달이란 말이 찻잔 위에 떠올랐다
달이란 말이 찻잔 위에 떠올랐다
  • 의협신문 admin@doctorsnew.co.kr
  • 승인 2019.06.24 15:37
  • 댓글 0
이 기사를 공유합니다

김연종(경기 의정부·김연종내과의원)
김연종 원장(김연종내과의원)
김연종 원장(김연종내과의원)

늘 다니던 길에서 길을 잃은 적이 있다. 무언가에 홀린 듯 엉뚱한 생각을 하며 걷다보면 비슷비슷하게 길을 잃고 만다. 내게는 인사동 길이 그렇다. 분명 무슨 생각에 사로잡혔는데 도무지 떠오르지 않는다. 이럴 때를 대비해서 메모라도 해야 되는데. 뒤늦은 후회가 밀려온다. 아둔함을 탓해봐야 아무 소용이 없다. 모임 시간이 촉박해 포기하려는 찰나 문득 떠오른 게 있다.

'달이란 말이 찻잔 위에 떠올랐다' 그래 맞아, 오늘 축하 모임을 가지려는 바로 그 시집 제목이 아니던가. 하늘거리는 발걸음을 재촉한다. 북적거리는 사람들 사이를 헤집고 모임 장소에 도착한다.

2019년 6월 22일 토요일 오후 5시 인사동 옥정,  한국의사시인회 제7집 출간기념회.

그러고 보니 벌써 7집이다. 2013년 창간호를 낸 이래 한 번도 거르지 않고 여기까지 왔다. 모두 다른 장소에서 각자 다른 시간에 출발했지만 모이는 장소와 시간은 동일하다. 간단한 눈인사를 나누고 정해진 자리에 앉는다.

김완 회장님은 시집을 내는 소회를 책머리에 밝힌 바 있다.

"손 시린 겨우내 담금질한 언어는 정신의 지문이라 할 수 있습니다. 새롭게 선보이는 의사시인들의 넋이 찍힌 무늬들을 어찌 함부로 할 수 있겠습니까? 환자를 치료하는 바쁘고 고된 의업의 현장에서 길어 올린 생생한 작품들을 모아 <한국의사시인회> 일곱 번째 사화집을 세상에 내보냅니다." 

오늘 참석한 시인들 역시 시 쓰는 고충을 언뜻언뜻 내비친다. 시인의 말로 자신의 심정을 대신한 경우도 있다.

"흰 가운을 입고 시를 짓습니다. 때론 똑똑하고 때론 흐릿합니다. 다만 시의 존재보다 시의 본질이 앞선다는 믿음으로 시의 본질을 좇고 있습니다." 

초대 회장을 역임한 유담 시인의 말이다. 

아름다운 표제작을 선보인 한현수 시인은 "내게 선물로 주어진 또 하나의 하루, 그제도 만났고 어제도 만났지만 오늘은 거짓말같이 처음처럼 만나게 된다"고 했다.

겸손이 몸에 밴 홍지헌 시인은 "점점 시 쓰기가 어려워진다. 누구의 탓으로 돌릴 수 있는 문제도 아니고 혼자 힘으로 감당하려니 그저 막막하기만 하다"고 여전히 겸양지덕을 말한다.

최근 활발한 활동을 펼치고 있는 김기준 시인은 "올해는 환자들과 더 공감하는 의사가 되려 한다. 독자들과 더 공감하는 시인이 되려한다. 나 자신을 돌아보는 시간을 많이 가지려 한다. 올해는 시에 조금 더 몰두하고자 한다"며 시에 대한 강한 의지를 밝힌다.

김세영 시인은 자신의 글을 표4로 채택해 준데 대한 감사함을 표하며 자신이 관여하고 있는 시 전문잡지 <포에트리 슬램>에 대한 관심도 함께 부탁한다.

홍용희 평론가는 '흰 그늘의 미학'이란 주제로 멋진 강의를 펼쳤다.

시작이란 자기치유이며 자기 구원의 노래이다. 서정시란 자기 이야기를 하는 것이지만 집단적 감흥을 불러일으키기도 한다. 그늘 깊은 노래가 사람을 끌고 감흥을 부른다. 그늘 깊은 노래는 귀신의 소리와 통하는 소리이다. 그것은 결국 귀신의 웃음소리를 말하는 것이고 흰 그늘의 세계와 일맥상통한다는 말이다. 그늘이 세상을 움직인다. 낮은 곳에서의 삶이 하늘을 움직이고 세상을 움직인다. 그것은 삶속의 죽음을 의미하는 것이고 쓴맛 속의 단맛을 말하는 것이고 웃고 있어도 눈물이 난다는 노래가사와도 같은 것이다. 시 쓰는 행위에 대한 의미부여를 해줌과 동시에 다소 지루하게 느껴지는 시론을 이해하기 쉽게 풀어준 것이리라.

출판기념회 축하를 위해 현대시학 회장인 김금용 시인과 전기화 발행인이 함께 참석해 자리를 빛내 주었다. 축하 케이크 커팅과 기념촬영을 마지막으로 오늘 행사를 마무리 한다. 비록 조촐하지만 뜻 깊은 행사로 기억될 것이다.

몇 차례 모임으로 이제 단골이 되어 버린 호프집으로 자리를 옮긴다. 시집의 풍경을 배경 삼아 건배를 외친다. 그런데 왜 달이란 말이 찻잔위에 떠올랐을까?

'당신을 기다리는 사람들은 그 밤의 풍경을 따라가다가 풍경이 닿아 있는 찻집의 테라스에 모여 앉는다 당신을 위해 푼돈처럼 숨겨놓은 말을 호주머니에서 꺼내기 시작한다 당신의 나이를 혀에 올려놓은 횟수만큼'….

가만히 표제작 <둥그러워 둥그러진 달이야, 란 말을 들었다>을 펼쳐 본다. 시의 제목이 많은 의미를 내포하고 있을 것 같아서다. 시인의 정확한 의도는 알 수 없지만 '달과 둥글어지다'의 이미지가 자꾸 겹쳐진다. 나이 든다는 것은 둥글어진다는 것일 테고 둥근 것을 상상하다 보면 기분이 좋아질 테고 그러다보니 자연스럽게 달이 떠올랐을 테고….

거나한 기분에 나름의 상상을 덧붙이다 보니 달이란 말이 찻잔위에 떠오른다, 아니 술잔 위에 떠오른다. "군더더기 없이 둥근 것을 묘사할수록 기분은 좋아져" 우리는 "달 하나씩 들이마시고 있다." 하지만 그것도 잠시 일상으로 복귀를 예감하고 있다. "자신의 달을 호호 불어대며 구부러진 말을 펴고 있다."  예감은 틀리지 않는다. 우리는 어느새 일상의 언어로 복귀하고 만다.

댓글삭제
삭제한 댓글은 다시 복구할 수 없습니다.
그래도 삭제하시겠습니까?
댓글 0
댓글쓰기
계정을 선택하시면 로그인·계정인증을 통해
댓글을 남기실 수 있습니다.

* 기사속 광고는 빅데이터 분석 결과로 본지 편집방침과는 무관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