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터뷰] WHO 권고로 '정신병원' 개설 불가 통보받은 의사
[인터뷰] WHO 권고로 '정신병원' 개설 불가 통보받은 의사
  • 홍완기 기자 wangi0602@doctorsnews.co.kr
  • 승인 2019.08.02 21:4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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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용진 원장 "하라는 대로 다했는 데 개설허가 못내주겠다니"
정신질환자 명예 존중한다는 의미 '아너스병원'으로 이름 정해
(사진=pixabay) ⓒ의협신문
(사진=pixabay) ⓒ의협신문

제용진 원장은 억울함에 눈물을 보였다. 26년간 정신과의사로 헌신해온 지난날이 아무것도 아니었던가 하는 마음에 허탈했다.

지역사회에서 정신과 관련 사회활동을 통해 정신질환자들에 대한 인식 개선과 지역 정신과 시스템 확충을 위해 활동하고 싶었다.

[인천투데이] 보도에 따르면, 이재현 인천 서구청장은 30일 '원당 사거리 정신병원 개설' 관련 검토 결과를 보고하는 주민설명회에서 "세계보건기구(WHO)에서 인구 1000명당 1개 병상을 권고기준으로 정했다. 서구에는 이미 1058병상이 있다. 이는 권고 기준을 초과하는 수치다. 추가 시설을 배제(불허)한다"고 밝혔다.

정신질환자들의 명예를 높인다는 뜻에서 병원 이름도 '아너스'로 지었다는 그는 'WHO 권고 기준 초과'라는 납득하기 힘든 이유로 '병원 개설 불가' 통보를 받게 됐다.

"하라는 대로 다 했다. 하지만 결과는…"

제용진 원장은 [의협신문]과의 통화에서 답답한 심경을 털어놨다. 제용진 원장은 말 그대로 '예스맨'이었다. 보건소에서 하라는 대로 다 따랐다.

먼저, 보건소는 입원환자 60명당 1명의 전문의를 둬야한다는 규정을 '병상 수'에 맞춰야 한다고 했다. 제용진 원장은 어려울 줄 알면서도 2달간 모집공고를 냈다. 허가 나지 않은 병원에 전문의가 지원할 리는 만무했다.

이에, 제용진 원장은 병상 수를 줄였다. 그것도 100개나. 본인이 배정받을 수 있는 병상 수인 60개에서도 하나를 뺀 59개 병상만 남겼다.

보건소는 병원 개설 허가 신청을 할 때, 지금 다니고 있는 병원을 그만둔 상태여야 된다고 했다. 보통은 허가 결정이 난 뒤, 그만두는 경우가 많지만 제용진 원장은 바로 사표를 냈다.

제용진 원장은 "하라는 대로 다 따랐다. 간혹 아닌 것 같은 부분이 있었지만, 개설을 하고자 하는 마음이 컸기에 일단 맞췄다. 하지만 의료법이나 정신건강복지법이 아닌 WHO의 권고사항이 불가 이유라니…납득하기 어렵다"고 밝혔다.

"아직 통보가 오진 않았지만, 보건소에서 2일까지 결정을 낸다고 했으니, 내일이면 통보가 올 것으로 보고 있다"고도 덧붙였다.

(사진=pixabay) ⓒ의협신문
(사진=pixabay) ⓒ의협신문

"대법원까지 갈 생각하셔야 된다"

개설 허가 신청 전, 필요한 절차·서류를 문의하기 위해 보건소를 방문한 첫날부터, 좋은 소리를 듣지 못했다.

제용진 원장은 "주무관분은 정신병원 개설 허가 이야기를 꺼내자마자 이곳은 민원이 많은 지역이라는 말을 먼저 꺼냈다. 하지만 법적 기준을 맞추면 허가를 안내줄 순 없을 것 같다고도 했다. 이후 다시 개설신청을 하러 보건소에 갔다. 담당 팀장이 '이건 대법원까지 갈 생각하고 내라'고 했다"고 전했다.

