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안전성·유효성 검증 요구한 대법원 '혈맥약침' 판결
안전성·유효성 검증 요구한 대법원 '혈맥약침' 판결
  • 강석하 과학중심의학연구원장 admin@doctorsnews.co.kr
  • 승인 2019.07.14 23:2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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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맥에 아무 한약이나 주사해 질병 치료?…"엉터리 주장"

지난 6월 27일 한의사들의 무분별한 행태에 경종을 울리는 대법원 판결이 선고됐다. 한의사들이 '혈맥약침'이라는 한방의료행위처럼 보이는 명칭을 붙인 정맥주사행위가 기존에 허용돼 있는 약침술과 거리가 멀기 때문에 안전성·유효성 검증을 받지 않고서 사용하면 안 된다는 판결이었다.

필자가 알기로는 의사의 영역 침범이 아닌 이유로 한방 치료법이 제한된 최초의 사례다. 엄밀히 말하자면, 이 재판은 한의사에게 혈맥약침행위에 대한 비용을 환자에게 돌려주라고 한 건강보험심사평가원의 처분이 정당한지에 대한 판결이었기 때문에 의료법을 위반한 행위인지에 대해서는 다루지 않았다. 

한의학의 역사에서 치료수단의 발전은 고대 의학서적의 수준에서 거의 정체돼 있었는데, 최근 한의사들은 무분별하게 영역을 확장해왔다. 약침이라는 이름으로 환자들에게 각종 한약을 주사하고, '매선'이라는 이름으로 의사들이 사용하는 PDO 성분의 리프팅 실을 사용한다.

올해 급여화가 된 '추나'요법은 우리나라에서 전래되어온 한방 고유의 치료법이 아니다. 서양의 카이로프랙틱과 정골의학 등을 수용해 개발한 방법이라고 한다. 

그래픽 / 윤세호기자 seho3@hanmail.netⓒ의협신문
그래픽 / 윤세호기자 seho3@hanmail.netⓒ의협신문

주사기가 없던 옛날 한의사들이 약침이라면서 피부를 뚫고 액체를 주입시켰을 리가 만무한데도 한의사들은 무모하게도 한약재를 증류시키거나 추출해 얻은 액체를 주사한다. 침을 찌르는 일과 체내에 액체를 주입하는 일은 발생할 수 있는 위험의 성질이나 크기가 완전히 다른데도 한의사들은 침술을 응용해서 경혈을 더 효과적으로 자극하기 위한 방법이라며 약침을 사용했다.

큰 사고가 발생했다는 소식은 거의 없는 것을 보면 그나마 다행스럽게도 맹물에 가깝게 사용하기 때문으로 보인다. 물론 효과를 기대하기는 어려울 것이다. 

한의사들은 더 비싸게 받을 수 있는 약침법을 개발했는데 바로 많은 양의 약침액을 정맥에 주사한다는 혈맥약침이었다. 주로 절박한 심정의 암환자들에게 암 치료에 도움이 된다며 산삼을 증류한 약침액을 산삼약침으로 사용하는 경우가 많았으며, 최근에는 다양한 영역으로 확장되고 있었다.

주사하는 양이 많고 특히 산삼이라고 하면 환자들은 비싼 돈을 지불할 만하다고 생각했을 것이다. 

약침술은 이미 비급여 의료행위로 인정되어 있었는데, 더 최근에 등장한 혈맥약침은 그렇지 않았다. 대법원은 혈맥약침술이 기존의 약침술과는 거리가 멀기 때문에 한방 비급여 치료법으로 인정할 수 없으므로, 2007년부터 시행된 신의료기술평가 제도를 통해서 안전하고 효과가 있는 한방의료행위인지를 평가받아야 한다고 밝혔다. 

공교롭게도 대법원 판결이 있기 3일 전인 6월 24일에는 '감정자유기법'이 한방 분야에서는 최초로 신의료기술평가 인증을 통과했다. 감정자유기법은 경혈을 두드린다는 점에서 한의학과 관련이 있어 보이지만 의료인도 아니고 심리학자도 아닌 자칭 '에너지 심리학' 전문가라는 미국인이 1993년에 발표한 치료법이다.

비과학적 원리에 근거라고는 결함 있는 임상시험밖에 없어서 학계에서 비판을 받고 있었는데, 우리나라에서는 한방 신의료기술로 인증해준 것이다. 

그렇다면 앞으로 혈맥약침이 신의료기술평가를 통과할 수 있을까? 아무리 평가가 허술해도 정맥에 아무 한약이나 주사해서 아무 질병이나 치료할 수 있다는 주장은 받아들여지기 어려울 것이다. 특정 질병에 특정 약침액을 사용하겠다고 신청을 해야 하는데, 엉터리 임상시험을 근거로 제시하면 엄격한 검증을 요구하는 의사들이 사용하는 주사제의 의약품허가와 형평성 논란을 피할 수 없기 때문에 아마도 불가능할 것이다. 

법원 판결로 정맥주사 방식이 막히기는 했지만, 한의사들은 늘 자기가 개발한 한약이나 약침으로 각종 난치병을 비롯해 온갖 질병을 치료한다고 주장한다. '공장에서 합성한 화학물질'을 모두 안전하고 효과가 있다며 의약품으로 허가해주는 일이 상식에 맞지 않는 것처럼, 어떤 한약이 어떤 질병에 효과가 있는지는 각각 검증을 받아야 한다.

그럼에도 '천연물에서 유래한 물질'은 한약이기 때문에 안전성 여부도 따지지 않으며, 온갖 질병에 효과가 있다고 주장하며 치료비를 받아도 법적으로는 문제가 없다. 

법원의 혈맥약침 판결이 반갑지만, 국민들을 안전성과 유효성이 입증되지 않은 의료행위로부터 보호하기 위해서는 아직 가야 할 길이 멀기만 하다. 

■ 칼럼과 기고는 본지의 편집방침과 다를 수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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