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updated. 2024-03-19 11:25 (화)
의사는 누가 위로하는가
의사는 누가 위로하는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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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승인 2019.05.06 06: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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타인을 이해할 수 있는 가장 좋은 방법은 '역지사지(易地思之)' 해보는 것이다. 상대방의 처지에서 그 사람의 입장을 헤아려 보는 것이다. 그런데 가장 좋은 '역지사지'는 내가 상대방과 같은 처지가 되어본 적이 있을 때 가능하다.

누군가에게 가장 좋은 위로는 '나도 그래 본 적이 있는데, 그때 어떻더라'고 말해주고 공감해주는 것이 아니던가.

의사와 환자는 서로를 이해할 수 있는 관계일까. 이 부분에서 의사들이 착각하고 있는 것이 있다. 내가 환자를 이해하듯 환자도 나를 이해해 줄 수 있다고 믿는 것이다. 심지어 환자가 나를 이해해 줘야 한다는 태도를 보이다.

세상에 모든 의사들은 살면서 한번쯤은 환자나 보호자가 되어보지만, 의사가 되어본 환자는 단 한 명도 없다. 의사들은 앞으로도 언제든 환자나 보호자가 될 수 있지만, 환자는 앞으로도 평생 의사가 되어볼 수 없다. 즉 의사들은 환자의 입장을 미루어 헤아려 볼 수 있지만, 환자들은 의사의 입장을 짐작조차 할 수 없을뿐더러 그래야 할 이유도 없다. 지금 아프고 위로 받아야 할 사람은 의사가 아니라 환자이기 때문이다. 

선생님들 중에 많은 분들이 환자나 보호자가 되어본 후에 내가 그동안 환자들에게 얼마나 많은 잘못을 하고 있었는지 깨닫게 되었다고 말씀하시는 것을 들었다. 나 역시 작은 수술을 두 번 받아본 후에 아프냐고 물어보는 환자들에게 우스갯 소리를 한다. 

"의사들이 하나도 안아프다고 하면 조금 아픈거구요, 조금 아프다고 하면 엄청 아픈 거예요."

나는 늘 응급실에서 환자들에게 최선을 다해왔고 게으름 부린 적이 없다. 그런데, 환자가 되어 응급실에 누워있어 보면 얼마나 의료진이 한심하고 답답하게 느껴지는지 모른다. 보호자가 되어보면 의사에게 무엇 하나 물어보기 왜 그리 미안하고 민망한지 모른다. 병원시스템이라는 것은 얼마나 복잡하고 불편한지 환자가 되어보고서야 알게 된다. 그리고 용서를 구한다. 내 젊은 날의 철없음이 어떤 환자나 보호자에게 상처가 되지는 않았을지….

작년부터 의사들의 크고 작은 집회들이 있다. 그 시작은 이대목동병원의 소아과 전공의가 구속구속되면서 부터였다. 나는 그 때 누구보다도 크게 분노하고 공감하였다. 그 당시 나와 같은 의사들이 많이 모여, 지난 10여년 간의 어떤 집회보다 성황리에 마무리되었다. 그런데 사실 그 집회의 성패는 목적이 무엇이었느냐에 따라 다르게 평가 수 있다. 만약 그 집회의 목적이 우리끼리의 위로와 공감이었다면 정말 큰 성공이라고 볼 수 있다. 특히 내가 만약 그 소아과 전공의였다면, 정말 큰 위로를 받았을 것이라고 생각한다. 그 선생님도 의협과 많은 선생님들께 감사하고 있을 것이다. 그렇지만, 그 집회가 국민들의 공감과 이해를 얻기 위한 것이었다면그것은 참담한 실패였다고 말하고 싶다. 

국민들 중 누구도 우리가 모인 것을 보고, '아, 선생님들의 입장이 그렇구나. 의사선생님들이 참 힘들구나. 의사선생님의 구속이 정당하지 않구나.' 라고 할 사람이 없다. 오히려'너희는 구속가지고 그 난리냐, 여기는 사람이 죽었다고.' 더 격렬히 분노할 뿐이다. 국민들은 누구에게 공감하겠는가. 한번도 겪어보지 못한 의사의 입장이겠는가, 지금 나도 겪고 있는 환자의 입장, 보호자의 입장, 자식을 잃은 부모의 심정이겠는가. 

환자들은 의사를 이해해 주어야 하는 존재가 아니다. 그들은 의사에게 치료받고 위로 받아야 할 존재들이다. 그렇다면 의사는 누가 위로해주는가. 우리도 힘들고 위로 받고 싶다. 우리도 완전하지 않은 의료시스템 안에서 때로는 피해자이다.

병원 구석에서 쪽잠을 자며 중환실의 환자 옆에서 밤새 뜬눈으로 지새워 본 적 있는 의사들이 후배 의사를 위로할 수 있고, 진료와 교육, 논문에 학회일에 정신없어 본 적 있는 교수들이 젊은 교수들을 이해할 수 있다.

대학병원에서 수련을 받아본 적이 있는 개원가의 선생님들이 대학병원 의사들의 고단함을 이해할 수 있고, 일차진료의 중요성을 이해하며 기형적인 우리나라 의료체계를 알고있는 선생님들이 개원가의 노고를 인정해 줄 수 있다. 서로의 형편을 헤아릴 수 있는 사람은 우리들 밖에 없는데 우리가 서로를 위로하지 않으면 누가 우리를 위로하겠는가. 

앞으로 의사들의 모임은 그 목적을 분명히 하고 그에 따른 입장을 취했으면 한다. 대국민적인 모임은 철저히 환자들의 입장을 헤아리고 공감하는 방향으로 잡으면서, 이해와 설득은 보건 당국과 관계자들에게 냉철하고 합리적으로 접근한다. 그리고 위로는 우리가 서로 하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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