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가 기다리는 환자들 (2)
내가 기다리는 환자들 (2)
  • 김부경 고신의대 교수(고신대복음병원 내분비내과) admin@doctorsnews.co.kr
  • 승인 2019.07.14 23:29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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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먼저 호에서 이어집니다

또 한 명의 환자는 체중이 늘 온몸이 퉁퉁 부어 있는 분이다. 신장내과와 협진하여 이뇨제를 쓰고 있지만 붓기가 빠지지를 않는다. 너무 부어서 발이 견딜 수 없이 아프면 입원을 원한다. 퉁퉁 부어 허옇게 각질이 일어난 다리를 질질 끌며 진료실로 들어와 입원을 시켜달라고 한다.

너무 붓는 것을 보는 내가 견딜 수가 없어 신장내과에 투석을 하면 안되느냐고 몇 번을 문의하였지만, 아직 소변이 잘 나와서 투석을 시작하기에는 아깝다고 했다. 입원 중에 혈당을 100대 중반으로 만들어 퇴원시키면, 일주일만 지나면 어김없이 혈당이 3∼400으로 만들어 온다. 

어느 날 엄청난 고혈당을 만들어 온 그녀에게 내가 좀 규칙적으로 짜지 않게 먹으라는 잔소리를 하자, 눈물을 쏟기 시작했다. 그녀의 하소연은 혼자 살고 있어 돌봐줄 사람도 없고, 이제 당뇨 합병증으로 몸은 점점 아프고, 눈은 보이지 않아서 서러운데, 아플수록 올케에게 점점 더 구박을 받는 것 같아 서럽다는 것이었다.

그녀의 올케를 만난 적도 있는데, 올케의 하소연도 들어주었다. 남편 월급이 넉넉한 것도 아닌데, 평생 시누이 병수발까지 들어야 하는 처지가 힘들다는 것이다. 시누이가 그런 자기 형편을 조금이라도 이해한다면 자기 관리라도 잘 해주면 좋으련만, 결국 당뇨조절을 못해서 종종 병원신세를 지고 그 병원비를 낼 때마다 원망 섞인 잔소리가 나올 수 밖에 없는 형편이었다. 

하루는 회진을 도는데, 문제의 이 두 환자가 같이 침대에 앉아 즐겁게 이야기를 하고 있이 아니겠는가.  

"어? 두 분 병실도 다른데 어떻게 아세요?"

"우리 동네 언니라예."

"아, 그러시구나, 어떻게 또 이렇게 친구예요? 신기하네요."

많고 많은 나의 환자들 중 다섯손가락 안에 꼽을만한 문제의 환자 두 명이 같은 아파트에 사는 친구라니 신기했다. 퇴원 후 외래로 찾아온 두 아이 엄마가 내게 고자질을 했다.

"그 언니 어엄청 짜게 먹어예. 내가 그리 짜게 먹으면 안된다꼬 맨날 언니한테 말해도 맨날 반찬으로 젖갈 사간다꼬 동네 사람들이 다 알아예. 온 동네 사람들이 그 언니 오래 몬살긋다고 걱정하거든예."

그 때 나는 알게 되었다. 한 환자가 아무리 이뇨제를 써도 퉁퉁 붓는 이유와, 한 환자가 갑자기혈당관리에 건강에 관심을 갖게 된 이유를 말이다. 

그녀가 내 앞에서 울고 간 후로는 종종 그녀의 하루가 어떠할지 머릿속에 떠오르곤 했다. 말상대를 해줄 사람도 없고, 함께 밥을 먹을 사람도 없고, 이렇다 할 일도 없고, 꼭 해야만 할 일도 없다. 당뇨병성 신경병증으로 다리는 칼로 쑤시듯 아프고, 온몸은 퉁퉁 부어 움직이기도 힘들다.

당뇨병성 망막증 때문에 잘 보이지도 않아 소일거리조차 하기 어렵다. 그녀의 하루 하루는 어떻게 지나가고 있을까. 그나마 살아있음을 느낄 수 있는 순간은 맛있는 것을 먹을 때가 아닐까. 의사인 내가 짜게 먹지 말라, 달게 먹지 말라는 것은 그녀 인생의 낙을 빼앗는 잔인한 일이 아닌가….

