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updated. 2024-03-29 21:36 (금)
환자에 유리한 진단했으니 당해봐라?…보험사, 의사 상대 소송
환자에 유리한 진단했으니 당해봐라?…보험사, 의사 상대 소송
  • 이정환 기자 leejh91@doctorsnews.co.kr
  • 승인 2019.08.02 21:4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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보험회사, 진단서 써준 의사 소송으로 괴롭히기 "도 넘었다"
환자·주치의에 부당이득반환 소송...보험금 지급 제한 무리수

#(사례 1) 6년 전. 시내버스를 타고 경상남도 한 시골 마을을 지나가던 A씨. 반대편 차로에 있던 승용차가 중앙선을 넘어 버스 기사가 이를 피하려다 옹벽을 들이받았다. 시내버스에 타고 있는 A씨는 버스에서 몇 차례 굴렀고, 외상은 없었지만 병원에서 뇌 CT 검사를 받았다. 2009년 뇌출혈 흔적 말고는 새로운 병변은 확인되지 않았다.
그러나 A씨는 사고가 발생한 4일째부터 손가락과 팔에서 마비 증상, 1개월 뒤에는 인지기능이 떨어졌다.
이후 병원에서 3차례 MRI 검사 결과 뇌 손상은 없고 단순 뇌진탕 진단을 받았다. 그러나 특수 MRI 검사(뇌확산텐서 영상검사)에서는 직·간접적 충격으로 뇌 신경로가 손상됐다는 진단을 받았다.
장성호 교수(영남대병원 재활의학과)는 뇌확산텐서 영상 검사 결과를 바탕으로 '외상성 축색(뇌 신경로) 손상' 진단을 내렸다.
그런데 시내버스 측의 보험회사인 DB손해보험은 A씨에게 보험금 지급을 거부했다. 교통사고와 A씨의 장해는 인과관계가 없고, A씨의 과거 뇌출혈 병력이 장해에 영향을 준 부분이 크다는 이유였다.
A씨는 법원에 소송을 제기했고, 1심 재판부는 원고 일부 승소 판결, 2심 재판부는 원고 전부 승소 판결을 했고, 대법원은 DB손해보험의 상고를 기각해 원심을 확정했다.
재판부가 장성호 교수의 진단 내용을 결정적 근거자료로 판단했던 것. 장 교수는 A씨의 경우와 마찬가지로 여러 번 이 진단을 근거로 보험사와의 소송에서 진단을 해왔다.

#(사례 2) 3년 전. 장성호 교수는 교통사고로 뇌를 다친 후 생긴 무언 무동증으로 거의 폐인이 된 환자 B씨에게 뇌확산텐서 영상 검사를 통해 뇌 신경로가 손상됐다며 A씨와 마찬가지로 외상성 축색 손상 진단을 내렸다.
그런데 B씨가 가입해 있는 보험회사인 메리츠화재해상보험 측은 교통사고가 아닌 지병에 의한 정신분열병이라는 소견을 낸 한 보험사측 자문의사의 의료심사회신서를 토대로 B씨와 장 교수에게 채무부존재 소송을 제기했다.
장 교수의 잘못된 진단으로 지급된 보험금 6000만원 중 2000만원을 B씨와 장 교수가 각각 배상하라는 것이 주요 내용이었다.
메리츠화재해상보험은 소송 과정에서 "장 교수는 과실로 인한 위법행위를 했고, 진료비 상당액에 대해 손해배상 의무를 진다. 증명되지 않은 자신만의 의견을 근거로 진단상의 주의의무를 만연히 한 채 외상성 축색 손상의 진단을 내렸다"고 주장했다.
더 황당한 것은 메리츠화재해상보험이 장 교수에게 제기한 소송을 <사례 1>에서 DB손해보험이 자신들의 2심 재판에 이용한 것이다.
장 교수의 진단으로 보험금 지급 소송에서 보험사가 패소한 사건은 10여건이나 된다. 상황이 이렇다 보니 DB손해보험에서도 장 교수의 메리츠화재해상보험과의 진행 중인 재판 내용을 변론에 이용해 유리한 판단을 받고자 했다.
메리츠화재해상보험은 장 교수와 2년 간 법정 공방을 하다가 2019년 1월 10일 소송을 취하했다. 장 교수와의 소송 결과를 B씨와의 소송에서 활용하려 했으나 별다른 이득이 없다고 판단했기 때문이다.

ⓒ의협신문(그래픽 윤세호)
ⓒ의협신문(그래픽 윤세호)

진단서 써준 의사 상대 소송…심리적 압박·임박음 소송 비난

보험회사들이 의사의 진단서를 트집 잡아 손해배상 소송을 거는 일이 조금씩 늘고 있다.

