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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의리와 포용'의 상징 이윤호 선생님
'의리와 포용'의 상징 이윤호 선생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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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승인 2019.01.14 09:2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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황건 인하의대 교수(인하대병원 성형외과)
고 이윤호 서울대 명예교수
고 이윤호 서울대 명예교수

이윤호 서울대 명예교수님 영전에 올립니다.

한달 전 뵈었을 때에도 건강하셨던 이윤호 교수님이 13일 자동차사고로 돌아가셨다는 문자가 아직도 믿겨지지 않습니다. 지난 40년간 모교에서 우리나라 성형외과학의 기초를 닦으셨으며, 정년퇴임하시고도 약 오 년간 분쟁조정위원회와 제자의 병원에서 왕성하게 활동하시던 이 교수님의 갑작스런 서거는 동문 제자들에게는 가슴을 도려내는 것 같은 상실일 것입니다.

주마등같이 스쳐가는 은사님과의 인연은 본과 4학년 때 성형외과실습때 강의로 시작합니다. 당시 한국병원에 계시면서 서울대학에 강의하러 오셨는데, 어깨가 딱 벌어진 건장한 체격의 당당한 모습이 상당히 인상적이었습니다. 화상에 대한 강의를 하셨는데, 우리나라 전래동화에 불치병에 걸린 부모에게 효도하려 신생아를 가마솥에 삶았는데 꺼내보니 산삼이었다는 이야기였습니다. 동화처럼 재미있는 이야기로 시작하니 그 누구도 집중하지 않을 수 없었습니다.

군대를 마치고 인턴을 마칠 즈음 레지던트를 지원할 때 성형외과와 정형외과를 두고 고민하게 됐습니다. 내 고민을 들으신 은사 성기준 교수님이 이윤호 교수께 전화하여 물어보시니 "정형외과에 지원해 불합격되는 확률보다 성형외과에 지원해 불합격되는 확률이 더 적을 겁니다"라고 답변 주시어 나는 성형외과에 지원하게 됐습니다. 농담처럼 들릴지 몰라도 전문과의 인기 추세를 고려한 매우 섬세한 조언인 셈이고 결국 이윤호 교수님이 나를 성형외과로 인도해 주셨다는 깊은 인연을 느낍니다.

바쁜 1년차 수련 중 사고로 내 자동차가 파손되자 차 수리할 시간이 없는 형편을 아시고는 당신의 단골 카센터 주인을 불러 내 차를 가져가서 수리하게 하셨습니다. 언제나 제자들에 대해 배려를 세세히 해 주셨던 점을 잊을 수 없습니다.

수련기간 중에 논문 쓰는 법을 가르쳐 주셔서 전문의 시험에 필요한 논문을 어려움 없이 쓸 수 있었으며, 전문의 자격증을 받고 교수가 되어 찾아 뵈였을 때는 새로운 아이디어와 논문거리를 주시고 격려까지 해 주셨습니다. 이 덕분에 교수님과 공저 논문도 여러 편 낼 수 있었습니다. 오 년 전에 내가 의학한림원 회원이 되자 제5분회 총회때마다 꼭 나를 부르시어 간사를 시키시고 당신이 종신회원이 되자 평의원 자리를 물려주셨습니다.

이윤호 교수님은 서울대학교병원 성형외과에서 가장 처음으로 정식수련을 받았습니다. 국내 성형의학이 전문 진료과목으로 인정받지 못할 만큼 척박했던 1970년대, 일반외과의 일부분이었던 성형외과를 독립시키고 성형의학 전문의를 양성하는데 앞장 섰습니다. 대한성형외과학회 이사장, 대한두개안면성형외과학회장, 대한화상학회장 등을 역임하며 성형외과 분야 발전에 크게 기여하셨습니다.
이윤호 교수님을 생각하면 가장 먼저 떠오르는 단어가 '의리'와 '포용'입니다. 한 번 약속한 바는 꼭 지키셨으며, 제자들을 일일이 챙겨주셨습니다. 당신에게 섭섭하게 대한 후배나 제자들까지도 '의국의 발전'을 위해 끝까지 끌어 안고 가셨습니다.

이제 글을 마치고 빈소로 향하려니 평소에 즐겨 부르시던 '애모의 노래'가 귓전에 맴돕니다.

"내 마음 나도 모르게 꿈 같은 구름 타고, 천사가 미소를 짓는 지평선을 날으네. 구 만리 사랑 길을 찾아 헤매는, 그대는 아는가 나의 넋을? 나는 짝 잃은 원앙새 나는 슬픔에 잠긴다."

구 만리 넘어 그곳에서 이제 평화롭게 안식하시길 기원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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