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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고 싶은' 전공의…"이러다 죽겠다 싶어요"
'자고 싶은' 전공의…"이러다 죽겠다 싶어요"
  • 홍완기 기자 wangi0602@doctorsnews.co.kr
  • 승인 2019.04.09 15:0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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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공의 81% '수면 부족' 호소…'의료사고 위험 증가'
대전협 '전공의 수면 환경·야간당직 실태조사' 공개
(사진=pixabay) ⓒ의협신문
(사진=pixabay) ⓒ의협신문

최근 우리나라 의사 절반이 전공의 시절 과도한 업무와 부족한 수면시간 등을 트라우마로 갖고 있다는 언론 보도가 나왔다. 전공의법이 적용되고 있는 지금도 열악한 수면환경은 크게 달라지지 않았다는 조사 결과가 나왔다.

대한전공의협의회는 9일 '전공의 업무 강도 및 휴게시간 보장에 관한 설문 조사' 결과를 공개했다. 설문은 3월 약 10일간 온라인으로 진행됐다. 전국 90여 개 수련병원 660여 명의 전공의가 참여했다.

전공의 대부분이 양질의 수면을 취하지 못했으며 야간당직 시 주간업무 이상으로 고된 환경에 노출된 것으로 분석됐다.

전공의 81.1%가 '평소 수면을 충분히 취하지 못한다'고 답했다. '항상 충분하다'고 응답한 전공의는 0.9%에 그쳤다. 수면을 방해하는 가장 주된 요인으로는 과도한 업무나 불필요한 콜 등 '업무 관련 이유'가 86.5%를 차지했다.

"불충분한 수면으로 업무를 안전하게 수행하는 것에 불안감을 느끼는 경우가 있느냐?"는 질문에 32.6%가 '항상 느낀다'고 답했으며, 37.6%는 '자주 있다'고 답했다. '전혀 없다'고 응답한 전공의는 2.6%였다.

전공의들은 "36시간 연속 수면 없이 근무했다", "이러다 죽겠다 싶은 생각을 하며 새벽까지 일한다", "집중력이 떨어져 무거운 수술 도구를 나르다 다쳤다", "환자를 착각해 다른 환자에게 검사하거나 투약할 뻔한 적이 있다"며 불안감을 드러냈다.

A전공의는 "당직으로 수면을 못 한 상태에서 정규 수술이나 오더 발행 등 환자에게 직접적으로 위해가 미칠 수 있는 것들을 수행해야 했다"며 "잠을 못 잔 상태에서 다음날까지 근무가 진행되는 경우 피로 누적이 매우 심하다"고 토로했다.

야간당직을 서는 날의 업무가 평소보다 더욱 과중하며, 피로도 역시 높아지는 것으로도 조사됐다.

전공의 35.9%가 야간당직 시 담당하는 입원환자 수가 평일 주간의 통상 업무시간에 담당하는 입원환자 수의 3배 이상에 달한다고 답했다. 전공의 1인당 야간당직 시 하루 평균 약 29통의 업무 관련 전화를 받는 것으로 나타났으며, 최대 300통이라고 답한 전공의도 있었다. 한 전공의는 "당직 콜에 익숙해져서 당직이 아니더라도 잠이 계속 깬다"며 평소 수면에 어려움을 털어놓기도 했다.

야간당직으로 인한 스트레스 수준도 높았다. 10점 만점에 평균 7.7점으로 분석됐으며, 10점 만점이라고 답한 전공의 비율도 21.5%에 달했다.

대전협은 "전공의들은 높은 업무 강도와 피로도에도 야간당직 중 적절한 휴게시간이 보장받지 못하고 있다"며 "심지어 야간당직 시간에 대한 정당한 임금을 지급받지 못한 사례도 적지 있다"고 지적했다.

 

인정은 못 받고, 책임만 전가되는 '전공의 야간당직'

대전협은 최근 재판부가 전공의의 당직 근무에 대한 가산임금을 인정하지 않은 판결에 대해, 부당하다고도 짚었다.

해당 판결은 2018년 2월 의사 K씨가 OO병원을 상대로 진행한 소송이다. K씨는 합당한 가산임금을 요구하며 임금 소송을 제기했다. 재판부는 원고 청국 기각 판결을 내렸다.

