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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낙태죄' 없애는 게 아닌 처벌 완화 의미
'낙태죄' 없애는 게 아닌 처벌 완화 의미
  • 이정환 기자 leejh91@doctorsnews.co.kr
  • 승인 2019.06.17 06: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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의료법학회·서부지검·보건의약식품 전문검사 공동 학술대회
12주 이전 및 22주 이후, 사회·경제적 사유, 상담·숙려 기간 등 쟁점
대한<span class='searchWord'>의료법</span>학회, 서울서부지방검찰청, 보건의약식품 전문검사 커뮤니티가 공동으로 개최한 2019 춘계학술대회에서는 낙태죄 헌법불합치 결정 의미와 향후 법률개정 방향을 논의했다. ⓒ의협신문 이정환
대한의료법학회, 서울서부지방검찰청, 보건의약식품 전문검사 커뮤니티가 공동으로 개최한 2019 춘계학술대회에서는 낙태죄 헌법불합치 결정 의미와 향후 법률개정 방향을 논의했다. ⓒ의협신문 이정환

헌법재판소가 지난 4월 11일 형법(제269조 제1항, 제270조 제1항)에서 정한 낙태죄를 '헌법 불합치'로 결정하면서 2020년 말을 시한으로 관련 법안을 개정해야 한다. 헌재는 헌법불합치 결정을 하면서 법안의 개정 방향성은 제시했으나, 세부적 쟁점의 양과 난이도를 고려하면 개정 입법 시한은 너무 짧다.

더군다나 2020년은 총선이 치러지는 해이기 때문에 국회에서의 개정 입법 논의는 순탄치 않을 전망이다. 개정 입법 시한을 넘기게 되면 형법에서 정한 조항들은 효력을 상실하게 된다.

대한의료법학회·서울서부지방검찰청·보건의약식품 전문검사 커뮤니티는 15일 공동으로 춘계 학술대회를 열고 '낙태죄 헌법불합치 결정과 향후 과제'를 주제로 형법 개정 방향을 논의하는 자리를 마련했다.

법조계는 헌재의 결정이 아쉬운 부분이 있지만, 현행 형법에서 정한 낙태죄가 문제가 있고, 낙태죄를 없애라는 것이 아니라 법안을 고치라는 의미가 크다는 데 의견을 같이 했다.

검찰 측은 헌재가 형법 개정의 방향을 시기와 사유 두 측면에서 제시했으므로 ▲초기 태아(임신 12주 이전의 태아) 낙태의 자유와 후기 태아(임신 22주 이후의 태아) 낙태의 금지 시기 설정 ▲사회·경제적 사유에 의한 낙태의 허용 범위 설정 ▲전문가 상담 및 숙려기간 등 입법재량의 범위 구체화 등을 정하는 데 지혜를 모아야 한다고 제시했다.

이날 학술대회에서는 모자보건법 등을 위반했을 때 의사와 임신 여성을 처벌해야 한다는 법조계와 처벌해선 안된다는 의료계의 의견이 엇갈렸다.

낙태죄 헌법불합치 결정과 향후 과제 세션에서 김천수 교수(성균관대 법학전문대학원)는 '헌재 결정의 의미와 향후 입법 과제'를, 이석배 교수(단국대 법과대학)는 '헌재 헌법불합치 결정의 취지와 그에 따른 법률 개정 방향'에 대해 주제 발표했다.

김천수 교수는 헌재 결정 의미를 제대로 이해하지 못한 법안 발의 문제를 짚었다.

김 교수는 "헌재에서는 형법에서 낙태죄 조항을 없애라는 것이 아니라 개정하라는 것이었는 데, 헌재 헌법불합치 결정 이후 지난 4월 15일 정의당 이정미 대표가 발의한 형법 및 모자보건법 각 개정안은 헌재 결정을 빙자해 낙태죄를 사실상 폐지한 법안"이라며 "낙태행위의 모든 유형을 비범죄화하려는 시도가 은닉된 것"이라고 지적했다.

김 교수는 현행 모자보건법 제14조의 5개 낙태 허용 사유를 형법으로 이동해 정비할 것을 제안했다.

김 교수는 낙태 허용 임신주수에 대한 법적 기준을 마련해야 한다면서 ▲비교적 자유롭게 낙태를 허용하는 기준이 될 임신주수를 12주로 할 것인지 ▲낙태를 엄격하게 금지하는 기준이 될 임신주수를 22주로 할 것인지가 중요하다고 지적했다.

아울러 임신 12주 이전 낙태는 임신 여성의 희망만으로 허용할 것인지, 사회·경제적 사유가 소명된 경우로 한정할 것인지, 상담 등 사전절차를 어떻게 둘 것인지 등의 논의도 쟁점이 될 것으로 전망했다.

"가장 뜨거운 쟁점은 사회·경제적 허용 사유를 추가할 것인지 여부"라고 지적한 김 교순는 "헌재 결정은 이를 긍정적으로 보았으므로 문제는 그 구체화 내지 명료한 기준이며, 나아가 그것을 사유로 낙태 시술에 이르는 상담 및 숙려 등의 사전절차가 필요하다"고 밝혔다.

김 교수는 "사회·경제적 이유에 대한 판단 주체와 판단 기준이 앞으로 문제가 될 것"이라면서 "판단 오류를 줄이기 위해 (가칭)판단위원회를 두는 것도 고민해야 한다"고 조언했다.

