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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공지능기기, 임상검증도 없이 허가부터?
인공지능기기, 임상검증도 없이 허가부터?
  • 이정환 기자 leejh91@doctorsnews.co.kr
  • 승인 2019.01.21 19:0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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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한영상의학회 "검증 안 된 인공지능기기 무분별 허가" 경고
의약품 허가 엄격한 평가 원칙 적용해야...[대한의사협회지] 최근호

최근 국내·외에서 여러 인공지능기반 진단 보조 소프트웨어(이하 인공지능기반 기기)가 식품의약품안전처 및 미국 식품의약국(FDA)과 같은 규제 기관들의 허가를 통과하기 시작하면서 전문가들의 우려가 커지고 있다.

인공지능진단 보조 소프트웨어를 포함한 첨단 디지털 헬스케어 의료기기에 대해 적절한 임상검증을 하지 않은 상황에서 무리하게 보험급여를 하거나 임상에 도입할 경우 문제가 될 수 있다는 이유 때문이다.

대한영상의학회는 <대한의사협회지> 최근호에 '첨단 디지털 헬스케어 의료기기를 진료에 도입할 때 평가 원칙'이라는 주제의 논문을 통해 "인공지능기반 진단 보조 소프트웨어'의 식약처 및 FDA 허가는 임상검증의 시작일 뿐"이라며 최신 인공지능 기반 기기에 대한 기본적인 평가 원칙을 소개했다.

식약처·FDA 허가 수준…매우 엄격하지 않아 우려
인공지능 기반 기기를 환자에게 적용하기 위해서는 국내에서는 식약처 허가를, 미국에서는 FDA의 허가를 받아야 한다.

식약처와 FDA의 허가는 인체를 대상으로 해당 기기를 사용할 수 있다는 것과 이러한 목적으로 판매할 수 있다는 허가. 디지털 헬스케어 기기의 안전성과 유효성에 대해 일정 수준의 평가를 하기는 하지만 이런 평가가 해당 기기가 환자에게 도움이 되고 진료 현장에서 사용할 만한 가치가 있다는 것을 증명하는 절차가 아니라는 것을 이해해야 한다.

영상의학회는 "허가를 위해 매우 높은 수준의 임상적 근거가 요구되는 의약품의 경우와는 달리 소프트웨어와 같은 디지털 기기는 일반적으로 낮은 수준의 근거만으로 허가가 이뤄진다"고 지적했다.

최근 정부가 첨단 디지털 헬스케어 의료기기에 대해 식약처 평가로부터 건강보험심사평가원 평가에 이르는 여러 단계의 평가 과정을 신속하게 진행하는 방법(선도입-후평가 개념)도 구상 중이지만, 인공지능 기반 기기에 대해 식약처와 FDA의 허가는 의약품만큼 매우 엄격한 근거를 요구하지 않아 '디지털 예외주의'(digital exceptionalism)로 인해 충분히 검증되지 않은 소프트웨어를 무분별하게 퍼뜨릴 수 있다는 것.

특히 선도입-후평가 상황에서는 제도의 시행에 앞서 먼저 '후평가'를 어떻게 적절히 수행할 수 있을지에 대한 구체적이고 체계적인 대비가 중요하지만, 국내에는 후평가를 위한 체계가 잘 갖춰져 있지 않다는 점도 해결해야 할 과제다.

영상의학회는 "국내와는 달리 FDA는 'National Evaluation System for Health Technology'라는 체계를 만들어 대비하고 있다"며 "후평가를 어떻게 적절히 수행할 것인지에 대한 구체적이고 체계적인 대비를 마련했다"고 강조했다.

박성호 대한영상의학회 임상연구네트워크장(서울아산병원 영상의학과)은 "인공지능 기반 기기에 대한 식약처 또는 FDA의 허가는 임상검증의 끝이 아닌 시작에 불과하다"며 "해당 인공지능 기반 기기가 실제 환자에게 도움이 되는지 제대로 임상검증을 하는 것은 진료 현장의 의료인의 몫이고, 선도입-후평가 방식의 제도하에서는 진료 현장의 모든 의료인이 더욱 많은 임상검증의 부담을 안게 된다"고 밝혔다.

