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형 '왕진제도' 부활, 우리 손으로 
한국형 '왕진제도' 부활, 우리 손으로 
  • 장현재 KMA POLICY 특별위원회 의료 및 의학정책 분과위원장 good@doctorsnews.co.kr
  • 승인 2018.11.13 12:04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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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령화 먼저 경험한 일본, 의료취약지 주민·거동 불편 노인 위한 재택의료 확산
접근성 높은 동네의원 왕진 역할 적합...왕진 관련 법률 개정·적정수가 마련해야
장현재 KMA POLICY 특위 의료 및 의학정책 분과위원장
장현재 KMA POLICY 특위 의료 및 의학정책 분과위원장

불과 40년 전만 해도 묵직한 가죽가방을 손에 들고 방문진료(왕진)에 나서는 의사의 모습은 우리네 생활 속에서 흔치 않게 볼 수 있는, 낯설지 않은 풍경이었다. 의술의 역사 초기부터 선보인 왕진은 1970년대 말까지 성행했다. 1930년대에는 개원 의사의 치료 건수 중 30% 정도가 왕진이었을 정도라고 한다.

돌아보건데 왕진 문화는 필자의 기억 속에도 좋은 기억으로 남아 있다. 아픈 환자를 직접 찾아 돌보는 의사의 모습은 인술의 상징이었고, 치료를 받는 환자는 물론 보호자들도 그 시절 왕진의사에 깊은 고마움을 표했던 것으로 기억한다. 

그 시절 의사의 주된 업무이기도 했던 왕진은 응급시스템의 정착과 원내 진료를 기본으로 한 관련 법률의 개정, 왕진수가체계 미비 등의 문제로 서서히 역사의 뒤안길로 사라졌다. 지금도 지역사회 내에서 일부 왕진하는 사례는 있으나, 그 시절의 그것과 비교할 수 없는 미미한 수준이다.

방문진료 부활은 시대적 숙명
인구고령화로 대변되는 대외적 환경의 변화, 의료사각지대 해소를 그 목적으로 내세운 원격진료 논의 등 정책적 변화는 지금 우리로 하여금 다시 한번 '방문진료(왕진)'의 필요성을 생각하게 한다.

현재 대한민국은 전 세계적으로 가장 빠른 노령화를 겪고 있으며, 핵가족화와 1인 가구 증가로 사회적 돌봄이 필요한 환자들의 숫자도 늘어나고 있다. 
거동이 불편해 의료기관을 내원하지 못하는 의료 취약계층의 경우 사실상 의료사각지대에 놓여있다고 볼 수 있으며, 모든 국민이 마땅히 받아야 할 양질의 의료에서 소외돼 건강한 삶은 누릴 권리를 보장받지 못하고 있다. 

왕진은 이런 현실을 타개해 나갈 수 있는 대안이면서 이를 통해 국민 건강권 확보에 기여할 수 있다.

우리보다 앞서 초고령사회에 진입한 일본은 왕진 서비스가 활성화되어 있다. 2015년 기준 일본에서는 의사가 환자 집으로 찾아가는 방문진료가 매달 70만건, 환자가 의사를 부르는 왕진이 매달 14만건 가량 이뤄지고 있다고 한다. 일본 내 전체 의원의 22.4%인 2만 597곳이 방문진료에 참여하고 있을 정도다. 

일본 정부는 재택의료가 취약계층의 의료접근성 향상은 물론, 노인 의료비 절감에도 크게 기여하고 있는 것으로 평가하고 있다. 

한국형 왕진제도 필요, 핵심은 수가현실화
우리도 왕진 활성화를 통해, 인구고령화와 의료비 급증 등의 문제에 선제적으로 대응해 나가야 한다. 다만 한국형 왕진제도 정착을 위해서는 몇가지 과제를 우선해서 해결해야 한다. 

첫째는 왕진 관련 법률의 정비다. 이와 관련해서는 최근 국회에서 주목할만한 진전이 있었다.  
국회 보건복지위원회는 지난 9월, 왕진제도 활성화를 위한 국민건강보험법 개정안(더불어민주당 기동민 의원 대표발의)을 처리했다. 의료취약지 주민 및 거동이 불편한 노인 환자 등에게 적절한 의료서비스를 제공하기 위한 방법으로 왕진을 꼽고, 의사왕진 시 필요한 수가를 가산해 지급하도록 한 것이 법안의 골자다.  

