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updated. 2024-03-28 17:57 (목)
김정호 의료와 사회복지
김정호 의료와 사회복지
  • 송성철 기자 songster@kma.org
  • 승인 2003.09.16 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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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정호 자유기업원장은 지난 8월 30일 '의료와 사회 포럼 창립준비위원회'가 주최한 의료와 사회 포럼에서 '경제학자 본 의료와 사회복지' 주제발표를 통해 공공의료의 강화의 주요 논거와 제시되고 있는 시장실패의 여러 현상이 일어나게 된 원인을 시장실패가 아닌 정부실패라고 지적했다.

김 원장은 경제학자의 입장에서 참여정부의 의료와 사회복지를 움직이고 있는 공공성과 시장개입의 문제를 거시적 안목에서 진단하고 있다.

비록 일부 내용이 의료계의 입장과 상이한 점도 있지만 전체적인 맥락에서 자발적 선택에 기초한 시장경제의 원리가 작동해야 한다는 시각과 시장실패에 따라 정부규제가 필요하다는 규제강화의 시각과의 상관관계를 경제학적 관점에서 어떻게 진단하고 있는지 살펴볼 필요는 있다.

본지는 김 원장의 주제발표 전문을 입수, 회원들에게 소개함으로써 시장실패에 입각한 정부개입의 논거에 대한 문제점을 지적하고자 한다.

1. 서론
의료의 수요와 공급에 대해서 많은 정부의 개입이 이루어지고 있다. 의사면허제도 및 의과대학 정원 통제, 의료 수가 규제와 결합된 의료보험 제도, 병의원의 조직에 대한 규제, 의약분업 제도 같은 것이 모두 의료시장에 대한 정부의 개입들이다.

대부분 재화나 서비스에 있어서 소비자들의 자발적 선택과 공급자의 이윤 추구행위에 맡겨두는 것이 정부가 그 과정에 개입하는 것보다 싸고 질이 좋은 재화나 서비스가 공급되는 것으로 알려져 있다. 따라서 의료시장에 대한 정부개입이 정당화되려면 이 부분에서의 시장이 제대로 작동하지 않거나 또는 의료를 시장에 맡기는 일 자체가 부당하다는 논거가 입증되어야 한다.

전자의 논거를 시장실패의 수정을 위한 정부개입, 즉 시장의 완전성을 높이기 위한 개입이라고 할 때, 후자는 시장의 역할을 부인하고 대체하는 개입 또는 사회복지 차원에서의 개입이라고 볼 수 있다.

이 글에서는 의료시장이 과연 실패할 운명을 타고난 것인지, 그리고 의료분야에서 시행되고 있는 복지제도가 과연 합리적인 것인지의 여부를 경제학적 관점에서 따져보려고 한다.
 
2. 의료시장, 실패하는가?
의료시장의 실패 가능성과 관련하여 자주 거론되는 특징들은 비대칭정보, 외부불경제, 독점 가능성 등이다.

거래의 쌍방 중 어느 한쪽은 당해 서비스의 내용에 대해서 잘 알고 있음에 반해 다른 쪽은 잘 알지 못할 경우 비대칭정보가 있다고 한다. 비대칭정보의 존재는 경쟁의 실효성을 떨어뜨리고, 한쪽에 의한 다른 쪽의 착취 가능성을 높인다.

공급자간의 경쟁은 공급되는 재화 또는 서비스의 질을 높이고 가격은 낮추려는 인센티브를 제공한다. 그런데 경쟁의 원리가 작동하려면 소비자가 가격과 품질을 비교해서 더 싸고 더 질 좋은 서비스의 공급 쪽을 선택할 수 있어야 한다.

만약 소비자가 재화나 서비스의 질을 판단할 수 없다면 더 우수한 공급자를 선택할 가능성도 사라지고 그 결과 공급자들은 싸고 질 좋은 서비스를 공급하기 위해 땀을 흘리는 대신 쉽게 일하고 비싼 값을 받으려고 할 것이다. 그것은 착취라고 부를 수도 있을 것이다.

즉 소비자가 공급자간의 우열을 판단할 수 없는 한 공급자에 의한 소비자의 착취가 가능해지고 공급자간의 경쟁도 사라지게 되는 것이다. 그 결과 싸고 질 좋은 서비스의 공급이라는 시장의 역할도 사라지게 된다.

