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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보건 정책은 중국이 아닌 스페인을 보라"
"보건 정책은 중국이 아닌 스페인을 보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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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승인 2019.01.06 23: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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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페인 '침 치료' 금지, 타산지석으로 삼아야

지난해 12월 11일 보건복지부 권덕철 차관은 이투데이에 기고한 글에서 중국을 본받아 전통의학에 막대한 예산을 투자해야 한다는 신념을 밝혔다. 2015년 기준으로 세계 보완대체의학 시장 규모가 1142억 달러이며 중국 전통의약이 343억 달러를 차지한다며, 우리도 한의약에 대한 투자와 지원으로 세계 보완대체의학 시장에 진출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그런데 한의약이 효과가 없다면 어떨까? 한의약이 안전하지 않다면 어떨까? 효과와 안전성에 대한 엄격한 검증 없이 해외 시장 돈벌이에 나선다면 세계를 상대로 정부 주도의 사기 행각을 벌이는 꼴이 아닐까? 

중국은 우리가 본받아야 할 대상이 아니다. 2017년 11월 과학계 최고 권위의 학술지 룈Nature룉에는 중국의 중성약(우리나라의 한약제제에 해당) 규제 완화를 우려하는 편집자 논평이 실렸다. 중국 정부가 비용과 시간 절감을 위해 전통 처방을 근거로 한 중성약에 대해서는 임상시험을 통한 효과와 안전성 검증 없이 의약품 승인을 할 계획을 발표했기 때문이다. 룈Nature룉는 의약품 규제의 목표가 비용과 시간 절감이 돼서는 안된다며 엄밀한 임상시험을 통한 검증의 필요성을 역설했다. 특히 보건 정책이 정치와 경제 논리로 결정돼서는 안된다는 지적은 우리 정부도 새겨들을 필요가 있다. 

대한민국의 사정은 중국보다 나쁘다. 제약회사가 한약제제 허가를 신청할 때 동의보감 같은 고서를 근거로 제시하면 효과와 안전성 검증 없이 의약품으로 승인해준다. 한의사들이 마음대로 개발한 한약이나 약침액(주사제)을 원외탕전원에서 생산하면 규제 없이 전국 수천곳의 한의원에 납품할 수 있다. 효과나 안전성 검증 따위는 끼어들 여지가 없고, 단지 한의사가 처방전을 냈다는 형식만 갖추면 된다. 

국민들은 현대의학에서 아직 치료방법이 없다고 여기는 질병들에 대해 자신만의 비법으로 치료할 수 있다는 한의사들의 광고에 무분별하게 노출되고 있다. 이를 비판하는 기사는 거의 존재하지 않는다. 뉴스 검색에는 한의원 홍보 외에는 아무런 쓸모를 찾을 수 없는 쥐 실험 논문 따위를 난치병에 대한 대단한 돌파구라도 찾은 성과인양 홍보하는 기사들만 나온다. 한의사들의 주장 중에 절반만 사실이라도 노벨 생리의학상은 앞으로 50년간 한국의 독차지인데 룈Nature룉 편집위원들이 이런 기막힌 우리나라 사정을 모르는 것 같아 안타깝다.

그래픽 / 윤세호기자 seho3@hanmail.net
그래픽 / 윤세호기자 seho3@hanmail.net

지난해 11월 스페인 정부는 사이비과학과의 전쟁을 선포했다. 의사 출신인 카르세도(Carcedo) 보건부 장관과 두케(Duque) 과학부 장관은 모든 의료기관에서 과학적 근거가 없는 대체의학 사용을 금지하고, 효과가 입증되지 않은 치료법의 상업적 홍보를 막기 위해 규제를 강화하며, 올바른 정보를 제공하겠다는 계획을 밝혔다. 

금지를 검토 중인 대체의학 목록은 100가지가 넘는다고 하는데 대표적으로 보도된 치료법들은 침술·기치료(reiki)·동종요법이었다. 과학적으로 검증되지 않은 대체요법들은 국공립 의료기관뿐 아니라 규모가 작은 민간 의료기관에서도 금지되며, 위반하면 의료기관 승인이 취소된다. 의과대학의 교육과정도 검토해 비과학적 치료법들을 솎아내기로 했다. 이미 수년전부터 몇몇 대학에서 동종요법 관련 학위과정이 폐지됐다.

스페인 국민들이 잘못된 정보에 현혹돼 건강을 잃는 일을 막기 위한 대책들도 발표됐다. 과학적으로 검증되지 않은 치료에 대한 광고를 금지한다. 올바른 정보를 제공하기 위해 과학적 근거가 없는 100가지 이상의 대체요법 관련 정보를 검토하고 있다고 밝혔다. 언론 및 방송과 연대해 미디어에서 잘못된 정보를 몰아내고, 방송이나 기사 작성에 필요한 정보를 신속히 제공하도록 할 방침이다. 사이비과학과 사이비의학에 대항해온 민간단체들과 협력을 강화하겠다고 밝혔다.

한의학에 대해서 왜곡된 정보만 접하는 한국인들에게는 스페인의 침 치료 금지가 의아하게 느껴질 수도 있겠다. 실상은 침술에서 가장 인정받는 진통효과조차도 학계에서는 찬반의견이 분분하다. 일례로 지난 3월 BMJ는 통증 환자에 침 치료를 권해야 하는지를 두고 찬성과 반대 측 전문가의 의견을 동시에 싣기도 했다.

'한의약육성법'을 비롯해 우리나라에서는 한방에 대한 막대한 지원을 계속해오고 있다. 매년 수백억씩 투자된 연구비는 다 어디로 증발했는지 많고 많은 한약들 중에 효과와 안전성을 엄밀한 임상시험으로 입증해낸 사례가 단 하나도 없다. 그러면서 무엇을 수출하겠다는 말인가? 난치병을 치료한다는 한약들을 검증해서 효과가 입증되면 외국의 제약회사와 환자들이 돈보따리를 싸 들고 달려올 것이 분명한데 무엇을 더 투자하고 지원해야 한다는 말인가?

2013년 미국에서는 자신이 개발한 생약으로 암 등 난치병을 치료할 수 있다고 환자들을 꾀어 치료비를 챙긴 의사가 징역 14년 형을 선고받았지만, 우리나라에서는 암 치료 정도는 한의사들의 당연한 권리다. 오히려 한의사들의 주장에 문제를 제기하고 반박하려면 고소당해서 처벌받을 위험을 감수해야 한다. 

보건복지부는 해외 돈벌이에 눈독들일 때가 아니다. 학계에서 비판을 받는 중국이 아니라 스페인의 정책을 참고해 국민의 건강을 수호하는 본연의 임무에 충실해주었으면 하는 바람이다.

관련자료

▶권덕철 차관 기고문
-http://www.etoday.co.kr/news/section/newsview.php?idxno=1698494
 
▶<Nature>의 중국 정책 비판 
-https://www.nature.com/articles/d41586-017-07650-6
-https://www.nature.com/news/china-to-roll-back-regulations-for-traditional-medicine-despite-safety-concerns-1.23038
 
▶스페인 정부의 발표
-https://www.elperiodico.com/es/ciencia/20181114/pseudociencia-plan-gobierno-pseudoterapias-expulsar-centros-sanitarios-7145849
 
▶BMJ의 통증 침 치료 찬반 논쟁 
-https://www.bmj.com/content/360/bmj.k970
 
▶미국 의사 징역 14년형
-https://www.medicaldaily.com/california-doctor-sentenced-14-years-prison-fake-cancer-cure-246018

■ 칼럼과 기고는 본지의 편집방침과 다를 수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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