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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회참여형 의료'와 의사양성에 필요한 현실적 당면 과제
'사회참여형 의료'와 의사양성에 필요한 현실적 당면 과제
  • 안덕선 의료정책연구소장 desk@doctorsnews.co.kr
  • 승인 2019.04.01 15:4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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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span class='searchWord'>안덕선</span> 의료정책연구소장 ⓒ의협신문
안덕선 의료정책연구소장 ⓒ의협신문

언제부턴가 우리나라도 '사회참여형 의료'라는 용어가 등장했다. 최근 국민건강보험공단에서 개최한 콘퍼런스에서도 사회참여형 의료를 사용했다. 아직 우리 사회에서는 생소한 단어인 '사회참여형 의료'가 무엇을 의미하고 있는지 궁금했다. 

의료보험제도는 2차 세계대전 이후 유럽 선진국들이 주도해 도입했다. 1948년 UN에서 발표한 선언에 의하여 의료는 전 세계 국민의 기본권이 됐으며, 'Universal Health Coverage(UHC)' 개념으로 현재까지 널리 적용하고 있다. 특히, 영국이 National Health Service를 설립하고 단일보험 공급자로서 영국 국민 모두에게 의료혜택을 제공하기 시작한 이후 전 세계적으로 큰 파급효과를 나타냈다. 

이는 2차 대전의 경험이 국민적 공감대와 사회적 합의를 비교적 어렵지 않게 끌어냈다고도 볼 수 있다. 하지만 이와는 반대로 아직도 많은 나라들이 UHC를 달성하지 못하고 있는 것도 사실이다. 

우리나라는 지난 1977년 국민소득 1,000달러에도 채 미치지 못하는 상황에서 부분적으로 도입한 의료보험제도를 1989년에 전 국민의료보험으로 확대해 세계에서 가장 빠른 시간에 위대한 과업을 이루었다고 자랑하고 있다. 

그러나 되짚어 살펴보면 우리나라 국민의료보험제도는 영국처럼 국민의 합의에 따라 민주적 절차로 이루어진 것이 아니다. 박정희 군사정권이 남북 간 경쟁 관계에서 밀어붙인 독재권력형 의료보험제도였지, 의료공급자나 사용자 그리고 재원을 담당하는 보험단체나 사회대표의 합의에 의한 것은 아니었다. 

하지만 의사들은 기꺼이 따랐다. 의사집단이 정치적으로 저항할 힘이 없던 것도 사실이다. 독재에 의한 의료계 길들이기에 익숙해져 버린 한국사회의 경험은 90년대 달성한 문민정부에서도 역시나 지속했다. 그래서 관 주도의 강압적 의료제도를 성공적으로 유지하고, 무리한 정책들을 통해 GDP 대비 상대적으로 적은 보건예산을 지출하고도 의료 수행 결과는 세계적으로 높은 나라가 됐다. 

정부와 정권은 이것이 마치 자신들의 치적인 양 자랑하고 있고, 다른 나라도 우리나라의 의료보험제도를 부러워한다는 말도 서슴지 않고 있다. 인심은 정부가 쓰고, 나머지 힘들고 어려운 뒤치다꺼리는 의료계의 몫이 되었다.

의료가 2차 세계대전 이후 국민의 기본권으로 정착되어 감에 따라 과학적 의학(scientific medicine)의 시대에서 사회적 실천(social practice)으로 변모하기 시작하였다. '사회참여형'이라는 것은 의료자체가 국민의 기본권으로 의사나 환자 간의 자유계약 관계인 것만도 더 이상 아니고, 그렇다고 정부가 전권을 갖고 직접 어찌해 볼 수 있는 것도 아니라는 뜻이다. 

우리 사회를 구성하는 모두가 참여해서 해결하는 것이 바로 '사회참여형 의료'이다. 그러나 우리나라에서 사회참여형 의료의 개념은 역설적이게도 자발적 사회 주도형이 아닌 일방적 관 주도로 이루어지고 있다. 

