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안전한 진료 환경' 생각해 본 적 있나?
'안전한 진료 환경' 생각해 본 적 있나?
  • Doctorsnews admin@doctorsnews.co.kr
  • 승인 2019.02.18 06:00
  • 댓글 0
이 기사를 공유합니다

'병원의 책임에 대한 법적 문제' 고민해야할 시점
정지태 고려의대 교수(고대안암병원 소아과학교실)
정지태 고려의대 교수(고대안암병원 소아과학교실)

지난해 모 국립대학병원 강당에서 열린 학회가 있어서 참석했다. 잘 지어진 거대한 건물과 널찍한 공간을 보며 부러움을 느끼면서 강당에 들어갔는데 벽에 병원의 비전, 미션, 핵심 가치가 크게 걸려 있다.

저런 것이 유행하기 시작한지 꽤 됐는데 그냥 만들어 거는 것이 유행인지, 실천을 하고 있는 것인지는 모르겠다. 하여간 내용이 궁금해 들여다보니 모두 환자를 잘 돌보겠다는 내용뿐이다.

어디에도 훌륭한 의사를 교육하겠다는 말도 없고, 연구를 잘해 보겠다는 말도 없다. 다른 대학 교수에게 물어봤다, 저 플래카드에 잘 못된 점이 무엇인지….

한참 보더니

(대학교수)"별 문제 없는데요. 환자 열심히 봐서 병원 수입 올리고, 국민 건강 향상하겠다는 것이 전부네요. 뭐가 문제지요?"

(나)"이곳이 국립대학병원의 강당인데, 내 건 표어에 교육과 연구에 관한 언급이 없는 것이 문제 아닌가요?" (대학교수)"우리 대학도 마찬가진데요 뭐. 교수님네 대학은 좀 다른가요?"

(나)"우리 병원의 핵심가치는 교육과, 첨단 연구인데요." 라고 말을 하니 뜨악한 표정이다. (대학교수)"돈도 안 되는 일을 하겠다고 그런 것을 핵심가치로 내세웠다고요? 좋~은 대학병원에 계시는군요." 하며 약간 야유 섞인 답이 돌아왔다.

사실 우리 대학도 '비전 선포'에서 쓰인 표어가 그렇다는 이야기지 온통 병원 내에는 환자 중심 병원을 외치는 구호와 새벽부터 외래 보기, 토요일 진료하기 등등 어떻게는 살아 남아보자는 말 뿐이다.

'상징적으로라도 의과대학의 부속병원-미래의 의사를 교육하는 곳-이라는 느낌은 있어야 하지 않을까?'하는 아무짝에도 쓸모없는 생각을 가지고 있는 필자는, 올해에는 전국의과대학의 비전, 미션, 핵심가치를 모두 모아서 그 안에 담고 있는 각 의과대학의 교육 철학에 관한 연구를 시행해 보겠다는 어처구니없는 계획을 세웠다. 연구비를 받을 수 있을지는 감도 잡히지 않는다.

많은 병원들이 신경을 쓰는 'JCI 인증'이란 것이 있고, '의료기관평가'라는 제도도 있다. 거기에 있는 항목들이 과연 평소에도 잘 지켜지고 있는 것인지, 인증 평가 기간만 잠시 지켜지는 것인지는 잘 모르겠지만 매번 평가를 통과하고 있는 것을 보면 참 직원들이 무에서 유를 창조하느라 많이 애쓴다는 감탄이 절로 난다.

뭔가 다른 병원과는 차이점이 있는 안전한 서비스를 제공한다는 선전을 위해 금빛 번쩍이는 인증서를 병원 밖에 게시해 환자 유인책으로 쓰기 위해 많이들 애를 쓴다. 이런 인증 평가를 시행하는 이유는 환자와 의료진의 안전을 도모하고자 함인데 과연 현실에서도 그런지 도무지 가늠이 안 된다.

어떤 경우에도 병원 경영진이 직원의 안전한 근무환경을 위해 무엇인가를 적극적으로 벌이고 있다는 느낌은 전혀 들지 않는다. 작년 한해 응급실 폭력 사건이 전국적으로 일어난 결과로 응급실 폭력에 대한 법률이 연말에  통과됐다는데, 법만 있으면 안전해 지는 것인가? 병원 직원을 위한 병원 당국의 노력은 무엇이 있었는가? '설마 우리 병원에서 그런 일이 일어나겠나? 그것도 내 임기 중에….' 이것이 대개의 병원장이 갖고 있는 생각이 아닐까. 내가 그들을 모욕하는 것일까? 

이런 대충 넘어가는 안전 관리의 결과가 벌써 두 달이 다 되어가는 '외래진료 중인 의사 살인 사건'이다. 병원마다 과연 의료진의 안전을 위한 노력이 지난 한해 얼마나 있었는지 모두 반성해 볼 일이다.

전공의에 관한 처우 개선은 이뤄지고 있지만, 그들의 빈자리를 PA라는 불법적인 방법으로 메우고 있고, 전임교원과 임상교원에게 과도한 업무 부담을 주고, 수익 증대를 강요하고 있지 않은가? 강력 범죄가 일어날 상황이 예상되고 있음에도 큰 소리만 질러댔지, 실질적인 대책을 세우지 않았던 의료계의 반성이 우선돼야 한다. 

지금 의료계는 황당한 사건에 잠시 망연자실했다가 서서히 잊어가고 있지만, 피해 의사의 가족을 위해서도, 재발 방지를 위해서도 이 사건을 심층적으로 분석해 볼 필요가 있다.

순직이란 말도 나오고 있지만 이 '순직'이란 단어는 대개 공무원이나 군인의 경우에 사용되는 말이다. 사립대학병원에서 일어난 이 사건은 '업무상 재해'라고 해야 하지 않을까 싶다. 업무상 재해는 사용자가 유족에게 피해보상의 의무가 있다. 산업재해에 해당되는 사항은 아닐까? 여러 가지 방향으로 생각해 봐야 할 일이다.

피해자 가족은 조위금을 병원에도 기부하고, 학문연구를 위해서도 기부했다는 말도 듣고, 주변 사람들이 피해자 자녀교육을 위해 모금을 한다는 말도 들었다. 그런데 근무했던 병원에서는 이 대형 사고에 대해 책임지고 무엇인가 했다는 말을 못 들었다. 가족이 나서지 않더라고 의료계가 나서서 이 사건에 대한 '병원의 책임에 대한 법적인 문제'를 제기해 봐야 하지 않을까 생각한다.

정부가 나서서 법을 만들고 무슨 조치를 해달라고하기 전에, 우리는 우리의 삶의 현장을 안전한 곳으로 만들기 위해 스스로의 권리를 주장해야 하지 않을까?

'근본적인 대책이 필요'하다는 말을 할 것이 아니고, 병원 스스로 근본적 재발 방지 대책을 세우는 책임지는 모습을 보여야 마땅한 것 아닐까? '우리 병원이 아니어서 다행이다. 내가 아니어서 다행이다.'

이런 생각으로는 재발을 방지할 수 없다.

우리의 태도가 바뀌어야 세상이 바뀐다.


댓글삭제
삭제한 댓글은 다시 복구할 수 없습니다.
그래도 삭제하시겠습니까?
댓글 0
댓글쓰기
계정을 선택하시면 로그인·계정인증을 통해
댓글을 남기실 수 있습니다.

* 기사속 광고는 빅데이터 분석 결과로 본지 편집방침과는 무관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