보험회사가 보험가입자에게 보험금을 지급하는 과정에서 보험회사 측 자문 의사의 의견을 바탕으로 보험금을 지급할 수 없다며 소송을 거는 경우가 대부분이다.

그런데, 의사의 진단서가 문제가 있다면서 의사를 상대로 소송을 제기하는 사례가 하나둘 늘면서 '보험회사의 의사 괴롭히기'가 아니냐는 우려가 커지고 있다.

의사가 애초부터 환자에게 유리한 진단을 했으니 한번 당해보라는 식으로 소송을 거는 이유는 의사에게 심리적인 압박을 주면서 괴롭히고, 궁극적으로는 입막음하려는 소송이라는 비난까지 받고 있다.

<사례 1>처럼 보험회사들은 보험가입자에게 보험금을 지급할 때 보험사 자문의사의 의료감정 등을 근거로 채무부존재, 다시 말해 보험급을 지급할 수 없다는 소송을 한다. 대부분 가입자를 상대로 소송을 제기하고, 의사의 진단 내용을 두고 법정 공방을 벌이게 된다.

그런데 <사례 2>의 경우는 상황이 좀 다르다. 보험회사가 보험가입자는 물론 진단서를 써준 의사에게까지 손해배상 책임을 물었기 때문이다.

메리츠화재해상보험은 2016년 5월 3일 대구지방법원(단독 재판부) 보험가입자 B씨에 대해 채무부존재 확인 소송을 제기했다.

이와 함께 B씨에게 주치의사로서 진단서를 써준 의사(장성호 영남대병원 재활의학과 석좌교수)에게는 진단을 잘못 써줬기 때문에 보험금이 지급됐다며 이를 배상하라는 소송도 함께 제기했다.

이후 사건은 2018년 2월 14일 대구지방법원 합의 재판부로 이송됐고, 메리츠화재해상보험은 B씨에 대한 소송만 유지하고, 재판 과정에서 장 교수에 대한 소송이 불리하다고 판단, 2019년 1월 10일 장 교수에 대한 소송을 취하했다. 패소하게 되면 판례가 남기 때문으로 보인다.

패소할 것을 알면서도 이례적으로 의사에게 소송을 건 이유에 대해 법조계 관계자는 의사에게 심리적으로 압박을 주려는 것이 아니냐는 의문을 제기하고 있다.

당시 B씨에게 진단서를 써준 장성호 교수는 법원에 제출한 답변서를 통해 "B씨는 교통사고로 뇌를 다친후 생긴 무언 무동증으로 거의 폐인이 된 환자로 사고 후 외상성 뇌 손상(주진단), 외상성 뇌 신경 축색손상(세부진단)으로 진단하고 치료했던 환자"라고 설명했다.

그런데 "해당 보험회사인 메리츠화재해상보험 측은 교통사고가 아닌 지병에 의한 정신분열병이라는 소견을 낸 한 보험사 측 자문 의사의 자문소견서(의료심사회신서)를 토대로 환자와 나에게 채무부존재 확인 소송을 제기했다"고 분개했다.

'외상성 축색손상', 뇌진탕으로 인한 뇌 손상의 종류

보험회사가 문제로 삼았던 '외상성 축색손상'은 뇌진탕이나 경도 외상성 뇌 손상보다 심한 외상성 뇌 손상의 한 종류를 의미한다.

미국에서는 1년에 약 10만 명당 180명(0.18%)의 뇌진탕(경도 외상성 뇌 손상) 환자가 발생하며, 뇌진탕 환자 180명 중 약 15%(27명)는 1년 이후까지 후유 증상이 남는다.

우리나라에서는 매년 뇌진탕 환자가 9만명 정도 발생하므로 약 1만명의 환자가 1년 이후까지 후유증상이 남는 '뇌진탕 후 증후군' 환자일 것으로 추산된다.

그러나 우리나라에서 외상성 축색손상을 진단하는 의료기관은 거의 없는 실정이다. '외상성 축색손상'을 '뇌진탕'으로 진단해 고생하는 환자들이 많다는 의미이기도 하다.

의사는 뇌진탕으로 진단했으나 환자는 외상성 뇌 신경 축색손상에 의해 여러 가지 증상을 장기간 호소할 경우 심리적인 문제가 주된 문제인 것으로 오인해 정신건강의학과로 의뢰해 적응 장애 등의 진단을 받거나 자동차보험회사로부터 꾀병 환자로 낙인이 찍혀 보험금 지급 분쟁을 당하기도 한다.