이런 현상은 사회참여형 의료에 대한 왜곡된 단면들을 보여주고 있는데 대표적인 것이 의료공급자의 양성과 시설의 문제에서 심각한 괴리를 나타낸다. 유럽이나 과거 이들 나라의 식민지를 경험한 나라에서는 보건의료인 양성과 시설에 대한 부분을 사회가 담당해내고 있다.

다른 말로 부연하자면 의료인 양성은 사회적 요구에 따라 계획하고 이에 드는 인적·물적 자원 모두 사회가 담당한다는 의미이다. 의료가 '사회참여형 의료'로 전환된 나라는 의사의 양성을 위해 의과대학부터 전공의 교육에 이르기까지 공공에서 재정적 지원을 충당하고 있다. 

교육선진화 하려면 의료인 양성 위한 공적 재원 투입 당연

의료가 하나의 상품으로까지 간주할 수 있는 순수자본주의 국가인 미국에서도 전공의 교육을 위한 명확한 공공의 지원방안을 갖고 있다. 미국 전공의 지원에서 가장 중요한 역할을 하는 것은 Medicaid, Medicare 제도로, 2017년 한 해에만 약 27조원의 재정을 뒷받침했다. 그리고 민간의료기간인 Health Maintenance Organization과 보훈기구(Veterans' Affairs) 등에서도 전공의 교육 지원비를 염출하고 있어 전체 미국 전공의 교육을 위한 재정 지원 금액만 무려 30조원에 이를 것으로 어림잡아 추정할 수 있다. 

사회참여형 의료의 종주국인 영국에서는 4개 지역의 지방 자치제도로 운영되어 각 지방정부별로 의료인 양성지원 기구나 제도를 만들어 의료인 양성 교육비 지원을 하고 있다. 

의료인 양성 비용이 공공의 재원 지출인 만큼 교육 기관에 대한 평가 또한 매우 까다롭고 엄격하다. 당연히 의료인 양성 교육기관은 사회가 원하고 필요한 의료인을 양성하는 것이 사명이다. 부실한 교육으로 판정되면 전공의 교육병원의 자격을 잃게 된다. 

공적자금을 투입하는 만큼 전공의 교육과정은 현대적 교육방법론을 충실하게 따라서 교육해야 한다. 

그런데도 실제 전공의가 근무하는 시간은 의사이면서 노동자적인 두 개의 신분을 최대로 존중해 이들의 근로환경을 주 45시간 정도로 정하고 있다. 

영국 4개 지역 중 가장 큰 지역인 England는 NHS가 설립한 Medical Education England를 통해 전공의 교육비를 지원하고 있다. 나머지 3개 지역까지 합하면 영국 전체 전공의 교육 지원 예산은 약 7~8조원에 이를 것으로 추계된다. 이 재원은 단순히 전공의 인건비뿐만 아니라 전공의라면 반드시 제공받아 훈련을 이수해야 하는 다양한 분야의 교육프로그램까지 포함하고 있다. 전문의가 되기 위해서는 전공의 필수교육인 고등 심폐소생술, 외상환자 처치법, 의료윤리와 배상, 교육자 역량과정 등 공통역량의 이수가 의무조항이다. 특히 외과계에서 외상환자 처지에 대한 교육을 반드시 이수해야 한다. 필자도 캐나다에서 전공의 1년 차에 외상환자 처치과정을 이수한 것이 정확하게 35년 전이었는데 우리나라는 아직도 외과계열의 전공의에게 이러한 교육을 제공하지 못하고 있다. 

우리나라는 언제쯤 외과 계열 전공의에게 이런 선진 교육을 제공할 수 있을지 답답한 마음으로 자문하게 되는데, 이런 상황에 대해 해당 중앙부처 공무원과 관련 정부 기관들로부터 "반드시 사회적 합의가 필요하다"는 뻔하고 한결같은 '현문우답'을 확인하면 정말이지 뜨악해지는 마음을 감출 수 없는데 지금은 수도 없이 경험하여 당연한 현상으로 받아들인다. 그러나 분명한 것은 이러한 교육은 외과 계열 레지던트라면 첫 2년 과정 안에 반드시 이수해야 하는 공통과목인 것이다. 

