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의사 증원 논할 때 무엇을 고려해야 하나
의사 증원 논할 때 무엇을 고려해야 하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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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승인 2019.04.22 06: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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장성구 대한의학회장
장성구 대한의학회장

어지러울 정도로 현란하게 다가오는 제4차 산업 혁명의 첨단 기술은 공포스럽기까지 하다. 인공지능이라는 새로운 컴퓨터 인류(컴인)는 우리에게 엄청난 기대와 함께 괴물의 모습으로 다가오고 있다.

하루가 멀다하고 쏟아지는 의학 관련 학술지를 검색해 보면, 현대 의학의 학문적 발전은 이해하고 다가가기가 버거울 정도로 첨단을 향해 질주하고 있다.

이 모든 새로운 지식과 지혜를 습득해야 하는 것은 학문의 근본에 인간의 생명과 가치를 존중하는 철학이 깔려있기 때문이고, 의사로서의 고유한 의무이자 권한이기 때문이다. 20대 초반부터 종심(從心)에 이르기까지 의학을 공부하며, 순간을 뛰어 넘어 발전돼 가는 대한민국의 첨단 의학을 바라 볼 수 있다는 것은 참으로 행복하고 가슴 벅찬 일이다.

그러나 여기까지 오기에는 수 많은 질곡의 통한과 가슴을 쥐어짜야만 했던 일이 한 두 번이 아니었다.

이 세상의 의사 중에 가장 불행한 사람은 대한민국 의사들이다. 사회적인 지위가 어떻고, 돈을 버는 것이 어떻고, 그런것이 문제가 아니다.

책임지지 않아도 되는 무거운 등짐을 걸머지고 있기 때문이다. 해결되지 않는 갈등의 번민(煩悶)에 사로잡혀 있기 때문이다. 의료를 둘러싸고 있는 사회의 일그러져가는 모습에 나 몰라라 하지 못하는 숙명을 타고 낳기 때문이다. 상상을 초월하는 첨단 의학의 세계를 향해 달려가는 의사들의 발목을 잡고 늘어지는 좀비 같은 사람들이 많아서 그렇다.

4차 산업혁명의 쓰나미가 눈덩이 되어 다가오는데 무당(巫堂)이 되라고 강요하는 무지한 사람들 때문에 그렇다. 답답함은 스스로의 가슴에 불을 지르고 싶다.

16세기 영국의 금융가였던 Thomas Gresham이 제창한 법칙인 "bad money will drive good money out of circulation"이라는 경구는 과거에나 회자됐던 역사 속의 사어(死語) 쯤으로 생각했는데 그렇지가 않았다.

이 말에 사족을 들어내고, 털고털면 마지막에 남는 뼈대는 "사람이 살고 있는 이 사회에는 쓰레기만 가득하게 된다"라는 무서운 말이다.

악행이 선행을 구축하고, 악한자가 선한자를 내쫓고, 정의를 빙자한 사특(邪慝)함이 넘쳐흐르고, 무당이 과학자를 몰아내는 세상이 되는 것이다. 무엇이 이렇게 지저분하고 혼돈에 휩싸인 사회를 만들었을까. 무지가 지혜를 억압할 때, 전문가의 의견이 무지한 자들에 의해 구축될 때, 현장의 모습이 왜곡돼 평가받을 때, 아는 자(知識人)가 순진한 사람들을 배신했을 때에 이런 현상이 나타난다.

그러나 가장 파렴치한 결과는 권력을 등에 업은 무지몽매(無知蒙昧)한 자들의 입김이 사회 전반에 독가스처럼 퍼져 나갈 때이다. 이들은 자기들의 행위에 어떤 책임을 지는 일도 없이 역사의 쳇바퀴를 맴돌며 반복된 불행을 잉태시키고 있다.

역사를 보면 예측하기 힘든 일에 대해 빗나간 예단으로 크게 잘못된 일들이 많이 기록돼 있다. 우리는 열사의 땅, 중동에서 피땀 흘려 벌어 온 돈으로 한 가정과 나라를 재건한 자랑스런 과거가 있다. 이때 많은 근로자들이 파견됐고, 현지에서 근무할 한국인 의사가 필요했다.

