눈물을 머금고 모교를 고발합니다
눈물을 머금고 모교를 고발합니다
  • 홍완기 기자 wangi0602@doctorsnews.co.kr
  • 승인 2018.11.29 07:51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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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리고, 나는 전임의가 됐다"

본지는 16일, 전임의를 강제하고 있는 병원 실태를 다뤘다(참고기사: 전임의 안하면 3억원 내놔라?…전공의들 제보 잇따라).

이후 전임의라고 밝힌 A씨로 부터 '눈물을 머금고 모교를 고발한다'는 메일 한 통을 받았다. A전임의는 자신이 처한 상황과 기사 내용이 너무 비슷하다고 털어놨다.

본지에서는 해당 제보를 토대로 전공의들이 처한 '전임의 강제 현실'을 재구성했다. 제보자 보호를 위해 병원명은 익명으로 처리했다.

(그래픽=윤세호 기자) ⓒ의협신문
(그래픽=윤세호 기자) ⓒ의협신문

A전임의의 난중일기

나는 현재 D병원에서 전임의를 하고 있다.

처음 병원에 전공의를 지원할 때만 해도 내가 전임의를 할 거란 생각은 하지 못했다.

하지만, 병원에 출근한 첫 날, 한 장의 종이가 나의 미래를 정했다.

병원 관계자는 한 장의 종이를 건네며 '각서'라는 것을 쓰게했다.

태어나서 처음 겪은 일에, 당황했지만 관계자는 모두 그렇게 한다고 했다.

'저는 추후 D병원에서 2년 동안 전임의 과정에 임할 것을 약속합니다'

전공의에게 전임의 각서를 쓰라니...내가 쓰고도 정신이 멍했다.

병원 관계자는 사무실 서랍을 열고 각서를 밀어넣었다.

서랍 안에 켜켜이 쌓인 서류들이 보였다. 선배들도 각서를 썼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한 편으로는 안심이 됐지만 씁쓸한 기분을 지울 수 없었다.

전공의 과정은 결코 쉽지 않았다.

병원에서 교육을 받고 있는지, 값싼 계약직으로 고용된 것인지 헷갈렸다. 하지만 이런 고민을 할 시간도 별로 없었다.

묵묵히 주어진 업무를 정신없이 수행했다.

그러던 중, 선배 한 명의 소식이 들려왔다.

선배는 우리 병원 전임의 과정을 거부하고, 서울에 있는 병원에 지원했다.

병원 교수님들이 서울에 있는 병원에 연락해 취직을 막았다는 소문이 들렸다. 그것을 우리는 '2년의 공포주기'라고 부른다.

갑자기 서랍 속에 있는 각서가 떠올랐다.

그리고, 나는 지금 전임의가 됐다.

전임의가 됐으니, 실질적인 교육을 받고 환자들에게 더 도움이 될 수 있는 의사가 되리라 마음먹었다.

하지만 전임의가 된 후에도 전공의 때와 별반 다르지 않은 일을 하고 있다.

수술에 들어가는 대신 환자를 옮기는 카트를 끌고, 메스 대신 펜을 들고 의무기록을 작성하고 있다.

최근에는 전공의 선발 인원이 줄자 병원은 전임의 선발에 더욱 열을 올리고 있다.

교수님은  "전공의 일은 전임의가 하면 되지 않느냐?"며 전공의 업무와 당직을 모두 내게 떠넘겼다.

너무도 지친 상황에서 제대로 환자들을 돌볼 수 있을지 겁이 난다.

이승우 대한전공의협의회장 ⓒ의협신문
이승우 대한전공의협의회장 ⓒ의협신문

대한전공의협의회는 최근 정형외과, 신경외과, 성형외과 전공의를 대상으로 진행한 '의무 펠로우(전임의) 관련 설문조사' 결과를 공개했다.

전임의 과정을 거부할 경우, 취직이나 같은 지역사회에서 개원하기 어렵게 만드는 등 부당한 상황에 처해있다는 하소연이 터져 나왔다.

B전공의는 "전임의를 하지 않고 나가면 (의국에)3억원을 내야 한다. 그렇지 않으면 취직을 막아 산골짜기로 가야 한다"는 충격적인 제보를 했다.

"전임의 과정을 하지 않을 경우, 의국 연보 명단에서 이름을 삭제한다", "더 나은 전임의 수련을 위해 서울의 대학병원으로 진학했다. 이후 교수와 학회 등에서 만나도 아는체 하지 않는 등 일종의 심리적 왕따를 경험했다"는 증언도 나왔다.

전공의들의 처지를 악용한 '갑질 문화'에 대한 제보가 고름 터지듯 잇따르고 있다.

이승우 대한전공의협의회장은 "어떻게 후배 의사들을 교육할지에 대한 고민보다는 취직 등을 볼모로 노동력으로 사용하는 그들이 스승이라 불릴 자격이 있는지 의문"이라며 강도 높게 비판했다.

"전임의 과정은 강제로 시켜서 하는 게 아니라 더 배우고 싶어서 스스로 선택해야 하는 것"이라며 "근로시간을 보장하고 내용 또한 체계적으로 마련해야 하는 것은 어쩌면 상식"이라고 꼬집었다.

대전협은 현재 전국 대표자들과 '전임의를 강제하고 있는 실태'를 포함해 의료계 현안을 논의 중이다.

이승우 회장은 "대구와 부산의 대표자들과 심도 있게 논의했다. 이번 주에는 광주, 다음 주에는 대전 대표자들과의 논의가 예정돼 있다"며 "심각성과 부당한 사례를 면밀하게 파악하기 위해 추가적으로 여러 사례를 모을 예정이다. 보건복지부 수련환경평가위원회에도 이에 대한 대책을 요구할 것"이라고 밝혔다.

"무엇보다 중요한 것은 학회 차원의 자정 노력이다. 전임의를 강요하는 경우는 특정 과목으로 좁혀진다"면서 "의료계 내부에서 자정 목소리가 높다. 더 이상 잘못을 숨기려 하지 말고 먼저 나서서 환부를 도려내길 간곡히 부탁한다"고 호소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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