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국 교수 딸 논문의 이슈가 주는 교훈
조국 교수 딸 논문의 이슈가 주는 교훈
  • 서정욱 서울의대 교수(서울대병원 병리과) jwseo@snu.ac.kr
  • 승인 2019.08.29 14:58
  • 댓글 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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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국 법무부장관 후보자 지명을 둘러싼 논란이 2009년 <The Korean Journal of pathology>로 확산되면서 학회지는 물론 대한병리학회와 병리학에 대한 폄훼, 비방, 명예훼손 사태까지 벌어지고 있다. 

정년 퇴임을 1년 앞둔 서정욱 서울의대 교수(병리학교실)가 병리학계의 대변자로 나섰다. 서정욱 교수는 대한병리학회 이사장을 역임했으며, 현재 우촌심뇌혈관연구재단 이사장·대한심장학회 심장병리연구회장을 맡고 있다.

"정치적인 이슈와 학술 논문의 이슈는 구분되어야 한다"고 밝힌 서정욱 교수는 "학술 논문의 완결성에 대한 논의를 정치적인 이슈로 만들고 있는 선배들은 여야 할 것 없이 반성해야 한다"며 쓴소리를 냈다.

서정욱 교수는 'open and creative'에 게재한 '조국 교수 딸 논문의 이슈가 주는 교훈'을 통해 문제가 된 논문을 둘러싼 논란과 병리학계 폄훼 사태에 대해 쓴소리를 냈다. 필자의 양해를 구해 전문을 소개한다.

서론
조국 교수의 법무부 장관 인사 검증 과정에서 나타난 조국 교수 딸의 논문 이슈는 우리 사회에 큰 충격을 주었다. 우선 논문을 쓰는 대학원생이나 연구직에 종사하는 젊은이들이 무임승차 저자의 출현에 흥분한다는 것은 쉽게 이해가 된다. 그렇지만 우리나라 현실에서 논문을 써야 하는 젊은이들이 그렇게 많지는 않다는 것을 생각하면 논문을 쓰지 않는 젊은이와 그들의 부모와 가족의 입장에 대하여 생각해 보게 된다. 대다수의 젊은이들, 논문을 쓰지 않는 젊은이들과 그들의 부모와 가족이 함께 관심을 두게 되는 과정은 무엇이며, 그분들의 관심이 어떤 의미가 있는지 돌아보자.

자식 사랑에서 시작된다
추정하건대 조국 교수 부부는 다른 부모들처럼 자식을 올바르게 키우려고 최선을 다했을 것이다. 고등학생 딸의 방학 기간 중에도 대학의 연구실을 찾아가도록 주선하였다. 자식이 힘들어하는 상황에서는 격려와 채찍을 들면서 미래를 위한 투자를 독려하였다. 자식도 부모의 뜻을 따라 열심히 하였고 능력도 출중하였다. 단기간 인턴이었지만 내세울 만한 성과가 있었다. 나름대로 최선을 다했기 때문에 보람과 영광이 있었다고 생각하였다. 논문의 저자로 참여하는 것이 어떤 의미인지는 잘 모르지만, 부모와 지도교수의 축하와 격려 속에 행복하였고 자랑스러웠다. 자신의 노력으로 정당하게 받은 영광이라고 생각했지 남들과 다른 특혜를 받았다는 생각은 하지 않았다. 조국 교수 부부나 단국대 지도교수에게도 참 자랑스러운 학생이었다. 

젊은 연구자들의 분노
그렇지만 다른 사람들의 생각은 달랐다. 연구에 인생을 걸고 있는 연구원들은 저자가 되기 위해서 피나는 노력을 하고 있다. 그들 전일제 연구원에게 무임승차 저자의 사례는 충격과 분노를 일으키기에 충분하였다. 연구실에서 논문을 쓰려고 노력하는 연구원들의 입장은 비장하고 처절하다. 언제 끝날지 모르는 실험에 인생을 걸면서도 급여는 용돈 수준이고 비정규직이다. 교수님의 연구비가 끊어지면 하루아침에 나가야 할지도 모르는 열악한 환경이다. 동료 연구자들과 라면을 먹으면서 원심분리기를 돌리고 PCR 결과를 기다리면서 넋두리를 하지만, 그들의 처지는 불안과 좌절의 연속이다. 그들 연구자에게 SCI 논문 제1저자는 삶의 목표와도 같다. 뭔가 연구 실적을 내야만 선임연구원, 정규직 연구원이 될 수 있고 교원 응모에 지원할 수 있다. 그렇다. 그들에게 제1 저자 무임승차는 충격이었고 분노를 일으켰다. 

