의협에 기증한 1000만 원 알고 보니 전세금이었다
의협에 기증한 1000만 원 알고 보니 전세금이었다
  • 신형준 relicshin@naver.com
  • 승인 2019.03.25 09:16
  • 댓글 0
이 기사를 공유합니다

김태호 특임이사 의협 투쟁기금 뒷이야기

'위선보다는 위악이 낫다'는 말을 필자는 믿는다. 각종 소셜 미디어의 프로필에도 이 말을 적어 놓았다.

열아홉 살 때 읽었던 미국 사회학자 C W 밀즈(1916~1962년)의 '들어라 양키들아'(원제 'Listen, Yankee'. 1960년 발간)의 영향과, 그 이후 사회 생활에서의 경험이 화석화된 신념처럼 굳어진 덕이다.  

잘 아시듯, 이 책은 1950년대 후반에 발생한 쿠바 혁명을 쿠바 혁명가들의 시각에서 썼다. 그래서 미국에서 무척이나 논란이 됐다. 35년 전에 읽었지만 여전히 필자의 뇌리에 깊게 박힌 것은 이 책 본문 내용이 아니라, 후기였다. 

 

미국 사회학자 C W 밀즈(1916~1962)와 그의 저서 '들어라 양키들아'(원제 'Listen, Yankee'. 1960년 발간)ⓒ의협신문
미국 사회학자 C W 밀즈(1916~1962)와 그의 저서 '들어라 양키들아'(원제 'Listen, Yankee'. 1960년 발간)

독점욕은 인간의 본성이다

'분노의 사회학자'라는 별칭을 가진 학자답게 쿠바 혁명가들의 눈을 통해 미국 사회를 통렬하게 비판한 밀즈는 이 책 후기에서 부패한 권력의 추악함을 좌우를 가리지 않고 공격한다. 그 대상 중 하나가 멕시코 집권 공산당이었다. 말로는 인민을 염불하듯 외치면서도, 멕시코 국부(國富)의 절대치를 소수의 공산당원들이 독점하며 인민을 착취하고 있다는 것이다. 사회주의자를 자칭했던 필자에게는 충격이었다. 

1980년대 후반 소비에트와 동구권의 몰락을 지켜보면서 좌든 우든 모든 권력에는, 아니 인간의 본성에는 '독점욕'이 있다고 느꼈다. 때문에 어떤 것(그것이 인간이든 이념이든!)을 평가할 때 말보다는 행동 혹은 결과로 평가해야 하며, '번드르르한 말'일수록 특히 조심해서 지켜봐야 한다는 것을 금과옥조로 삼게 됐다. 
  
20년 기자 생활과, 아주 짧게 지낸 대한민국 '최고 권부'에서 겪은, 내 자신을 포함한 인간군상은 이 생각에 화룡점정을 찍게 했다. '국민을 위해 일 한다' 혹은 '사람이 꽃보다 아름답다. 그래서 사람이 우선이다'라는 말을 자주 쓰는 사람일수록 색안경을 끼고 바라보게 됐다. 

 

"약자에게 밥 한 그릇 사는 사람이 부처이고 예수이다!"

그보다는 주변의 힘든 사람에게 밥 한 끼 사는 사람이 최고였다. 이제는 무신론자를 자처하지만, 한 때 목사가 되겠다며 정독했던 성경의 한 구절도 그제야 의미가 선명하게 다가왔다. "네 보물이 있는 곳에 네 마음도 있다."(마태복음 6장 21절)

지난 3월 20일, 김태호 의협 특임이사가 의협에 투쟁기금으로 1000만 원을 기부했다는 소식을 들었다. "무너진 의료 시스템을 바로 세우는 데 의사 회원들이 관심을 갖고 참여하기를 바라며 김 이사가 투쟁 기금을 냈다"고 의협신문은 전했다. 솔직히 놀랐다.

'아니, 아무리 그래도 그렇지 어떻게 1000만 원씩이나….'

나로서는 앞으로도 영영 하지 못할 행동이었다. 내가 아닌 남을 위해, 혹은 내가 속한 집단이라는 이유만으로 1000만 원을 낸다니! 솔직히 김태호 이사가 '다시 보였다.' 

3월 23일 밤, 우연히 김태호 이사를 장인성 의협 재무이사와 함께 만났다. 필자가 보기에, 두 분은 호형호제 수준을 넘어 브로맨스라고 해도 과언이 아니게 교류하는 분들이다(김 이사와 나는 초등학교 입학년도가 같고, 장 이사는 우리보다 3년 선배이다).