의료서비스 시장에서는 정보의 비대칭 문제가 심각하다는 가설이 당연하게 받아들여지고 있다. 즉 의사는 환자에 비해 진단과 처방에 있어 우월한 정보를 가지고 있기 때문에, 의사가 그것을 악용할 수 있다는 것이다.

면허제도나 의료수가규제 같은 것은 그런 목적에서 시행되고 있을 가능성이 높다. 엉터리 진료를 하지 못하도록 최소한의 자격 요건을 부여하는 것이 면허제의 표면적 목적일 것이고, 의사가 환자에게 바가지를 씌우지 못하게 하자는 것이 의료수가 규제의 대의명분일 것이다.

그러나 비대칭정보의 문제는 의료서비스 시장만이 아니라 어디에나 존재한다. 여러분은 컴퓨터 칩에 대해서 얼마나 알고 있는가. 반도체는 양자역학의 원리에 의해서 만들어지며, 양자역학의 원리를 이해하는 사람이 얼마나 되는가. 그것이 컴퓨터에서 어떤 원리로 작동하는지 아는 사람이 얼마나 되는가. 즉 컴퓨터 시장은 심각한 비대칭정보의 문제를 안고 있는 것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컴퓨터 시장이 실패하고 있다고 보는 사람은 없다. 자동차 시장 역시 마찬가지다. 자동차 광이 아니고는 자동차의 부속품들에 대해서 아는 사람이 드물 것이다. 즉 자동차 시장에도 심각한 비대칭 정보의 문제가 있는 것이다. 하지만 그것 때문에 자동차 시장(특히 신제품 자동차 시장)이 실패하고 있다는 말을 하지는 않는다.

정보의 비대칭성에도 불구하고 시장이 실패하지 않는 이유는 무엇인가. 그것은 장기적으로 보면 소비자들이 공급자들이 공급한 재화나 서비스의 성과를 판별할 수 있고 또 공급자들이 단기적 착취 행위보다는 장기적 영업에서 더 큰 이익을 얻을 수 있기 때문이다.

즉 당장은 자기가 산 자동차의 품질을 판별할 수 없지만, 수년의 시간이 지나면서 자기 차가 다른 메이커의 차와 비교해서 좋은지 나쁜지를 판별할 수 있게 된다. 그런 정보는 입소문을 통해서 또 매스컴을 통해서 다른 사람들에게 전파된다.

그렇더라도 만약 공급자들이 한 두 해 장사하고 말 거라면 그런 소문은 시장실패의 치료약이 되지 못한다. 소문이 날 때쯤이면 장사를 걷어치우고 사라져 버리면 그만이기 때문이다. 중고차 장사들을 믿지 못하는 이유는 거기에 있다.

그러나 많은 경우 그런 식의 기회주의적 장사보다는 신용을 쌓아가며 장기간에 걸친 사업을 하는 것이 공급자들에게 더 이득이 된다. 그래서 비대칭정보가 있음에도 불구하고 공급자들은 소비자들을 착취하지 않게 되는 것이다. 그것이 비대칭정보를 악용하지 않는 것이 공급자 자신들에게 더 이득이 되기 때문이다.

의료시장도 같은 원리가 작동할 것으로 생각된다. 장기적으로 보면 소비자들은 자신의 치료경험을 통해서 또 입소문을 통해서 누가 용한 의사인지를 알아 가게 될 것이다. 그리고 그런 의사라면 돌팔이처럼 환자를 상대로 사기를 치고 도망가는 일은 하지 않을 것이다. 즉 의료시장에 비대칭 정보의 문제가 있는 것은 사실이지만, 그것이 시장의 실패로 연결될 것 같아 보이지는 않는다.

그렇다면 면허제와 같은 의사의 자격 제한은 과연 필요한 것인가. 그럴 수도 있고 그렇지 않을 수도 있다. 의사의 자격에 아무런 제한이 없다면 의료사기를 치는 돌팔이 의사가 나올 가능성을 배제할 수 없다. 의사가 되기 위해 반드시 상당한 정도의 투자를 하게 한다면 그것이 아까워서라도 일단 의사가 된 자는 장기적 시각을 가지고 의료행위를 하게 될 가능성이 높아진다.

따라서 의사의 자격에 대한 어느 정도의 자격 제한은 필요할 수 있다. 그러나 많은 경우 면허제는 정원 제한 수단 또는 수입보장수단으로 이용되는 경향이 있다. 우리나라에서 의사 인력의 수급계획을 논하는 것은 바로 그런 관점에서 일 것이다.

