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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방 체질이론의 실상
한방 체질이론의 실상
  • 강석하 kang@i-sbm.org
  • 승인 2019.06.03 06: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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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언제까지 '사상체질 검증 연구'로 국세 낭비할 것인가?"

한국한의학연구원의 유튜브 채널에 최근 사상체질에 대한 김종열 한국한의학연구원장의 강연이 소개됐다. 그는 원장으로 취임하기 전에는 한국한의학연구원에서 주로 사상체질 및 체질진단기기를 연구했으며 그 공로로 과학기술훈장 진보장을 수상하기도 했다. 

사상체질의학은 조선말 이제마가 혼자 개발했다. 체질을 네 가지로 나누고 그 특성을 제시했는데, 기존의 한의학과는 동떨어진 주장으로 유학(儒學)에서 인간의 본성에 대한 사단(四端) 개념을 근거로 삼았다. 근본 없는 주장으로 치부될 수도 있겠지만 한의학이 중의학과 차이가 있는 우리 민족의 '고유한' 의학이라고 주장하기 위해서는 빠져서는 안 될 존재다. 

태양인·태음인·소양인·소음인 네 가지 체질이 우리나라 사람들에게는 가장 익숙하지만 중국과 일본을 비롯한 외국에서는 전혀 존재감이 없다. PubMed에서 'sasang constitution'을 검색하면 사상체질에 대한 연구는 전적으로 한국인만 하고 있음을 확인할 수 있다. 이제마의 주장을 검증해서 근거를 제시한 연구가 없으니 정치적 동기가 없는 곳에서는 연구를 할 리가 없다. 

사상체질이 아닌 다른 체질 이론을 믿는 한의사들도 많다. 1965년 권도원 한의사가 발표한 8체질도 꽤 인기가 있다. 목양·목음·토양·토음·금양·금음·수양·수음 총 8가지 체질로 나눈다. 그는 인터뷰 기사에서 진맥을 해야만 체질을 알 수 있는데 20만 번은 해봐야 겨우 감이 왔다고 한다.

8체질이 사상체질을 세분화한 것이 아니며 자신은 사상체질에 대해서 모르고 있었고, 자신이 지구상에서 처음으로 개발한 개념이라고 주장한다. 기독교에 더 관련이 있다며 성경에 나오는 노아의 홍수 때 노아의 자식 8명이 신의 뜻에 따라 처음으로 육식을 하면서 체질이 8가지로 나뉘게 됐다고 한다. 

한의학의 경전으로 여겨지는 <황제내경>에서는 체질을 태양·태음·소양·소음·음양화평 5가지로 나눈다. (사상체질과 명칭이 겹치지만 내용은 전혀 다르다) 한의학의 본류인 중의학 논문들을 찾아보면 황제내경 체질이 아닌 1970년대에 개발된 9체질 이론이 주류를 차지한다.

그래픽/윤세호기자 seho3@hanmail.net ⓒ의협신문
그래픽/윤세호기자 seho3@hanmail.net ⓒ의협신문

우리나라의 한의학 논문들을 보면 대부분 사상체질을 다루고 있고, 8체질을 다룬 논문도 소수가 있지만 중국의 9체질은 거의 다루지 않는다. 국내 한의학 논문 중에는 운기 25체질에 대한 논문도 있고, 운기의학의 대가라는 김태희 한의사의 인터뷰 기사를 보면 태어난 날과 시간을 따져서 오운 육기 600가지 체질로 나눈다고 한다. 

체질이론이 종류가 많은데 시야를 넓혀보면 인도의 전통의학인 아유르베다에서는 체질을 7가지로 나누고 있다. 지금까지 언급한 체질이론들을 보면 4, 5, 7, 8, 9, 25, 600으로 종류가 다양한데 어떤 것을 믿어야 할까? 믿지 않는 편이 더 현명할 것 같다.

2014년 발표된 <사상체질 전문가의 체질진단 일치도 및 타당도 평가>라는 논문에서는 5년 이상 사상의학을 진료에 활용한 한의사들 세 명에게 81명의 정보를 주고 체질을 진단하게 했는데 가장 높은 일치율을 보인 한의사들 두 명 사이에는 68.4%, 가장 낮은 두 명 사이에는 52.5%만 일치했다.

태양인은 없어서 총 세 가지 체질에서 고른 셈인데 성적이 처참하다. 사상체질 한의사를 찾아갔다가는 미심쩍은 진단을 근거로 소고기를 먹으면 건강에 해롭다거나 땀이 나는 운동을 하면 안 된다는 등의 소리를 듣고 불행한 삶을 살게 될 수도 있으니 주의가 필요하다. 

<팔체질의학 맥진의 신뢰성 연구>라는 2005년 발표된 논문에서는 8체질 전문 한의사 두 명에게 대학생 31명의 체질을 진단하게 했는데 일치하는 비율이 고작 35.7%였다. 때문에 8체질도 권할 수 없다. 

국가 연구비로 수행된 사상체질 진단 연구보고서들을 보면 뇌파·장내미생물·지문 및 손톱·Genome-wide SNP genotyping·음성·DNA chip·맥진·피부문(지문·손금 등)·유전자 등 주제가 다양하다. 다양한 주제로 진단 연구가 계속 되고 있음은 체질 진단 연구가 모두 실패했다는 의미다.

이제마에 대한 신앙심 때문에 검증도 없이 헛된 목표에 인력과 예산이 끝없이 낭비되고 있다. 현재까지 사상체질 연구에 쏟아 부은 돈이 1000억이 넘는다. 그 중심에 선 사람이 한국한의학연구원 원장을 맡고, 직접 나서서 사상체질을 대중들에게 홍보하고 있다. 

사상체질의학의 주장이 참인지 거짓인지 검증하는 연구 설계는 간단한데 몰라서 못하는 것일까, 일부러 안 하는 것일까? 우리는 언제쯤 예산 낭비를 끝낼 사상체질 검증 연구를 볼 수 있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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