슬픈 年代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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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승인 2019.05.27 06: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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슬픈 年代

오래전

 내 몸은 병들었다
 홍역 끝에 바람이 들었고 바람 든 허파에 세균이 들었다 스트렙토마이신 주사를 맞으면 입 안에 군침이 돌았다 박하사탕 맛이라 상상했다 약골이란 별명이 그림자처럼 따라 다녔다 폐병이란 말보다 백배는 더 듣기 좋았다

 

얼마 전

 조수석에 앉았다
 실내 공기는 싸늘했다 허파에 들끓던 가래가 기어이 목구멍까지 올라왔다 창문을 열고 가래침을 뱉었다 싱가포르에서는 태형감이라고 운전석에 앉은 아내가 빈정댔다 폐를 앓았다는 병력은 여전히 비밀로 했다

 

어제는 

 새소리를 들었다
 한동안 자취를 감추었던 딱따구리가 관자놀이를 쪼아댔다 그렁거리는 소리만으로는 이명인지 천명인지 구별이 되지 않았다 귀이개로 딱따구리 몰아내고 솜뭉치로 귀를 틀어막았다

 


오늘 새벽

 책을 보았다
 숨결이 바람 될 때를 읽다가 숨길이 갑갑해졌다 서른여섯 젊은 의사의 죽음에서 기시감이 친근감이 동시에 들었다 '행복한 외출이 되기를 그러나 다시는 돌아오지 않기를' 죽음을 앞둔 프리다 칼로의 마지막 일기는 다른 책에서 보았다

 

오전에

 그녀가 왔다
 옷을 바꿔 입고 싶다고 했다 둘만의 비밀이라고 새끼손가락을 걸었다 평생 걸친 누더기를 제발 벗게 해달라고 부탁했다 무릎을 꿇고 애원하는 구순 노파의 손을 꼭 쥐었다 생의 외피를 바꾸고 싶다는 그녀의 말이 진심으로 다가왔다

 

저녁에

 모임에 참석했다
 수다보다 고기 맛이 일품이었다 반주도 곁들였다 당뇨로 고생하는 친구가 인슐린 대체요법에 대해 토로했다 죽은 그의 아내도 당뇨합병증이라 했다 방 안에 쉰내가 진동했다 유효기간이 짧은 막걸리에 더 믿음이 갔다 

 

내일도

 세월은 변하지 않는다
 물에서 막 건져 올린 시체가 누군가에 질질 끌려가고 있다 죽어서도 썩지 못해 처참한 몰골이다 삼 년 만에 모습을 드러낸 세월에 물빼기 작업이 진행 중이다 내 몸에서도 서서히 물이 빠져나가고 있다

 

김연종
김연종

 

 

 

 

 

 

 

 

 

경기도 의정부·김연종내과의원/2004년 <문학과 경계> 등단/시집 <극락강역> <히스테리증 히포크라테스> 산문집 <닥터 K를 위한 변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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