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故 임세원 교수, 마지막까지 환자와 동료 챙겼다
故 임세원 교수, 마지막까지 환자와 동료 챙겼다
  • 이정환 기자 leejh91@doctorsnews.co.kr
  • 승인 2019.01.02 18:5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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죽음 앞둔 순간에도 주변 간호사들 안전하게 대피했는지 계속 확인
유족 "마음 아픈 사람 편견·차별 없도록 해달라는 게 고인의 유지"
의사 회원이 그린 고 임세원 교수 사진. ⓒ의협신문
의사 회원이 그린 고 임세원 교수 사진. ⓒ의협신문

2018년 12월 31일 환자에 의해 황망하게 사망한 故 임세원 교수(강북삼성병원 정신건강의학과)에 대한 추모의 물결이 이어지고 있는 가운데, 평소 환자의 아픔을 최우선으로 하고 살아왔던 삶이 재조명되고 있다.

특히 환자가 진료실에서 칼을 휘두르고 위협하고, 진료실 밖에서 공격을 당하는 순간에도 간호사들이 안전한지 계속 확인한 사실이 뒤늦게 알려져 안타까움을 더하고 있다.

또 20여 년간 우울증 치료 경험을 바탕으로 머리와 가슴으로 풀어낸 희망의 책인 [죽고 싶은 사람은 없다]라는 저서도 고인이 정신건강의학과 교수로서 환자 치료를 위해 얼마나 고민하고, 진정한 의사로서의 삶을 살려고 했는지 엿볼 수 있어 슬픔은 더 크다.

병원 관계자는 "故 임세원 교수는 환자가 칼을 꺼내 위협을 가할 때 진료실 밖으로 피신하는 중에도 주변 사람들에게 위험을 알리고, 간호사들이 안전한지를 확인했다"고 전했다.

자신이 위험한 상황에서 동료를 챙기기란 쉬운 일이 아니다. 그만큼 故 임세원 교수가 평소에 어떻게 살아왔는지를 바로 보여주는 대목이다.

2016년 펴낸 [죽고 싶은 사람은 없다]라는 저서도 주목받고 있다.

우울증을 가장 잘 아는 정신건강의학과 의사가 가슴으로 들려주는 이야기인 [죽고 싶은 사람은 없다]는 크고 작은 심리적 위기 상황을 맞으며 고단한 하루하루를 견뎌내는 사람들에게 자신의 솔직한 경험담과 함께 다양한 환자들 사례와 최신 연구결과를 소개하고 있다.

또 왜 삶은 계속돼야 하는지, 마음의 고통을 덜어내는 데 필요한 것은 무엇인지를 차분하게 들려주고 있다.

자기 앞에 놓인 뜻밖의 불운을 두고 "순순히 어둠을 받아들이지 않겠다고" 다짐한 故 임세원 교수의 진솔한 고백은 읽는 이들에게 크나큰 위안을 준다.

故 임세원 교수는 수년 전부터 고통스러운 만성 통증에 시달리면서 우울 증상을 경험했다.

고인은 이를 계기로 '마음의 병'에 대해 가슴으로 더 깊게 이해하게 됐다면서 살면서 뜻하지 않은 고난을 만난 이들이 불운을 극복하고, 자신의 삶을 온전히 살아나가는 데 도움이 되는 '진정한 희망'이란 어떤 것인지를 고민하면서 이 책을 썼다고 밝혔다.

대한신경정신의학회는 "故 임세원 교수는 그의 저서 [죽고 싶은 사람은 없다]에서 말하고 있는 것처럼 그 자신이 통증으로 인한 우울증의 고통을 경험한 치유자였다"면서 "본인에게는 한없이 엄격하면서 질환으로 고통받는 많은 이들을 돌보고 치료하고 그들의 회복을 함께 기뻐했던 훌륭한 의사"라고 평가했다.

ⓒ의협신문
ⓒ의협신문

고인은 수많은 환자를 만나 다양한 임상 경험을 쌓으면서 특히 직장인 정신건강 문제를 고민했다.

강북삼성병원 기업정신건강연구소 부소장으로 활동하면서 직장인들의 우울증과 스트레스를 과학적으로 평가하고, 개선하기 위한 프로그램도 개발했다.

한국자살예방협회 프로그램 개발 및 교육위원회장을 맡아 개발한 한국형 표준자살예방교육 프로그램 '보고 듣고 말하기'도 선보였다.

