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의사 의무는 '결과채무' 아닌 '수단채무' 판결
의사 의무는 '결과채무' 아닌 '수단채무' 판결
  • 홍완기 기자 wangi0602@doctorsnews.co.kr
  • 승인 2019.01.14 12:1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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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관절 수술 위해 척추마취 후 심정지…'뇌 손상' 15억 원 소송
서울고등법원 "진료 결과 안 좋다고 진료 채무 불이행 추정할 수 없어"
ⓒ의협신문
서울고등법원 제17민사부는 2018년 8월 23일 고관절 수술을 위해 척추마취를 받은 후 뇌 손상을 입은 환자 측이 의료진을 상대로 제기한 15억여 원의 손해배상청구소송에서 의료진의 과실을 인정하지 않은 1심을 그대로 유지했다. ⓒ의협신문

고관절 수술을 위해 척추마취를 받은 환자가 심정지에 이르러, 뇌 손상까지 입은 사건에서, 의료행위 결과가 나쁘다는 이유만으로 의사의 책임을 물을 수 없다는 판결이 나왔다.

서울고등법원 제17민사부는 2018년 8월 23일 뇌 손상을 입은 환자 측이 의료진을 상대로 제기한 15억여 원의 손해배상청구소송에서 의료진의 과실을 인정하지 않은 1심을 그대로 유지했다.

재판부는 진료의 결과가 만족스럽지 못하다고 해서 바로 진료 채무의 불이행으로 추정할 수 없다고 판단했다.

사건은 7년 전으로 거슬러 올라간다.

A씨는 2012년 4월 18일 서울 강북에 있는 H병원에서 우측 고관절 관절경 하관절구 돌출 제거 수술을 받았다. 의료진은 18일 오후 2시 45분 경막 하 공간으로 국소마취제인 부피바케인을 주입해 척추마취를 시행했다.

오후 2시 55분부터 10분 간격으로 미다졸람을 2.5mg씩 2회 정맥주입했다. 오후 3시 15분부터 10분 간격으로 프로포폴을 40mg씩 3회 정맥주입했다. 오후 3시 40분 멘토탈을 250mg씩 2회 정맥주입했다. 오후 4시와 오후 4시 15분, 오후 4시 30분 프로포폴을 40mg씩 3회 주입했다.

오후 4시 10분경 A씨에게 혈압강하제인 페르디핀을 주입해 혈압을 12/70에서 100/60으로 강하했다. 오후 4시 50분경 수술 중 A씨에게 심정지 등 응급상황이 발생했다. 의료진은 아트로핀과 에피네프린을 주입하고, 기관삽관 및 인공호흡을 시행했다.

오후 5시 40분경 A씨에게 심전도상 심실 빈맥이 발생하자, 200j로 제세동을 실시했다. 오후 5시 45분경 엠부베깅을 하면서 S병원으로 전원했다.

A씨는 S병원에서 심장내과, 재활의학과, 정신건강의학과에서 치료를 받았으나 기질성 정신장애가 발생, 현재 허혈성 뇌 손상으로 인한 뇌 기능 저하가 심각한 상태로 중등도로 진행된 치매 수준이다.

환자 측은 의료진이 주의의무를 게을리해 기질성 정신장애를 발생시켰다며 손해배상소송을 진행했다.

환자 측은 "의료진은 환자 체질, 체격에 따라 적정한 마취제 종류를 선택하고, 적정량을 투여해 수술 중에 있어서는 물론 수술 전후의 전과정을 통해 발생할 수 있는 모든 위험에 대비해 환자의 상태를 면밀히 관찰하는 등 최선의 조치를 취해야할 주의의무가 있다"며 "의료진이 이를 게을리해 A씨가 심정지 및 기질성 정신장애가 생겼다"고 주장했다.

1심과 항소심 재판부는 모두 의료진의 배상 책임이 없다고 판단했다.

서울북부지방법원 제12민사부는 2016년 1월 21일 환자 측이 제기한 손해배상청구를 기각했다.

부피바케인은 국소마취제로 매우 드물게 신경 손상이 나타날 수 있다. 전신적으로 다량 흡수됐을 때 독성 반응으로 중추신경계와 심혈관계 억제 반응이 나타날 수 있다. 미다졸람, 프로포폴, 펜토탈은 부작용으로 호흡 억제, 심혈관계 억제 등이 나타날 수 있다.

재판부는 "의료진이 척추마취를 위해 사용한 부피바케인의 주입 시점과 A씨의 상태가 악화되기 시작한 시점이 상당한 시차가 있다"는 점에서 A씨의 심정지가 부피바케인의 부작용에 의한 것으로 보기 어렵다고 봤다.

"미다졸람, 프로포폴, 펜토탈 등 진정수면제는 모두 약효가 단기 지속되고, 비교적 안전하며 가장 선호되는 약제들"이라며 "처음에 부작용이 가장 적은 미다졸람이 사용됐다. 다량이 일시에 주입된 것이 아니라 일정 간격을 두고 반복 투여됐다"며 진정수면제가 잘못 사용됐다고 볼 수 없다고 판단했다.

재판부는 "환자의 혈압, 호흡, 기도 산소포화도가 모두 일정 간격으로 지속 기록됐으며 관찰이 지속적으로 이뤄진 것으로 보인다"며 "A씨의 심전도 검사 결과에 의하면 심정지가 약제 투여나 시술이 아닌 심근경색 등의 심장질환으로 발생했을 가능성을 배제할 수 없다"면서 의료진의 과실을 인정하지 않았다.

1심 판결에 불복한 환자 측이 항소했지만, 결과는 달라지지 않았다.

서울고등법원 제17민사부는 의사의 의무는 '결과채무'가 아닌 '수단채무'라고 강조했다.

"의사가 환자에 대해 부담하는 진료 채무는 환자의 치유라는 결과를 반드시 달성해야 하는 결과채무가 아니다. 치유를 위해 선량한 관리자의 주의를 다해 현재의 의학 수준에 비춰 필요하고도 적절한 진료를 할 채무 즉 수단채무"라며 "진료 결과가 만족스럽지 못하다고 해서 바로 진료 채무의 불이행으로 추정할 수 없다"고 봤다.

재판부는 '의료행위의 결과 후유장해가 발생한 경우, 그 후유장해가 당시 의료수준에서 최선의 조치를 다하더라도 당해 의료행위 과정의 합병증으로 나타날 수 있는 것이거나 그 합병증으로 인해 2차적으로 발생할 수 있는 것이라면, 그 증상이 일반적으로 인정되는 합병증의 범위를 벗어났다고 볼 수 있는 사정이 없는 한, 후유장해가 발생했다는 사실만으로 의료행위 과정에 과실이 있었다고 추정할 수 없다'는 대법원판결(2015년 10월 15일 선고 2015다21295 판결)에도 무게를 실었다.

서울고등법원은 "이 사건 청구는 이유 없어 이를 기각할 것인바, 이와 결론을 같이한 제1심판결은 정당해 원고의 항소 및 청구 모두 기각한다"고 판결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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