연구자가 아닌 젊은이들의 분노
논문을 쓸 생각을 하지도 않았던 나머지 젊은이들은 어떤 생각을 하였을까? 그들에게 논문은 교수가 되어야 바라볼 수 있는 신기루와 같은 것이었다. 일찌감치 취직하는 것이 낫지 연구실에 조교나 연구원으로 들어가게 되면 젊은 시절을 다 바쳐야 한다는 것을 잘 알고 있었다.

대학원에 진학하여 조교나 연구원으로 남아 있는 친구들은 성적이 우수하고 성실한 친구들이었다. 학생 시절에는 공부 잘하는 그들을 부러워했는데, 지금은 측은한 생각이 더 많다. 

연구를 계속하지 않고 취직을 선택한 젊은이들, 직장을 선택하려고 하지만 아직 취직을 못 한 젊은이들은 성실하고 공부 잘 했던 친구들을 질투하는 마음이 없지는 않지만 원망하거나 미워하지는 않았다. 좋은 일자리 잡기 힘든 요즘 시절에 연구직으로 가는 것이 차라리 나을 수도 있다는 정도로 위로하였을 것이다. 

취업준비생이라는 안타까운 명칭을 떼지 못한 젊은이들은 이번 조국 교수 딸의 이슈를 보고 자신의 일자리도 그런 식으로 빼앗겼을 수 있다고 생각하였을 것이다. 상상도 하지 못할 방식으로 특별한 스펙을 만들어 좋은 직장을 차지하였을 권력자의 탈선을 바라보는 마음이었을 것이다. 그런 탈법적인 방법으로 취직한 권력층 자녀들은 자신이 잘못한 것이 무엇인지도 모를 것이라는 생각을 한다. 고등학생이 거저 얻은 제1 저자가 무슨 의미인지도 몰랐던 것처럼.

학술 논문에 대한 이해
이슈를 자세히 보면 학술 논문의 원래 목적과 저자가 되고자 하는 목적이 뒤섞여 있다는 것이 놀랍다. 논문을 써서 학술 발전에 기여하고, 학술 연구의 결과로 일반인에게 혜택을 주는 사회 공헌의 즐거움이 학문의 목적이다. 학자들이 경제적으로 부유하거나 권력이 있는 것은 아니다. 어쩌면 열심히 공부하고 연구하여 논문이라는 실적을 통하여 소박한 만족을 얻는 사람들이다. 학자의 명예도, 재력이나 권력의 명예가 아니라, 가난하면서도 후학을 가르치고 인류에 공헌하는 과정에서 얻는 것이다. 학자들은 좋은 학술지에 좋은 논문을 싣고자 최선을 다한다. 그 논문에 가장 잘 어울리면서 거부되지 않을 수준에 어울리는 저널을 고른다. 한두 번 거부당하더라도 심사위원의 의견을 듣는 것이어서 즐겁게 투고하고 심사받아 게재한다. 논문을 게재하는 데 성공하면 공저자들과 함께 큰 축하를 나누고, 많은 연구자의 후속 연구로 이어지기를 기대한다. 

학술 논문 작성의 또 다른 목적은 저자가 되는 것이다. 연구에 참여하면 당연히 따라오는 것이 저자로 이름을 올리는 것 같지만 항상 그런 것은 아니다. 저자가 되기 위한 자격을 갖추지 못하면 저자가 되지 못한다. 그 연구를 왜 하는지 고민하고 계획을 수립하여 연구를 수행하고 문헌을 조사하며 논문을 작성하는 등 전 과정에 참여하는 사람이 저자가 될 수 있다. 열심히 실험했지만 연구 보조자 역할만 하는 연구원은 감사의 글에 거명되는 것으로 만족해야 한다. 공저자에 따라서 기여도가 다르고 각자의 전문 능력에 따르는 기여를 하였지만, 논문 저자 순서는 책임저자가 알아서 정한다.  

학술 논문의 저자가 된다는 것은 영광일 뿐 아니라 속칭 '스펙'으로 쌓인다. 교수로 임용되거나 승진할 때 필요한 것이 바로 학술 논문 발표 실적이고 세칭 '스펙'이라는 것과 다르지 않다. 학술 논문의 평가는 대학교수들이 하며 대학마다 서로 다른 평가 기준을 정하여 운영한다. 논문 실적은 승진 뿐 아니라 인센티브를 제공하는 데 사용하기도 하고, 대학에 따라서는 논문 발표자에게 수당을 얹어 주기도 한다. 대학의 평가에도 교수들이 발표한 논문의 누적 실적을 비교하니 교수 사회의 모든 평가는 논문으로 한다 해도 틀리지 않는다. 이런 계산 방법을 잘 아는 책임저자는 나름대로 고민하여 저자의 순서를 매긴다. 무엇보다 논문 점수가 필요한 사람을 배려하게 되는 것은 당연하다. 