2016년 9월 손녀와 할머니가 교통사고를 당해 권역응급의료센터를 통해 서울로 이송하던 중 사망한 사건이 벌어졌다. 권역응급의료센터에서 환자를 본 의사는 정형외과 1년차였다고 한다. 그 수련의는 과연 외상환자 처치에 대한 교육을 받은 전공의였을까? 답은 뻔하다. 시간 지연에 의한 초기 처치의 부실이 사망으로 이어진 사고였다. 외상환자를 위한 Acute Trauma Life Support 같은 고비용의 교육을 전공의가 제공받았을 리 만무한 것이 우리의 감출 수 없는 현실이다. 

외상환자 처치는 사회참여형 의료의 예외지역인가? 관 주도 독재 요소가 다분한 우리나라 의료제도에서 이런 중요한 교육 요구에 대한 사회 설득의 몫도 의료계가 알아서 모두 짊어지고 해결해야 할 감당하기 힘든 과제다. 

대학병원 설립 '목적' 국민건강 기여? 생존 목적? 혼미

또 한편으로 생각과 시선을 우리 자신에게 돌려 "우리나라의 전공의 교육에 필요한 것은 무엇인가?"라고 자문해본다면, 우선 시대착오적 권위주의와 회식문화 중심의 전공의 교육에서 벗어나야 한다는 생각이 든다. 새 세대는 의사가 되기 위해 중요한 전공의 교육과정에 사회적 공적 재원의 투입을 통한 교육 선진화의 정당한 요구를 할 수 있어야 한다. 왜냐하면 이미 비영리 대학병원들이 되레 영리적 원칙에 의해서 작동된다는 것을 우리 사회 모두가 익히 잘 알고 있다. 

이런 의료 환경에서 대학병원이 고액의 교육비가 들어가는 전공의 핵심역량 교육에는 등을 돌리고, 수익 지향적 모델 이외에는 아예 쳐다보지도 않는다는 체념적 사실도 충분히 인지하고 있다. 대학병원 설립의 목적이 국민건강 기여인지 아니면 의국이나 병원의 기관생존이 목적인지 뚜렷한 방향과 질서가 없는 혼미한 상태를 만들어 내고 있기 때문이다. 

'의료' 관제서 벗어나 자율 기반 '사회참여형 의료' 전환해야

우리나라가 획일적 관제 일변도의 의료 중심에서 자율을 기반으로 하는 자발적 사회참여형 선진 의료로 정책 방향의 큰 틀과 새로운 물줄기를 형성하려면 우선 먼저 의료인 교육을 위한 재원 투입을 선행해야 한다. 

이는 단순 인건비 지원이 아닌 의사양성을 위한 교육과정의 개발과 정착 그리고 이것을 모니터링(monitoring)할 수 있는 선진화된 평가인증에 공공의 재원이 절대적으로 필요한 것이다. 

얼마 전 참가한 국제의학교육회의에서 캐나다 의과대학연합회장이 "우리를 키워준 사회를 잊지 맙시다!"라고 하여 참석한 청중 모두가 매우 감동적으로 받아들였다. 그것은 캐나다 정부가 사회를 대신해 의과대학부터 전공의 교육까지 질 좋은 교육프로그램을 지원하는 것에 대한 자연스러운 감사의 사회 친화적 표현이다. 

그렇지만 의학교육의 정부 지원을 당연하게 알고 있는 이분이 세계 최고 수준의 의학기술 국가라고 주장하고 있는 대한민국에서 의학교육에 대한 정부 지원이 전혀 없다는 사실을 알면 어떤 반응을 보일런지 자못 궁금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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