변호사와 마찬가지로 의사의 경우도 공급이 늘어 경쟁이 치열해지면 가격이 낮아지고 소비자들이 누리는 서비스의 질은 높아지기 마련이다. 의사 각자의 수입은 낮아지겠지만, 공급 제한을 통해서 의사의 수입을 보장해주는 것이 오히려 부당한 제도 아닐까.

의사고시의 필요성은 인정되지만 의과대학 정원 규제는 없애야 한다. 아울러 의사자격고시도 의사가 되기 위한 최소한의 자격을 심사하는 수단이어야지, 의사 숫자를 제한하는 용도로 사용되어서는 안된다.

의료수요의 불확실성과 불규칙성, 그리고 치료 효과의 불확실성이 시장실패의 요인으로 지적되기도 한다. 의료에 대한 수요와 공급에 불확실성이 있는 것은 사실일 것이다. 그러나 불확실성 그 자체는 정부 개입의 논거가 되지 못한다.

첫째, 불확실성은 의료만의 문제가 아니라 삶의 본질 그 자체이다. 자동차가 언제 고장 날지, 내가 언제 직장을 잃게 될지, 언제 컴퓨터 바이러스에 감염될지 등등 삶 그 자체가 불확실성의 연속이다. 만약 불확실성에 대해서 정부가 개입해야 한다면 인간의 모든 행위에 대해서 개입해야 할 것이고 개인적 자유의 영역은 소멸되어 버릴 것이다. 불확실성이 좋은 것은 아니지만, 정부개입의 이유는 되지 못한다.

둘째, 불확실성은 보험의 영역인데, 보험에 대한 정부 개입이 오히려 문제를 악화시킬 수 있다. 자동차보험, 화재보험, 생명보험 같은 시장의 장치들은 모두 인간이 짊어져야 할 불확실성을 다룬다. 의료분야에서의 불확실성 역시 민간보험으로 다루지 못할 이유가 없다.

물론 모든 위험이 사적 보험에 의해서 커버될 수 있는 것은 아니다. 시장에서 보험이 출현하려면 위험의 pooling이 가능해야 하고, 또 역선택(Adverse Selection)이나 도덕적 해이 현상이 심각하지 않아야 한다. 위험의 pooling이 가능하지 않거나 역선택 및 도덕적 해이 현상이 심각하다면 민간보험의 등장은 기대하기 힘들다.

그렇다고 해서 정부에 의한 공적 보험이 자동적으로 정당화되는 것은 아니다. 민간회사가 극복할 수 없는 pooling의 문제나 역선택, 도덕적 해이의 문제를 정부라고 해서 더 잘 극복할 수 있는 것은 아니기 때문이다.

오히려 공무원들은 더 능력이 떨어질 가능성이 높다. 또는 정치적 목적에 의한 시장개입으로 초과수요를 발생시키고 의료산업 자체의 발전을 저해할 수 있다. 의료보험을 한다고 의료수가를 규제함으로써 소비자들의 도덕적 해이 현상은 더욱 커지게 된다. 이 문제에 대해서는 뒤이어 설명할 것이다.

이처럼 의료시장에 여러 가지의 실패 가능성이 있기는 하지만, 그것이 반드시 실제의 시장실패로 이어지지는 않는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현재의 우리나라의 의료시장에서는 시장실패로 보일 수 있는 여러 가지의 현상들이 나타나는 것이 현실이다.

첫째는 과다진료현상이다. 세계에서 가장 높다는 제왕절개율, CT 촬영 이용 횟수, 약이나 주사가 필요 없는데도 그냥 집에 가라고 말해주는 대신 약이나 주사를 처방해주는 행위 같은 것들은 제대로 작동하는 시장이라면 존재하지 않을 과다진료 행위라고 볼 수 있다.

또 의사의 공급 면에서도 의료보험의 적용 폭이 넓은 반면 힘들고 위험이 큰 산부인과, 정형외과 의사의 공급은 줄어들고 성형회과의사의 숫자는 상대적으로 많아지는 현상도 제대로 된 시장에서는 일어나지 않을 것이다. 소비자의 측면에서도 시장실패처럼 보이는 현상이 나타난다. 많은 사람들이 감기만 걸려도 병원에 가기 때문에 상대적으로 중한 환자들이 받아야 할 보살핌을 뺏어가는 것은 좋은 사례가 될 것이다.

