당신이 수술받는 모습, 누군가에게 생중계된다면...
당신이 수술받는 모습, 누군가에게 생중계된다면...
  • 최승원 기자 choisw@kma.org
  • 승인 2019.05.30 06:00
  • 댓글 0
이 기사를 공유합니다

옷 벗기고 요도에 도뇨관 삽입, 실시간 보안팀 생중계
수술실 CCTV 설치 의무화 앞서 합리적 대안 찾아야
경기도의 한 의료원이 운영하는 수술실 CCTV 촬영시스템. 보안팀이 실시간으로 수술실 영상을 볼 수 있다.
경기도의 한 의료원이 운영하는 수술실 CCTV 촬영시스템. 보안팀이 실시간으로 수술실 영상을 볼 수 있도록 돼 있다.

사례1. 산부인과 관련 수술을 받기로 한 20대 여성 A씨. CCTV 촬영동의서에 사인을 했지만, 수술복을 벗기고 요도에 도뇨관을 삽입하는 광경을 의사와 간호사뿐 아니라 병원 보안팀까지 실시간으로 지켜본다는 사실을 알고 경악했다. 실시간 촬영은 물론 녹화된 동영상이 병원 DB에 저장된다는 설명에는 몇 해 전 모 연예인의 가슴 성형 수술 사진이 유출돼 인터넷에 떠돌던 게 생각나 찜찜했다.

사례2. 비뇨기과 관련 수술을 받기로 한 30대 B씨. CCTV 촬영동의서에 사인은 했지만, 수술실 천장에 달린 CCTV로 '대리수술을 막을 수 있을까?' 의문이 들었다. 수술에 참여한 의료인 모두 코 위까지 올라오는 마스크를 쓰고 있으니 CCTV 촬영분을 나중에 봐도 누가 의료인인지, 누가 비의료인인지를 구별할 수 있겠느냐는 회의감에 빠졌다.

사례3. 정형외과 수술 중 의료사고 의심을 한 C씨. 마침 CCTV 촬영분을 확보해 경찰과 촬영분을 살펴봤지만 C씨는 아무 소리 없이 7시간 내내 수술 중인 의료인 뒤통수만 볼 수밖에 없었다. 소리나 음성이라도 들을 수 있으면 나으련만 CCTV 설치법에 따라 CCTV로는 녹음해서는 안된다. 프라이버시 유출이라는 위험까지 감수했지만, 막상 CCTV 촬영으로 알 수 있는 건 아무것도 없었다.

사례4. 의사 D씨 자신의 수술 장면이 CCTV로 촬영된다는 사실이 여간 신경 쓰이는 게 아니었다. 소문에 따르면 수술받는 환자가 까탈스럽기로 유명했던 환자라고 한다. 수술 후 수술장면 촬영분을 보며 이것저것 불평을 늘어놓을 수 있다는 우려에 흐트러지려는 집중력을 다시 한번 다잡았다.
(* CCTV 수술실 설치 의무화 방안의 법제화를 가정한 사례입니다.)

더불어민주당 안규백 의원(서울 동대문구갑)이 21일 의료인이나 환자 등에게 동의를 받아 영상정보처리기기(CCTV)로 수술실 내부를 촬영하는 것을 의무화하는 내용의 의료법 개정안을 대표발의했다. 경기도는 이미 도내 의료원 수술실에 CCTV를 설치해 운영하고 있다.

비의료인의 대리수술 등을 막는다는 명분으로 수술실 CCTV 설치 의무안이 발의됐지만, CCTV 설치 의무안이 적절한 해법이 될 수 있을지, 즉 '실효성'에 대한 논의는 부족하다.

수술실 CCTV 설치 의무 찬반 논란이 커지며 자칫 비의료인의 대리수술이나 수술 중 의료사고를 막는 보다 실효성 있는 방안을 모색하려는 시도가 위축될 수 있다는 우려다.

원치 않는 수술받는 자신의 모습이 병원 보안팀 등에게 실시간으로 생중계되거나 수술 모습을 촬영한 영상 유출로 인한 프라이버시 침해에 대한 피해도 고려해야 한다.

이경권 의료전문변호사(법무법인 LK파트너스)는 29일 "왜 OECD 국가 중 어느 나라도 수술실에 CCTV 설치를 의무화하지 않는지 생각해 봐야 한다"며 "CCTV만 설치하면 모든 문제가 해결될 것이라는 단편적인 생각으로 더 적절하고 좋은 방안을 고민하지 않는 것은 안타까운 일"이라고 지적했다.

이 변호사는 수술실 CCTV 설치 의무화에 앞서 대리수술을 하도록 한 의사의 처벌을 강화하고, 수술실 출입절차를 더 까다롭게 만드는 등의 대안을 먼저 검토해야 한다고 조언했다.

의협 역시 수술실 CCTV 설치라는 단편적인 방법보다 더 효율적인 방안을 우선 검토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박종혁 의협 대변인은 29일 "단 1%의 가능성이 있다면 수술대에 있는 환자를 위해 모든 방법을 동원해야 하는 수술실의 본질을 고려해 환자가 제대로 수술을 받을 수 있는 환경에 도움이 되는지를 자세히 검토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수술실 입구에 CCTV를 설치하거나 수술실 출입 규정을 제도화하고, 자율징계권의 부여 등을 통해 징계를 강화하는 방안 등을 먼저 검토해야 한다"는 의견도 내놨다.

더불어민주당 김경협 의원 등은 30일 오전 10시 국회도서관 대강당에서 수술실 CCTV 설치 의무화 관련 토론회를 열어 각계의 의견을 듣는다.

의협 이세라 기획이사 겸 의무이사와 박홍준 부회장(서울시의사회장), 박종혁 대변인 등이 의료계를 대표해 패널로 참석한다. 


관련기사

댓글삭제
삭제한 댓글은 다시 복구할 수 없습니다.
그래도 삭제하시겠습니까?
댓글 0
댓글쓰기
계정을 선택하시면 로그인·계정인증을 통해
댓글을 남기실 수 있습니다.

* 기사속 광고는 빅데이터 분석 결과로 본지 편집방침과는 무관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