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진료실 폭력, 이대로 괜찮은가?
진료실 폭력, 이대로 괜찮은가?
  • 의협신문 choisw@kma.org
  • 승인 2019.01.14 17:2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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양동호 광주광역시의사회장(연합외과 원장)

희망찬 2019년 새해가 밝았다. 그러나 새해 벽두부터 우울한 소식으로 의료계는 침울한 분위기이다. 작년 12월 31일 강북 삼성병원 정신과 임세원 교수가 환자가 휘두른 칼에 흉부를 수차례 찔려 사망한 사건 때문이다.

더구나 임 교수는 위급한 상황에서도 주변 직원들과 간호사들이 걱정되어 충분한 도피 시간이 있었음에도 두 번이나 멈칫 한 채 뒤를 돌아보며 "도망쳐, 신고해."를 외치며 지체하다가 변을 당해 안타까움을 더하고 있다. 

의료계에서는 장례식에 조문은 물론 성금을 모아 남아있는 가족 분들에게 조금이라도 도움을 주고자 했으나 유족들은 이것마저 사양하며 조의금은 병원과 신경 정신과학회에 기부해 정신적 고통을 받는 모든 환자들이 사회적 낙인 없이 적절한 치료를 받도록 돕는데 쓰라고 했다고 한다.

임 교수에게 진료를 받았던 횐자들은 평소 임 교수가 환자의 아픔에 진심으로 공감하던 좋은 의사였다고 회상하며 사고 당일에도 예약 없이 불쑥 찾아온 환자를 거절하지 않다가 참변을 당했다고 전해진다. 

조문객중 20% 이상이 환자와 그 가족들이며, 그 분들이 눈물을 흘리며 진심으로 슬퍼했다는 소식을 접하고 정말 환자를 위하는 훌륭한 동료 의사를 잃었다는 사실이 애석할 따름이다. 

며칠 전에는 또 이곳 광주에서 우울증으로 치료받던 환자가 의사에게 욕설을 하고 컴퓨터 모니터를 주먹으로 망가뜨리는 등 난동을 부리다가 불구속 입건되어 경찰 조사 중이다.

진료실의 폭력 사태는 어제 오늘의 일이 아니다. 병원 응급실 내 폭행은 이제 새로운 뉴스가 아닐 정도로 심심찮게 벌어지고 있다. 2008년 6월 충남대병원에서 치료결과에 불만을 품은 환자가 퇴근하던 담당 교수를 흉기로 찔러 살해한 사건이 있었으며, 2009년 11월에는 강원 도 원주시 비뇨기과 의원에서 외래환자가 휘두른 흉기에 간호사 2명이 숨졌고, 2012년 8월 경남 양산시의 한 병원에서 정신질환을 앓던 환자가 자신을 상담하던 여의사를 흉기로 찔러 중상을 입혔다.

이듬해 2월에도 대구 수성구 정신건강의학과 의원에서 50대 환자의 흉기에 의사가 크게 다쳤고, 지난해 2월에는 충북 청주시에서 환자가 흉기를 휘둘러 치과의사가 중태에 빠지는 사건이 있었다.  또한 작년 여름에는 응급실에서 술에 취한 사람이 진료 중이던 응급실 당직의사를 팔꿈치로 가격하여 코뼈가 부러지는 충격적인 영상이 공개되어 전국 의사대표들이 경찰청 앞에서 정부의 진료실 폭력사태 재발방지 대책을 촉구하는 집회를 하기도 했다. 

보건복지부에 따르면 2017년 한 해 동안 의료인 폭행, 협박 등으로 신고, 고소된 사건은 893건으로 하루 평균 2.4회 꼴로 발생하며, 신고하지 않은 사건까지 생각하면 가늠하기 어려울 정도로 많이 일어나고 있다고 한다.

현재 청와대 국민청원 게시판에는 '강북삼성병원 의료진 사망 사건 관련의료 안정성을 위한 청원'이란 제목의 글이 올라와 9일 현재까지 6만 명 이상의 국민들이 이 청원에 참여했다. 국민 청원은 30일 이내에 20만 명이 넘으면 청와대에서 책임 있는 답변을 준다고 하니 많은 광주 시민이 참여하여 이 기회에 진료실 폭력을 뿌리 뽑는 계기가 되었으면 한다.

