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가 기다리는 환자들 (1)
내가 기다리는 환자들 (1)
  • 김부경 고신의대 교수(고신대복음병원 내분비내과) admin@doctorsnews.co.kr
  • 승인 2019.07.07 22:50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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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번에는 입원을 좀 합시다."

"선생님, 그냥 약만 주이소. 내가 입원을 몬해예."

"네, 그런데 이번에 또 약만 드리면 또 약 다 떨어지고 한 두 달 있다가 오시려고 그러죠? 이러다가 정말 큰일나요."

그녀는 진료실에 올 때마다 나와 실랑이를 벌이곤 했다. 40대 여자로, 약간 말이 어눌하다. 불규칙한 사이로 발음이 새어 나온다. 인슐린을 하루에 100단위 넘게 맞아도, 당화혈색소는 몇 년째 계속 10% 이상이었다. 

"도대체 왜 입원을 못하신다는 거예요?"

"아아들 때문에요."

"애들이 몇 살인데요?"

"17살, 14살이요."

"아니, 그럼 중고등학생들인데 알아서 할 나이 됐네요. 애들 핑계대지 말고 입원하세요."

"아아들이 둘 다 장애인이라서 내가 없으면 안되예."

순간 흠칫했다. 장애인 자녀 둘을 둔 싱글맘의 생활고가 그려짐과 동시에, 그 엄마가 갑자기 케톤산증이나, 고삼투압성 혼수로 의식없이 응급실에 실려오거나, 심근경색이나 뇌경색으로 갑자기 죽거나 불구가 되는 그림이 머릿속을 스쳤다. 갑자기 혈당을 잘 조절시켜야겠다는 내 의지는 더욱 강력해졌다.

"아니, 그럼 혈당조절을 더 잘 하셔야겠네요. 이러다가 갑자기 의식을 잃고 응급실에라도 실려오면 애들은 어떡해요?"

"아니 그래도 내 없으면 아아들이 즈그끼리 안되예."

"좋아요, 그럼 입원하는 대신 앞으로 일주일에 한 번씩 봅시다."

"아이고, 선생님, 일주일에 한번씩은 못와예."

"그럼 이주일에 한 번 어때요? 그 정도는 하실 수 있죠? 그리고 오늘 수액이라도 맞고 가세요."

그렇게 2주에 한번씩 병원에 오는 것으로 타협을 보았다. 그렇게 자주 병원에 오면 진짜 인슐린을 맞았는지 확인도 좀 해보고, 혈당이 너무 높으면 주사실에서 수액을 맞아 탈수라도 좀 해소시켜주자는 심산이었다. 그러나 역시 그녀는 예약된 날짜에 오지 않았다. 자꾸 그녀가 마음에 걸렸다. 내 외래 시간이 아니라면, 다른 선생님 진료시간에라도 와서 치료를 받아주기를 바라는 마음에서 종종 외래 간호사들에게 확인을 했다.

"000님, 이번주에 아직 안오셨어요? 혹시 다른 교수님 보고 갔나요?"

내 마음을 아는 외래간호사들이 예약 날짜마다 매번 직접 전화를 해서 챙겨주기 시작했다. 정성을 알아준 것인지 약속한 날짜에 맞춰 진료를 보러 오는 횟수가 늘었다. 그렇게 병원에 자주 오게 되니 이전보다 인슐린 맞는 횟수와 용량을 줄이고도 혈당이 많이 좋아졌다. 이제 더 이상 입원할 필요는 없겠다 싶어질 즈음, 첫째 딸과 함께 외래를 방문한 그녀가 갑자기 입원을 시켜달라는 것이었다. 

"왜요? 요즘은 전에보다 혈당도 좋아서 굳이 입원 안하셔도 되는데요. "

"우리 아아가 방학이라서 이제 입원해도 되거든예."

"전에도 방학이었는데, 애들 때문에 안된다면서요?"

"인자 즈그들끼리 잘 있어예."

무슨 심경의 변화인지 모르겠지만 그렇게 거부하던 입원을 스스로 하겠다니 말릴 수도 없었다. 입원 후 그녀는 자신의 상태에 대해 지나치게 걱정을 했다. 이전에는 그렇게 말해도 관심도 없던 합병증에 대해 무척이나 신경을 썼다. 회진을 갈 때마다 다리가 아프다, 머리가 아프다, 마비가 온다는 등의 증상을 호소하면서 자신이 괜찮은 건지 확인을 했다. 내가 걱정하던 상태에서는 늘 밝고 씩씩했는데, 지금은 오히려 자신의 건강을 걱정하면서 왠지 우울하고 풀이 죽어 보였다. 내가 환자의 삶을 바꿔주지도 못할 거면서 지나친 개입을 했나보다, 아는게 병이라고 이해도가 떨어지는 환자에게 지나친 교육을 했나보다 싶어 후회가 되었다. 

"이제 퇴원하셔도 괜찮아요. 특별히 이상한 곳은 없고, 요즘 혈당도 많이 좋아요."

"내가 머리가 너무 아파가꼬 못가겠는데, 쫌만 더 있으면 안될까예." 

"애들 때문에 빨리 가셔야 되는거 아니예요? 전에는 애들 때문에 입원도 못하시겠다더니 이렇게 오래계셔도 괜찮아요?"

"아아들은 즈그들끼리 잘 있어예. 어제도 전화하니까 즈그들끼리 잘 있더라꼬예."

뭔가 그녀를 지탱해주던 큰 동력이 사라진 듯했다. 자기가 없으면 안된다며, 자식들을 챙기느라 늘 분주하던 그녀였다. 외래 진료를 보러와서도 항상 바쁘다며 수액 처방도 손사래를 치던 그녀였다.

그런데 이제 더 이상 아이들이 자신의 보살핌 없이도 잘 지낼 수 있다는 것을 알게 되니, 자신의 존재 가치에 대한 무력감을 느껴서 그러는걸까? 그녀의 심경에 변화에 대해 이런 저런 생각이 들었다. 그녀는 그 후로도 한동안 마비가 온다, 머리가아프다, 다리가 아프다는 둥 여러가지 핑계로 퇴원을 미뤘다. 

▶다음 호에 계속 이어집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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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환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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