감자에 싹이 나서 잎이 나서
감자에 싹이 나서 잎이 나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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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승인 2019.05.06 06: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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감자에 싹이 나서 잎이 나서

-슬픈 모유*

 

엄마는 나를 뱃속에 두고 능욕을 당했어
놈들이 아빠의 남근을 잘라 엄마 입에 밀어 넣었대
엄마는 날 위해 싹싹싹 빌었다지
난 엄마 젖에 녹아 있는 두려움을 먹고 자랐어
성폭행을 당하지 않으려 질 속에 감자를 넣어두었지
그런데 자궁이 감자를 거부하나 봐
배가 아파
머리가 아파
난 코피를 쏟으며 자꾸만 쓰러져
감자에 싹이 나려나 봐
싹이 나서 잎이 나서
혼자서 걷지도 사람들과 어울리지도 못해
그건 슬픈 모유 때문
리마의 거리에선 날마다 가난한 이들의 혼례가 있어
그러나 축하의 춤을 출 수가 없어
멀리서 바라만 봐도 온몸이 떨려
아직 엄마의 장례를 치루지 못했어 난 돈이 필요해
노랫값 던져주는 주인을 위해 잉카의 노래를 부르고 있어
사막의 길 잃은 영혼을 초대하듯
엄마를 키운 사막에 엄마를 묻고 싶어라
별이 쏟아져 내린 아침이면
감자에 싹이 나서 잎이 나서
감자꽃이 모유 같은 이슬을 물고 있는 곳
하지만 당신의 정원에는 감자꽃이 보이지 않아
감자가 꽃피우기 어렵다는 당신, 나와 가위바위보 할까?
감자에 싹이 나서 잎이 나서 싹싹싹
덩굴째 몸을 파고들어 올지 몰라
싹싹싹
영원히 정신을 잃을 것만 같아
싹싹싹
어서 꺼내줘 내 몸에서 감자를 꺼내줘
감자꽃이 피려나 봐

 

*클라우디아 로사 감독의 페루 영화.

한현수
한현수

 

 

 

 

 

 

 

 

 

▶분당 야베스가정의학과의원장. 2012년 '파문의 대화' 외 1편이 <발견> 신인상으로 등단/시집 <오래된 말> <기다리는 게 버릇이 되었다> <그가 들으시니> 등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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