한국형 표준자살예방프로그램 개발책임자로서 우리나라의 자살 예방을 위해 앞장선 공로를 인정받아 2017년 한국자살예방협회가 선정한 '생명사랑 대상'을 받기도 했다.

학자로서 우울증과 불안장애와 관련된 100여 편의 학술논문을 국내·외 학술지에 게재했다. 대한불안의학회 학술지(NXIETY AND MOOD) 편집위원장을 맡아 학술 발전을 견인했다.

故 임세원 교수가 환자의 아픔을 얼마나 진실하게 이해하려 했는지는 사망하기 보름 전 자신의 SNS 계정에 올린 글을 통해서도 알 수 있다(아래글 참조).

"얼마 전 응급실에서 본 환자들의 이야기를 글로 쓰신 선생님이 화제가 되었던 적이 있다.
긴박감과 피 냄새의 생생함과 그리고 참혹함이 주된 느낌이었으나 사실 참혹함이라면 정신과도 만만치 않다. 각자 다른 이유로 자기 삶의 가장 힘겨운 밑바닥에 처한 사람들이 한가득 입원해 있는 곳이 정신과 입원실이다.
고통은 주관적 경험이기에 모두가 가장 힘든 상황이다.
하지만 보다 객관적 상황에 부닥쳐 있는 관찰자 입장에서는 그중에서도 정말 너무너무 어려운, 그분의 삶의 경험을 듣고 있는 것만으로도 참혹함이 느껴지는, 도저히 사실이라고 믿어지지 않을 정도의 정신적·신체적 고통을 겪고 있는 사람들이 있다.
그럴 때는 도대체 왜 이분이 다른 의사들도 많은데 하필 내게 오셨는지 원망스러워지기도 한다. 하지만 '이것이 나의 일이다'라고 스스로 되뇌면서 그분들과 힘겨운 치유의 여정을 함께 한다. 이렇게 유달리 기억에 남는 환자들은 퇴원하실 때 내게 편지를 전하고 가는 경우가 많다. 그렇게 20년 동안 받은 편지들을 꼬박꼬박 모아 놓은 작은 상자가 어느새 가득 찼다.
그분들은 내게 다시 살아갈 수 있는 도움을 받았다고 고마워하시고 나 또한 그분들에게서 삶을 다시 배운다. 그리고 그 경험은 나의 전공의 선생님들에게 전수되어 더 많은 환자의 삶을 돕게 될 것이다. 모두 부디 잘 지내시길 기원한다.
이번 주말엔 조금 더 큰, 좀 더 예쁜 상자를 사야겠다."

고인의 유가족들도 '안전한 진료환경을 만들어주십시오', '마음이 아픈 사람들이 편견과 차별 없이 언제든 쉽게 도움을 받을 수 있는 사회를 만들어 주십시오'라는 뜻을 전해 왔다. 고인이 평소 갖고 있던 환자를 위한 마음이 그대로 묻어나 있어 주변 동료들의 마음을 더 아프게 한다.

한편, 故 임세원 교수의 사건과 관련해 청와대 국민청원(강북 삼성병원 의료진 사망사건에 관련한 의료 안정성을 위한 청원, https://www1.president.go.kr/petitions/483805)에 동참의 물결이 이어지고 있다.

청원인은 "병원에는 의사·간호사·의료기사 등 다양한 의료 관련 직종이 종사하는 장소이기도 하지만, 목숨이 경각에 달린 수많은 환자가 치료를 받고 병마와 치열하게 싸우기도 하는 공간"이라며 "이런 병원에서 환자의 치료에 성심을 다하려는 의사를 폭행하고 위협하고, 살인하는 것은 안타까운 한 의사의 목숨을 잃는 것 뿐만 아니라 다른 치료를 기다리고 있는 수많은 환자의 목숨을 위협에 빠뜨리는 것"이라고 지적했다.

"병원에 종사하는 의사·간호사·의료기사, 그리고 치료를 받는 혼자의 생명과 안전을 지키기 위해 병원에서의 폭력과 폭행행위 및 범죄행위에 대해 강력하게 처벌하고 다시는 이런 일이 발행하지 않도록 안전장치를 마련해 줄 것"을 간절히 요청했다.

한편, 故 임세원 교수 빈소는 적십자병원 장례식장 301호에 마련됐다. 발인은 1월 4일(금) 오전 7시 30분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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