"새로운 인공지능 기반 기기들이 정말로 환자와 진료에 도움이 되는지를 면밀하게 평가하려는 적극적 자세를 갖는 것이 중요하다"고 지적한 박성호 임상연구네트워크장은 "식약처와 FDA의 허가는 단지 임상검증의 시작이라는 개념을 산업·기술계에 잘 이해시킬 수 있도록 노력해야 한다"고 조언했다.

선도입-후평가를 통해 인공지능기반 진단 보조 소프트웨어와 디지털 헬스 기기를 임상에 보다 용이하게 적용하려는 '디지털 예외주의'에 대해 대한영상의학회가 문제를 제기했다. [사진=pixabay]
선도입-후평가를 통해 인공지능기반 진단 보조 소프트웨어와 디지털 헬스 기기를 임상에 보다 용이하게 적용하려는 '디지털 예외주의'에 대해 대한영상의학회가 문제를 제기했다. [사진=pixabay]

진료 현장 도입 및 급여결정 시 적절한 임상검증·평가 원칙 적용해야
영상의학학회는 인공지능 기반 기기를 광범위하게 진료 현장에 도입하거나 보험급여를 적용하기에 앞서 필요한 적절한 임상검증과 평가에 대해 분명한 원칙과 근거가 필요하다고 강조했다.

가장 분명한 기준은 편향 없이 잘 수행된 임상시험을 통해 어떤 인공지능 기반 기기를 사용함에 따라 환자의 궁극적 치료 결과가 좋아짐을 입증해야 하고, 더 나아가 이 인공지능 기반 기기를 사용하는 진료행위가 비용대비 효과가 높다는 것이 입증해야 한다는 것.

인공지능 기반 기기의 경우 환자에게 직접 위해를 가할 가능성이 작다고 생각할 수도 있지만, 소프트웨어로 인한 진단 오류는 궁극적으로 환자에게 부적절한 검사나 치료를 유발할 수 있고, 결과적으로 환자의 건강에 심각한 위해를 초래할 수 있다.

무엇보다 환자의 치료 결과에 궁극적으로 도움을 주지 못하는 소프트웨어의 도입은 불필요한 의료비의 상승은 물론 충분히 검증하지 않은 소프트웨어에 대해 보험급여를 하면 제한된 건강보험재정 소모로 인해 꼭 필요한 의료행위를 보험급여 하는 것이 더 어려워지는 이중의 문제를 일으킬 수 있다.

박성호 임상연구네트워크장은 "산업·기술계가 이 부분에 대해 잘 이해를 할 수 있도록 지식과 정보를 제공하는 것도 환자에 대한 궁극적 책임을 지는 의료인의 중요한 역할"이라며 "인공지능 기반 기기의 진료 현장 도입 및 급여 결정은 안전성, 임상적 유용성, 경제성 모두에 대한 평가를 기반으로 해야 하고, 이는 모든 의료기기에 공통으로 적용되는 원칙"이라고 강조했다.

"인공지능 의료용 디지털기기가 환자 진료에 어느 정도 도움을 준다고 하더라도 이 소프트웨어를 사용하는 진료가 이를 사용하지 않는 기존의 진료와 비교해 비용대비 효과가 낮다면, 이 소프트웨어를 진료에 사용하는 것이 반드시 최선의 진료라 할 수 없고, 제한된 건강보험재정을 효율적으로 사용하는 방법이 될 수 없다"고도 했다.

첨단 디지컬 헬스케어 의료기기 평가배제? "비합리적이고 비윤리적"
최근 산업계에서 인공지능 의료용 소프트웨어를 포함한 첨단 디지털 헬스케어 의료기기에 대해 건강보험심사평가원이나 한국보건의료연구원의 평가 과정을 불합리한 과도한 규제로 보는 시각도 크다. 또 이런 평가 자체를 배제하는 것은 비합리적이며 비윤리적이라는 지적도 나오고 있다.

