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updated. 2024-03-29 15:21 (금)
"쾅쾅!" 새벽 3시, 섬 공보의에게 무슨 일이?..'공포의 시간'[현장르뽀 1]
"쾅쾅!" 새벽 3시, 섬 공보의에게 무슨 일이?..'공포의 시간'[현장르뽀 1]
  • 홍완기 기자 wangi0602@doctorsnews.co.kr
  • 승인 2019.11.12 19:3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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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공포영화 아냐?" 고립된 공보의들, 그 안에선 무슨 일이?
미흡한 경찰 대응·대책 없는 정부…"사고가 나 야 알아줄까?"

섬에 고립된 공보의들. 그들은 폭력의 공포에 떨거나 심지어 '생사'의 위협을 느낀 적이 있다고 했다. 공포영화에 등장할 법한 악몽이 현실이라고 했다. 어떤 공보의는 환자의 폭행으로 손을 다쳐 외과 전문의의 꿈을 포기해야 했고, 또 어떤 공보의는 갖은 협박에 트라우마가 생겨 정신건강의학과 전문의의 길을 접었다.

보건복지부와 국회는 '안전한 진료환경'을 위해 다각도로 노력하고 있지만, 그들의 시야에 '공중보건의사' 는 열외다. 무관심 속에 공보의들의 안전은 그야말로 '무방비' 상태다.  [의협신문]은 전국 벽오지에 근무하고 있는 공중보건의사 7명을 취재했다. 이들 사연을 바탕으로, 4개의 이야기를 재구성했다.

▶[현장르포 1탄] "쾅쾅!" 새벽 3시, 또 그 사람이다…섬보의 '공포의' 시간
  
[현장르포 2탄] "출소 후에 보자. 젓갈을 만들어버리겠다"…공보의 '공포의' 시간

(사진=pixabay) ⓒ의협신문
(사진=pixabay) ⓒ의협신문

#1. 고립된 A섬보의…공포의 시간

"쾅! 쾅!"

오늘만 150명의 환자를 봤다. 일주일 내내 하루 100명이 넘는 환자를 보다 보니, 금요일 저녁엔 곤죽이 되고 만다. 피곤한 몸을 뉜 방 안으로 어둠이 밀려왔다. 너무 피곤하면 잠도 잘 안 온다고 했던가. 새벽이 돼서야 작게 들려오는 파도 소리에 겨우 잠이 들었다.

"쾅! 쾅!". 누군가 보건소 문짝이 부서져라 발길질을 했다.

"누구세요?"

"당장 나와! 왜 문은 잠가. XXX야!"

옷을 미처 여미지도 못하고 서둘러 나왔다. 누군가 문을 쾅쾅 쳐대며 소리를 질렀다. 어렴풋이 욕설도 들렸다.

김씨가 문 앞에 버티고 서 있다. 옆에는 함께 일하는 이 씨가 샐쭉한 표정으로 바라보고 있다. 비틀거리며 퍼붓는 욕설마다 마다 술 냄새가 풍겼다.

"빨리빨리 문을 열어야지! 나랏돈 먹고 일하는 개XX가! 그러고도 네가 무슨 의사야?!"

"…선생님, 어디가 불편해서 오셨나요?"

"이 사람이 술이 잔뜩 취했어. 어떻게 좀 해 봐"

김 씨의 팔짱을 건낸 이 씨가 돌아섰다. 계속 욕을 하며 때리려는 김 씨를 억지로 말리며 진료실 옆 소파에 뉘였다. 뒷수습은 또 내 몫이다.

"개XX. X 같은 XX"

"선생님, 욕 좀 하지 마세요"

끝없이 반복되는 욕설에 참다 못해 한 마디 했다. 순간 얼굴 앞으로 손이 날아왔다. 가까스로 피했지만, 나를 때리기 위한 손짓은 계속됐다. 그제야 보건소 직원이 김 씨를 말렸다.

"진료실에서 이러시면 큰일 나요!"

직원과 옥신각신하는 사이, 다급하게 경찰서에 전화를 했다.

"경찰서죠? 지금 김 씨가 보건소에 와서 행패를 부립니다. 빨리 와주세요!"

