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updated. 2024-03-28 17:57 (목)
"출소 후에 보자. 젓갈을 만들어버리겠다"…공보의 '공포의' 시간[현장르뽀 2]
"출소 후에 보자. 젓갈을 만들어버리겠다"…공보의 '공포의' 시간[현장르뽀 2]
  • 홍완기 기자 wangi0602@doctorsnews.co.kr
  • 승인 2019.11.18 18:4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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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립된 공보의들…재소자 협박에 '트라우마' 시달려
"관심이 너무 없다"…보안대책·인원 조정 등 해결책 모색
 
섬에 고립된 공보의들. 그들은 폭력의 공포에 떨거나 심지어 '생사'의 위협을 느낀 적이 있다고 했다. 공포영화에 등장할 법한 악몽이 현실이라고 했다. 어떤 공보의는 환자의 폭행으로 손을 다쳐 외과 전문의의 꿈을 포기해야 했고, 또 어떤 공보의는 갖은 협박에 트라우마가 생겨 정신건강의학과 전문의의 길을 접었다.

보건복지부와 국회는 '안전한 진료환경'을 위해 다각도로 노력하고 있지만, 그들의 시야에 '공중보건의사' 는 열외다. 무관심 속에 공보의들의 안전은 그야말로 '무방비' 상태다. [의협신문]은 전국 벽오지에 근무하고 있는 공중보건의사 7명을 취재했다. 이들 사연을 바탕으로, 4개의 이야기를 재구성했다.
 

   [현장르포 1탄] "쾅쾅!" 새벽 3시, 또 그 사람이다…섬보의 '공포의' 시간
▶[현장르포 2탄] "출소 후에 보자. 젓갈을 만들어버리겠다"…공보의 '공포의' 시간

(사진=pixabay) ⓒ의협신문
(사진=pixabay) ⓒ의협신문

#4. D공보의의 '악몽'…"출소 후에 보자. 젓갈을 만들어버릴 거다"

지금은 복무를 모두 마친 상태다. 하지만 지금도 재소자들이 나에게 했던 '협박성' 폭언들이 생생하게 느껴진다. 올해 4월까지 나는 교도소에서 공보의 의무기간을 마쳤다.

교도소 공보의들에게 위협·협박은 하루에 1∼2번씩 꼭 듣는 일상이라 보면 된다. 특히 내가 있었던 곳은 강력범들이 많았다. 00파의 행동대장이라고 자신을 소개하기도 했다.

처음엔 교도소 특성상 어쩔 수 없는 부분이라고 생각했다. 하지만, 매일 반복되는 욕설과 폭언, "나가면 어떻게 해버리겠다" 등의 협박에 날로 목이 죄어왔다. 살인이나 폭행 등의 죄명이 있는 상황이기에 진짜가 될지도 모르겠단 생각이 자꾸만 들었다. 날이 갈수록 나아지기는커녕, 협박이 더 크게 와닿기만 했다. '살인'이나 '방화' 등 환자의 범죄사실을 볼 수 있는 진료기록이 있었는데, 어느 순간 그것을 보는 게 두려워졌다.

"내가 너 꼭 죽일 거다. 젓갈로 만들어버리겠다"

환자에게 들었던 중, 가장 날카롭게 기억나는 욕설이다. 저런 욕이 있다는 사실에 놀라웠다. 교도소에서는 환자들이 수갑을 차고, 진료를 보게 돼 있지만 잘 지켜지지 않는다.

가끔 교도관님께서 '00가 선생님의 이름 정보공개를 청구했는데, 내가 잘 막았다"고 웃으며 말씀하셨다. 그런 사람이 한둘이 아니었다. 실제로 내 정보를 알아내려는 시도라는 생각에 난 웃을 수 없었다.

한 번은 교도소에서 일을 하고 있는 동기와 연락을 한 적이 있다. 상황은 역시 비슷했다. 어느 날은 재소자가 욕을 해서, 본인도 욕을 주고받았다고 했다. 그런데, 재소자가 인권위원회에 진정을 넣었고, 공보의인 친구에게만 징계가 내려왔다고 하더라. 서로 욕을 했는데, 교도소 측에서 이런 처리 방식이 편하다고 했다 한다.

사실 정신과를 지망했기 때문에, 교도소를 자원했다. 정신질환자들을 많이 상대해볼 수 있을 거라 생각했기 때문이다. 하지만, 교도소를 다니면서 트라우마 같은 것이 생겼다. 지금은 정신과에 대한 꿈을 접었다.