그러나 여러 가지 여건상 현지 근무를 지원하는 의사가 많이 모자랐는데, 이 소식을 들은 국가 최고 권력자는 노발대발해 "의사들을 모집하면 지원자들의 줄이 100m쯤 되도록 의사들을 양산하라" 이 한마디로 우후죽순 처럼 많은 의과대학이 설립됐다는 이솝이야기 같은 일이 벌어진 나라가 우리나라다.

의과대학의 설립이나, 의사의 증원은 그 필요성이 과학적이고 합리적인 연구 결과에 따라 제기되는 경우 정당한 평가나 교육적 요건을 충분히 갖췄다고 판단되면 설립 또는 증원할 수 있다.

문제는 백년대계를 내다 본다는 교육기관, 그것도 사람의 생명을 다루는 의과대학의 설립 여부를 감정에 휩싸여 즉흥적으로 결정했던 사회적 구조가 슬픈 것이다. 그렇다면 지금은 과연 이러한 정치적 입장의 몰입으로부터 벗어 났는지 묻고 싶다. 필리핀에 가면 의사 자격을 갖은 택시 운전사가 참 많다. 바람직한 사회인지 모르겠다. 의사 인력의 과잉에 따른 사회적 문제는 백년을 간다.  

우리나라를 비롯해서 여러 나라에서 한 국가 사회에서 필요한 적정한 의사의 수를 연구하는 학자들이 아주 많다. 이것은 그만큼 예상 인력을 추계하기가 힘들다는 뜻을 반증하는 것이다.

그 이유는 의사의 숫자만 따져서는 안되고 기능적인 면을 고려해야 하기 때문이다. 의사의 역할과 기능적 효율성은 사회적 변화에 따라서 아주 탄력적으로 고려해야 한다.

특히 우리나라와 같이 한 사람의 의사를 교육시켜 배출하기까지 세계적으로 가장 높은 교육비를 지출해야 하는 나라일수록 더욱 그렇다. 그런데 권부에 앉아있는 사람들은 과학적 논리와 근거도 없이, 자기의 느낌대로 "의사를 증원해라, 어디에다 배치하라" 하는 말을 너무 쉽게 내뱉는다. 

"의사의 부족은 수익성이 낮은 공공의료기관과 의료취약 지역에 의료 공백을 발생시킨다. 보건의료 영역에서 발생하는 모든 문제의 핵심에는 의사 인력 부족의 문제가 있다.

의사 인력을 둘러싼 연구과제 및 실태조사의 예산 확보에 복지부가 적극적으로 목소리를 내야 한다" 이것은 국회의 윤소하 의원이라는 분의 지적이고, 이에 대해 장관은 "적극 공감 합니다" 라고 했단다.

 

'의사 분포 불균형'을 '의사 부족'으로 해결?…전혀 다른 접근
의료보험 수가·시스템 개선하지 않은 채 엉뚱한 진단·처방 내놔
인구 절벽·첨단 미래의학 시대…현재 수준 유지해도 '인력 과잉'

신문에 게재된 내용을 옮겨 적었기 때문에 윤 의원 본인의 발언과 차이가 있을 수 있겠지만, 이것이 사실이라면 무지한 권력자의 오만이 그대로 나타나 있다. 내용을 축약하면 "여하튼 의사는 모자라니까 증원 대책을 세워라"이다. 얼마나 고심해 의사가 부족하다는 결론에 도달했는지 몰라도 이렇게 간단한 것이 아닌데 참 경솔한 일이다. 

흔히 의사의 분포상 불균형과 의사의 부족함을 감별하지 못하고 기분대로 말하고 판단한다. 현재 일부 지방 병원의 소유자들이 의사가 부족하다고 "의사를 증원하자"는 말이 솔솔 나오고 있다.

의사가 부족한 것인지 지원자가 없는 것인지 자성하기 바란다. 의사 증원은 절대 않된다는 주장이 아니다. 다만 이렇게 간단하고 즉흥적으로 의학교육의 방향을 뒤틀어 놓겠다는 어리석은 사람들의 말이 거침없이 나도는 사회가 답답하다는 것이다.

앞에서 말했듯이 의료  현장에서 의사의 분포가 편중돼 있는 것과 인력이 모자라는 것은 전혀 다른 문제이다. 전공의들의 전공과(專攻科) 선택에 쏠림이 심하다. 그러나 의사의 숫자를 늘린다고 해서 소위 현재의 3D(힘들고·더럽고·위험한)과의 지원자가 늘어날 것이라고 생각하는 것은 인력의 토끼몰이를 하겠다는 것이다. 그 원인이 의료보험 수가 체계 등 시스템에 문제가 있는데 엉뚱한 진단을 내리고 개복을 하겠다는 것과 같다.