"이후에도 계속 조건을 제시했다. 병원을 그만두고 신청해야 한다, 환자 수가 아닌 병상 수에 맞춰 전문의를 고용해야 한다…허가도 나지 않은 병원에 지원하는 의사는 역시나 없었다"며 "이전에 방문했을 때, 주무관님은 분명 일단 1명으로 개설하고, 1년 동안 환자 수에 맞게 의사를 고용하라고 했었는데 안내도 자꾸 바뀌었다"고 한탄했다.

정신질환자들의 명예를 위한 이름…'아너스 병원'

제용진 원장은 "병원 이름은 '아너스'로 지었다. 정신질환자들의 명예를 존중한다는 뜻을 담았다. 지난 26년간 정신과 의사로서, 사명감으로 일해 왔다. 왜 이런 상황에 처해졌는지 모르겠다…"며 울먹거렸다.

"사실 지역 주민들을 위한 사회활동을 넓히고 싶었다. 국민의 25%가 정신과를 찾는다고 한다. 지역사회에는 인터넷 중독, 청소년 자살, 불안장애 등 지속 관리해야 할 영역도 존재한다. 사회적 이슈가 된 조현병 환자들의 범죄 예방도 필요하다. 지역사회 안에서 자체적으로 해결할 수 있는 시스템에 일조하고 싶은 마음이 컸다"고 전했다.

제용진 원장은 "이 문제는 나 혼자만의 문제가 아니다. 내 병원 개설이 불가 되고 나면, 다른 정신병원 역시 외곽이나 산속으로만 가야 할 수도 있다. 정신과 환자들은 병원을 찾아 외곽으로 가거나 포기할 수도 있다. 정신과 환자를 포함한 모두는 진료를 받을 권리가 있다. 적법하게 의사가 환자를 치료하겠다고 하는데, 일어나지도 않은 막연한 공포 등을 이유로, 특히나 구청에서 밝힌 WHO 권고를 이유로, 불허하는 것은 아닌 것 같다"고 말했다.

"우리나라는 그럼 정신병원을 세워선 안 되는 건가요?"

그는 이번 불허 결정에 대한 의견도 피력했다.

제용진 원장은 "우리나라는 이미 1000명당 1.6병상 정도로, 국가 전체적으로 WHO 권고기준(1병상)을 초과했다. 그럼 우리나라에서는 어디에도 정신병원을 개설할 수 없다는 말인가?"라고 반문했다.

"해당 권고는 세계적으로 정신질환자를 케어할 수 있는 시설이 보완된 나라를 포함한 평균치다. 하지만, 우리나라에서는 정신질환자들을 케어할 수 있는 시스템이 체계적으로 마련되지 않았다. 그래서 병원에서만 정신질환자를 케어하고 있는 것이 현실이다. 해당 수치를 그대로 우리나라에 적용하는 것은 옳지 않다. 절대적인 기준이 될 수 없다"고 말했다.

정신질환자들에 대한 인식에 대한 변화가 필요하다는 의견도 밝혔다.

제용진 원장은 "정신과 환자들에 대한 인식은 그다지 좋지 않다. 정부는 이러한 인식을 옹호하는 것이 아니라 개선해야 한다. 낙인 문제에 대한 관심이 필요하다는 것이다. 정신보건에 있어서 캐나다의 경우, 40%의 예산을 배정한다고 한다. 우리나라는 3.3% 정도로 알고 있다. 결국 관심이 너무 없다는 것이 문제"라고 짚었다.

이어 "조현병 환자들의 범죄가 많이 보도됐다. 하지만 치료를 받고 있는 환자는 절대 위험하지 않다. 병원이 없어 방치하고, 치료를 받지 않는 환자들이 문제인 것이다. 정신병원을 개설해 가까이서 치료받을 수 있는 시스템이 마련돼야 한다. 방치만큼 위험한 것이 없다는 것을 알려드리고 싶다. 병원이 개설된 후, 주민들이 직접 찾아와 본다면, 생각과는 다르다는 것을 알게 될 것"이라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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