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멸균기 외길…완성엔 끝이 없습니다"
"멸균기 외길…완성엔 끝이 없습니다"
  • 이영재 기자 garden@kma.org
  • 승인 2019.06.17 12:1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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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정열 한신메디칼 대표이사
첫 출시 제품은 자외선 소독기였지만 소독기·살균기로 그쳐서는 안되겠다는 생각에 멸균기 개발에 나서게 됐다는 김정열 한신메디칼 대표이사.ⓒ의협신문
첫 출시 제품은 자외선 소독기였지만 소독기·살균기로 그쳐서는 안되겠다는 생각에 멸균기 개발에 나서게 됐다는 김정열 한신메디칼 대표이사.ⓒ의협신문

'시간에는 왕복표가 없다.'
 반세기 가까이 한 길을 걸었다. 시간은 되돌릴 수 없다는 진리를 머리가 아닌 가슴에 새기며 몸으로 일궈냈다. 때로는 보이지 않는 앞날에 좌절하고 주저하기도 했지만 44년전 뗀 첫 발걸음은 지금도 멈추지 않는다.
 김정열 한신메디칼 대표. 
 척박한 국내 의료기기산업계에서 멸균기 하나에 모든 열정을 녹여낸 그는 이제 국내 최고는 물론 세계적으로 인정받는 멸균기를 품었다. 
 아무도 가지 않는 길에 들어섰던 노정은 신념의 시간이었다. 제대로 된 국산 멸균기를 개발하기 위한 도전의 시간이었다. 화려함보다는 고난과 시련에 마주했지만 그는 언제나 새로운 앞 날을 예비했다.
 정부는 지난 5월 24일 국내 의료기기 산업 발전에 기여한 공로를 인정해 김 대표에게 석탑산업훈장을 수여했다.
 한 번도 곁길을 허락지 않은 그의 삶이 간직한 의미를 되짚는다.

한신메디칼 본사 1층 벽면에는 '시간에는 왕복표가 없다'는 글귀가 새겨져 있다. 무슨 뜻일까. 

"흔히들 '시간은 금'이라고 합니다. 그런데 머리로만 알다보니 살면서 되새기지 않습니다. 시간은 한 번 가면 끝입니다. 되돌릴 수 없습니다. 다음 길을 찾을 수밖에 없습니다. 왕복표가 없다는 것은 시간은 금이라는 경구보다 더 중요합니다. 알아서 하세요, 열심히 하세요. 이런 의미를 직원들과 함께 공유합니다."

1970년대 한국은 국산 기술·제품의 불모지였다. 병원에서 쓰는 멸균기는 100% 외국 제품이었다. 그나마 일부 외과·산부인과 의원에서는 끓이는 소독기를 쓰고 있었다.

"산부인과나 외과에서 쓰던 소독기는 외국 고산지대에서 쓰던 압력밥솥 형태였습니다. 병원균이 100℃에서 모두 죽지 않는데다 소독 후에 수증기가 가득찬 상태로 건조기능이 없어 멸균의 유효성을 갖지 못했습니다. 저희 회사의 첫 제품은 자외선 소독기였지만 소독기·살균기로 그쳐서는 안되겠다는 생각에서 멸균기 개발에 나서게 됐습니다."

고난의 시간속에서도 희망은 움텄다. 육군·해군·공군 병원에 군납이 이뤄졌다. 국산품에 대한 불신은 어떻게 극복했을까.

"당시엔 국산품을 누가 사겠냐는 인식이 보편적이었습니다. 나름대로 최선을 다해서 제품을 만들었는데 한 달에 한 개도 못팔았습니다. 잠깐이지만 회사를 정리할 생각도 했습니다. 그러던 중 군납 제의를 받았습니다. 다만 조건이 붙었습니다. 국군의무사령부 장비심사위원회를 통과해야 한다는 것입니다. 외국제품은 받지 않는 절차였습니다. 장비심사위원회를 통과하니 이번엔 현장 테스트를 요구했습니다. 멸균기 효능에 대한 군 병원 보고서가 필요하다는 것입니다. 결국 이 과정을 모두 통과하고 도약의 발판을 다지게 됐습니다." 

첫 발을 뗀 군과의 인연은 계속 이어진다. 국산 멸균기에 대한 사회적 인식을 바꾸는 계기가 됐다.

"하루는 군에서 야전용 멸균기 납품을 제의하면서 미국 제품 두 대를 지원했습니다. 한 대는 파손해도 괜찮으니 작동원리를 알아보라는 것이었습니다. 야전용은 제품은 까다롭습니다. 220·380·440 볼트에 단상·삼상 등 여섯가지 전기를 이용할 수 있어야 하고, 전기가 끊길 때를 대비해 휘발유 버너로도 작동해야 합니다. 미국 기준에 맞게 멸균기를 만들어 테스트를 통과했고, 이후 같은 과정을 통해 혈액냉장고도 군에 납품할 수 있었습니다. 도전과 단련을 거듭하면서 현재의 한신메디칼을 이루는 근간이 됐습니다." 

현재 스팀·플라즈마·EO가스·건열 멸균기 등이 시장에 내놓고 있다. 각각 마다 쓰임새도 다르다. 

"대형 병원은 보통 네 가지 멸균기를 모두 갖추고 있습니다. 사실 병원에서는 환자에게서 나오는 의료폐기물 외에도 과자 봉지 하나라도 그대로 버려지면 안 됩니다. 병원의 일반 쓰레기는 멸균·건조·파쇄 과정을 거쳐 일반 쓰레기로 배출해야 합니다. 다만 처리비용이 문제입니다. 현재 일부 대형병원에서 이런 시설을 가동중인 것으로 알고 있습니다. 궁극적인 병원 쓰레기 멸균에도 관심을 가져야 합니다."