이번 강북삼성병원 사건 이후, 안전한 진료실을 위해 사회적인 변화가 필요하다는 목소리가 여기저기에서 나오고 있다. 광주시 의사회에서도 대책 마련을 위해 작년 가을 광주 지방경찰청과 업무 협약을 맺고 한달음 서비스를 시행하여 진료실이나 응급실에 경찰서와 직통으로 연결되는 비상벨을 설치하여 초기에 경찰 진압이 즉시 될 수 있도록 하는 한편 진료실에서의 폭행을 엄하게 법 집행을 하기로 협약한 바 있다.

그런데 왜 진료실에서의 폭행은 끊이지 않고 계속 되는 것일까? 여러 가지 원인이 있겠지만  첫째는 전문가인 의사집단의 혐오를 부추기는 선정적인 보도를 원인으로 꼽을 수 있다. 얼마 전에도 모 드라마에서 수술결과에 불만을 품은 환자가 의료인을 폭행하는 장면을 내보낸 적이 있는데 드라마에 가끔씩 나오는 의료인 폭력 장면은 은연중 국민들에게 의료인에 대한 폭행을 자연스럽게 보는 생각을 심어줄 수 있다.

한국사회에서 의료인은 선망의 대상이면서도 한편으로는 의료인에 대한 배타적인 심리가 짙게 깔려있는 것 같다. 이는 일부 언론의 선정적인 보도가 의사 집단 전반에 대한 불신과 혐오를 조장하는 데 일정부분은 기여했다고 생각한다.

일부 비양심적인 의사의 사건이 언론을 통해 보도 됐을 때, 일부 언론은 시스템적인 문제나 일부 몰지각한 의사의 문제로 보지 않고 전반적인 의사에 대한 불신을 조장하는 방식으로 문제 제기를 해온 것이 사실이다. 속칭 '의사 때리기'가 언론 보도에 너무 만연해 있다.

그러나 의사 집단에 대한 불신은 사회 전체의 손해로 이어지며 의료비의 증가로 이어 질 수 밖에 없고 문제가 해결되지는 않는다. 앞으로 언론은 어떤 사태가 생겼을 때 의사 전체에 대한 불신과 혐오 감정을 부추기는 자극적인 보도를 멈추고 실질적인 해결을 위한 문제 제기를 해야 한다고 생각한다.

둘째는 우리사회가 폭력에 대해 너무 관대하다는 것이다. 그래서 병원 내에서의 불만을 폭력적으로 표출하는 것에 대해 무감각해진 것 같다. 그러나 일반적인 폭력과 진료실에서의 폭력은 그 결과가 다른 사람들의 건강에 심각한 위해를 가할 수 있다는 점에서 엄격하게 분리되어 해석 되어져야 하며 더 중한 범죄 행위라는 인식을 일반인에게 심어줘야 한다.

셋째는 선진국처럼 진료실이나 응급실에서의 폭행에 대한 엄격한 법 집행이 이루어지지 않는 것도 원인으로 꼽을 수 있다. 대개의 경우 폭행을 당한 의료인은 합의를 해달라는 종용에 시달리고 보복이 두려워 적당히 합의해 주는 경우가 많은데 이번 사건을 계기로 반의사 불벌죄 ( 피해자가 처벌을 원하지 않으면 처벌할 수 없는)조항을 없애는 법 개정을 서둘러야 한다.

그래서 어떠한 이유에서건 진료실에서의 폭행은 곧바로 엄중하게 처벌될 수 있다는 인식이 국민들 사이에 각인이 되어 있어야 폭력사태가 줄어 들 것이라고 본다. 진료실이나 응급실에서 의료인의 안전은 곧바로 다른 환자의 생명과 직결이 되는 상황이므로 이것은 국민 건강권 수호 차원에서 정부가 서둘러 법 개정을 포함한 모든 안전 대책을 마련해야한다.

