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터뷰] "아이들이 너무 좋아" 故 신형록 전공의, '나무'가 되다
[인터뷰] "아이들이 너무 좋아" 故 신형록 전공의, '나무'가 되다
  • 홍완기 기자 wangi0602@doctorsnews.co.kr
  • 승인 2019.08.15 06:00
  • 댓글 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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누나의 입으로 전해 들은 '짧지만 깊은 삶'
보육원, 그의 뜻 기리고자 '신형록나무' 심어
고 신형록 전공의가 몽골에서 봉사활동을 했을 당시 사진 ⓒ의협신문
고 신형록 전공의가 몽골에서 봉사활동을 했을 당시 사진 ⓒ의협신문

"따뜻한 아이였다. 아이들을 너무 좋아했고, 책 읽기를 좋아했다. 남을 위해 봉사하는 삶을 실천했던 아이였다"

고 신형록 전공의에 대해, 그의 누나 신은섭 씨는 이같이 표현했다.

고 신형록 전공의(당시 길병원 소아청소년과 2년 차 전공의)는 지난 2월, 당직 근무 중 숨진 채 발견됐다. 그의 나이 만 31세였다.

그의 죽음은 '과로사'로 추정됐다. 기타 다른 질병이 없었다. 전공의의 수련환경 개선 및 지위 향상을 위한 법률(전공의법)에서 규정한 주당 80시간을 초과해 110시간 이상을 근무한 상황. 사망 당시엔 무려 35시간 동안 연속 당직을 섰다. 최근 근로복지공단으로부터 '산재'까지 인정받았다.

고 신형록 전공의는 생전, 꾸준히 봉사활동을 한 청년이었음이 알려지면서 더욱더 안타까움을 샀다.

초등학생 때부터 부모님의 손을 잡고 시작한 봉사활동은 학창시절을 거쳐, 전공의 근무 때까지도 이어졌다.

그가 땀 흘리며 찾던 보육원은 최근 '신형록나무'를 심었다. 신형록 전공의의 뜻을 기리고, 감사를 표하기 위함이다.

장례식장에는 신형록 전공의가 진료한 환아의 어머니가 직접 찾아와 슬픔을 함께하기도 했다. 너무도 친절하고 따뜻했던 그의 진료에 감동했다고 했다.

고 신형록 전공의의 누나인 신은섭 씨에게, 짧지만 깊은 그의 삶에 대해 들어봤다.

신은섭씨(고 신형록 전공의 누나) ⓒ의협신문 홍완기
고 신형록 전공의 누나 신은섭 씨. ⓒ의협신문 홍완기

유난히 아이들을 좋아했던 동생…'소아청소년과' 선택한 이유

신은섭 씨는 "동생은 유난히 아이들을 좋아했다. 소아청소년과를 선택했던 이유도 여기에 있다. 의사의 길을 걷기로 마음 먹을 때부터 어린아이들은 질병에서 자유로워야 한다는 말을 자주했다"고 들려줬다.

"동생은 조카 바보이기도 했다. 어떤 날은 제가 아이를 안고 있기 힘들어, 잠깐 들어달라고 했는데 3∼4시간을 넘게 안고 있었다. 힘들지 않냐고 했더니, 하루종일도 이러고 있을 수 있다고 했다"고 회상했다.

실제로 그의 '싸이월드(개인 홈페이지)'에는 조카를 안고 있는 사진과 함께 '난 하루종일도 있을 수 있는데ㅋㅋㅋ'라는 게시물이 게재돼 있다.

신은섭 씨는 "사실 가족들은 동생이 아이들을 너무 좋아한다는 바로 그 이유 때문에 소아과 관련 일을 하는 걸 반대하기도 했다. 너무 아끼는 마음에, 무리를 하거나 큰 상처를 받을 것을 걱정했기 때문이다. 하지만, 동생은 신념을 굽히지 않았다"고 말했다.

장례식장에는 신 전공의에게 진료를 받았던 환아의 어머니가 직접 찾아와 슬픔을 함께하기도 했다. 너무도 친절하고 따뜻했던 그의 진료에 감동했다고 했다.

신은섭 씨는 "맘카페나 사망 기사에 동생에게 감사와 명복을 비는 글들을 많이 봤다. 장례식장에 직접 찾아와주신 분도 있었다. 동생의 삶이 헛되지 않았다는 것을 느낄 수 있어서 많은 위로가 됐다. 참 감사하다. 한 번 만나서 인사를 드리고 싶다. 기사를 보신다면 꼭 연락해 주셨으면 좋겠다"고 했다.

해성보육원은 고 신형록 전공의의 선행을 기리고자, 신형록 나무를 심었다. ⓒ의협신문
해성보육원은 고 신형록 전공의의 선행을 기리고자, 신형록나무를 심었다. ⓒ의협신문

봉사로 꽉 채운 그의 시간…그리고 '신형록나무'

신형록 전공의는 봉사하는 청년이었다. 취미는 독서, 특기는 봉사라고 할 정도였다고 한다.

신은섭 씨는 "동생은 봉사를 굉장히 많이 했다. 고슴도치 사랑이라고 생각할 수 있지만, 정말 이런 아이가 있을까 싶을 정도였다. 예과 시절 방학을 하면 집에 있는 시간은 1∼2주 정도였고, 나머지는 대부분 봉사활동을 다녔다. 한센인들을 만나러 소록도에 갔고, 아이들을 보러 보육원을 자주 찾았다"고 전했다.

"가난한 나라에서 특별히 어린 아이들이 질병에 취약해, 안타깝다면서 기회가 된다면 몇 년간 만이라도 가난한 나라에서 어린이를 위한 의료봉사를 하고 싶다고 말하곤 했다. 국제보건기구에서 일하는 것이 꿈이라고까지 말하던 동생이었다. 누나로서, 그런 동생이 걱정돼 평범하게 살라고 몇 번이나 말렸다. 부모님을 생각해서라도, 위험한 일은 제발 하지 말라고 했다"고 회상했다.