뇌진탕은 뇌에 가해진 외력에 발생한 일시적이고, 가역적인 신경적 기능장애를 말한다. 즉 급성 외상에 의해 유발된 일시적인 신경기능의 변화로서 일반적으로 24시간∼3주 이내에 증상 없이 완전히 회복하는 경우로 정의한다.

또 장기적인 후유증이 없는 일시적인 뇌의 기능 이상이므로 뇌진탕으로 진단받은 환자들은 후유 증상 없이 완전히 회복해야 한다.

문제는 CT와 MRI 검사에서는 대부분 정상으로 나오지만, 약 15%의 뇌진탕 환자들이 3주 이내에 회복하지 못한 채 사고 후 기억력장애·우울증상·의욕저하·성격변화 등의 인지 및 행동 장애를 호소하거나 운동 신경등의 손상등으로 손의 근력 저하·보행 패턴의 변화 등을 호소하고 있으며, 뇌의 감각신경 손상으로 인해 전신 신경통 등 다양한 후유증상을 보인다는 것이다.

많은 의학자가 뇌진탕 후 1년이 지나도록 회복하지 못한 채 후유증을 보이는 원인을 찾기 시작했고, 1990년대에 MRI의 한 종류인 '확산텐서영상'이 개발되면서 실마리가 풀리고 있다.

'확산텐서영상 신경로 영상법'은 신경로의 손상을 가시화하고, 측정하는 데 사용할 수 있음으로 CT와 MRI에서는 대부분 정상으로 나오는 뇌진탕 또는 경도 뇌손상환자에서 '외상성 축색손상'을 진단할 수 있게 됐다. 장 교수는 이 검사를 통해 B씨에게 외상성 축색손상 진단을 내린 것.

장 교수는 "교통사고로 인한 뇌 손상(뇌진탕) 환자를 정확히 진단해 치료법을 제시할 수 있도록 '확산텐서영상 신경로 영상법'을 활용해야 한다"고 주장하고 있다. 또 "외상성 축색손상을 학계·보험계·정부 등에서 활용해야 한다"고 제안했다.

장 교수는 "이를 통해 교통사고로 인한 뇌진탕 환자 가운데 약 15%에 달하는 후유증 환자들이 올바른 진단과 치료를 받음으로써 증상을 개선할 수 있도록 해야 한다"고 거듭 강조했다.

보험사 측 자문의사 소견, 법적 송무자료 사용할 수 있나?

장 교수는 소송을 겪으면서 보험사 측 자문의사들의 자문소견서에 몇 가지 중대한 문제점이 있었다고 설명했다.

장 교수는 "의사가 환자에 대해 진단하고 소견을 밝힐 때는 반드시 환자를 진찰하고 직접 보는 것이 가장 기본적이고 필수적인 조건"이라고 말했다.

하지만 "보험회사의 요구에 따라 의료자문을 해준 자문의사는 환자를 직접 보지 않고 보험사 측이 제공한 자료만 갖고 지병인 정신분열병이라고 판단했다"며 "더 나아가 B씨의 정신분열병이 모친에 의해 유발됐기 때문에 환자와 모친을 격리해야 한다는 엄청난 주장까지 했다"고 충격적인 사실을 전했다.

메리츠화재해상보험 측 의료자문 내용은 물론 의료자문서가 법적 송무 자료로 사용할 수 없음에도 보험회사 측은 소송자료로 사용한 부분도 지적했다.

장 교수에 따르면 메리츠화재해상보험 측은 정신건강의학과 자문의사의 '의료심사회신서'를 근거로 'B씨가 지병에 의해 정신분열병이 발병했다'고 주장하는데, 정신의학과 자문의사가 '법적 송무 자료로 사용할 수 없다'고 밝힌 내용을 본인의 동의 없이 무단으로 소송에 활용했을 가능성이 높다.

장 교수는 "자문 의사도 보험회사 측이 제시한 서류심사만으로 자문했고, 자문 의사도 법적으로 책임지지 못하는 신뢰성이 빈약한 자료로부터 시작된 이 소송은 원천적으로 성립되지 않는다"고 말했다.

그러면서 "자문의사가 의료심사회신서에 '법적 송무 자료로 사용할 수 없다'는 내용을 특별히 언급하는 것은 법적으로는 떳떳하지 못한 내용이 담겨있거나 보험회사가 소송에 사용할 것 같으니까 자신을 보호하기 위해 미리 조건을 걸어놓은 것으로 보인다"고 지적했다.

과도한 자문료도 문제라고 꼬집었다.

대학교수들이 법원의 의뢰를 받아 신체 감정을 할 때 환자를 직접 진료하고 검사를 시행해 결과를 분석하고 감정서를 작성하면 보통 20만원(2016년 기준)을 받는다.

