변호사(법무법인 의성)는 "위의 판결이 이뤄진 이후 최근 하급심에서 병원 측의 과실이 인정되고 환자가 해당 병원에 계속해 입원하고 있는 경우 병원 측이 환자 측에게 진료비를 청구할 수 없다고 판결하는 사례가 늘고 있다"고 말했다.

그러면서 "이런 판결의 취지에 따르면 환자 입장에서는 해당 병원에 계속해서 입원해 있는 동안 진료비 한 푼 들이지 않고 계속해 진료를 받을 수 있어 객관적으로 퇴원을 해야 할 상황임에도 퇴원을 거부하고 몇 년째 병원에 입원해 있는 사례가 늘어나 의료기관이 골머리를 앓고 있다"고 덧붙였다.

이동필 변호사는 "의료사고에 따른 민사소송에서 의료인의 과실을 추정하는 법리는 과거와 달라진 것이 없지만, 최근 법원은 의료과실이 추정될 경우 의료인의 책임 비율을 상향하는 경향이 있어 의료인의 손해배상 비용 부담 압박이 계속 증가하고 있다"고 말했다.

그러면서 "의료인이나 의료기관들은 의료사고가 발생하지 않도록 '예견 의무'와 '결과 방지 의무'를 소홀히 하지 않고, 의료분쟁과 관련된 기본적인 법률 지식과 대응 요령 등을 익히고 의료사고 발생 시 초기부터 제대로 대응할 필요가 있다"고 조언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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