최근 '신형록나무'를 심은 해성보육원과의 인연도 이야기했다. 나무 밑에는 '해성 아이들을 사랑했던 의사 신형록 배드로를 기리는 나무'라는 글귀가 새겨졌다.

신은섭 씨는 "부모님이 오래 전부터 인연을 맺은 보육원이 해성 보육원이다. 초등학생 때부터 봉사를 시작했다. 인연이란 게 참 신기한지, 길병원에서 해성 보육원에서 의료봉사를 했다. 동생은 전공의로 일하면서도 꾸준히 의료봉사를 이어왔다"고 말했다.

"동료분들과 소아청소년과 지도교수님께서 동생을 위한 모금을 진행했고, 동생의 뜻을 기린다는 뜻으로 해성보육원에 전액 기부를 했다. 보육원은 이후, 신형록 전공의의 선행을 기리고자 '신형록나무'를 심었다. 유족 입장에서 정말 감사하고, 큰 위로를 받았다. 동생의 선행이, 동생이 사람들의 기억에서 잊히지 않았으면 좋겠다"고 말했다.

고 신형록 전공의는 소록도 및 해성보육원에서 봉사활동을 해왔다. ⓒ의협신문
고 신형록 전공의는 소록도 및 해성보육원에서 봉사활동을 해왔다. ⓒ의협신문

사망 소식을 접한 뒤 "제발 사실이 아니길 빌고 또 빌어…"

신은섭 씨는 동생이 사망했던 당시를 회상했다.

"소식을 들었을 때, 스스로 내 뺨을 세게 쳤다. 꿈인 것만 같았고, 꿈이길 기도했다. 동생이 사망하던 날은 설 연휴를 앞두고 온 가족이 모이기 하루 전날이었다. 하지만, 한마디 인사말도 나누지 못하고 홀연히 떠났다"고 말했다.

신은섭 씨는 "내 생각에, 우리 남매는 유난히 친했다. 6살이라는 나이 차이 때문인지도 모르겠다. 항상 동생을 지켜줘야 한다는 생각을 많이 했다. 그래서 더 마음이 아프다"고 말했다.

"꿈을 위해, 희생이 필요한 부분이라고만 생각했던 것 같다. (동생 사망 후) 일련의 과정을 보내면서 아무것도 모르는 동생을 대신해서라도 내가 나섰어야 했던 게 아닌가 생각이 든다. 법 테두리 안의 당연한 목소리를 냈어야 했고, 보호해줬어야 했다는 미안함과 후회가 크다"고 밝혔다.

신은섭 씨는 "동생 사망 이후, 가족들은 말로 설명할 수 없는 슬픔에 잠겼다. 동생 사망 소식을 들은 할머니는 내내 슬퍼하시다가 일주일 만에 돌아가셨다. 가족들 모두 한순간에 너무 큰 상처를 받았다"고 말했다.

고 신형록 전공의 사망 기사에 달린 추모 댓글. 직접 진료를 받은 환아의 보호자로 추정되는 인물이 감사와 애도를 표했다. ⓒ의협신문
고 신형록 전공의 사망 기사에 달린 추모 댓글. 직접 진료를 받은 환아의 보호자로 추정되는 인물이 감사와 애도를 표했다. ⓒ의협신문

병원의 무성의한 태도에 큰 상처 받아…"공단 안내 전달도 안 해"

유족 측은 병원의 태도에도 상처를 받았다고 했다.

신은섭 씨는 "동생은 3년간 환자를 위해, 병원을 위해 헌신하다 근무 중 병원 당직실에서 숨졌다. 하지만 사망에 대한 병원 측의 설명은 전혀 없었다. 동생의 죽음에 대해 함께 일했던 동료들에게 귀동냥해야 했다"고 말했다.

최근, 근로복지공단이 산재 신청 절차 안내 등을 위해 유가족과의 연결을 요청했으나 병원이 비협조적인 태도를 보인 사실도 전했다. 퇴직금과 마지막 월급 역시, 아무런 안내 없이 통장으로 입금됐다고 말했다.

신은섭 씨는 "사건 3개월 뒤, 유족연금 신청과 관련해 근로복지공단에 전화했다. 공단에서는 사건 당시인 2월, 가족에게 연락하기 위해 병원에 연락처를 문의했지만, 모른다고 답했다고 했다. 직접 연락이 어려우면 유가족에게 공단이 연락했다는 사실만이라도 전해달라고 했지만, 전혀 듣지 못했다"고 한탄했다.

다시는 이런 비극 반복되지 않았으면…

신은섭 씨는 "직접 출생신고를 했던 손으로, 자식의 사망신고를 해야 했던 아버지의 마음과 이를 지켜보는 가족의 심경은 정말 상상 그 이상"이라며 "이젠, 이런 고통을 누구도 겪지 않았으면 한다"고 전했다.

"제 동생의 죽음 이후, 전공의 선생님들을 보면 건강부터 염려된다. 대한민국의 많은 병원에서 교육생이라는 신분을 교묘히 이용해 전공의들에게 무리한 근무를 시키고 있다. 병원의 이익만 생각하는 현 전공의 수련 제도는 개선해야 한다. 법으로 정해진 근무시간만이라도 제대로 지켰으면 좋겠다. 동생 같은 희생자가 다시는 나오지 않기를 간곡히 빈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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예준애비 2019-08-15 06:57:27
우리도 옛날에 다 그랬어...다른 사람들은 멀쩡한데...
이제 이런 이야기는 하지 않았으면 좋겠습니다
고인의 명복을 빕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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