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updated. 2024-03-29 06:00 (금)
'그람시 읽기'를 감히 권하며 (하)
'그람시 읽기'를 감히 권하며 (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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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승인 2018.12.28 11:0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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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혁명'은 없다...'점진적인 변화' 있을 뿐

다시 그람시에게로 돌아가자. 발전된 사회에서 혁명과도 같은 급격한 변화는 없다. 있다고 하더라도, 극히 드물다. 그보다는 주변 사람들이 나의 입장을 받아들이면서 내 의견이 '헤게모니'를 장악했을 때, 나의 주장은 힘을 가질 수 있게 된다.

그렇다면, 내 의견이 주변 사람들에게 잘 받아들여질 수 있도록 '나의 진지'를 잘 구축하는 것이 선결 과제이다.
설사 우파 정부가 들어서도 수가를 급격하게 인상하는 일은 없을 것이다. 명품 구두와 핸드백 가격은 정부가 '통제'할 필요가 없다. '있는 사람'만 사는 것이니까….. 하지만 쌀값이나 대중교통 요금, 그리고 수가는 정부가 통제할 수밖에 없다. '생필품'에 해당하는 종목 가격이 급하게 오를 때 대중의 비난을 감당할 정치인이나 행정가는 이 세상 그 어디에도 없다.

그렇다면 의사 선생님들이 해야 할 것은 무엇일까? 그럼에도 '(필자 같은 사람이 볼 때) 급격한' 수가 인상인가? 한데 정부가 "노"라고 한다면? 게다가 정부는 '의사들은 월 평균 1304만원을 번다'는 광고로 대중의 정서까지도 장악할 가능성이 높은데?

의사 선생님들이 탱크를 몰면서 혁명을 할 수는 없을 것이고…. 파업을 하시겠다고? 

오케이, 해 보시라. 파업 참여 의사 선생님들이 운영하시는 의원에 국세청 조사관 2∼3명이라도 나와서 모든 장부의 먼지까지 탈탈 털고, 의사 선생님들이 검찰 출석요구서를 받게 된다면? 대부분의 '순결한' 의사 선생님들조차 위축될 수밖에 없을 것이다. '파업 전선'이 유지될 수 있을까?

이런 일, 정부에서 못할 것 같은가? '의사 파업' 기사가 인터넷 포탈 뉴스란에 실리는 순간을 상상해 보자. 대부분의 누리꾼들은 의사에 대해 쌍욕을 '다구리'처럼 놓을 것이다. "파업을 방관한다"면서 정부에게도 쌍욕을 할 것이다. '사돈의 팔촌' 안에서 고령자 없고, 아픈 이 없는 사람은 없다. 사람들, 불편하면 불만을 털어 놓게 마련이다. 우파든 좌파든 정부나 집권 여당이 이를 넋 놓고 바라 볼 것 같은가? 지지율 떨어지는 소리가 뚝뚝 들리는데?

감히 한 말씀 올린다. '단기전'에서 의사 선생님들이 이기는 방법은 필자가 보기에 없다. 단기전에서 이기는 때가 되려면, 의대 커트라인이 바닥을 치는 시점일 것이다. 일반인들에게 '와! 의사라는 직업, 정말로 못 해 먹을 직업이다'라는 생각에 대한 공감대가 형성돼야 한다.

필자가 보기에, 그런 일은 향후 10년 동안은 절대로 벌어지지 않을 것이다. 때문에 우파 정부가 들어서도 '급격한' 수가 인상은 없을 것이다. 병-의원 간 진료 체계나 급여 항목별 조정은 있을지라도….

 

그보다는 장기적인 차원에서 헤게모니를 구축하기 위해 '진지'부터 쌓는 것이 필요하다고 본다. 

환자들이 가장 좋아하는 의사가 누구일까? 학력고사나 수능 점수가 높은, 실력 좋은 의사일까? 물론 그런 의사를 좋아할 사람도 많다. 그러나 필자는 '환자에게 공감하는 의사'라고 본다. 특히 의원 수준에서는 그렇다. 

그렇다면 의사 선생님들 역시 '급격한' 수가 인상보다는 '대한민국 의사들이 환자에게 정서적으로 얼마나 다가가려고 노력하고 있는가'를 알리는 게 우선이 아닐까? 그렇게 환자들, 그리고 국민들에게 의사들의 '따듯함'을 알려서 공감을 받은 뒤 "우리들의 말을 들어 주세요"라고 이야기하는 게 순서가 아닐까?

2019학년도 수능에서 만점을 받은 김지명 군의 스토리가 최근 화제였다. 김군은 어린 시절 백혈병을 겪었지만, 이를 극복하고 역대급 '불수능'에서 만점을 받은 학생이다. 어머니가 서울 강북구의 어느 동네 시장에서 추어탕집을 하는 서민이기에, 감동은 배가됐는지도 모른다.

 

초등학교 때 백혈병 진단을 받았지만 병을 무사히 이겨내고 2019학년도 대학수학능력시험평가에서 만점을 받아 화제가 된 서울 선덕고등학교 김지명 학생.
초등학교 때 백혈병 진단을 받았지만 병을 무사히 이겨내고 2019학년도 대학수학능력시험평가에서 만점을 받아 화제가 된 서울 선덕고등학교 김지명 학생.