"누구? 김 씨? 아~ 그 양반∼, 전화 바꿔줘. 내 말은 잘 듣거든"

경찰의 조치가 미흡하다는 그런 이성적 판단도 하기도 전, 급한 마음에 얼른 김 씨의 귀에 전화기를 갖다 댔다. 경찰의 말을 들은 김 씨는 일순간 조용해지는 듯하더니 다짜고짜 의자를 집어 던졌다.

'콰과쾅쾅쾅-!'

직원과 나는 가까스로 몸을 피했다. '저 의자에 맞았다면…'. 상상도 하기 싫었다. 난장판이 돼 버린 보건소로 김 씨의 상사가 찾아와 사과를 했다. 

부임한 지 겨우 여섯 달째. 김씨는 여덟 번이나 술에 취한 채 보건소 문을 부서져라 두드리고 있다.

섬에 고립돼 있는 공보의(섬보의)는 사실상 출퇴근 시간이 따로 없다. 오전 9시 출근, 오후 6시 퇴근은 통하지 않는다. 아무도 아는 사람이 없는 고립된 섬에서, 공보의는 이방인이다.

올해 초, 돌아가신 故임세원 교수님이 떠올랐다. 이러다 어느 날, 손에 연장이라도 들고 오는 건 아닐까…별의별 생각이 다 든다.

(사진=pixabay) ⓒ의협신문
(사진=pixabay) ⓒ의협신문

#2. B공보의 "손이 바스러졌다. surgeon은 꿈도 못 꾸게 됐다…"

2년간 섬보의로 근무했다. 지금 생각하면, 그 시간을 버텨낸 게 신기하다. 사실은 아직도 환자를 보는 게 무섭다. 지금도 정신건강의학과 진료를 받고 있다.

평소에도 욕설 등 폭언이나 경미한 폭행은 일상이다. 10명 중 1명꼴로 안 좋은 상황이 생긴다고 보면 된다. 그날도 그런 일상 중 하나였다. 명절을 바로 앞뒀던 어느 날, 외과 전문의 지망생인 나는 진로를 포기해야 했다.

"선생님, 5일 전에 2주 치 약을 받아 가셨는데 또 오셨네요?"

"명절이 있으니까 약 2주 치만 더 받읍시다"

만성질환을 앓고 있어 주기적으로 약을 타러 오던 분이었다. 명절을 앞두고, 휴일을 우려해 약을 미리 구비하려는 환자들이 많이 있었다.

"선생님, 보건소는 1주일만 휴일입니다. 연휴가 끝나면 바로 올 테니, 걱정 마세요"

"아, 그런 건 모르겠고! 빨리 2주 치나 내! 어른 말이 말 같지 않아?! 어린 노무XX가 버르장머리가 없어!"

인계를 받을 때 분명히 5일 이상으로 약이 남아있으면 약 처방 시, 삭감 사유가 된다고 배웠다. 보건복지부에서도 안 된다고 했던 지침을 기억했다. 자세히 설명했지만 막무가내다. 태어나서 처음 듣는 욕설들이 귓볼을 매섭게 치고 지나갔다.

"넌 애비애미도 없냐! 교육을 어떻게 받았길래 그래! 머리에 피도 안마른 노무XX가…XXX에 XX야!"

한 순간이었다. 욕설에 정신이 아득했던 그때, 환자가 갑자기 내 멱살을 잡고 흔들었다. 보건지소에 함께 일하는 직원 역시, 막을 여력이 없어 어쩔 줄 몰라 했다. 멱살과 함께 잡힌 오른손을 그가 꺾었다. 꺾인 손에 힘을 주어 계속 폭행을 이어갔다. '우지끈'하는 소리가 났다. 엑스레이 촬영 결과, 오른손 인대와 근육에 손상이 왔다고 했다. 일주일간 입원을 해야 했다. 지금도 정상적인 기능이 어렵다.

