건강을 위한 바른 소리, 의료를 위한 곧은 소리
updated. 2024-03-28 17:29 (목)
첩약 급여화보다 우선순위의 과제들
첩약 급여화보다 우선순위의 과제들
  • 강석하 kang@i-sbm.org
  • 승인 2019.05.20 06:00
  • 댓글 1
  • 페이스북
  • 트위터
  • 네이버밴드
  • 카카오톡
이 기사를 공유합니다

'한의학' 건강보험 적용, 미국·스페인 등 엄격히 규제

정부가 올해 중에 첩약 급여화 시범사업을 실시하겠다고 한다. 제약회사에서 생산하는 한약제제 중에는 건강보험 적용을 받는 제품들이 있는데, 한의사의 처방에 따라 조제하는 한약인 첩약까지 건강보험 적용을 고려중이다.

건강보험재정을 지원하려면 타당한 근거가 있어야 한다. 안전성과 유효성 입증이 기본이고, 같은 효과를 가진 치료수단이 여러 가지라면 비용이 저렴한 쪽에 지원해야 한다. 치료가 얼마나 필요한지의 여부도 고려대상이 된다. 예를 들면 미용 목적의 치료는 대개 건강보험 적용이 되지 않는다. 

우리나라는 건강보험 적용 기준이 현대의학에는 까다롭지만 한의학에는 너그럽다. 침 치료를 미국과 비교해보자. 우리나라는 침술의 건강보험 적용질환에 제한이 없고, 보험 청구 횟수는 외래 1일 1회, 입원 1일 2회까지 가능하다. 지난달 발표된 <미국에서의 침술과 카이로프랙틱 건강보험 급여 현황>이라는 논문을 보면 미국의 공적 건강보험에서는 대부분 침 치료를 보장하지 않는다. 공적 보험 중 메디케이드(Medicaid)가 7개 주에서만 보장하는데 월 2회, 연 30회 등의 제한을 두고 있으며 적용되는 질환도 몇몇 통증 질환 등에 국한돼 있다. 미국의 민간보험에서 침술을 보장하는 경우에도 적용 질환이 한정돼 있고, 1년에 10∼25회로 제한이 있다. 

미국에서도 침술사(acupuncturist) 면허가 있어서 침술사들이 많이 활동하고 있지만 여러 대체의학 중 하나로 냉정하게 평가받으니 보험 영역에서는 찬밥신세를 면하지 못하는 것이다. 첩약은 한국한의학연구원에서 발간한 <한의사의 미국진출 가이드북>을 보면 한약은 영양보조의 목적으로만 처방 가능하며, 치료를 주장하며 사용하면 불법이라고 캘리포니아주의 규정을 소개했다. 미국에서는 근거가 없어 불법으로 규정하는데 우리나라는 건강보험을 지원하겠다는 상황이다.

일반적으로 의약품 허가에는 전임상시험과 3단계의 임상시험을 통해 수백명 이상에게 효과와 안전성 입증이 필요하다. 필자는 헌법소원도 청구해보고 수년간 한약에 대해 조사했는데 한약 중에는 이 수준의 근거를 갖춘 것이 없다. 필자가 알고 있는 최선의 근거를 가진 한약들을 소개해보겠다. 

그래픽/윤세호기자 <span class='searchWord'>seho3</span>@hanmail.netⓒ의협신문
그래픽/윤세호기자 seho3@hanmail.netⓒ의협신문

2017년 최고 권위의 학술지 <Nature>에서 중국의 한약제제(중성약) 허가 규제 완화 정책을 비판한 논평이 있었는데, 중국의 Tasly라는 제약회사가 자신들이 개발한 한약제제가 세계최초로 미국 FDA가 주관하는 다기관임상시험을 3상까지 마쳤다고 주장한 사실이 언급돼 있다. 만성 안정형 협심증의 발작 빈도를 낮추는 목적의 T89라는 물질인데 올해 초에 FDA 승인이 막바지에 이르렀다는 기사가 있고 아직 허가되지는 않은 것으로 보인다.

2019년 1월 <National Geographic>에는 한의학(중의학)을 조명하는 기사가 실렸는데 미국 FDA 임상 3상이 진행 중인 PHY906이라는 물질이 소개됐다. PHY906 개발자들은 항암제와 함께 사용하면 항암제 단독으로 사용할 때에 비해서 암환자에게 도움이 된다고 주장한다. <National Geographic>에서 한의학을 칭송하는 대표 사례로 제시한 것이 고작 임상시험 중인 항암제를 보조하는 한약이었다. 

국내에서는 '천연물신약'이라고 천연물을 이용해 개발하는 신약에 허가 조건을 완화하는 특혜를 줘 허가된 제품이 몇 가지 있다. 이 중에는 한약 처방에서 착안한 경우도 있고 아닌 경우도 있다. 해외수출실적이 거의 없다는 지적을 받았고, 정교한 규제를 갖춘 선진국에서 의약품 허가를 받은 사례는 없는 것으로 보인다. 

약국에서 취급하는 의약품들 중에 한약제제 같은 예외를 제외하면 거의 대부분이 한약은 넘어보지 못한 높은 검증의 문턱을 넘어 허가된 대단한 약들이다. 

값이 싸다고 얕보지 말자. 최근 적발된 스테로이드를 섞은 통풍 한약은 한 달 치에 수십만원을 받았겠지만 증상을 완화시키는 주인공 덱사메타손은 0.5mg짜리 알약 하나가 13원에 불과하다. 아토피, 비염, 불치병인 COPD까지 치료한다는 한약은 동물실험 논문에서 덱사메타손을 비교대상으로 삼았다. 

효과에 대한 근거, 비용대비 효과 같은 기본 사항들을 따져보면 첩약을 급여화해야 할 이유가 전혀 없다. 오히려 현재 건강보험 혜택을 받고 있는 한약제제들을 검증하는 일이 필요하다. 스페인에서는 퇴출 대상이 된 침술에 대해서도 해외에서 발표된 수많은 임상시험들을 평가해 급여 기준을 새로 마련하는 작업도 필요하다. 건강보험 재정은 환자를 위해 쓰여야 할 돈이다.

■ 칼럼과 기고는 본지의 편집방침과 다를 수 있습니다.

관련기사

개의 댓글

0 / 400
댓글 정렬
BEST댓글
BEST 댓글 답글과 추천수를 합산하여 자동으로 노출됩니다.
댓글삭제
삭제한 댓글은 다시 복구할 수 없습니다.
그래도 삭제하시겠습니까?
댓글수정
댓글 수정은 작성 후 1분내에만 가능합니다.
/ 400

내 댓글 모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