이번 의료인 폭행 사망 사건을 계기로 의료계에서는 의료진의 직업상 권리 등 여러 가지 이유로 진료거부권 도입이 필요하다는 주장이 제기되고 있다. 의료법에는 원칙적으로 계약자유가 있는데 이는 의사의 자유로운 선택에 대한 환자의 권리는 의사의 재량에 따라 치료하고자 하는 환자만 수락할 의사의 자유에 해당한다.

하지만 현행법상 응급의료에 관한 법률이나 의료법을 통해 의사의 진료거부는 불법으로 규정되고 있다. 그러나 한국을 제외한 어느 국가도 진료 거부에 대해 형사처벌로 다루지는 않는다. 응급 상황이 아닐 때 의사가 특정 환자의 진료를 거부할 수 있는 건 의사의 당연한 권리인 만큼 진료거부금지 조항을 삭제 또는 선언적 규정으로 전환하고, 벌칙조항은 삭제해야 하며 앞으로는 의사가 진료를 거부할 수 있는 권리 즉, 진료 선택권을 도입해야한다.

그리고 보다 근본적인 해결책으로는 의과대학, 간호대학에서는 윤리교육을 강화하고 의료인들에게는 의료인 직업윤리교육을 꾸준하게 하여 의료인이 국민들로부터 존경 받을 수 있는 자질을 함께 키워가는 노력을 기울여야 한다.

현재 대한의사협회에서도 2년 전부터 보건복지부와 함께 전문가 평가단 시범사업을 운영하고 있다. 현재까지는 경기도, 광주광역시, 울산광역시 등, 세 곳에서 시범적으로 운영하고 있는데 이는 진료 중에 비도덕적인 진료행위나 의사의 품위를 손상시키는 행위가 있을 때 일반인이나 의사들이 고발을 하게 되면 의사들로 이루어진 전문가 평가단에서 심사를 하게 되고 해당 행위가 인정되면 보건소나 보건복지부에 고발조치하여 시정토록 하거나 행정처분을 받게 하는 일종의 자율정화 시스템이다.

의사 수가 13만이 넘어서면서 대한 의사협회에서도 자율정화의 필요성이 점차 확대됨에 따라 올해부터는 시범사업에 참여하는 시,도를 훨씬 늘린다고 한다. 몇 년 후 전국적으로 전문가 평가제도가 정착되면 비도덕적인 진료 행위 등은 훨씬 줄어들어 의사들에 대한 신뢰구축에 기여할 것으로 기대하고 있다.

또한, 사회적으로는 의료인을 예우하는 사회적 분위기 조성이 필요하며 장기적으로는 환자와 의사 사이에 신뢰를 쌓을 수 있는 사회적 분위기를 조성해야 한다. 이를 위해서는 의료인 자신들의 노력도 필요하다고 생각한다.

사실 필자의 주변에도 환자를 위해 최선을 다하는 의사 동료들이 대부분이며 주말 휴일에도 쉬지도 않고 고려인 마을이나 다문화 가정, 국내 외국인 근로자를 위해 무료 진료를 하는 동료의사들이 많다. 또한 남을 위해 봉사하는 것을 낙으로 삼고 일부러 휴가를 내어 네팔이나 캄보디아 등 해외 의료봉사를 자주 다니는 동료 의사들도 꽤 많은 편이다. 이러한 의사들의 선행과 봉사활동도 널리 알려 일반인들의 의료인에 대한 신뢰를 쌓아가는 것도 중요하다고 생각한다.
 
마지막으로 정신질환자의 경우, 다른 환자들의 의료인 폭력 사건과 동일한 선에서 보기 어려우며 정신질환자의 치료 과정에 대해 전문가 협의체가 조직돼 전문가적 관점에서 대책이 마련돼야 할 것이다. 그리고 병원에서는 경영진이 적극적으로 나서 시스템을 마련하거나 안전 인력을 고용해야 하고 이에 대한 국가의 재정적인 지원책도 마련되어야 할 것이다. 이러한  국민들과 국가의 노력이 합쳐져 새해부터는 환자와 의료인 모두 안전한 진료환경에서 최선의 의료서비스를 받는 날이 빨리 다가오기를 기대해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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