청진기 의사들은 왜 미움 받는가?
청진기 의사들은 왜 미움 받는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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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승인 2019.03.19 11:1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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몇 년 전 PK 실습을 마친 학생들과 식사를 하며 대화를 나눴다. 가장 인상적인 것이 무엇이었느냐는 물음에 책에서 TOC(treatment of choice)는 TSA(trans-sphenoidal approach) 라고 한 줄 적힌 것이 환자에게 그렇게 큰 의미일 줄 몰랐다는 것이었다.

학생이 실습 중에 경험했던 그 환자는 20대 초반 대학생으로 뇌하수체에 생긴 선종이 pituitary stalk을 압박해 prolactin이 상승했고, 그로 인한 무월경 때문에 내원한 환자였다. 종양을 수술해야 할지, 왜 해야 하는지, 수술 방법은 어떤지, 수술 후 발생할 수 있는 문제는 무엇이며, 수술을 하지 않을 경우는 어떻게 되는지에 대해 환자와 보호자에게 설명하고 상의하는 과정을 지켜본 것이었다. 

필자 역시 학생의 그 대답이 매우 인상적이었다. 우리에게 단 한 줄, 단 한마디의 진단이나 치료가 환자의 인생에서는 어떤 의미를 가지는 것일까에 대해 생각해보는 계기가 됐다. 'TOC : TSA'라고 외웠던 그 짧은 정답에는 20대 초반 여성과 그 가족들의 인생에서 겪어야 할 얼마나 크고 깊은 의미가 담겨있는 것인가.

Pituitary non-functional macreadenoma는 신경외과 의사에게는 비교적 간단한 수술일지도 모른다. 함께 수술하는 이비인후과 의사나 호르몬검사를 하고 진단을 하는 내분비내과 의사에게는 일상일지도 모른다. 그렇지만 그 수술을 받는 사람이 나 자신이거나 내 딸이라면 그 수술이 얼마나 큰 의미가 되는지, 얼마나 걱정되고 궁금한 것이 많을지 생각해 보았다. 

뇌 속에 종양이 생긴 것과 같은 특별한 질환이 아니더라도 마찬가지다. 진료실에서 당뇨병을 처음 진단받은 환자들이 너무 심하게 절망하거나, 자신이 당뇨병 환자임을 쉽게 받아들이지 못하거나, 그래서 내가 처방한 효과적인 약은 안 먹으면서 동네 아줌마가 권한 이상한 즙을 마시곤 하는 행태를 이해할 수가 없었다.

그렇지만 내 나이가 마흔이 되고, 내가 당뇨병 환자일지도 모른다는 생각이 들자 환자들을 이해할 수 있었다. 만약 내가 당뇨병을 진단받게 된다면 아마도 가장 먼저 당뇨약을 먹지 않을 방법, 당뇨에 좋은 음식을 찾게 되지 않을까 싶었다. 환자들은 궁금한 것도 많고, 자신의 병을 받아들일 시간도 필요했던 것이다. 

우리나라에서 갑상선 암은 너무나 일상적인 암이 되었다. 일반인들 사이에서도 갑상선 암으로 죽지 않는다는 것은 상식이 됐고, 대부분의 환자들은 갑상선 암이란 진단을 직설적으로 전해도 충격을 받지 않는다. 단지 어느 병원에서 수술을 받을 것인가를 두고 상의할 뿐이다.

그렇다 하더라도 여전히 진료실에서 '갑상선 암'이라는 진단을 들고 눈물을 흘리는 환자들이 있다. 나는 아주 무미건조하고 짧게 위로할 뿐이다. 그것도 당신 뒤로 수십 명의 환자들이 기다리고 있단 눈치를 주면서 말이다. 

"갑상선 암으로 안 죽어요. 수술하시면 됩니다." 

환자들이 뭔가를 더 물어보려 하면, "그건 수술하시는 교수님과 상의하세요."라고 잘라버린다. 그러나 그 수술을 내가 받는다고 생각해보자. 갑상선 암으로 죽진 않겠지만, 수술이라는 것은 언제나 인생의 큰 고비일 수 밖에 없다. 30초짜리 단답으로 위로가 될 일이던가. 

환자들이 의사들을 미워한다기 보다는 의사들에게 실망했다는 말이 더 맞을 것 같다. 의사들에게 일상이 아닌 질병이 없고, 환자들에게는 일상인 병이란 있을 수 없기 때문이다. 어떤 질병이든 그것이 아무리 흔한 병이라도, 환자에게는 내 인생에 단 한 번뿐인 병이다. 내 가족의 생명에 단 한번의 기회가 될 수도 있다. 내가 하루에 그 병을 50명을 보든, 60명을 보든 말이다. 나에게는 수백 번, 수천 번 보고 또 봐서 말하기도 지겨운 그 일상이 그 모든 환자들에게는 일생 일대의 사건이다. 

이 간극을 조금이라도 좁히지 못한다면 의사들은 결코 의사 아닌 다른 사람들에게 사랑 받을 수 없을 것이다. 이 간극을 누가 좁힐 수 있을 것인가. 환자들도 의사들에게는 그것이 일상임을 안다.

단지 나와 내 가족의 단 하나밖에 없는 생명 앞에서 의사들도 그 일상의 무게에 대해서 더 깊이 이해해달라고, 더 책임감 있어 달라는 것이다. 당신에게는 그것이 일상일지 몰라도 내 자녀, 내 아내, 내 아버지의 생명에 단 한번 밖에 없는 기회임을 잊지 말아달라는 것이다.

우리가 이 바쁜 일상 가운데서 매일 만나는 수없이 많은 환자들을 각각 한 사람씩 의미를 부여할 수 있을까. 나 스스로를 너무나 혹사시키는 일이고, 그래서 불가능할지도 모른다. 그러나 적어도 우리가 하고 있는 일의 무게가 그 모든 사람들의 삶에서 하나의 질병을 만났을 때의 의미로 환산한 값의 합임을 인식한다면 그것이 출발이 될 수는 있을 것이다. 적어도 내 일상 어디에선가는 그 무게감이 드러나지 않을까.

우리 모두가 아주 조금씩만 그 무게를 드러낸다면 그러한 일이 오래 지속된다면, 개개인의 의사는 아니더라도 최소한 '의사'라는 호칭이 담고 있는 그 의미는 존경 받기 시작하지 않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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