의료인의 낙태 시술 거부권과 관련해서는 "생명 옹호 계열의 의료인에게는 심각한 문제이므로 거부권을 보장해야 한다"면서도 "낙태 시술 교육이 필수과정으로 된다면, 산부인과 전문의를 하고자 하는 의학도는 직업선택의 자유를 침해당하는 위헌적 요소가 있을 것"이라고 우려했다.

이석배 교수도 "정의당 이정미 대표가 발의한 법률개정안은 모자보건법을 위반해 이뤄진 낙태에 대한 처벌 규정없이 과태료 규정만 있다는 점에서 태아의 생명보호를 국가의 의무로 규정하는 것은 헌법재판소 결정 취지에 반한다"고 지적했다.

임신 주수 및 상담, 숙려기간에 대해서도 국가든 의사든 임신 여성의 자기결정에 개입해서는 안 된다는 입장을 보였다.

"국가는 상담을 결정하면 신속하게 상담하고 충분히 숙려할 수 있는 기간을 보장해야 한다"고 밝힌 이 교수는 "임신 12∼14주 정도 기간 이전에는 국가가 임신 여성의 낙태에 대한 자기 결정권 행사에 도움을 줄 수 있는 범위 안에서 낙태 또는 임신 유지 결정에 필요한 정보를 제공하고, 숙려할 수 있는 절차를 마련할 필요가 있다"고 지적했다.

사회·경제적 사유 판단을 위해 (가칭)판단위원회를 두어야 한다는 제안에 대해서는 "오히려 임신 여성의 자기 결정권을 침해하는 것"이라며 반대 입장을 밝혔다.

이 교수는 "임신 12∼14주 정도부터 임신 22∼24주 사이에는 태아의 생명보호와 임신 여성의 자기 결정권을 고려해 낙태가 가능한 적응 사유를 규정하고, 이 적응 사유에 해당하는지를 확인하는 절차가 필요하다"며 "이 과정에서도 국가나 의사 등 타인이 결정에 관여하는 것이 아니라 사회·경제적 사유를 포함해 다른 적응 사유에 해당하는지 여부만 판단하고, 임신 여성 스스로 결정할 수 있어야 한다"고 말했다.

특히 "헌재 결정에서는 명확하게 구분하고 있지는 않지만, 22∼24주 이후 낙태 시 임신 여성 처벌 규정이 있어야 하고, 다만, 임신 22∼24주 이후에도 임신의 지속이 임신 여성의 생명·건강에 중대한 영향을 미치는 경우에는 낙태할 수 있어야 한다"고 제시했다.

이 교수는 "낙태 시술은 의사에 의해 시행해야 하고, 이와 관련 시술을 포함한 상담 절차 등의 의료서비스를 국민건강보험 급여사항에 추가할 필요가 있다"며 "임신 여성의 개인정보를 어떻게 보호할 것인지도 논의해야 한다"고 말했다.

지정토론에서는 의사와 임신 여성의 처벌에 대해 법조인과 의료인의 의견이 엇갈렸다.

성기범 검사(의정부지방검찰청 고양지청)는 헌재 결정 이후 사회·경제적 이유로 낙태를 허용할 것인가에만 논의가 집중되고 있는 것을 우려하면서 "임신 여성의 요청 외에 상담·숙려를 어떻게 할 것인지, 낙태 시술의 주체는 누구로 할 것인지 등 세부적인 논의가 필요하다"고 지적했다.

성 검사는 "모자보건법을 위반한 낙태행위에 대해 임신 여성과 의사의 형사처벌을 배제하는 개정 법률안 발의는 헌재의 결정 취지를 몰각하는 결과가 우려되고, 낙태 시술도 의료행위로 볼 수밖에 없다는 점에서 의료인에 대한 가중처벌이 어떠한 논거에서 정당화될 수 있는지 비판적 논의가 필요하다"고 덧붙였다.

하지만 김재연 대한산부인과의사회 법제이사는 "법률을 개정하면서 임신 여성이 낙태를 선택할 수밖에 없는 원인을 국가가 해결하려고 노력해야 한다"면서 "어떠한 형식으로든 낙태죄를 부활시켜 의사와 임신 여성을 처벌하려는 어떠한 입법도 반대한다"고 밝혔다.

김 법제이사는 "약물에 의한 낙태에 관한 규정도 만들어야 하고, 의사가 신념과 종교적인 이유로 낙태를 거부할 수 있는 조항과 불가피하게 낙태 시술을 한 의사를 처벌하지 않는 조항도 신설해야 한다"고 제시했다.

"향후 국회에서 법률 개정안을 만들 때 임신 여성의 건강이 임신을 지속하기에 위험한 경우 임신 22주 이후라도 낙태를 허용해야 한다"고 지적한 김 법제이사는 "임신 12주 이전에는 배우자의 동의와 무관하게 자유로이 낙태 수술이 가능하도록 하는 내용도 포함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김 법제이사는 모자보건법상의 사회·경제적 정당화 사유와 관련해 "다양하고 광법위한 사회·경제적 사유에 의한 낙태를 추가해야 한다"면서 "출산 친화적인 상담을 통해 국가가 지원할 수 있는 제도로서 위기임신에 대한 특별지원책을 마련해 임신 여성의 낙태를 줄이도록 하는 방법도 고려해야 한다"고 제안했다.

건강보험 적용과 관련해서는 "사회·경제적 사유로 인한 경우는 질병으로 볼 수 없기 때문에 건강보험을 적용하는 것은 반대한다"는 입장을 보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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