박성호 임상연구네트워크장은 "두 기관의 중복되는 측면, 절차적 개선과 효율화가 필요할 것으로 판단되지만 이런 평가 자체를 배제하고 충분한 임상적 근거를 갖추지 못한 디지털 헬스케어 의료기기에 대해 무리한 급여나 진료 현장 도입을 요구하는 것은 비합리적이며 비윤리적"이라고 지적했다.

"인공지능 기반 기기에 대한 신의료기술평가를 무리하게 신속·간소화하는 것이 신의료기술평가를 인공지능 기반 기기와 관련해 비급여 의료행위 확대의 창구로 변질시키게 될 것"이라는 점도 우려했다.

박성호 임상연구네트워크장은 "'문재인 케어'가 추구하는 환자에게 도움이 되는 의료행위를 가능한 한 많이 급여로 제공하고 비급여를 줄이려는 정책 방향과 오히려 반대로 가는 것은 물론 신의료기술평가의 근본 취지를 퇴색시킨다"고 꼬집었다.

영상의학회는 첨단 디지털 헬스케어 산업의 육성을 위해 신의료기술평가 체계의 근본을 왜곡시키는 것은 매우 근시안적인 정책에 불과해 더욱 적절한 다른 지원 방법에 대한 고려가 필요하다는 의견도 제시했다.

"산업육성을 위한 목적의 보상이라면 근본적으로 산업계 내 별도의 진흥기금 등을 통한 보상체계를 마련하는 것이 타당하다"고 밝힌 박성호 임상연구네트워크장은 "국민건강권 보장을 위해 사용돼야 하는 건강보험재정을 디지털 헬스케어 산업의 육성을 위해 사용하는 것은 매우 부적절하며, 이는 궁극적으로 국민의 건강에 위해가 되는 정책이 될 것"이라고 경고했다.

의료계-산업계-정부, 상호 이해와 협력 필수적
충분한 임상검증이 이뤄지지 않은 기술을 무리한 보험급여를 통해 지원하는 것은 적절하지 않으며, 이런 보상은 산업계에 '대충 만들어도 인공지능 디지털 혁신이란 말만 붙이면 사업을 할 수 있다'는 식의 잘못된 메시지를 전달할 수 있고 의료계에 '환자에게 도움이 되지 않더라도 급여·보상을 받기 위해 일단 기기를 사고 쓰고 보자'는 도덕적 해이와 오·남용을 유발할 수 있다는 우려도 제기했다.

박성호 임상연구네트워크장은 "첨단 디지털 헬스케어 의료기기의 발전이 국민건강증진과 산업육성 모두에 균형 있게 도움이 되기 위해서는 의료계-산업계-정부의 상호이해와 협력이 필수적"이라며 "첨단 인공지능 기반 기기와 관련해 인공지능 의료용 소프트웨어의 개발, 임상검증, 허가, 진료 현장 도입 및 지속적 감시에 있어 환자를 최우선으로 생각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박성호 임상연구네트워크장은 "기술과 산업 중심의 편향된 시각을 지양하고 의료와 기술·산업을 균형 있게 고려하고, 이를 통해 기술과 산업의 발전이 의료의 발전에 기여하되 환자에게 위해가 되거나 불필요한 의료비의 증가를 초래하는 일이 없도록 해야 한다"고 조언했다.

오주형 대한영상의학회장은 "학회는 첨단 디지털 헬스케어 의료기기를 진료에 도입할 때, 학술적 원칙과 객관적 근거를 바탕으로 국민건강증진에 기여할 수 있는 가치 중립적 전문가의 역할을 하고 있다"면서 "국민에게 정확한 정보를 제공하고, 합리적인 정책을 제안하며, 산업계 및 유관 정부 기관들과 올바른 관계 형성과 협력을 위해 지속해서 노력할 것"이라고 밝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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