그러나 이런 현상을 진정한 의미에서의 시장의 실패라고 볼 수는 없다. 오히려 정부실패로 보아야 한다. 정부가 수가를 규제하기 때문에 환자들이 하찮은 질환으로도 병원을 찾으며, 수입이 작기 때문에 의사들이 보험적용이 안되는 분야로만 진출하고 보험적용이 안되는 진료행위에 치중하게 되는 것이다.

규제의 부작용이 나타나는 것은 히포크라테스의 선서에도 불구하고 의사도 사람이고 손해보는 일은 하지 않으려고 하기 때문이다. 의료행위도 자발적인 거래에 바탕을 두고 있기 때문에 의사와 환자 모두에게 이익이 되는 거래만이 이루어진다. 가격이 규제되어 있을 경우 그 가격을 받더라도 손해를 보지 않을 거래만을 선택하기 때문에 그런 부작용들이 나타난다.

물론 단기적으로 보면 규제로 인해 소비자가 이익을 볼 가능성도 있다. 단기적으로는 공급이 고정되기 때문이다. 예를들어 응급실이 설치되어 있고 응급환자 치료와 관련된 의료행위 수가가 규제되어 있을 경우, 응급환자가 들어오면 비록 병원 측이 손해를 보더라도 환자를 치료해줄 수밖에 없다.

그러나 병원도 손해보는 일은 하고 싶어하지 않는다. 따라서 어떤 병원이든 손해를 초래하는 응급실은 없애버리려고 할 것이다. 그런 상황에서도 응급실을 폐쇄하지 않는 병원이 있다면 그것은 분명 응급 의료서비스와 더불어 이익이 나는 다른 서비스를 끼워팔기할 능력이 있는 병원들일 것이다. 그도 저도 아닌 상태에서 응급실을 운영한다면 그 병원은 조만간 도산해 버리고 말 것이다.

보건의료는 세계 어느 나라나 정부 정책의 대상이 되고 있는 것이 보건의료부분의 시장실패 때문이라는 것은 사실이 아니다. 비대칭정보 등의 문제가 나타나는 것은 보건의료 뿐만 아니라 자동차, 전자제품, 주택, 식품, 토지, 교육 등 많은 부문에 걸친다.

그리고 시장은 비대칭정보의 문제에 대해서조차 신뢰를 만드는 메카니즘을 진화시키는 경향이 있으며, 의료시장이라고 해서 특별한 예외일 것 같지는 않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많은 국가들이 의료의 공급에 개입해 온 것은 '의료는 특별하다'는 타고난 감정적 반응을 극복하지 못한 결과일지 모른다.
 
건강권이라는 헌법상의 기본권도 의료에 대한 정부개입의 근거로 이용되고 있다(대한민국 헌법 제36조 ③모든 국민은 보건에 관하여 국가의 보호를 받는다). 모든 국민의 건강 문제를 정부가 책임지겠다는 발상이다. 이 조항이 의료를 사회복지의 차원에서 접근하고자 하는 움직임의 밑바탕에 깔려 있다.

건강권은 교육권, 사회보장수급권, 주택권, 환경권 등 소위 사회적 기본권의 하나이다. 그러나 국가가 과연 이런 식의 혜택을 헌법상의 기본권으로 보장해도 되는지에 대해서는 의문의 여지가 크다. 초기 헌법의 형성 당시, 헌법상의 기본권은 시민의 생명이나 재산에 대한 정부 또는 국가의 침해를 막기 위한 최소한의 장치로서 등장했다.

신체의 자유, 언론,출판,결사의 자유, 거주,이전의 자유 같은 기본권들이 그런 것들이다. 소위 자유권적 기본권이라고 불리는 그 기본권들은 모두 '금지'의 형태를 취하고 있다. 즉 시민들의 사적 영역에 대해 정부가 침해해서는 안된다는 것을 내용으로 하는 것이다. 그렇기 때문에 국민 각자에게 기본권을 보장하기 위해 다른 시민들의 생명이나 재산을 침해할 필요가 없다.

그러나 건강권과 같은 사회적 기본권은 성격이 다르다. 국가는 의사가 아니다. 따라서 국가가 모든 국민의 보건을 책임진다는 것은 아픈 사람을 치료하기 위하여 다른 누군가의 국민에게 그 부담을 지워야 함을 뜻한다. 즉 자유권적 기본권에서와는 달리 누군가의 건강권을 보장하기 위해 다른 누군가의 재산을 침해해야 하는 것이다.