재판부는 당직 전공의가 당직 근무시간 중 병동이나 응급실에 상시 대기하고 있는 것이 아니라 전공의실 등 별도의 휴게공간에서 휴식 또는 수면을 취하는 등 개인적으로 시간을 활용하다가, 호출이 오면 간헐적으로 병동이나 응급실에서 짧은 시간 당직 업무를 수행한 것으로 판단했다.

평일 주간의 통상 업무시간에 이뤄지는 진료업무와 비교할 때 당직 업무는 주로 응급환자나 보호자에게 환자의 상태, 입원의 필요성을 설명하거나 간호사에게 간단한 약물 처방 및 드레싱 또는 검사를 지시하는 정도에 그친다는 것. 재판부는 전공의 수준에서 판단하기 어려운 진료는 통상 업무시간에 상급자의 지시를 받아 처리하는 등 당직근무는 보조적·임시적 성격이 강하다는 것도 판결 이유로 들었다.

대전협은 "야간당직을 서는 동안 전공의들은 전문의의 지도·감독을 받지 못하는 경우가 많다"고 항변했다.

실제로 "야간당직 시 본인을 감독하고 지도해 줄 전문의가 병원 내에 함께 상주하느냐?"는 질문에 전공의 42.4%가 '대개 상주하지 않음', 34.4%가 '전혀 상주하지 않음'이라 답했다. '지도해 줄 전문의의 부재로 수행에 자주 또는 항상 불안을 느낀다'고 답한 전공의는 32.6%를 차지했다. 반면 불안감이 전혀 없다고 답한 전공의 비율은 15.5%에 불과했다.

'전공의 수준에서 판단하기 어려운 진료의 경우, 당직 전문의와 전화로 상의하나 처리는 전공의가 직접 하는 경우'가 72.5%에 달했다. 연락을 취하는 단계에서도 "바로 연락하면 눈치가 보인다", "상부와 보고체계가 없어 알아서 해결해야 한다", "전문의가 보고를 받지 않아 스스로 판단해야 한다" 등의 어려움이 동반되기도 했다.

B전공의는 "원칙적으로는 전문의와 상의할 수 있고 서면상으로는 그렇게 하도록 되어있으나 사실상 하지 않도록 비언어적, 제도적, 관습적 압력이 상당하다"며 "이로 인해 상의하지 않았을 때 전공의에게 책임이 전가된다"고 답했다.

C전공의는 "전화를 걸어도 안 받을 때가 있으며 중환자가 와서 연락한 경우 책을 찾아보라며 무책임한 태도를 보일 때가 있다"며 "의뢰를 모두 하였음에도 불구하고 추후 환자가 이 정도로 안 좋을 줄 몰랐고 의뢰가 되지 않았다며 전공의에게 책임을 돌렸다"고 밝혔다.

D전공의는 "평소 기저질환이 없는 환자가 혈압이 40 이하로 갑작스럽게 떨어졌는데 그 환자의 주치의도 아닐뿐더러 인계도 받은 적이 없어 급박한 상황에서 환자의 병력이나 투약력을 확인할 새가 없었다"면서 "당직 전문의는 연락이 되지 않아 홀로 환자를 봐야 했고, 일반 병동에서 멀쩡히 가동하던 환자는 결국 의식을 잃은 채 중환자실로 가게 됐다"고 털어놨다.

이승우 회장은 "로펌고우와 업무협약을 맺은 이후 들어오는 의료소송 관련 법률자문 요청 중 야간당직 시 발생한 사건이 많은 수를 차지한다"며 "병원 내 수련환경이 안전하지 못한 부분에 대해 병원 차원의 책임을 묻기보다는 밤새 당직 근무하며 일차적으로 판단하고 처치했던 전공의는 유죄, 오히려 지도·감독의 책임이 있는 전문의는 무죄로 판결되는 사건을 보면서 도저히 납득할 수가 없었다"고 지적했다.

이 회장은 "안전하지 못한 수련 시스템에서 과연 전공의가 최선의 진료를 하며 제대로 배울 수 있을지 의문"이라며 "환자와 전공의 모두의 안전을 위해 야간당직 시 담당 환자 수 제한과 입원전담전문의 확대가 시급하다. 수련환경평가 항목 등을 포함한 병원 평가 지표에 반영될 수 있도록 하고 국가 차원의 별도 재정 지원이 이뤄지도록 지속적으로 의료계 유관단체와 논의하고 정부에 요구하겠다"고 밝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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