황홀한 방아쇠를 당기며
황홀한 방아쇠를 당기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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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승인 2018.12.07 11:2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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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연종(경기 의정부·김연종내과의원)

2018 한국의사시인회 정기총회 겸 문학 강연에 참석했다.

딱딱한 회의가 아니라 카페에서 담소하는 그런 형식의 모임이었다. 장소도 강의실이나 회의실이 아닌 인사동의 조그만 식당이다. 문학과 의학에 관한 이야기들이 자연스럽게 이어졌다.

시의 태동은 어디이고 시의 종착지는어디일까? 늘 고민하는 문제이지만 그에 합당한 답을 찾기는 쉽지 않다. 시에 대한 정의를 한 마디로 설명하기 힘들 뿐더러 시론도 다양하기 때문이다. 최근 현대시의 흐름을 찾기 위해 문학평론가로 활동하고 있는 엄경희 교수님을 모시고 문학 전반에 대한 이야기를 청해 듣기로 했다.

'독자는 무엇을 원하는가?'라는 제목의 강의였지만 오래도록 기억에 남는 시는 무엇인가로 귀착됐다. 좋은 시란 자꾸 읽도록 하는 시이고 그래야만 오래도록 기억에 남는다. 때론 몸통을 버리고 살아남은 한 구절일지라도. 즉 "시란 황홀의 방아쇠이며, 시작이란 그 방아쇠를 당기는 행위이다."라고 설명했다.

'황홀의 방아쇠들'은 황홀 경험의 환경과 조건들을 은유적으로 사용한 말로 영국의 저널리스트이며 작가인 마르가리타 래스키가 그녀의 저서 <세속적이고 종교적인 몇 가지 경험에 관한 연구>에서 사용한 용어다.

우리의 삶은 언제나 색다른 경험을 원하며, 뭔가 불만족스러운 '여기'로부터 해방돼 보다 자유로운 상태로 변화하고 싶어 한다. 그런 의미에서 황홀은 결여와 맞물려 있다. 사람들은 이런 삶의 결여를 황홀로 바꾸기 위해 상상할 수 없을 정도의 조건과 행위를 선택하고 만들어 낸다.

술을 마시거나, 낯선 곳으로 여행을 떠나거나, 조용히 기도를 올리거나, 사랑하는 사람과 성적 관계를 맺거나, 마약을 하거나, 춤을 추거나, 특별한 음식을 먹거나, 폭력을 자행하거나, 음악에 도취하거나, 가상의 게임에 몰두하거나, 책 속의 진실과 만난다. 이 모든 행위 가운데 어떤 것은 비윤리적이거나 쓸모없는 낭비이거나 나아가서는 악행으로 여겨질 수도 있지만 개별자에게는 황홀에 닿기 위한 절박한 행위들이다. 그런 의미에서 황홀은 유혹적이고 중독성이 강하다. 이 절정의 순간을 위해 우리는 얼마나 많은 방아쇠를 당기곤 하는가!

강의가 끝나고 격의 없는 대화가 이어졌다. 반주도 곁들었다. 느슨하고 자유로웠지만 결코 가볍지 않았다. 그렇다고 심각하지도 않았다. 시인과 비평가라는 위치만큼 거리가 존재했지만 오랜 친구처럼 편안했고 금세 친해졌다. 인생이란 무엇인가 만큼이나 어려운 질문이 '시란 무엇인가'일 것이다. 문학계의 미투 운동과 페미니즘 같은 다소 민감한 주제에 대해서도 대화를 주고받았다. 교수로서 평론가로서 또 한 사람의 여성으로서 높이 치켜든 자존감에 경의를 표하며 넉넉한 답변에 감사드린다.

2019년부터 새로운 임기를 시작하는 김완 회장님이 멋진 포부를 밝혔다. 아무리 바빠도 주어진 일에는 최선을 다한다는 인사말이 기억에 남는다. 2년의 임기를 마치고 퇴임하는 김승기 회장님이 훈훈한 덕담과 함께 멋진 노래로 화답해 주었다. 연이어 총무로 봉사를 약속한 홍지헌 시인께 모든 회원들이 감사 인사를 전했다.

총회를 마치고 담소를 나누면서도 황홀의 방아쇠는 머릿속에서 떠나지 않았다. 관자놀이에서만 맴돌 뿐 한 번도 당겨 본 적 없는 방아쇠는 내게도 늘 고민거리다. 연말연시가 되면 그 고민은 더욱 간절해진다. 한 해의 글 농사를 되돌아본다. 올해는 가뭄에 흉작까지 겹쳐 대기근이다. 그래도 시를 쓰는 의사, 문학을 하는 동인들이 있어 다행이다. 시에 대해 토의하고 논의하는 자리가 있어 무척 행복하다. 황홀의 방아쇠 같은 주옥같은 문장은 찾지 못했지만 지난 가을 함께 떠났던 한국의사시인회 영주 문학기행이 문득 떠오른다.

 

참나무 여섯 형제처럼 앞서거니 뒤서거니

참나무에는 신갈나무 떡갈나무 졸참나무 갈참나무 굴참나무 상수리나무 등 여섯 종류로 크게 구분하고 있습니다 이들 참나무는 도토리 열매를 맺습니다

산행 초입 친절한 안내 표지가 발길을 끌어당긴다

달뙈기만한 밭들이
다닥다닥 붙어 있는 달밭골을 걸으며
저 육형제 참나무 중 나는 무슨 나무일까

한국의사시인회 영주 나들이 길
소백산 산행까지는 단 여섯

덩치가 山만한 나무
정상에 우뚝 선 나무
저만치 8부 능선에서 손을 흔드는 나무

심장에 스텐트를 네 개나 심은 나무
발이 불편하여 조금 더디 걷는 나무
어릴 적 폐를 앓아 오르막에서 바람이 쌩쌩부는 나무

숲 해설가로 활동하고 있는 한현수 시인이
가랑잎 하나 주워 들고 나무들한테 설명한다

여러 수종이 함께 어울려야 숲은 건강해집니다

침염수와 활엽수
키 큰 나무와 키 작은 나무
잡초와 숲 청소부 버섯까지

다년생 나무들이 바람소리 같은 강의를 경청한다

갑자기 씩씩해진 배흘림 나무는
소백산 자락길에 도토리 하나 주워
참나무 다람쥐처럼 데구루루 구른다
 
-졸시 <가랑잎 처방전> 전문

 

시가 되려하는 것들이 가슴 속에 꿈틀거린다. 시는 한 구절만 살아남아도 충분한 가치가 있고, 한 방의 언어가 필요한 독특한 장르이다. 설령 그것이 몸통을 버리고 살아남은 한 방의 문장일지라도…. 다시 읽게 만드는 시, 자꾸 읽도록 하는 시가 좋은 시라는 말이 뇌리에서 떠나지 않는다. 갑자기 핏속이 뜨거워진다. 문학을 수혈 받은 누군가가 황홀의 방아쇠를 당겼는지도 모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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