이것은 정의의 관념에 어긋날 수 있다. 누군가가 아프다는 것이 마음 아픈 일이기는 하지만, 그것에 대해 책임도 없는 타인에게 강제로 치료비를 부담시킨다는 것은 정의롭지 못하다.

혹자들은 사회적 정의의 관념을 이용해서 건강권 등의 사회적 기본권을 정당화하기도 한다. 그러나 정의란 자유로운 선택권을 행사할 수 있는 '사람'의 행동에 대해서만 정의될 수 있다. 즉 인간의 행동만이 정의롭거나 정의롭지 못하다고 판단될 수 있는 것이다. 사물의 움직임이나 사물의 상태 같은 것은 정의로운지 여부를 판단할 대상이 되지 못한다.

예를 들어 누군가 번개에 감전되었을 때, 감전된 자가 억울하다고 느낄 수는 있을 것이다. 그렇다고 해서 그 번개보고 정의롭지 못하다고 말할 수는 없다. 번개는 정의로운지의 여부를 판단할 만한 대상이 아닌 것이다. 그런 사정은 어떤 사회의 소득분포 상태에 대해서도 마찬가지로 적용된다.

그 사회에 속한 사람들 각자가 정의로운 행동 규칙에 따라 행동했다면 그 결과 얻어진 소득과 그것으로 구성된 소득 분포 상태에 대해 정의로운지의 여부를 판단하는 것은 의미가 없는 일이다. 누가 가난하고 누가 부자인지의 여부를 두고 사회적 정의에 맞는 지의 여부를 따지는 일은 소득의 분배를 구체적 인간이 결정하는 사회주의 사회에서나 의미 있는 일이다.

자본주의 사회에서 그런 일을 논한다는 것은 의지가 없는 '사회'에 인격을 부여하는 유아기적 착각과 같은 것일지 모른다.

사회적 정의의 관념을 인정한다고 하더라도 전국민이 사회복지의 대상일 수는 없다. 자선은 받는 사람이 원해서 주는 것이 아니라 주는 사람이 원해서 이루어진다는 관념에 기초해야 한다. 자선의 본질이 그렇기 때문이다. 그런 관점에서 본다면 모든 사람들이 공통적으로 측은지심을 느끼는 극빈층으로 한정하는 것이 합리적이다. 그래야만 상대적 부유층으로부터 가난한 층으로 소득이 이전하게 된다.

전국민을 사회복지의 대상으로 삼는다는 것은 왼쪽 주머니의 돈을 꺼내서 오른쪽 주머니로 옮기는 것과 크게 다를 것이 없다. 그 과정에서 불가피하게 근로의욕의 저하와 낭비라는 부작용이 나타나기 마련이다. 그럴 바엔 각자가 스스로의 생활을 책임지는 것이 더 합리적이다. 사회복지의 대상은 극빈층으로 한정되어야 한다.

설령 모든 국민의 건강에 대한 국가의 보호를 인정한다고 하더라도 의료수가를 규제하는 것과 같은 방법으로 그 부담을 의사에게 지우는 것은 합당하지 않다. 국가적 목표의 달성에 필요한 재원은 국민 모두의 부담으로 이루어지는 것이 옳다.

만약 다수가 자신의 이익을 위해 소수자에게 희생을 강요할 수 있다면 국민들은 생산적 활동에 종사하기보다는 다수에 포함되기 위해 노력할 것이고, 모든 국민들이 그런 노력을 하게 된다면 생산적 활동이 줄어들어 사회는 피폐를 면치 못하게 된다. 앞서 설명한 자유권적 기본권은 그런 일을 막기 위한 것들이다. 즉 아무리 다수가 원하더라도 국회는 헌법상의 기본권을 침해하는 법률을 만들 수 없다는 것이다.

정당 보상 조항도 그런 역할을 할 수 있다. 국가가 공익을 위해 국민의 권리를 침해할 수 있지만 침해받는 자에 대해 정당한 보상을 해 주어야 한다는 내용이다. 이 조항들이 잘 지켜진다면 아무리 다수가 원한다고 하더라도 소수의 권리가 부당하게 침해당하는 일은 없을 것이다. 설령 침해당하더라도 정당한 보상을 받을 수 있기 때문이다.

