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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본 프리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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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김인호(한국의사수필가협회장· 의사시니어클럽운영위원장) admin@doctorsnews.co.kr
  • 승인 2019.11.10 17:5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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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인호 회장
김인호 회장

"우리는 패했지만 조선은 승리한 것이 아니다. 장담 하건데, 조선민이 제 정신을 차리고 찬란한 위대했던 옛 조선의 영광을 되찾으려면 100년이라는 세월이 더 걸릴 것이다. 우리 일본은 조선민에게 총보다 무서운 식민교육을 심어 놓았다. 결국은 서로 이간질하며 노예적 삶을 살 것이다. 그리고 나 아베 노부유키는 다시 돌아온다. 아베 조선총독."

1944년 7월 24일 제9대 조선총독으로 부임, 1945년 8월 원폭으로 미군이 한반도에 들어서자 미군사령관 J.R.하지중장 앞에서 항복문서에 서명하고 한국을 떠나며 남긴 유명한 글이다. 

아베 노부유키(阿部信行 78세 1875∼1953년). 전쟁 말기 조선에서 자원 수탈에 총력하고 징병·징용과 근로 보국대 기피자 색출, 여자정신대 근무령을 공포하고 불응 시 징역형을 내리기도 했던 일본 강점기 마지막 조선 총독이다. 

새삼 A급 전범자의 이 글이 떠오르는 것은 경제 보복 정책을 과감히 실현하는 한일 무역전쟁에서 진퇴 위기에 처한 우리나라 상황을 예언한 듯한 두려움이 솟기 때문이다. 세계 경제 10위권의 한국 산업의 아킬레스건을 건드려 온 나라가 불안 속에 잠기게 한 것이 결코 하루아침에 이루어 진 것 같지 않아 더욱 아쉽고 억울하고 분통하다. 

원인이 어떠하던, 이렇게 힘을 못 쓰는 산업경제의 인프라가 허술하였음을 간과한 정부의 허둥지둥 모습은 애처롭기까지 하다. 

35년 전 처음 일본 도쿄 관광을 갔을 때의 기억이 새롭다. 한 마디로 충격이었다. 

필자의 눈에 도심 거리나 명승지 뒷골목까지 확연히 드러나 있는 청결·질서·겸손은 한 수 위 문화였다. 분리수거 쓰레기 처리는 자로 잰 듯하고 도서나 신문은 묶음 별 규격이 같았다. 농촌의 집집마다 금방 빗질한 듯 정돈되어 있고, 잡초도 웃자라 있지 않았다. 누가 시켜서 될 수 없는 일상들의 모습이다. 

명치유신 후 사무라이 무신시대에 살아남기 위해 몸에 베인 안으로 단속하는 습성이라는 가이드의 설명에 정치가 교육이구나 느꼈다.

집요하게 한 우물을 파는 집안의 장인 정신이나 학술연구 테마 선정과 그 결과를 도출하는 근성도 워낙 집요하여 고교 화학선생의 말년 논문이 노벨상을 받은 일화도 유명하다.

그런데 금년 2019년 리튬 이온 전지 개발로 또 화학상을 받은 요시노 아키라(71·吉野彰)씨는 1972년 24세때 화학기업 아사히카세이(旭化成)에 입사해 명예 펠로우로 지금까지 근무하고 있다. 

일본인 노벨 수상자로는 27명째이며 화학상으로 8번째 영광과 특허를 가졌기에 정밀·화학·기초·재료 분야에서는 일본이 독보적이라 인정하지 않을 수 없다. 이런 연구 정신은 하루아침에 이루어 질 수 없고 한 두 사람의 노력으로 될 일이 아니다. 또 강요하거나 지원한다고 되지 않는다. 

3년 전 나가사키의 한국 기업 소유 골프장을 갔을 때도 놀랐다. 

원폭의 후유증으로 도시 전체가 재건된 상태였는데 호흡기 내과 의사교수의 어머니(56세) 히가시가 캐디로 보조를 했다.

"20년을 해 온 직업이고 4년 후에 남편(중소기업체 직원)과 같이 은퇴할 겁니다. 아들과 며느리는 의사로 살 것입니다." 그녀는 베테랑이었고 날렵했으며 순수했다. 직업 정신이 베어 있고 자기가 할 수 있는 일의 가치를 보존하려 했다. 

금년 추석 연휴에 일본 혼슈 남서부 와카야마 현 시라하마의 온천에 휴양 차 다녀온 적이 있다.

일본 상품 불매와 여행취소 같은 반일 감정으로 일본 행 자체가 위축되고 조심스러울 때였다. 매실 나무로 둘러 쌓인 정적의 저녁노을 아래 태평양을 향한 족욕과 야외 온천은 구도자의 명상처럼 나의 정신을 맑게 해 주었다. 불안에 쌓인 스트레스와 피로가 씻기고 마음은 평온해지고 있었다.

"휴양지이기 때문에 한국인의 여행객이 줄면 운영에 영향을 받습니다. 우선 저부터 힘들지요. 그런데 요즘 들어서 여태껏 느끼지 못했던 일본인들의 눈빛이 차가워지고 있음을 느낍니다. 50만 교포 중 30만이 오사카 주위에 거주하는데, 제일교포들의 위상과 고립을 한 번쯤 고려해보는지 아쉬워한답니다." 

비 내리는 해안도로를 운전하며 설명하던 가이드는 교포2세로 자기 아이들의 귀화마저 적극 거부하였다며 섭섭한 마음을 토로하였다. 

그 동안은 이웃으로 한일관계가 원만하여 여행과 교역이 서로 발전하여 교포들의 생활도 격상되었고 다방면에서 한국 민족의 우수성이 국제적으로 명성을 날리고 있기에 한국인으로서 자랑스러웠다고도 했다. 그의 애타는 호소를 들으며 정권을 쥔 지도자의 행보가 외국의 재일교포들 마음까지 아프게 하는구나 하고 가슴이 아려 왔다. 

계절이 바뀌는 비가 멈추고 두 시간의 비행거리 시라하마의 그날 밤은 고요하고 적막하였다. 귀국하면 친일 반일로, 친미 반미로, 종북좌파와 극우로 시끄러운 밤으로 잠 못 이룰 것이다. 

숙소의 TV 뉴스는 딴 세상처럼 생활 보도가 대부분이고 정치 특히 한국 관련 보도는 한 마디도 없었다. 우리나라만 요란한가? 여행 금지 같은 보복 대응은 일본 국민의 시각에서 어떻게 보일까? 의아해할 것 같았다. 

아베가 "한국은 믿지 못할 나라"라고 단정 짓듯 일본의 흑심과 야망 또한 우리도 신뢰할 수 없다. 일본 국민도 폐쇄성의 골이 깊은 단점을 갖고 있어 글로벌 시대 그들의 미래도 밝지 않다. 다만 수십년 준비한 군비 축적으로 공공연하게 헌법 개정의 길을 선택하고 있는 나라 일본을 이웃으로 둔 우리나라의 숙명에 민족애로만 대응할 수 없다는 것이 현실이다. 

국제사회의 신뢰와 경제부흥, 그리고 이웃과 미래를 위한 화합과 친교도 방법 중 하나다. 위정자들은 임진왜란·병자호란·한국전쟁 같은 불행한 역사가 왜 어떻게 유발되었는지 국제 외교의 역학 관계를 되새겨 보며 절치부심해야 한다. 아베 노부유키 예언을 되새기며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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