근무하면서, 도저히 잠에 들 수 없어 수면제까지 처방받아 복용했었다. 원래 수면제를 복용하면 살이 찌게 된다. 알면서도 약 없이는 잠들 수 없는 날이 계속되자, 복용을 끊을 수 없었다. 그때 쪘던 8kg이 아직도 빠지지 않고 있다.

(사진=pixabay) ⓒ의협신문
(사진=pixabay) ⓒ의협신문

사연의 공보의들은 바로 얼마 전까지 의사가 되기 위해 공부하는 학생이었다. 자신의 꿈을 좇아, 나를 필요로 하는 곳에서 배운 대로 일하길 원했다. 하지만, 매서운 '폭언'과 '폭력'에 때로는 좌절하기도, 꿈을 포기하기도 했다. 하지만, 그 누구도 어느 곳에서도 그들의 목소리에 귀 기울여주지 않았다.

대한공중보건의사협의회가 11월 1일 발표한 설문조사에 따르면, 공중보건의사의 86%가 환자나 보호자에게 폭언을 경험했다고 밝혔다. 이 중, 8%는 폭행까지 겪은 것으로 나타났다. 심지어 공무원에게 폭행을 당했다고 답한 공보의도 있었다.

보건소나 의료원 등 상급 기관의 대처에 관한 질문에는 '아무런 대처를 하지 않았다'는 응답이 47%였다. '민원이 발생하지 않도록 은폐를 시도했다'는 응답도 37%에 달했다.

대공협은 해당 설문 결과를 발표하면서 "공중보건의사에 대한 인식개선을 통해 공보의가 단순히 원하는 약을 처방해 주는 '처방전 자판기' 같은 존재가 아닌, 지역사회 주민을 위해 성심을 다해 진료하는 전문가로 바라봐 달라"고 하소연했다.

공중보건의사들, 특히 '고립된' 공보의들에 대한 안전장치 마련이 시급해 보인다. 하지만, 상급 기관에서는 문제를 알고도 적당히 넘기길 원했다. 개선을 위해선 '문제'를 '문제'로 보는 사회적 분위기 형성이 우선이다. 현황 파악 등 개선 노력은 관심 없인 논의조차 될 수 없기 때문이다.

조중현 대한공보의협의회장 역시 "위 사례들은 과거부터 지속적으로 이어져 왔음에도 개선책이 논의된 적조차 없다"면서 "두려움에 떨며 진료를 보고 있는 공중보건의사들을 더이상 이대로 방치해서는 안 된다"고 강조했다.

현재 '의료기관 내 안전'에서 논의되고 있는 '청원 경찰'제도나 경찰 '온콜' 시스템 등을 적용하는 방안도 고려해볼 수 있다. 핵심은 사회적으로 쟁점이 되고 있는 사회 속 '의료기관 내 안전' 문제 만큼, 이제는 공중보건의사들에 대한 안전 역시 관심을 갖고 봐야 한다는 점이다.

'24시간 온콜'을 견뎌야 하는 섬보의를 위한 인력 충원 방안도 필요하다는 진단도 나오고 있다. '배치가 불필요한' 지역의 공보의들을 보다 반드시 필요한 곳에 배치해야 한다는 지적이다.

실제 2018년 대공협이 자체 조사한 자료를 보면, 전국 보건소 및 보건지소 1360개 기관 중 601곳(44.19%)은 반경 1km 이내에 한의원·치과의원을 제외한 민간의료기관이 자리하고 있는 것으로 파악됐다.

'의료기관 밀집' 지역에서 '의료 빈틈을 메운다'는 공보의들이 배치되고 있는 문제점이 지적되고 있는 한편, 너무도 적은 인력이 배치돼 어려움을 겪고 있는 공보의들의 사연이 나오고 있는 것. 이 두 가지 사실만 놓고 본다면, 적정한 배치만으로도 해결의 실마리가 보인다.

조중현 대한공보의협의회장은 "도서 산간 지역에 홀로 배치받은 공중보건의사들은 폭언, 폭행에 무방비상태로 노출돼 있다. 적은 인력 배치와 정당한 보호조치가 없다는 점은 상당히 심각하게 봐야 할 사안"이라며 "실제로 피해를 입은 공중보건의사 선생님들은 젊은 나이에 큰 트라우마를 안고 평생 의업에 종사해야 한다. 이는 공보의 개인의 문제를 넘어 지역사회와 국민건강에도 악영향을 미칠 수 있다"고 강력 경고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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