환자가 던진 전화기에 얼굴을 맞은 일도 있다. 전화기로 맞으며 생각한 건 "왜 내가 여기서 이런 취급을 받고 있어야 하나"였다. 나보다 한참 뒤에 군대에 들어간 조카는 일주일 전 제대를 했다고 연락했다. 차라리 현역으로 입대를 했다면, 상황이 지금보다는 낫지 않았을까 하는 후회감이 밀려왔다.

부당한 일을 당했음에도 민원에 대해 돌아오는 답변은 상투적이다. 시골의 특징인 것 같다. 되도록이면 민원 없이 '좋은 게 좋은 거'라는 식이다. 민원이 생길 때마다 출동한 경찰 역시 구타를 당하는 일이 많다. 나만큼이나 힘들어 보인다. 아버지뻘 되는 경찰이 용서하고 넘어가자고 사정하니 차마 고소까지 하지 못했다.

공보의 선배들 역시, "민원을 해도 소용이 없다"며 "괜히 미운털 박히지 말고 참으라"고 했다. "병원에서 근무하면 어차피 맞게 될 상황"이라며 "인내하라"는 얘기도 했다. 하지만, 난 지금 오른손을 잃었고, 공황장애를 겪고 있다. 의사가 되기 위해선 이 모든 걸 감내하는 게 당연한지 묻고 싶다.

(사진=pixabay) ⓒ의협신문
(사진=pixabay) ⓒ의협신문

#3. C섬보의의 사연 "꼬챙이까지 들고 와 난리를 피워…"

C공보의는 "근무하고 있는 섬은 지소 외 의료시설이 한 곳도 없다. 약국도 없다. 모든 응급상황이나 문의 사항이 전부 공보의에게 넘어온다. 해경 헬기로 환자를 이송하는 업무까지 전부 하게 돼 있다"며 "심지어, 구급차를 운전해 오던 소방서에서 운전을 못 하겠다고 하자 나보고 운전을 해서 환자에게 가라고 지시받은 일도 있었다. 시스템이 열악해 만만한 공보의에게 일이 돌아가는 경우가 너무 많다"고 설명했다.

"폭언·폭행은 말할 수 없이 비일비재하다. 현재 머무르는 관사는 문이 없다. 그러다 보니, 주민들이 아무 때나 갑자기 들이닥친다. 손을 벴다면서 한밤중에 처치를 해달라고 떼를 쓰는 일은 아주 흔하다. 체구가 건장한 어부분들 3, 4명이 둘러싸는 상황도 다반사다. 그 안에서 느끼는 공포는 겪어보지 않으면 모른다"고 털어놨다.

C공보의는 "보통 무리한 약 처방을 요구하거나, 증상과 관계없는 진단을 요구하는 경우에서 폭언·폭행이 발생한다. 약국이 없다 보니, 원내처방 약밖에 없어 상황을 설명해도 막무가내다. 한 번은 어떤 어부분이 어업을 할 때 쓰는 꼬챙이를 들고 와서 약을 내놓으라고 난리를 피웠다. 그럴 때마다 우리를, 나를 지킬만한 것이 없다. 그야말로 무방비다. 사고가 한 번 크게 나야 공보의들의 사연을 들어줄 것 같다"고 하소연했다.

공중보건의사들은 대부분 폭언·폭행에 무방비 노출돼 있다고 했다. 섬보의의 경우, 상황은 더 심각했다. 주중은 물론 야간과 주말까지 24시간 '온콜' 상태로 근무해야 하는 실정이다.

'이동 금지명령'에 따라, 대개 2주 동안 4일을 제외하곤 섬 밖으로 나갈 수도 없다. 보통 공보의 2명이 돌아가면서 4일씩 쉬고 있는 곳이 대부분이다. 문이 잠기지 않는 숙소에서 지내야 하는 경우도 있다. 누군가가 나쁜 마음을 먹고 들이닥치면 어떤 일이 생길지 장담하지 못하는 상황이다.

공중보건의사들은 인터뷰를 진행하면서도, 본인의 이름이나 보건소·지소의 이름이 노출되는 걸 극도로 두려워했다. 복무 중인 공보의들의 위치를 짐작케하는 부분이다. ▶다음 기사("출소 후에 보자. 젓갈을 만들어버리겠다"…공보의 '공포의' 시간)에 계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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