연구자의 반성
이 시점에서 연구자의 반성이 필요하다. 교수와 연구자에 대한 의심은 대부분의 경우 연구비와 학술 논문 출판 과정에서 제기된다. 연구비 부정은 말할 필요도 없는 범죄이지만 연구비 자체 관리의 미숙함으로 인하는 경우도 있다. 그러나 학술 논문 출판 관련 비위 사실은 연구자의 책임을 면할 수 없고 영구적으로 남는 문화유산 아카이브인 학술 논문의 완결성을 훼손한다는 점에서 금전 문제보다 훨씬 중요하고 심각하다. 중복출판이나 표절, 연구 윤리는 연구자의 자세와 기본 개념의 문제이고 연구자 스스로 점검해야 한다. 저자됨(authorship)의 이슈는 책임저자의 고유 권한이었다. 그동안 문제 제기가 적었던 이유는 연구자의 권위를 인정해 왔기 때문이라고 생각한다. 책임저자가 마음대로 해도 된다는 뜻은 아니었다. 차제에 선물 저자, 유령 저자 등의 오해를 불식시키는 계기가 되어야 할 것이다. 

조국 교수 딸의 경우는 대학 입시 일정에 맞추어 받은 '선물 저자(gift author)'였을 가능성이 크다. 그렇지만 이는 지극히 특수한 사안이어서 함부로 이야기해서는 안된다. 저자로서의 역할을 했기를 바란다. 그렇지만 자신의 고집만으로 저자됨을 합리화할 수는 없다. 자신은 떳떳할 수 있어도 그 정도의 노력으로 제1 저자가 될 수 없다는 것이 사회의 공통된 인식이라면 그 역시 받아들일 수 밖에 없다. 어쩌면 당사자 학생이 원했다기보다 어른들이 알아서 논문을 만들어 주었을 가능성이 크다. 그러니 학생은 억울할 수 있다. 책임은 어른의 몫이다. 

논문의 내용을 이해하지 않고는 평가할 수 없다
경기도 교육감과 서울대학교 물리천문학부 교수의 학술지 비하 발언과 에세이 논쟁은 학술지 저자됨의 이슈를 정치 논쟁으로 끌어들였다. 학술지와 학술 논문을 연결한 것도 적절치 않을 뿐 아니라 그분들의 접근 방법에서 오류가 심각하다. 그들은 "논문을 자세히 보지는 않았지만" 단순한 실험이었고 고등학생이라도 충분히 쓸 수 있는 논문이었다고 말한다. "자세히 보지는 않았지만"이라는 첫 문장에서 기가 막히는 발언이다. 자신의 분야도 아니고 자기가 잘 모르는 분야의 논문을 평가하면서 대충 보아도 안다고 하는 것이 참으로 어처구니가 없다.  

이 시점에서 논문의 내용을 자세히 볼 필요가 있다. 그 논문의 가치와 학술지의 수준을 저평가하는 사람들의 입장을 헤아리기 위해서는 논문을 자세히 봐야 한다. 

우선 'Nitric Oxide(NO)'라는 물질을 이해해야 한다. Wikipedia를 검색하면 'NO'에 대한 다양한 지식이 나온다. 생화학·물리학·환경에 이르는 다양한 분야에서 이 물질에 대한 의미를 부여한다. 그리고 거의 마무리가 될 무렵에 혈관에서의 'NO'의 의미를 설명한다. 1980년대 교과서에는 'Endothelium Derived Relaxing Factor(EDRF)'라는 말이 나오고 1990년 이후에 'EDRF'가 'NO'라는 사실이 밝혀진다. 그리고 그 업적은 1992년 노벨 생리의학상 수상자를 탄생시킨다. 동맥경화증의 예방 치료에 획기적인 전기를 마련한 연구이다. 그것이 왜 노벨상의 수상 논문이 되는지 이해하지 못한다면 'NO', 'NO synthase'의 가치를 이해할 수 없다. 결국 이러한 기초 지식이 없는 사람에게 이 논문은 그저 알파벳 문자의 나열일 수밖에 없다. 알파벳을 읽고서 논문을 이해했다고 하는 사람의 코멘트에 더는 가치를 부여할 발표가 없다. 그의 코멘트만 그런 것이 아니라 그 사람의 인간됨도 의심을 받을 수밖에 없다.

