봄바람이 만들어 놓은 꽃길에 서면 생각나는 아이가 있습니다.
몇 십 년전 , 병원에서 수련받던 시절입니다.
응급실 근무였던 저는
오랜 만의 한가로움에 문밖을 서성이고 있었습니다.
멀리서 구급차 소리가 들리더니
병원 문으로 쏟아지듯 들어오는 침대에 놓인 작은 아이.
봄에서 여름으로 넘어가던 어느 날,
시골집에 놀러 갔던 돌쟁이 아이였습니다.
아이는 커다란 개에 머리가 물려서
의식도 없고 생체 징후도 없었습니다.
아이를 다시 잡아보려는 온갖 노력에도
1년의 짧은 생을 되돌릴 수 없었습니다.
꽃길에 서면 아이가 생각납니다.
꽃을 보고 아장아장 걸어 갔을 아이.
수 년동안 봄을 맞으며 지금쯤 20대 즈음 되었을 아이.
병원 문을 들어서는 모든 아이의 작은 발걸음이 소중한 것은
잡지 못했던 그 아이의 발걸음을 기억하기 때문입니다.
아이가 노인이 되기까지
소중한 그 발걸음을 지켜주고 싶습니다.
아이의 발걸음 , 숨소리 , 울음소리 조차 놓치지 않으려
나의 온 지각을 깨웁니다.
나는 당신의 아이의 동네 병원 의사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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