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헌재, 낙태죄 헌법불합치...현행법 개정해야
헌재, 낙태죄 헌법불합치...현행법 개정해야
  • 이정환 기자 leejh91@doctorsnews.co.kr
  • 승인 2019.04.11 15:0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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재판관 4명 '헌법불합치'·3명 '단순위헌'·2명 '합헌'...2020년 말 전 법 개정
2021년 1월 1일부터 형법 제269조·제270조 낙태죄 처벌 조항 효력 상실
ⓒ의협신문
ⓒ의협신문

헌법재판소가 형법에 의한 낙태죄 처벌 규정에 대해 '헌법불합치'를 선고했다.

헌재는 11일 오후 2시 '형법 제269조 1항'(자기낙태죄 조항)과 '형법 제270조 1항'(의사낙태죄 조항)은 모두 헌법에 합치되지 아니한다고 선고했다.

또 2020년 12월 31일을 시한으로 입법자가 개정할 때까지 계속 적용된다고 밝혔다. 즉 2021년 1월 1일부터 낙태죄를 규정하고 있는 형법 조항(제269조, 제270조)은 효력을 상실하게 된다. 이로써 1953년 낙태 처벌 규정은 사라지게 됐다.

낙태죄 위헌 여부는 지난 2012년 8월 헌재가 재판관 8명의 의견이 4대 4로 갈리면서 낙태죄가 합헌으로 유지됐으나, 7년 후인 이번에는 헌법불합치로 결정이 났다.

이날 선고에서 서기석·유남석·이선애·이영진 재판관은 헌법불합치 의견, 이은애·이석태·김기영 재판관은 단순위헌 의견을 냈다. 그러나 조영호·이종석 재판관은 합헌 의견을 냈다.

'형법 제269조 1항'(자기낙태죄)은 임신한 여성이 낙태하면 1년 이하의 징역 또는 200만 원 이하의 벌금에 처하도록 하고 있으며, '형법 제270조 1항'(의사낙태죄)은 임신한 여성의 동의를 받아 낙태를 시술한 의사는 2년 이하의 징역으로 처벌한다는 내용을 담고 있다.

이번 헌재 결정의 가장 큰 쟁점은 '동의에 의한 낙태죄 규정이 임신 여성의 자기 결정권을 과하게 침해한다'며 헌법소원을 제기한 산부인과 의사 A씨의 주장(2017헌바127, 형법 제269조 제1항 등 위헌소원)과 임신 초기에 해당하는 1∼12주 사이의 태아에 대한 낙태를 허용할 것인지 여부.

먼저 서기석·유남석·이선애·이영진 재판관은 헌법불합치 의견에서 "형법의 자기낙태죄 조항은 태아의 생명을 보호하기 위한 정당성이 있지만, 모자보건법이 정한 일정한 예외를 제외하고는 임신 기간 전체를 통틀어 모든 낙태를 전면적·일률적으로 금지하고, 이를 위반할 경우 형벌을 부과하도록 함으로써 임신한 여성의 자기 결정권을 제한하고 있다"고 밝혔다.

그러면서 "모자보건법상의 낙태 정당화 사유에는 다양하고 광범위한 사회적·경제적 사유(학업에 지장을 주는 경우, 소득이 불안정한 경우, 양육을 위해 휴직하기 어려운 경우, 아이를 임신한 후 상대 남성과 헤어진 경우, 남성이 육아에 대한 책임을 거부하는 경우 등)에 의한 낙태갈등 상황이 전혀 포함되지 않는다"고 판단했다.

따라서 "태아가 모체를 떠난 상태에서 독자적으로 생존할 수 있는 시점인 임신 22주(마지막 생리 기간의 첫날부터 가산) 내외에 도달하기 전이면서 동시에 임신 유지와 출산 여부에 관한 자기 결정권을 행사하기에 충분한 시간이 보장되는 '결정가능기간'까지의 낙태에 대해서는 국가가 생명보호의 수단 및 정도를 달리 정할 수 있음이 타당하다"고 설명했다.

이들 재판관은 "자기낙태죄 조항은 입법 목적을 달성하기 위해 필요한 최소한의 정도를 넘어 임신한 여성의 자기 결정권을 제한하고 있어 침해의 최소성을 갖추지 못했고, 태아의 생명 보호라는 공익에 대해서만 일방적이고 절대적인 우위를 부여함으로써 법익 균형성의 원칙도 위반했다"며 "과잉금지원칙을 위반해 임신한 여성의 자기 결정권을 침해하는 위헌적인 규정"이라고 분명히 했다.

그러면서 "같은 목표를 실현하기 위해 임신한 여성의 촉탁 또는 승낙을 받아 낙태하게 한 의사를 처벌하는 의사낙태죄 조항도 같은 이유에서 위헌이라고 보아야 한다"고 밝혔다.

