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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편집인칼럼]CCTV 생각보다 위험한 선택
[편집인칼럼]CCTV 생각보다 위험한 선택
  • 조승국 대한의사협회 공보이사 good@doctorsnews.co.kr
  • 승인 2018.12.12 11:4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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민감한 수술실 노출 환자 기본권 침해...인기영합주의 정책 무리수
환자·의사 불필요한 오해 부추겨...자율징계 통해 비위행위 예방해야

최근 강남의 한 성형외과에서 연예인의 성형 동영상을 간호사가 몰래 촬영하고, 그 남자친구가 10억 원을 요구하며 병원장을 협박한 사건이 있었다. '대리수술' 문제로 수술실 CCTV설치가 공론화된 요즈음, 수술실 CCTV설치에는 위 사례처럼 많은 문제점이 있음을 알리고자 한다.

의료인 물론 환자 기본권 침해...정보기본권 개헌안 역행

수술실 CCTV설치 찬성론자들은 이미 어린이집에도 CCTV설치가 의무화되었으며 CCTV설치가 환자의 기본권을 지켜줄 것이라 주장한다. 하지만 수술실 CCTV에는 환자의 신체가 노출되고, 남들에게 알리고 싶지 않은 병력이 남게 된다.

유포될 경우 환자의 기본권을 크게 제한할 수 있다는 점에서 어린이집 CCTV와는 상황이 다르며, 유포된 영상의 최대 피해자가 의사가 아닌 환자이고 결과를 돌이킬 수 없다는 점에서 환자의 기본권에 심각한 위협이 된다. 즉, 수술실 CCTV설치 찬성과 반대의 문제는 '환자의 기본권 VS 의료인의 기본권'의 문제가 아니라 '환자의 기본권 VS 환자와 의료인의 기본권' 문제다.

아동학대, 교내폭력, 왕따를 막기 위해 유치원, 학교에 CCTV를 의무화하자는 논의도 있었다. 하지만 사생활·행동자유권·표현의 자유·행복추구권·초상권 등 개인의 기본권 제한 문제가 심각했기에 결국 의무화되지 않았다. 국가인권위에서도 인권침해 소지가 있다고 밝힌 바 있다. 이처럼 CCTV로 모든 것을 해결할 수도 없고, 해결해서도 안 된다고 판단한 전례가 있다.

문재인 대통령의 최근 개헌안에는 '정보기본권'이 포함돼 있다. 사생활의 비밀과 자유, 통신의 자유나 언론·출판의 자유와 같은 소극적 권리만으로는 제4차 산업혁명시대에 충분히 대처하기 어렵기 때문이다. 수술실 CCTV설치는 이러한 개헌안에도 역행한다.

대안 무시한 극약처방...거버넌스·절차적 정의 훼손

대리수술문제로 이번 수술실 CCTV설치 찬성론이 대두됐다. 대한의사협회(이하 의협)는 피해환자 및 보호자분들께 진심으로 사죄드리며, 의료계의 도덕성과 권위를 실추시키고 국민의 신뢰를 저버린 비위행위자들을 고발해 그 척결의지를 밝힌 바 있다.

의협은 비위행위의 재발 방지를 위해 비위행위 신문고제도·윤리위원회의 강화·대리수술 무관용 고발·전문가평가제 등 다각도의 방안을 모색하고 있다. 또한 대한변호사협회처럼 대한의사협회에 자율징계권이 부여된다면 비위행위 예방에 큰 도움이 될 것으로 생각하며, 이에 대한 정부의 조속한 협조를 구하고 있다.

이처럼 의협에서는 '대리수술' 문제를 막기 위한 다양한 대안을 내놓고 있다. CCTV 설치안과 달리 환자 정보 유출 등의 부작용이 없어 안전한 대안이다. 그리고 충분히 효과를 거둘 수 있는 대안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극단적인 방안이자 환자의 개인정보 유출이라는 최악의 부작용을 불러올 수 있는 극약처방, CCTV설치안을 고수하는 이유는 무엇일까.

먼저, 쉽고 극단적인 방법을 선택해 모든 것을 통제할 수 있다는 생각이 바탕에 있는 것으로 생각된다. 극단적인 방법을 통해 목적을 달성하려는 생각이 어떠한 비극을 불러왔는지는 제1차, 제2차 세계대전, 우리나라의 근현대사를 보면 쉽게 알 수 있다.

두 번째로 인기 영합주의적인 성향을 들 수 있다. 온건한 대안은 국민을 설득하는데 긴 시간이 걸린다.

하지만 극단적인 CCTV 설치안은 자극적이고 즉각적으로 국민에게 만족을 준다. 하지만 이런 주장을 하는 사람들은 국민에게 어떤 부작용이 있을 수 있는지에 대해서는 입을 닫고 아무런 말을 하지 않는다. 시간이 지나 결과적으로 피해를 입는 것은 국민이지만 CCTV설치로 이익을 본 사람은 그에 대해서 책임지지 않는다.

환자의 기본권에 심대한 위해를 끼칠 수 있는 수술실CCTV 설치는 말 그대로 극약처방이다. 암을 치료할 때도 부작용이 적고 효용성있는 1차 치료, 2차 치료를 순서대로 사용한다. 대리수술은 환자, 의사 모두에게 암 같은 존재이다. 이런 대리수술을 근절하기 위해서는 부작용이 적은 치료부터 먼저 해야 한다. 정부와 국회에서 그러한 여건을 만들어 준다면 우리 의사들도 최선을 다할 각오가 되어있다. 무턱대고 CCTV를 설치하는 것은 '쉬운' 방법일 수 있겠지만 결국에는 '나쁜' 방법이며 공동의사결정으로서의 거버넌스와 절차적 정의를 훼손하는 행위이다.