 

김 군 기사 중 한 대목을 직접 인용해보자.

강북구 인수동에서 조그만 추어탕집을 하는 김군 어머니(60)는 "세상에 고마운 분이 참 많다"고 했다. "지명이가 아플 때 의사 선생님이 '너는 완치될 수 있다'고 확신을 줬어요. 저희는 그저 의사 선생님 시키는 대로만 했어요."(중략) 
서울대병원에서 김군을 돌보다 지금은 공중보건의로 일하고 있는 의사가 "지명이는 첫 치료 때 합병증이 심해 중환자실까지 갔다"면서 "병상에서 '수학의 정석'을 풀던 모습이 기억난다. 힘든 치료를 이기고 좋은 성적을 거둬 대견하다고 전해 달라"는 메일을 (기자에게) 보내왔다. 김군 어머니가 (공중보건의) 이름을 듣자마자 "아이고, 우리 지명이 골수 검사해주시던 레지던트 선생님이에요"했다. "'키가 안 클 수 있다'는 부작용을 설명하다 함께 울어주셨어요. 참 고마운 분이에요."(조선일보 2018년 12월 6일자 기자수첩)

사회적으로 힘도 백도 없는 환자의 아픔에 공감하며 함께 우는 서울대병원 레지던트 의사 선생님…. 김지명 군 어머님은 그랬기에 '의사 선생님이 시키는 대로만' 하면서 의사 선생님을 절대 신뢰했고, 여전히 의사 선생님들에게 고마운 마음을 가지고 있었다. 김 군이 서울대 의대에 진학해 의사가 되려는 이유도 여기에 있다.

왜 이런 이야기는 의협신문이나 의협 방송에 1면 톱으로, 혹은 메인 뉴스로 실릴 수 없는가? 지금은 공중보건의로 일하시는 그 가슴 따듯한 의사 선생님과 김 군의 만남의 자리를 의협에서 마련한 뒤, 이를 의협신문이나 의협 방송에서 보도한다면? 환자의 아픔에 함께 우는 대한민국 의사의 참 모습을 선전할 수 있는 좋은 기회이지 않을까?

서민의 아들인 김 군이 경험했던 대한민국 의사들은 어떤 모습이었으며, 그 분들이 어떤 영향을 끼쳤기에 의사가 되려는 것인지, 변변한 과외조차 제대로 받지 못하면서도 수능 공부를 어떻게 했기에 이런 불수능에서 만점을 받았는지 등을 의협 방송에서 방영하면서, 의협을 국민에게 조금 더 가깝게 하려는 노력은 왜 안 하는가? 해마다 50만 명 이상이 치르는 게 수능인데! 직계 가족이나, 사돈의 팔촌까지 포함하면 대한민국 모든 이들은 '수능 영향권' 안에 있는데….

이런 훌륭한 홍보수단을 왜 놓치고 있는지….

주야장천 수가 인상을 이야기하고, 의사들의 주장이 아무리 옳다고 해도 보건복지부나 한의학계, 약학계, 그리고 물리치료사협회 등 사방팔방으로 적만을 양산할 법한 전술행동을 취하면, 국민이 의사 선생님들의 편을 들어줄 것 같은가? 

의사 선생님들 주변에 '아군'이 과연 있는지, 만약 없거나 드물다고 생각되면 왜 그런지는 숙고해 보신 적이 있는가? 누가 봐도 강자로 보이는 이가 덕이 아니라 힘으로 주변을 대하면, 그는 고립될 수밖에 없다.

 

길게 보시라, 제발. 혁명은 없다. 급격한 변화도 없다.

의사 선생님들이 원하는 만큼 수가가 올라가거나, '의사들이 일하기 힘들다'는 이야기가 공감대를 얻기는 쉽지 않은 상황이다. 

의사의 수입과 의사들이 받는 사회적 대우에 대해, 의사 선생님들의 생각과는 달리 대부분의 일반인들은 '높다'고 생각한다. 그래서 의대 커트라인이 이렇게도 높아진 것이다. 의사 선생님들조차 성적만 된다면 자녀들을 의대에 보내려고 한다는 점도 일반인들의 시각이 틀리지 않았음을 방증한다. 국민은 의사의 '눈물'을 믿지 않는다!

그렇기에, 의사들의 고통이나 어려움을 알리려고 하기보다는, 의사 선생님들의 가슴 따듯함을, 환자의 아픔을 내 아픔처럼 여기는 마음을 적극적으로 알리는 것이 낫다고 본다.

백혈병 치료를 받던 소년의 어머니에게, 그 치료 과정의 부작용으로 키가 크지 못하게 될 수도 있다고 이야기하면서 함께 울어주던 의사 선생님의 이야기는 결코 드문 경우가 아닐 것이다. 그런 이야기를 적극적으로 홍보하시라. 길게 보면 그것이 '이기는 길'이다.  

머리 나쁘고 읽은 책도 변변치 않은 필자가 대한민국의 최고 엘리트들인 의사 선생님들에게 '그람시 읽기'를 권하는 이유는 여기에 있다.

 

■ 칼럼과 기고는 본지의 편집방침과 다를 수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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