국민의 건강을 보호하는 것이 공익인지 아닌지는 분명치 않지만 설령 공익이라 하더라도 의료수가를 규제해서 그 목적을 달성하는 것은 공익추구의 비용을 의사들에게 부담시키는 것이다. 따라서 국가는 수가규제로 침해받은 의사들의 이익에 대해 보상할 필요가 있다.

대한민국 헌법 제23조 제3항도 비슷한 취지로 만들어져 있다.

대한민국 헌법 제23조
①모든 국민의 재산권은 보장된다. 그 내용과 한계는 법률로 정한다.
② 재산권의 행사는 공공복리에 적합하도록 하여야 한다.
③ 공공필요에 의한 재산권의 수용,사용 또는 제한 및 그에 대한 보상은 법률로써 하되, 정당한 보상을 지급하여야 한다.

위 조항이 자본주의 초기 헌법의 이념에 적합하도록 해석된다면 국민의 건강권 보장을 위해 의사들이 희생당할 이유는 없다. 의료 수가 규제 같은 것은 분명 재산권의 침해가 될 것이고, 그것에 대해 정당한 보상이 따르게 될 것이기 때문이다. 그러나 현실적으로 이 조항은 국가에 의한 의사들의 권익 침해를 구제하는 수단이 되지 못한다. 헌법재판소가 재산권의 개념을 좁게 해석해 왔기 때문이다.

헌법상의 재산권으로 인정되는 권리는 동산 및 부동산에 대한 모든 종류의 물권과 사법상의 모든 채권, 그리고 특별법상의 권리, 공무원의 급료 및 연금 청구권 등 재산가치 있는 공법상의 권리 등도 자신의 희생을 통해서 얻어진 보상적 성질이 강한 것인 경우에는 헌법이 말하고 있는 재산권에 속한다고 한다.

저작권 특허권 등 지적재산권도 헌법상 재산권에 속하는 것은 사실이지만, 여기에 대해서는 위 조항이 아니라 제22조 학문과 예술의 자유를 통해서 보호하고 있다.

헌법이 말하는 재산권과 경제학적 재산권간의 결정적 차이는 단순한 기대이익이나 반사적 이익, 경제적 기회, 우연히 생긴 법적 지위 등을 대하는 태도에서 발견된다. 경제학적 재산권의 개념에는 이것들이 모두 포함된다.

반면 헌법상의 재산권은 이런 것들을 포함하지 않는 것으로 해석된다. 예를 들어 약사의 한약조제권은 재산권의 범주에 속하지 않는다고 해석되며(헌재 97헌바 10), 관재담당공무원으로 하여금 국유재산을 취득할 수 없게 제한한 국유재산법 제7조는 단순한 기회의 제한에 불과하므로 재산권의 침해가 아니라는 식으로 해석하고 있다(96헌바55).

즉 정부의 가격규제가 공급자의 이익을 침해하는 것은 분명하지만 자신이 원하는 가격을 받을 수 있는 권리는 재산권으로 인정되지 못하는 것이다. 따라서 의료보험에서의 수가규제에 대해 헌법 제23조 제3항을 걸어 헌법소원을 제기한다고 해도 위헌판결을 받아낼 가능성은 크지 않다.

그러나 이런 식의 헌법 해석은 문제가 있다. 헌법이 정당보상 조항을 두는 이유는 다수가 합작해서 타인의 이익을 침해하지 못하도록 하기 위함이다. 현재와 같은 방식으로 재산권 개념이 해석되는 한 다수의 이익을 위한 소수 이익의 희생은 막아낼 방법이 없다. 이러한 상황에서는 의료수가 규제라는 다수의 폭정은 계속될 수밖에 없다.

■필자는 1956년생으로 연세대학교 경제학과와 서울대학교 환경대학원을 거쳐 미국 일리노이 대학교에서 경제학 박사학위를 받고 한국경제연구원 규제연구실장을 역임했다. 전문분야는 법경제학, Cyber Law, 도시경제학, 재정학, 등이다. 논문 및 저서로는 〈집단소송제에 대한 경제학적 검토〉(공저, 2001), 〈인터넷의 재산권 구조와 혼잡〉(공저, 2002), 〈Short-Term Leases, Long-Term Investments, and Tradable Goodwill〉(공저, 2001), 〈한국법의 경제학〉(편저, 1997), 〈법〉(번역, 1997), 〈토지세의 경제학〉(1997), 〈갈등하는 본능〉(공저, 1996), 〈한국의 토지이용규제〉(1995), 〈시장현상과 대중경제지식〉(공저, 1994) 등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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