겁에 질린 의사들 "환자 손부터 본다"
겁에 질린 의사들 "환자 손부터 본다"
  • 홍완기 기자 wangi0602@doctorsnews.co.kr
  • 승인 2019.01.08 12:1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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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폭력 행사·마약 요구 환자 진료거부할 수 있도록 법 바꿔야"
박종혁 의협 대변인 "사회적 합의기구 만들어 문제 해결" 밝혀
(사진=pixabay) ⓒ의협신문
(사진=pixabay) ⓒ의협신문

강북삼성병원에서 발생한 '참혹사'에 연일 추모 물결이 이어지고 있다.

의사들의 소통 공간 중 하나인 A커뮤니티에는 고인을 애도하는 글이 줄을 잇고 있다. "진료가 무서워진다"는 발언도 적지 않다. 환자에게 폭행당한 경험담도 등장한다.

"환자 들어올 때 손부터 봐요"

A의사는 "참담한 심정을 금할 길이 없다"면서 "환자가 들어올 때 손부터 보게 된다. 진료하면서도 손에서 눈을 뗄 수가 없다"고 했다. 사건 후 환자에게 두려움이 생겼다고 했다.

정신건강의학과 전문의인 B의사는 "너무나 가슴 아픈 일이 생겨 비통하고, 동시에 분노가 생긴다"고 밝혔다. 그는 환자에게 공격받은 악몽과도 같은 경험을 털어놨다.

"회진을 위해 환자에게 다가가는 순간, 흉기를 들고 '죽이겠다'며 쫓아왔다. 알고 보니 환자는 젓가락을 갈아 뾰족하게 만들어 놓고 회진하는 나를 기다렸다. 다행히 미리 눈치채고 피한 적이 있다"고 털어놨다.

화장실에서 소변을 보다가 기습공격을 당하기도 했다. B의사는 "볼일을 보는 데 갑자기 환자가 뒤에서 헤드록을 걸었다. 속옷도 추스르지 못한 채 영문도 모르고 '미안하다'고 빌었다. 사과를 하지 않으면 목을 부러트릴 것 같아 전혀 저항할 수 없었다"고 당시 상황을 설명했다.

사채업자들이 찾아온 일은 악몽으로 남아 있다. "두 명의 사채업자는 다짜고짜 입원한 애인을 만나게 해 달라고 요구했다. 한 명이 내 멱살을 잡아 들어 올렸다"고 폭력에 무방비로 당해야 했던 당시 상황을 털어놨다. 

당직실 문을 야구방망이로 내려치면서 죽이겠다고 소리 지르던 환자, 주차장에서 만난 환자가 갑자기 달려드는 바람에 바닥에 뒹굴었던 기억도 끄집어 냈다.

B의사는 "나를 지켜야 한다는 생각에 검도를 시작했다. 하지만 도움이 되는지는 잘 모르겠다"며 불안한 심정을 내비쳤다.

'한국 의사의 필수품은 청진기가 아니라 가스총'

환자들의 폭력에 대비하는 나름의 '호신책'을 내놓기도 했다.

C의사는 "한국 의사의 필수품은 청진기가 아니라 가스총"이라는 글을 통해 "2019년 의사 필수품은 가스총과 전기 충격기다. 천장의 스프링클러만큼이나 필수적으로 비치해 놓아야 한다"고 주장했다. 호신용품을 공동구매하자는 제안도 눈에 띈다.

'폭력 환자 진료 거부법'의 필요성을 강조하는 내용도 있다. D의사는 "이러한 문제를 예방하기 위해서라도 '악성' 환자에 한해 진료를 회피할 수 있는 장치를 마련해야 한다"며 "의사도 최소한의 거부권을 보장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E의사는 "의사가 환자 진료를 거부하면 의료법 제15조 제1항(진료거부 금지 등)에 따라 1년 이하의 징역이나 1천만원 이하의 벌금형 처벌을 받게 된다"면서 "만약 고인이 진료를 거부하고 목숨을 구했다면 의료법 위반으로 고발당해 처벌받게 된다"고 현행법의 문제점을 지적했다.

E의사는 "진료 중인 의료인에게 폭언·폭행·위력·성추행·성희롱 등을 자행하거나 의학적으로 필요하지 않음에도 상습적으로 마약성 진통제 처방을 요구할 경우에는 제한적으로 진료를 거부할 수 있도록 법을 개정해야 한다"고 밝혔다.

박종혁 대한의사협회 대변인은 "의료인들은 대부분 폭력에 시달렸던 경험이 있다. 애도와 함께 불안감이 생기는 것은 어찌 보면 당연한 것으로 보인다"고 말했다.

최근 대한전공의협의회가 공개한 '전공의 진료 중 폭력 노출'에 관한 설문조사 결과를 보면  응답자 3,999명 중 50.0%(1,998명)가 "병원에 근무하면서 환자 및 보호자로부터 폭력(폭언, 폭행, 성폭력 등)을 당한 적이 있다"고 답했다.

2017년 한 해 병원에서 의료인 폭행·협박으로 신고·고소가 이뤄진 사례는 모두 893건. 진료 현장에서 적지않은 폭행·협박 사건이 벌어지고 있음을 의미한다.

박종혁 대변인은 "진료 거부권 등 법적 제도에 대한 얘기도 나오고 있는 것으로 안다. 법적 제도 장치뿐 아니라 실효적인 방안까지 빠르게 논의를 진행해야 한다고 절실히 느낀다"며 "정부, 국회, 사회단체, 사회적 합의 기구를 포함한 모두가 함께 문제 해결을 위해 적극적으로 나서야만 의료계 폭력 근절을 이뤄낼 수 있을 것"이라고 강조했다.

한편, 서울중앙지방법원은 3일 영장실질심사 진행 결과 구속 사유와 필요성이 인정, 피의자에 대한 구속영장을 발부했다.

경찰은 강북삼성병원을 압수수색, 피의자 진단기록 등 관련 자료와 사건 당시 영상을 담은 CCTV를 입수한 것으로 알려졌다.

서울 종로경찰서는 4일 "피의자 조사에서 '머리에 소형폭탄을 심은 것에 대한 논쟁을 하다가 이렇게 됐다. 폭탄을 제거해 달라고 했는데 경비를 불러서…' 등 횡설수설로 일관하고 있다"고 밝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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