수술실에 CCTV를 설치하는 문제를 놓고 환자의 알권리와 개인정보 보호를 비롯해 기본권을 침해한다는 비판이 대립하고 있다. (사진=pixabay)
수술실에 CCTV를 설치하는 문제를 놓고 환자의 알권리를 들어 찬성하는 입장과 개인정보 보호를 비롯해 기본권을 침해한다는 비판이 대립하고 있다. (사진=pixabay)


환자 정보 유출 위험성 높여...CCTV 관리 불가능

대부분의 수술 시 인체의 민감한 부위가 노출되지만, 소수의 의료진만 치료 목적에서 이를 확인한다. 하지만 CCTV가 설치되면 이러한 환자 정보를 접할 수 있는 사람들의 범위가 넓어진다. CCTV 영상이 운영자·기술자·수리기사 등을 포함한 여러 사람의 손을 거치기 때문이다. 일부 부도덕한 의사뿐만 아니라 영상이 처리되는 과정 중 누구 한 사람이라도 부도덕적이라면 환자의 정보가 외부로 유출되어 피해를 입힐 수 있게 된다.

CCTV 찬성론자들은 환자의 동의 시에만 녹화를 하고 이를 어길 경우 강력히 처벌한다면 문제가 없을 것이라고 주장한다. 하지만 이는 심각한 오판이다. 리벤지 포르노·몸 캠 등의 디지털 성범죄가 많은 문제를 유발하고 있으나 이미 유포된 자료는 해결할 방법이 거의 없다. 대부분의 자료가 해외 서버에 저장되어 있어 국내 사법당국에서는 손 놓고 있는 상태라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오죽하면 유포된 동영상을 지워주는 '디지털 장의사'라는 직종이 생겨났겠는가? 하지만 잡초처럼 다시 자라나는 유출 동영상은 주인공이 떠나도 영원히 살아있다. 수십 년 전 유포되었던 유명연예인의 동영상이 지금도 인터넷상에 떠돌아 다닌다고 하니 그 정도를 가늠할 수 있을 것이다.

어떤 환자도 자신의 병력을 대중에게 노출하는 것을 원치 않는다. 성형, 유산, 합법적인 필요성에 의한 낙태, 최근 합법화가 논의 중인 '선택적인 낙태' 등을 시술받은 환자는 병력 노출을 더더욱 꺼린다. 그런데 CCTV 의무화는 이들의 병력 노출 위험성을 높인다. 환자가 돌이킬 수 없는 '사회적 노출'의 피해자가 될 가능성이 높아지는 것이다. 해킹·중국산 CCTV 백도어 문제 등은 널리 알려져 있어 언급할 필요도 없다.

정치적 이득 앞세운 인기영합주의...기본권 침해

현재 모 정치인은 '그럼 해보자'는 식의 시범사업을 진행하고 있다. 하지만 시범사업이 진행 중인 공공병원은 우리나라 환자와 질환군을 대변하지 못하며 여러 의사들의 노력으로 그동안 큰 의료사고 없이 잘 운영돼 왔던 기관이다.

많은 문제점이 노출됐으나 우리나라의 의료수준은 매우 높은 편이며 의료사고의 비율도 OECD 타 국가와 비교했을 때 높지 않다. 이런 현실에 환자의 기본권 침해의 위험을 감수하면서까지 얻을 수 있는 이득이 정치적 이득 외에 무엇이 있겠는가? 의문이다.

정책 입안자는 개인의 정치적 야망을 달성하기 위해, 국가와 사회발전의 장기적인 비전이나 목표, 국민의 기본권에 대한 심각한 고민 없이, 국민의 뜻에 따른다는 명분으로 국민을 속여 지지를 이끌어 내서는 안 된다. 돌팔이 의사는 환자를 죽이고, 돌팔이 정치인은 나라와 국민을 죽인다. 

미국도 수술실 CCTV 설치 의무화 사례 없어

미국의 Wisconsin·Indiana·Massachusetts주 등에서 수술실 CCTV설치가 공론화, 발의된 적이 있다. 당시 CCTV설치에 동의하는 여론이 우세했으나 결국 입법되지 못했다. 정책입안자들의 기본권에 대한 깊은 고민 때문일 것이다. 세계적으로도 수술실 CCTV설치가 의무화된 곳은 단 한 곳도 없다.

환자·의사 불필요한 오해 사라져야

이러한 여러가지 이유로 나는 수술실 CCTV설치를 거부한다. 사실 대부분의 중소병원에는 CCTV를 안전하게 설치·운용·관리할 능력이 전혀 없다고 생각한다. 이러한 상황에서 수술실 CCTV설치를 광고하며 동료들을 부도덕한 의사로 매도하는 일은 없어야 한다.

필자는 의사들이 오로지 환자를 생각하는 마음으로 CCTV를 안전히 운용할 능력, 재원, 인력이 없음을 선언하고, 수술실 CCTV설치를 단호히 거절해야 한다고 생각한다. 환자의 인권에 심각한 문제가 발생할 것이 명확하기 때문이다. 설치가 시행될 경우 CCTV설치, 운용, 관리의 책임 뿐 만 아니라 유출되었을 때의 법적 문제는 오롯이 설치를 강행한 자들의 몫이 돼야 한다.

환자와 의사간의 불필요한 오해가 사라지고 의사들이 억울함 없이 아픈 환자를 치료하며 보람을 느낄 수 있는 환경을 고대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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