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updated. 2024-03-28 17:57 (목)
춘래불사춘(春來不似春), 의료계 봄은 오는가?
춘래불사춘(春來不似春), 의료계 봄은 오는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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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승인 2019.03.08 10:2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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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언휘 원장(박언휘종합내과·한국노화방지연구소 이사장)
박언휘 원장(박언휘종합내과·한국노화방지연구소 이사장)

입춘이 벌써 지났는데도 계절은 거꾸로 달음박질을 치고 있는 듯하다.

진료가 끝나지 않았지만, 필자는 서둘러 개원내과의사회 모임에 참석하기 위해 달려갔다.

개원내과의사회 모임에 참석한 각 지역대표들은 오진 의사의 법정 구속과 봉침환자의 응급처치에 나선 의사에게 거액의 손해배상을 제기했다는 소식에 술렁였다.

옆좌석에 앉은 P선생님은 비행기를 타면 미리 캔맥주를 마신다고 했다.

이유인즉 착하고 순수한 아이들에게 거짓말을 하고 싶지 않기 때문이라는 것. 얼마 전 가족이 외국 여행을 하다 비행기에서 환자가 발생한 적이 있다고 했다. 음식을 잘못 먹어 장염으로 고생하며 간신히 버티는 상황이었기 때문에 선뜻 나서지 못했다고.

그런데 아이가 와서 큰소리로 "아빠 사람이 아프데…. 아빠는 의사잖아요!". 착한 아이에게, 그리고 주위 사람들에게 너무 미안했다고 했다.

하지만 오진 의사 구속 사건과 봉침환자 응급처치 사건 이후 비행기를 타는 의사들 사이에 술 한 잔 미리 마셔둬야 하는 것 아니냐는 웃지 못할 이야기가 회자되고 있다.

봉침환자 응급처치 사건의 전말은 이렇다. 30대 초등학교 교사 K씨가 부천의 모 한의원에서 봉침시술을 받은 후 약물 부작용에 의한 아나필라틱 쇼크(anaphylatic shock)가 발생했다. 

봉침을 시술한 한의사는 환자의 상태가 나빠지자, 같은 층에 있는 가정의학과 원장에게 도움을 요청했다. 의사는 119 구급대원이 올 때까지, 히포크라테스 정신에 입각해 심폐소생술을 하면서 최선을 다해 환자를 위해 응급처치를 했다. 하지만 환자는 뇌사 상태에 빠졌고, 결국 한 달 뒤에 사망했다.

문제는 이때부터 발생했다.

생명을 살리기 위해 최선을 다한 의사의 선의는 거액의 소송으로 되돌아 왔다. 응급처치에 나선 가정의학과 원장은 '응급상황에 제대로 대처하지 못한 의사'라는 오명과 9억 원 대의 손해배상 소송에 휘말렸다.

분만을 돕던 산부인과 개원의사와 횡격막 탈장을 진단하지 못한 의사들은 업무상 과실치사라는 형사 소송에 시달리고 있다. 

법원은 최선을 다한 선한 사마리아인 같은 의사에게 주의의무와 설명의무를 다하지 못한 책임을 과중하게 묻기 시작했고, 의사는 벼랑 끝에 서게 됐다. 

의료행위의 결과가 안 좋으면 과정이야 어떻든 의사가 책임을 져야 한다는 인식이 확산되고 있다.

오로지 환자를 살리기 위해 위험을 무릅쓰고, 심혈을 기울여야 하는 의료인들에게 주의의무와 설명의무를 다했다는 것을 증명하도록 요구하고 있다. 제대로 증명을 하지 못한 경우엔 민형사상 책임을 져야 한다는 것이다.

환자를 제대로 치료할 의약품이나 기구가 없는 비행기나 여행지에서 환자가 발생해도 마찬가지다. 오로지 선량한 히포크라테스의 후예로서 의료행위를 대가없이 행한다 할지라도, 환자가 잘못되는 경우에는 진료한 의사가 잘못이 없음을 증명해야 하고, 증명하지 못한 경우에는 책임을 져야 하는 상황이다.

비행기를 타자 마자 캔맥주을 마시고 "사랑하는 내 딸아, 아빠는 술에 취해서, 환자를 볼 수가 없단다"라고 이야기할 수밖에 없는 아빠의 심정을 십분 이해할 수 있다.

의사에게 잘못이 없음을 증명하도록 하고, 과중한 책임을 지도록 불이익을 줄 경우에는 더욱 참담한 현실이 기다리고 있다는 사실을 세상 사람들은 알까?

간단한 응급처치로 질식하는 환자를 살릴 수도 있고, 귀중한 생명을 지킴으로써 가족들이 아픔을 비껴갈 수 있도록 할 수도 있다. 

그러한 의료인의 의료행위에 대해 비합리적이고도 비정한 책임 전가로 인한 후유증은 세상 사람들에게 돌아갈 수 있다.

최선을 다해 진료한 의사에게 과잉 진료라는 올가미를 쓰우고, 열심히 밤잠도 자지 않고 생명을 살리기 위해 최선을 다한 의사에게 업무상 과실치사 혐의로 구속하는 사례는 세계적으로 전무후무한 일일 것이다.

생명을 구하기 위해 나선 의사를 적폐 대상으로 깍아내리고, 환자를 위해 최선을 다한 의사를 살인자로 몰아세우고 있다.

차가운 현실은 따뜻한 봄기운이 오는 대지와는 상관이 없어 보이는 것은 웬 까닭일까?

봄이 오지만, 의료계에는 아직 차갑고 냉혹한 겨울바람이 불어옴을 느낀다. 따뜻한 봄 햇살 같은 의료정책이 필요하다. 방어진료로 의사를 움추리게 하면살아날 수 있는 생명이 위태롭게 된다. 가슴이 아파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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