학술 논문은 연구의 중간 보고서
학술 논문은 연구의 실적이라고 이해하는 데 사실은 그렇지 않다. 연구의 중간 결과일 뿐이다. 연구는 완성이라는 것이 있을 수 없다. 모든 연구가 부족한 지원으로부터 과학의 신비를 캐는 과정이다. 모든 연구를 마무리하는 것은 어차피 불가능하기 때문에 중간 결과를 공유하는 것이 연구 논문이다. 그 논문을 바탕으로 후속 연구가 이루어지고 연구 협력이 시작된다. 제1 저자나 교신 저자는 후속 연구자로부터 관심과 질문을 받는다. 제1 저자는 연구 논문에 관심을 보이는 다른 연구자들을 반갑게 맞이하고, 그들과 연구에 대하여 토론을 할 수 있어야 한다. 제1 저자는 그냥 얼굴마담이나 마스코트가 아니다.  

의학의 지역 특수성과 의학 저널의 특성
마지막으로 의학 논문이 다른 기초과학 논문과 다른 점을 생각해야 한다. 의학은 지역과 환경, 민족에 영향을 크게 받는다. 한국의 의학은 아프리카 의학과 같지 않다. 따라서 각국에서 발행되는 그 나라의 학술지가 있게 마련이고 그들의 가치 또한 소중하다. 이러한 특성으로 인하여 학술지 색인 기관은 국가의 특성을 반영하는 정책을 운용하고 있다. 대한병리학회지를 3류 학술지라고 하는 사람은 의학 저널의 특성을 모르거나 외면하는 것이다. 

결론
이번 사건을 계기로 학술지의 의미에 대한 다양한 시각이 노출되었다. 

서정욱 서울의대 교수(서울대병원 병리과) ⓒ의협신문
서정욱 서울의대 교수(서울대병원 병리과) ⓒ의협신문

고등학생이 학술논문을 쓰는 것은 여전히 소중하고 장려되어야 한다. 학술 논문을 작성하거나 작성에 참여한 경험이 있는 젊은이는 대학 입시뿐 아니라 기업 채용 등에서도 중요한 스펙으로 인정되어야 한다. 학술 논문을 쓰는 과정을 통하여 과학적인 근거 중심의 사고와 논리 전개가 된다는 것, 그리고 참고문헌 표기를 통하여 학술적 근거를 제시한다는 것이 학술 논문의 특징이다. 

논문의 저자에 인종이나 나이 성별의 제한은 없다. 그렇지만 그 논문에 기여한 바가 분명해야 저자가 된다는 것은 동서고금을 통한 진리이다. 

그리고 학술 연구에 종사하는 젊은이들과 그들의 친구들이 열심히 일하면서 이 사회가 발전하고 정의가 실현된다는 것을 다시 한번 강조한다. 그리고 정치가 사회의 암적 존재가 되지는 말아야 한다고 강조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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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1저자 2019-09-05 20:26:38
우리 의사 교수님들은 공보의시절 또 병원서 리베이트 안받으시나보네요. 참 안타깝네요.

ㅊㅇㅎ 2019-09-05 06:59:39
닥터인척 교수인척 애들쓰십니다그려 ㅉㅉ

Dr 2019-09-03 10:29:00
"조국 교수 딸의 경우는 '선물 저자(gift author)'였을 가능성이 크다."

----> 무리한 추론입니다. 1저자 기여도가 적절한지는 해당 지도교수만이 알고 있습니다.

"그 정도로 제1 저자가 될 수 없다는 것이 사회의 공통된 인식이라면 그 역시 받아들일 수 밖에 없다."

----> 실체적 진실은 어디 가고 진실을 '다수결'로 정합니까? 이게 학자의 주장이 맞습니까?

교수 2019-09-02 11:32:24
서교수. 논거가 참 궁색합니다. 삼류저널 맞고 논문의 수준은 다른 댓글에 쓴거 처럼 석박사 논문이라고 하기에는 너무 창피한 수준이에요. 내 실험실에서 고등학생 이틀 정도 훈련 시키면 나올 만한 데이타. 물론 논문을 쓰는데 있어서 이해가 필요하지만 노벨상을 이용한 자기 주장의 합리화는 같은 교수입장에서 참 부끄럽네요. 이곳 미국 대학원생들도 실험 자기들이 다하고 논문 못써서 교수랑 같이 쓰는 친구들 허다합니다. 잘나가는 포닥들 정도나 스스로 논문 써오지 (그래도 피드백 한참 줘야함). reference 포함한 여섯 페이지 짜리 논문. 거기다 novelty는 하나도 없는 논문. 이게 정말 서교수가 보기에 이런 글을 써가면 마녀사냥에 동조할 이슈가 있다고 봅니까? 참 유감입니다. - 미국의대 기초과학 교수가.

로봇이아닙니다. 2019-09-01 20:17:04
정치적이지 않으려고 하나 매우 정치적인 글입니다.

* 기사속 광고는 빅데이터 분석 결과로 본지 편집방침과는 무관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