일부러 나는 그에게 면박을 주었다.

"아무리 돈을 잘 벌어도 그렇지, 1000만 원은 심했습니다. 무보수로 의협에서 이사로 일하는 것만 해도 대단한 봉사인데…. 그 돈으로 가족과 소고기라도 사 드시지. 사모님이 알면 얼굴에 '오선지' 긋게 되는 것 아닌가요? 한데 주식으로 대박이라도 났어요?"

아무 말 없는 그를 대신해 장 이사께서 답했다.

"그런 것 아니고요."

장 이사의 말을 요약하면 이랬다. 

김 이사는 최근 이런 저런 사정으로 이사를 했다. 전세에서 전세로 이사를 한 것이다.('아니, 서울에서 의사 생활 그토록 오래 한 사람이 아직도 집 한 채 없어?') 불행인지 다행인지 이사한 곳의 전셋값이 싸서 돈이 조금 남았는데 그 돈을 '덜컥' 투쟁기금으로 낸 것이다. 물론 가족은 모르게 했다.

김 이사에게 바로 반말로 말했다.

"이 사람아, 정신 차려요! 집도 없는 사람이 무슨 투쟁 기금이야? 한 푼이라도 더 모아서 집이라도 한 채 마련해야지."

한참을 설교하듯 침 튀기며 말하는 나에게 김 이사가 건넨 말은 대충 이랬다.

 

20일 제44차 상임이사회에 앞서 김태호 의협 특임이사(오른쪽)가 최대집 의협 회장에게 투쟁기금 1000만원을 전달하고 있다. ⓒ의협신문
2019년 3월 20일 열린 대한의사협회 제44차 상임이사회에 앞서 김태호 특임이사(오른쪽)가 최대집 회장에게 투쟁기금 1000만원을 전달하고 있다. ⓒ의협신문
장인성 대한의사협회 재무이사(오른쪽)가 25일 열린 의협 제13차 상임이사회에 앞서 최대집 의협 회장에게 투쟁기금 1000만 원을 쾌척했다. ⓒ의협신문
2018년 7월 25일 열린 대한의사협회 제13차 상임이사회에 앞서 장인성 재무이사(오른쪽)가 최대집 회장에게 투쟁기금 1000만 원을 쾌척했다. ⓒ의협신문

형제 같은 두 이사의 기금 내놓기

그가 기금을 내게 된 것은 '인성이 형' 때문이었다. 지난 해 7월 25일 의협 투쟁기금으로 1000만 원을 냈던 '인성이 형'이 의협에 투쟁 기금이 없다며 500만 원을 더 내겠다고 자꾸 나선다는 것이다. 하여, 자신이 1000만 원을 낼 터이니 인성이 형은 더 이상 내지 말라고 말했으며, 그 약속을 지키기 위해 기금을 냈다고 했다.

하…. 답 없는 사람들…. 저 나이에 저렇게 순수할 수도 있구나….

하긴 언젠가 장 이사는 그런 이야기를 했다. 

내가 만약 의협에서 선봉으로 싸우게 된다면 그것은 태호 때문일 것이라며…. '노안으로 제 발톱 깎기도 힘든' 태호는 노인 환자들 발톱까지 깎아준다며…. 한데 저 맑은 태호가 의협 투쟁위에 이름을 올린 것을 보며, '비단길이 아니기에 나도 같이 가야겠다'는 생각을 하게 됐다며….

나와 '직계 피'가 섞이지 않은 남에게 돈 한 푼 쓰기 아까워하는 나 같은 인간이 과연 저 두 사람을 진심으로 이해할 수 있을까? 그 날, 늦도록 술을 마셨지만 전혀 취하지 않았던 것은 그 의문에 대한 답을 찾지 못했기 때문이었을 것이다. 또한, 그 자리가 내내 유쾌했던 것은 이토록 순수한 의사 선생님들이 예전에도 그랬듯, 현재나 미래에도 의협과 의료계를 지켜주실 것이라는 생각 때문이었다.


댓글삭제
삭제한 댓글은 다시 복구할 수 없습니다.
그래도 삭제하시겠습니까?
댓글 0
댓글쓰기
계정을 선택하시면 로그인·계정인증을 통해
댓글을 남기실 수 있습니다.

* 기사속 광고는 빅데이터 분석 결과로 본지 편집방침과는 무관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