이는 왕진이 의료취약계층의 의료접근성 향상을 위해 가장 적절한 방법임에 국회가 공감한 결과로 그 의미가 크다. 보건복지위를 통과한 법률은 현재 국회 법제사법위원회의 심사를 기다리고 있는 상태로, 법사위와 본회의 의결만 거치면 개정 법률로 기능하게 된다. 

다만 왕진에 따른 의료인의 법적 책임 문제 등은 다루지 않고 있어, 이에 대한 추가적인 논의와 보완조치가 필요할 것으로 보인다.

둘째는 적정수가의 보장이다. 적지 않은 의료인들은 왕진이 기피되게 된 원인으로 수가체계의 미비를 꼽고 있다. 수가가 비현실적인 상황이라, 의사가 왕진에 나설 유인이 되지 못한다는 지적이다. 

현행 '요양급여의 적용기준 및 방법에 관한 세부사항(보건복지부 고시)'에 따르면 방문진료에 대한 요양급비용은 의료기관 내에서 행해지는 요양급여 비용과 동일한 방식으로 산정하되, 교통비 등 기타 비용을 '사회 통념상 인정할 수 있는 실비 범위 내'에서 환자가 추가부담하도록 규정하고 있다. 

진찰료와 진료료 외에 소정의 교통비를 받을 수 있다는 것인데, 비용산정 기준 자체가 불명확한데다, 왕진에 따른 의사 기회비용 상실(왕진을 감으로써 다른 환자를 볼 수 있는 기회 상실) 등을 전혀 감안하지 않고 있다는 점에서 현실성이 떨어진다. 

(사진=pixabay)
(사진=pixabay)

왕진수가 개선, 국회·정부도 한목소리
방문진료 활성화를 위해서는 왕진수가를 현실화해야 한다는 점에는 이미 국회도 동의했다. 앞서 언급한 건강보험법 개정안은 방문진료에 소요되는 시간과 노력 등을 고려해 일정금액을 가산할 수 있다는 내용을 담고 있다. 어찌되었던 지금의 왕진 수가로는 왕진제도를 활성화할 수 없으며, 왕진제도 활성화를 위해서는 가산 등 수가현실화가 필요하다는 얘기다.

정부 또한 왕진활성화를 목표로, 왕진수가의 개선을 추진하고 있다. 의사가 요양기관 밖에서 환자를 진료할 때 적용할 수 있는 방문진료 수가(의사 방문료) 등을 신설할 계획이다.

구체적으로는 ▲일차의료기관에 소속된 의사가 진료시간 또는 진료종료 이후에 예약한 환자를 대상으로 방문진료를 실시(겸업형) ▲지역의사회를 중심으로 당번 의사 순번을 정해 방문진료가 필요한 환자를 대상으로 방문진료를 실시(네트워크형) ▲의료기관을 운영하지만, 기관내 진료가 아닌 방문진료만 전담해 실시(전담형) 등을 모형으로 검토하고 있다.

다만 구체적인 수가산정을 위해서는 방문진료 시 소요되는 시간, 방문진료에 따라 의사가 부담하는 기회비용 및 환자의 방문진료 비용 부담 능력 등에 대한 전반적인 조사를 선행해야 한다. 하지만 이에 관한 조사가 전무한 상태여서 의료계의 선제적인 대응이 필요할 것으로 판단된다. 

한국형 왕진제도 부활, 우리 손으로 
노인인구의 증가와 이에 따른 노인의료비 부담을 완화하고, 거동이 불편한 노인과 장애인 등 의료 취약계층에 양질의 의료를 제공하기 위해서는 방문진료의 활성화가 반드시 필요하다. 

왕진을 시행하는 의료기관은 환자의 가정과 지역사회 특성을 가장 잘 알고 있는 지역 일차의료기관이어야 하며, 왕진의사에게는 사회적 기여도에 맞는 적절한 수가보상이 이뤄져야 한다.  

왕진의 중요성이 부각되고 있는 작금의 정책적 환경에서 의료계가 논의의 주도권을 가져야 한다. 

그러기 위해서는 의료계 내부에서 왕진 제도의 필요성을 공론화 해야 한다. 왕진이 의사 고유의 역할임에 공감하면서 한국형 왕진제도 부활을 위해 필요한 제도적 환경을 고민하고, 선제적인 제안을 통해 제도화할 수 있도록 노력해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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