이와 함께 "입법자는 결정가능기간을 어떻게 정하고, 결정가능기간의 종기를 언제까지로 할 것인지, 태아의 생명 보호와 임신한 여성의 자기 결정권의 실현을 최적화할 수 있는 해법을 마련하기 위해 결정가능기간 중 일정한 시기까지는 사회적·경제적 사유에 대한 확인을 요구하지 않을 것인지 여부까지를 포함해 개선 입법을 2020년 12월 31일까지 마련해야 한다"고 밝혔다.

단순위헌 의견을 낸 이석태·이은애·김기영 재판관은 임신한 여성의 자기 결정권을 침해한다는 점에 대해 헌법불합치 의견을 낸 재판관들과 견해를 같이했다.

다만, 임신 제1삼분기(대략 마지막 생리 기간의 첫날부터 14주 무렵까지)에는 어떠한 사유를 요구함이 없이 임신한 여성이 자신의 숙고와 판단 아래 낙태할 수 있도록 해야 하고, 자기낙태죄 조항 및 의사낙태죄 조항은 헌법불합치가 아니라 단순위헌 결정을 해야 한다는 의견을 보였다. 즉, 임신 제1삼분기에 이뤄진 낙태에 대해 처벌하는 부분은 그 위헌성이 명확하다고 본 것.

이들 재판관은 "그동안 자기낙태죄 조항으로 기소되는 사례가 매우 드물었고, 그 경우도 악의적 동기에서 비롯된 것이 상당수였다는 점을 고려하면, 삼판대상 조항들이 예방하는 효과가 제한적이고, 형벌조항의 기능을 제대로 하지 못하고 있다"고 봤다.

그러면서 "이들 조항이 폐기된다고 하더라도 극심한 법적 혼란이나 사회적 비용이 발생한다고 보기 어렵다"며 "헌법불합치 결정으로 인해 형법의 처벌조항이 그대로 유지돼 임신한 여성 및 의사에게는 매우 가혹한 처사"라고 밝혔다.

헌재는 이처럼 자기낙태죄 조항과 의사낙태죄 조항이 헌법에 위반된다는 단순위헌 의견이 3명이고, 헌법에 합치되지 않는다는 헌법불합치 의견이 4명으로 법률의 위헌결정을 함에 필요한 심판정족수에 이르게 돼 최종 '헌법불합치' 결정을 내리게 됐다고 설명했다.

이와 함께 입법자는 2020년 12월 31일까지 개선 입법을 할 때까지 위 조항들은 계속 적용하되, 만일 이 일자까지 개선 입법이 이뤄지지 않으면 위 조항들은 2021년 1월 1일부터 그 효력을 상실한다고 밝혔다.

한편, 조용호·이종석 재판관은 소수 의견을 합헌 의견을 냈다.

이들 재판관은 "자기낙태죄 조항이 임신 초기의 낙태나 사회적·경제적 사유에 의한 낙태를 허용하고 있지 아니한 것이 과잉금지원칙에 위배돼 임신한 여성의 자기 결정권을 과도하게 제한한다고 볼 수 없다"고 밝혔다.

그러면서 "2012년 합헌 결정을 한 후 7년이 채 지나지 않은 현시점에서 위 선례의 판단을 바꿀 만큼의 사정변경이 있다고 보기 어렵다"고 덧붙였다.

의사낙태죄와 관련해서는 "법정형의 상한이 2년 이하의 징역으로 돼 있어 법정형의 상한 자체가 높지 않을 뿐만 아니라, 작량감경이나 법률상 감경을 하지 않아도 선고유예 또는 집행유예 선고의 길이 열려 있으므로 책임과 형벌 간의 비례원칙에 어긋나지 않는다"고 판단했다.

이와 함께 "낙태는 대부분 낙태에 관한 지식이 있는 의료업무종사자를 통해 이뤄지며, 태아의 생명을 보호해야 하는 업무에 종사하는 자가 태아의 생명을 박탈하는 시술을 한다는 점에서 비난 가능성 또한 크므로, 입법자가 의사낙태죄 조항에 대해 동의낙태죄와 달리 벌금형을 규정하지 않은 것이 형벌 체계상의 균형에 반해 헌법상 평등원칙에 어긋난다고도 할 수 없다"고 밝혔다.

헌재의 '헌법불일치' 결정은 해당 법률이 사실상 위헌이기는 하지만 즉각적인 무효화에 따르는 법의 공백과 사회적 혼란을 피하고자 법을 개정할 때까지 한시적으로 그 법을 존속시키는 결정을 말한다.

한편, 헌법재판소에서 헌법불합치 결정을 내린 예로는 1993년 공무원의 단체행동권을 금지한 노동쟁의조정법(1997년 노동조합 및 노동관계조정법으로 대체), 1994년 토지초과이득세법(1998년 폐지), 1997년 동성동본의 결혼을 금지한 민법 규정, 1998년 개발제한구역 안에서 건물의 건축 등을 금지한 도시계획법(2002년 폐지)의 규정, 2003년 재임용 탈락을 재심 청구의 대상으로 명시하지 않은 '교원지위향상을 위한 특별법'의 규정 등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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