어렵사리 기틀을 다지는 가운데도 시련은 있었다. 지금도 해결되지 않는 고충이기도 하다. 

"품질로 내실을 다져가면서 의원급에서 중소병원과 대형병원까지 영역을 넓혀갈 수 있었습니다. 그러나 어느 단계도 쉬웠던 적은 없었습니다. 품질은 자신 있지만 제품 외적인 이유로 진입장벽이 생길 때는 안타까움만 앞섭니다. 지금도 중소기업 제품은 대형병원 납품실적으로 요구하는 현실입니다. 국산 의료기기 발전의 저해 요소입니다. 국내 업체들은 최고의 품질을 갖추기 위해 최선의 노력을 다하고 있습니다."

 

파는 것에만 매몰되면 이미 죽은 제품
"제대로 된 제품의 완성에는 끝이 없다"

제대로 된 제품의 완성에는 끝이 없다. 파는 것에만 매몰되면 이미 죽은 제품이 된다. 그의 아쉬움이다. 

"사실 첫 번째 제품은 100% 불량입니다. 지속적으로 개량하고 고민하고 연구해야 합니다. 파는 것에만 집중하다보면 제품의 한계가 드러납니다. 한 제품이 완성되면 20% 성공에 그칩니다. 내구성을 갖고 고장이 안 나고 수명을 지닌 제품을 위한 나머지 80%의 노력이 필요합니다. 주위에서 잘못 판단하고 이들과 마주할 때가 많습니다. '이 정도면 됐지'라는 생각은 제품을 죽게 합니다."

멸균기도 발전을 거듭하고 있다. 기술 선진국들은 그만치 진입장벽을 높이고 있다.

"지난 100년 동안 132℃ 멸균이 규정돼 있었습니다. 그런데 유럽연합에서 멸균 온도를 134℃로 높이고, 관리온도 허용폭도 0.1℃ 단위로 세분화했습니다. 온도를 높이는 데 들어가는 부품을 팔기 위한 전략입니다. 게다가 아직 국내에는 적용되지 않고 있지만 외국에서는 11년치 이상의 멸균 기록을 출력할 수 있는 시스템을 갖춰야 합니다. 멸균에 대한 축소·은폐·조작 가능성을 없애겠다는 의도입니다. 국내 규제만으로도 벅찬데 갈수록 글로벌 상황은 국내 업체들의 생존을 어렵게 합니다." 

인간과 미생물의 전쟁은 계속된다. 그리고 승자는 미생물이 될 가능성이 높다. 감염 불감증이 만연한 사회에서는….

"병원에서의 멸균이 수술 장비, 가운, 병원 용품 등에 머물러서는 안 됩니다. 메르스 사태를 통해 감염 예방의 중요성을 깨닫게 됐습니다. 멸균 품목도 크게 늘어나야 되지만 이젠 공기 멸균에 신경써야 합니다. 지금은 오히려 산업체가 공기 멸균에 앞서 있습니다. 휴대폰 하나도 멸균이 안 되면 불량이 발생합니다. 병원은 수술실·중환자실 뿐만 아니라 입원실과 외래까지도 공기 멸균에 대한 경각심을 가져야 합니다."

그의 경영철학에는 생명존중과 사회공헌이 자리한다. 더불어 함께 하는 일이다. 

"저희는 다른 회사와 분명히 다른 게 있습니다. 대부분 물건을 몇개 팔았나, 얼마나 벌었나에 치중하는 물질경영을 하지만 저희는 사람경영을 합니다. 직원 근속연수가 평균 12년입니다. 중소기업으로서는 드문 일입니다. 저는 내 식구(직원)부터 중요하게 생각합니다. 어떤 이는 돈을 잘 벌 수도 있고, 능력이 뛰어날 수도 있습니다. 그런데 그와 같지 않다고 내칠 수는 없습니다. 큰 돈은 못 벌지만 사람의 가치를 존중합니다. 30여곳의 협력업체와도 상생을 고민합니다."

갈수록 열악해지는 의료계 현실에 대한 안타까움도 내비쳤다. 

"개원가에서 수술을 하지 않게 되면서 멸균기도 구입하지 않습니다. 수천개의 중소병원도 휘청거립니다. 의료 현실이 암울해지면서 의료기기 시장 역시 죽어가고 있습니다. 사실 저희는 수가도 못받는 제품을 팔아 왔습니다. 멸균기를 들여놓았다고 수가를 받을 수 없습니다. 가장 큰 문제입니다. 업계의 불황 못지 않게 의료계의 고통에도 공감하고 있습니다."

 

그의 사무실에는 전화벨이 울리지 않는다. 흔한 내부 보고 조차 없다. 되돌릴 수 없는 시간의 소중함을 간직한 직원들이 직접 판단하고 결정한다. 

고희를 앞둔 그의 머릿속은 지금도 온통 멸균기뿐이다. 연구개발과 품질개선은 평생 화두다.

'어떻게 하면 더 좋은 제품을 만들까.'

쉼 없는 그의 긴 하루는 아직 저물지 못한다.

 

"큰 돈은 못 벌지만 사람의 가치를 존중합니다. 30여곳의 협력업체와도 상생을 고민합니다"라며 사람경영의 정도가 업체의 모토라는 김정열 대표이사ⓒ의협신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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