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updated. 2024-04-18 17:24 (목)
음식이 약이 된다는 생각이 위험한 이유

음식이 약이 된다는 생각이 위험한 이유

  • 강석하 kang@i-sbm.org
  • 승인 2019.03.25 06:00
  • 댓글 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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음식점에 가면 어떤 음식이 어디에 건강에 좋다는 설명이 줄줄이 달려있는 모습을 종종 보게 된다. "내가 어디가 안 좋은데 어떤 음식을 먹어야 좋으냐?"는 질문도 흔하다.

외국의 경우는 어떤지 모르겠지만 우리나라에서는 음식을 약으로 여기는 생각이 널리 퍼져 있는 것 같다. 

이를 '의식동원'(또는 '약식동원')이라고 하는데 표준국어대사전에서는 "질병 치료와 식사는 인간의 건강을 유지하기 위한 것으로, 그 근원이 동일함을 이르는 말. 이는 중국 고대의 사고방식이다"라고 설명한다.

2014년 <기계저널>에 실린 "음양오행의 밥상"이라는 한의사의 글에서 다음과 같이 설명한다. 

"동양의 음식과 건강에 대한 관점은 천인합일(天人合一)과 음양오행(陰陽五行)에 기초한 약식동원(藥食同源)에 기반을 둡니다. 그러므로 천지만물과 조화와 균형을 이루지 못하면 개인의 기관이나 기능도 조화를 이루지 못하게 되고 질병이 발생하게 됩니다.

그래픽/윤세호기자 seho3@hanmail.netⓒ의협신문
그래픽/윤세호기자 seho3@hanmail.netⓒ의협신문

이러한 질병의 예방과 치료에 있어 적절한 약물을 복용하는 것과 더불어 적절한 음식의 섭취가 강조되는데, 가령 심(心)은 붉은색과 쓴맛(고미 苦味), 폐(肺)는 흰색과 매운맛(신미 辛味), 간(肝)은 푸른색과 신맛(산미 酸味), 비(脾)는 황색과 단맛(감미 甘味), 신(腎)은 검은색과 짠맛(함미 鹹味)에 대응하고, 음양오행(陰陽五行) 중 어떤 요소의 균형이 깨어졌을 때, 각각의 기운들의 상생(相生)과 상극(相剋) 작용을 통해 조화를 되찾게 됩니다."

또, 음양과 오행에 속하는 음식을 제시한다. 

양(陽) - 소고기·닭고기·호두·잣·파·후추·생강
음(陰) - 돼지고기·오리고기·표고버섯·팥·된장
木(간) - 깨·자두·부추·시금치·브로컬리·쑥갓
火(심장) - 보리·살구·토마토·포도·고추
土(비장) - 쌀·소고기·대추·아욱·당근·단호박
金(폐) - 기장·닭고기·복숭아·파·도라지·무
水(신장) - 콩·돼지고기·밤·콩잎·블루베리

어떤 음식이 어느 장기에 좋다는 한의학적 근거는 위와 같은 음양오행(또는 고서에 적힌 전래요법)이다.

도라지나 무가 폐와 기관지에 좋다는 말의 근거는 폐가 오행 중 금에 해당하고, 매운맛과 흰색 또한 금에 해당하는데 그래서인지 중국인의 조상들이 도라지와 무를 금에 해당한다고 배치시켜 놓았기 때문이다. 

이런 음양오행과 의식동원의 사상, 그리고 동의보감 등 고서에 빼곡하게 적혀있는 각종 음식의 치료효과들이 우리가 음식을 통해 질병을 극복하고 건강을 얻을 수 있다는 기대를 품게 만들었다.

그러나 믿음의 근원이 과학적 지식과는 전혀 맞지 않는 무지한 고대인들의 믿음이라는 사실은 우리의 믿음이 잘못된 환상임을 일깨운다.

어떤 성분이 결핍돼서 특정 음식을 통해 보충할 수 있는 등의 몇몇 특수한 상황을 제외하면 음식은 약이 아니다. 생선이나 견과류가 심혈관계 질병 발생을 감소시킨다는 과학적 근거가 있다고 해도 약이 필요한 상태에서 의약품의 대체 수단이 될 수는 없다. 

옛날 사람들은 다양한 음식을 먹거나 쥐똥이나 벌레를 달여 먹었을 때 위약효과 이상의 효과를 얻었을지도 모른다. 유통과 상업이 발달하지 않아서 자신이 사는 지역에서 난 음식만을 먹어야 했기 때문에, 음식의 종류도 한정되고 토양의 특성에 따라 부족한 미네랄이 있었을 것이다.

그런 경우에는 평소에 먹지 않던 음식을 구해다 먹으면 결핍증이 해소됐을 수도 있다. 육류를 섭취하지 못하던 사람들은 동의보감을 보고 지렁이를 약이라 믿고 먹으면 부족한 단백질이 보충돼 도움이 됐을 수도 있다. 

하지만 영양섭취가 풍족한 현대의 한국인들에게는 적용되지 않는다. 오히려 특정한 음식을 먹기 보다는 제한해야 건강에 유익한 상황이 많으며, 이 잘못된 믿음은 오히려 위험할 수도 있다. 

음식이 약을 대신할 수 있다는 믿음으로 인해서 과학적으로 검증된 최선의 치료법을 기피하고 음식으로 고치려다 건강을 해치는 사람들이 생긴다('안아키'를 보라). 또한 평소에 먹지 않던 무엇인가를 먹으면 몸에 좋으리라는 믿음은 효과는 불분명하고 안전성이 의심스러운 한약이 몸에 좋으리라고 착각하게 만든다.

한약재 자체가 가진 독소, 가공과 유통 과정에서 발생하는 유독물질 들을 고려하면 그 위험성을 상쇄하고도 남을 효과에 대한 근거와 필요성 있지 않은 경우에는 피하는 편이 현명하다.

의식동원은 반드시 바로잡아야 할 위험한 착각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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