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updated. 2024-03-28 17:57 (목)
애매한 결과가 반복되는 침술 임상시험
애매한 결과가 반복되는 침술 임상시험
  • 강석하 과학중심의학연구원장 admin@doctorsnews.co.kr
  • 승인 2019.07.28 22:3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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침술의 원리인 기와 경혈을 뒷받침하는 과학적 근거는 희박하지만 침술의 효능을 확인하기 위한 연구는 수십 년 전부터 서양을 비롯한 여러 나라에서 실시됐다. 

방대한 연구들이 가리키는 바를 간략하게 정리하자면 침술은 통증이나 메스꺼움 등의 주관적 증상에 대해서는 다소 효과가 있다. 그런데 정교하고 규모가 큰 연구일수록 침술의 효과는 플라시보 효과에 지나지 않는다는 결론이 많이 나온다.

경혈을 찌른 경우와 경혈이 아닌 곳을 찌른 경우를 비교하거나 피부를 관통하지 않는 가짜침 대조군을 이용한 임상시험에서는 대부분 침 치료의 효과가 대조군과 통계적으로 유의한 차이가 없거나 차이가 작다. 침술은 강력한 플라시보 효과를 낸다는 점은 인정받고 있으나, 그 이상의 진정한 효과가 있는지는 여전히 불분명하다. 

최근 <Pain>에 발표된 하버드대 연구팀의 임상시험 결과도 이런 경향성에서 벗어나지 않았다. 

연구팀은 정량적감각측정검사(quantitative sensory testing, QST)를 이용해 침을 꽂고 동시에 전기자극을 주는 전기침(electroacupuncture)과 가짜침이 말초신경의 감각 지각에 영향을 미치는 데에 차이가 있는지 평가했다. 실험에는 목이나 허리 통증 환자 및 환자가 아닌 사람들이 참여했다. 연구팀은 부수적으로 전기침, 가짜침, 침을 맞지 않은 환자들 간에 증상 완화 효과에 차이가 있는지도 평가했다. 

연구의 주 목적인 QST 평가 결과에서는 전기침과 가짜침 사이에 차이가 없었다. 침을 꽂으면 신경생리학적 변화가 유발된다는 기초 연구들이 있지만, 사람에게 침을 찌르고 전기 자극을 주었을 때나 가짜침을 사용했을 때 말초신경의 감각 변화에 미치는 영향에는 차이가 없다는 의미다.  

환자들의 증상 개선에는 애매한 결과가 나왔다. 전기침 그룹은 침 치료를 받지 않은 대조군과 비교했을 때 통증 감소에 통계적으로 유의한 차이가 있었다. 가짜침 그룹은 침 치료를 받지 않은 대조군과 통계적으로 유의한 차이가 없었다. 여기까지만 보면 전기침이 가짜침과는 달리 효과가 있는 것처럼 보인다.

 

그래픽/윤세호기자 seho3@hanmail.netⓒ의협신문
그래픽/윤세호기자 seho3@hanmail.netⓒ의협신문

그런데 전기침과 가짜침 그룹을 비교하면 통계적으로 유의한 차이가 없었다. 가짜침 그룹이 보고한 통증 완화 효과는 전기침 그룹에 비해 크기가 작아서 양쪽 그룹 모두와 통계적 유의성이 없는 것이다. 

이런 식의 결과들로 인해서 어떤 학자들은 침 치료가 진정한 효과를 어느 정도는 지니고 있다고 여기고, 어떤 학자들은 약간의 차이가 발생하는 이유는 두 그룹 간에 피험자들이 느끼는 자극의 강도나 맹검(blind) 처리 등 통제되지 않은 요인으로 인한 것이라고 여긴다.

작년 <BMJ>에는 통증 환자에게 침 치료를 권해야 하는지에 대해 찬성과 반대 입장을 가진 전문가들의 의견이 동시에 실리기도 했다. 

침술에 대한 더 이상의 연구조차도 무의미하다는 의견도 있다. 과학중심의학(science-based medicine)을 주장하는 전문가들은 침술은 비과학적 원리를 바탕으로 하며, 이미 수천 건의 임상시험을 했음에도 효능을 입증하지 못했기 때문에 더 이상의 연구는 자원 낭비라고 비판하기도 한다. 

우리나라에서는 근거에 대한 아무런 고민 없이 모든 질환에 대한 침 치료에 건강보험이 적용된다. 효과가 입증된 치료를 필요한 환자들에게 제공해야 할 건강보험 재원이 수많은 연구에도 효과를 입증하지 못한 치료법을 조장하는데 사용되는 셈이다. 

국내에서는 학계의 동향이 전혀 반영되지 않고 있으며, 오히려 외국 상황이 왜곡돼 전달된다. 미국 대형 암센터들의 보완의학 부서에서 침술사들 2∼3 명이 마사지사들과 동급으로 일부 환자들에게 침을 놓는 현실이 "미국에서 암 환자에게 한방 치료가 적극적으로 활용된다"는 식으로 보도된다.

미국에서 침술사면허 등 자격을 갖추면 한약을 사용할 수는 있지만, 영양보조 목적을 넘어 암 같은 질병을 치료해준다며 돈을 받아 챙기면 교도소에 간다는 사실은 거의 알려져 있지 않다.

2003년에 한의약육성법이 제정됐다. 지난해는 서울시, 올해는 경기도에서 한의약 육성 조례안이 통과됐다. 우리나라 밖에서 벌어지는 연구 동향에 눈을 뜨고 전문가들의 의견에 귀를 기울인다면 한의약 육성이 아닌 한의약 폐기가 국민의 건강을 위해 필요한 조치임이 명백한데, 법률과 조례를 입법하는 의원들이 언제쯤 진실을 접할 수 있을지 모르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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