향후 의사의 역할은 상상을 초월하게 변한다. 제4차 산업혁명의 파고는 인공지능 의사와 인간 의사가 협업을 통해서 첨단 의료를 이끌어 가게 되어 있다. 인공지능 의사가 뇌 종양 MRI를 척척 판독해 낸다는 신문 기사는 이제 해외 토픽감이 아니다. 그저 의료의 일상일 뿐이다. 그렇기 때문에 한국 고용정보원의 예측대로 향후 의사의 실직이 큰 사회 문제가 되는 것이다. 

동아일보(2019.03.26.) 기사에 의하면 2018년 우리나라 출산 신생아가 32만 6900명(출산율 0.98명)이다. 인구 1000만 도시인 서울에서 드디어 학생이 없어 폐교를 해야하는 초등학교가 사상 처음 내년부터 나온단다.

2030년이면 전국 초등학교의 29.5%, 2033년에 중학교의 28%, 2036년에는 전국 고등학교의 41%가 학생이 없어서 폐교된다고 한다. 정말 인구 절벽과 단군 할아버지 자손의 멸실이 눈앞에 보이고 있다.

그런데 불과 몇 년 전인 2015년도에 수립한 2030년까지 교사 수를 35만명까지 유지하는 계획을 세웠다는 데 이것이 제대로 된 것인지? 이런 계획을 세운 사람들은 지금 어디서 뭘하며 이 사태를 바라보고 있는지? 우수한 인력의 낭비는 곧 사회불안의 단초가 되는 것이다.

필자의 생각에는 의사의 역할이 바뀌고, 인구가 이렇게 줄어들기 때문에 지금과 같은 정도의 의사 배출 체제를 유지해도 우리나라에서 의사는 과잉이 될 것이다. 지금 당장 의료현장에 가보면 금방 감지할 수 있다. 

한국 의료의 질(質)을 전 세계적인 수준으로 끌어 올려 놓기까지 정부나 권력이 공헌한 것이 있는지 묻고 싶다. 여기까지 오는데 의료계나 의학계가 흘린 땀과 노력은 글자 그대로 피 흘림이었다.

방관자들은 오늘날 우리 의료의 수준이 그저 당연하고 자연스럽게 자기의 코앞에 와 있는 것으로 생각하는 오만에 빠져 있다.

그렇기 때문에 의사는 배출만 하면 당연히 자기 눈앞에 보이는 그 정도의 의사가 되는 것으로 오판하는 '의사 증원의 정치적 현실 집착 편집증'에 빠져 있다. 의사는 향후 과거 어느때 보다도 우수한 의료인력으로 교육시켜 배출해야 한다. 의료의 질에 대한 사회적, 국민적 요구가 엄청 높아졌기 때문이다.

일부 사회학자들의 케케묵은 논리인 'OECD 국가의 인구대비 의사 수'라는 논리는 이제 그만 울거 먹었으면 좋겠다. 국내의 정치 사회적인 분위기에 따라서 꼭두각시처럼 언론에 등장했다 사라지고, 또다시 살아나 도깨비불처럼 일렁이는 추악함은 척결돼야 한다.

그 이유는 사회의 전반적인 현상의 변화, 의사의 기능과 역할의 변화, 첨단 미래의학의 출현, 미래 의학의 가치의 변화 등을 고려하지 않은 편협한 단순 논리이기 때문에 그 가치를 상실한 것이다.

정말로 의사의 수가 모자란다고 판단 되면, 사회주의 의료체제를 추종하고 있는 영국이 과거에 인도와 파키스탄에서 의사를 수입했듯이 우리도 필리핀이나 인도에서 수입하는 것이 생산성과 원가면에서는 훨씬 나을지 모르겠다.

그러나 꼭 기억할 것은 영국 의학은 끝없이 추락했고, 지금도 헤어나지 못하고 있다는 것이다. 영국 교포들이 신병 치료차 모국을 방문하는 이유를 생각해야 한다.

의료의 질적 수준은 한번 추락하면 회복하는데 수 백년이 걸린다는 사실을 꼭 기억해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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