장 교수는 "메리츠화재해상보험 측의 자문 의사는 150만원을 받은 것으로 안다"며 "환자를 직접 보지 않고 자료만 갖고 의료심사회신서를 작성한 것에 대한 과도한 자문료는 뇌물의 성격을 갖고 있다"고 밝혔다.

"메리츠화재해상보험 측과 자문 의사가 명백하게 교통사고로 거의 폐인이 된 한 청년을 지병으로 몰고 가려는 의도를 느끼고 소름이 끼칠 정도로 놀랍고 경악스러움을 느꼈다"고 밝힌 장 교수는 "이윤을 추구하는 보험회사로써 사고에 대한 보상비를 줄이려는 노력은 당연하다고 할 수 있지만, 교통사고에 의한 환자를 지병에 의한 정신병으로 몰고 가려는 의도는 너무나도 악의적이라고 생각한다"고 말했다.

무엇보다 "진료비에 관한 부당이득반환 소송을 환자가 아닌 주치의에게 제기하는 것은 매우 이례적인 일"이라며 "이는 메리츠화재해상보험이 의사에게 심리적 압박감을 주고 업무를 방해할 의도가 있는 것으로 판단된다"고 목소리를 높였다.

외상성 뇌신경 축색손상 진단명 인정 법원 판례 수두룩

장 교수는 "보험사 측에서는 외상성 축색손상이 없는 진단명인데 이를 진단명으로 사용했다고 주장하고 싶어하는 것 같은데, 외상성 축색손상은 국내에서만 사용을 안하던 진단명일 뿐"이라면서 "한국에서도 이미 법원에서는 외상성 뇌신경 축색손상을 진단명으로 수 건의 판례까지 나와 있는 상황"이라고 말했다.

그러면서 "대한의사협회에 의료감정을 촉탁한 결과, 대한영상의학회·대한신경외과학회·대한뇌신경재활학회 등은 확산텐서영상(DTI)은 축색손상 환자에서 병변을 발견하기 위해 타당한 검사이고, 다양한 부위에서 환자의 증상을 설명할 수 있는 축색의 병변을 발견해 보고하고 있다고 답을 했다"며 의학적 근거가 있음을 강조했다.

법조계에서도 의사를 상대로 한 소송은 문제가 있다는 지적이다.

법무법인 한 변호사는 "환자가 병원과 짜고 허위로 진단서를 써줬다면 명백한 잘못이지만, 이번 경우는 이 분야에서 오랫동안 연구한 권위 있는 의사가 여러 의학지식에 기반해 검사하고 진단을 한 것"이라며 "이것을 문제 삼아 보험가입자에게 보험금을 지급하지 않고, 의사에게도 진단의 잘못을 물어 손해배상을 청구하는 것은 문제가 있다"고 말했다.

그러면서 "이런 일이 지속해서 일어나면 어느 의사가 소신껏 진료하고, 진단서를 써주겠냐"라며 "의사의 진료가 위축되는 것은 물론 의사의 진단 영역을 침해하는 것"이라고 우려했다.

이 변호사는 "보험회사들이 의사의 진단서를 문제 삼아 소송을 거는 것은 압박하기 위한 수단이 아니냐는 의심이 든다"며 "보험회사들이 보험금 지급을 제한하려고 무리한 소송을 해서는 안 된다"고 강조했다.

한편, 메리츠화재해상보험 관계자는 "장성호 교수에게 손해배상 소송을 제기하게 된 것은 확산텐서 영상 검사로 외상성 축색 손상이라는 진단을 내리는 것이 객관적인지를 알아보기 위한 것이었다"고 말했다.

B씨의 보험금 지금 비용이 다른 사례보다 많아 장 교수가 진단한 것이 맞는지를 알아보기 위해 소송을 함께 진행하게 됐다는 것.

메리츠화재해상보험 관계자는 "장 교수에 대한 재판 결과(진단이 객관적인지 여부)가 빨리 나오면 B씨와의 소송에 근거자료로 활용할 계획이었으나, 장 교수와의 소송이 최종 신체감정을 하는데 2년의 시간이 걸리고, 재판 과정에서 객관성을 판단할만한 이렇다할 결과가 나오지 않아 소송을 취하하게 됐다"고 이유를 밝혔다.

그러면서 "장 교수의 진단방법이 어떤 환자에게는 맞는 것도 있을 것이고, 맞지 않은 것도 있을텐데, 소송에서 사고발생 경위와 진단의 인과관계가 일치하는지를 보려고 했던 것"이라고 덧붙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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