당뇨병은 개인의 문제를 넘어 사회적인 병이다. 많은 당뇨병 환자를 만나면서 그것을 직접 확인하고 있다. 경제적으로 여유가 있고, 지지해 줄 가족이 있으며, 10년이나 20년 후를 예측할 수 있는 지적 능력이 있는 사람들은 합병증까지 가는 경우가 많지 않다.

그 전에 담배를 끊고, 아내는 건강한 식단으로 바꿔주며, 자녀들은 운동을 챙겨준다. 혈당 조절 목표를 이해하고, 처방해준 대로 약을 잘 복용하면서 당뇨병으로 진단은 받았지만, 오랫동안 정상 혈당을 유지한다. 오히려 당뇨병 덕분에 이전보다 건강하게 먹고, 건강한 생활습관을 가지게 되어 더 건강해보이기도 한다. 

그렇지만 가족도 없고, 변변한 일거리도 없고, 돈도 없고, 몇 년 후에 합병증이 자신의 삶에 어떤 영향을 미칠지 이해하지 못하는 사람들은 악순환을 시작한다. 그들은 단순 육체노동을 하고, 식사는 라면이나 편의점 도시락으로 떼운다.

당뇨병 환자라는 사실을 알리는 것만으로도 일자리를 잃을 수 있다며 걱정한다. 병원에 가야 할 시간을 자주 요청할 수가 없다. 이런 분들일수록, 직장 동료들의 편견도 있어 낙인이 찍힐까봐 인슐린 주사를 강하게 거부한다. 고단한 일과에 대한 보상은 담배나 술이다. 

이런 환자들에게 아침마다 혈당을 재어보라, 혈당 조절이 되지 않으니 인슐린을 맞으라, 올때마다 당화혈색소 검사를 해보자, 담배를 끊어라, 술을 마시지 마라, 식사를 규칙적으로 하라는 말은 헛소리일 뿐이다. 그걸 알면서도 나는 이런 환자들에게 늘 헛소리를 한다. 환자의 사정을 알면 알수록 내 오지랖은 점점 더 넓어진다.

결국 눈이 안보이게 되고, 투석을 시작하고, 혹시 발이라도 절단하게 되면 그나마 지금 가지고 있는 일자리도 잃게 되지 않을까. 그나마 하던 일도 없어지면 경제적으로 더 어려워지고, 삶이 무료해지고, 의욕이 없어지고, 무료함은 먹을 것으로 달래고 술이나 담배가 유일한 낙이 될 수 있다. 내 몸을 돌볼 겨를도 없이 오늘 하루를 겨우 산다는 환자들에게 헛소리에 불과하다는 것을 알면서도 더 잔소리를 하게 된다. 

가끔 나에게 돌아오지 않는 환자들도 있다. 내가 기억할 정도의 환자들이면, 왜 오지 않을까 걱정하면 기다리게 된다. 그럴 때는 그냥 원하는대로 해줄껄 뭣하러 서로 피곤하게 그런 오지랖을 부렸는가 싶어 후회도 한다. 내가 환자의 삶을 바꿔줄 수도 없는데, 삶을 바꿔줄 수도 없는데 말이다.

그래도 가끔 내 오지랖이 주체할 수 없이 발동하는 날은 그런 상상을 한다. 만약 내가 우리의 힘을 모을 수 있다면, 우리가 함께 한다면 환자들의 삶을 바꿀 수 있지 않을까.

당뇨병 환자라는 사실만으로 일자리를 잃을 염려가 없다면, 병원에 간다고 눈치보지 않아도 된다면, 인슐린 주사에 대한 편견과 낙인이 없다면, 동네마다 걷고 싶은 산책로가 있다면, 혹여 시력이 나빠지거나 다리를 절단 했다고 하더라도 할 수 있는 일이 있다면, 하루 일과 후 술이나 담배가 아니더라도 즐길 수 있는 다양한 여가 문화가 있고 그것을 즐길만한 시간이 있다면, 동네 사람들끼리 유기적 관계가 있어 같이 밥을 먹고 웃을 수 있다면. 내 잔소리는 더이상 헛소리가 아닌 현실이 되고, 나는 돌아오지 않는 환자들을 더이상 기다리지 않아도 될텐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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