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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HIV 의료차별 예방 가이드라인' 오히려 역효과
'HIV 의료차별 예방 가이드라인' 오히려 역효과
  • 홍완기 기자 wangi0602@doctorsnews.co.kr
  • 승인 2018.11.05 16:1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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병의협, 질병 특수성·사회 인식 고려한 대안 마련 촉구
"현실 무시한 가이드라인, 의료행위 방해·의료진 예방 부작용"
(사진=pixabay) ⓒ의협신문
(사진=pixabay) ⓒ의협신문

HIV 감염인에 대한 정부의 의료차별 예방 가이드라인(안)이 의료 현실에 대한 무지를 바탕으로 만들어져 현실화할 수도 없고, 현실화했을 때 역효과는 상상하기 힘들 정도라는 비판이 나왔다.

병원의사협의회 ⓒ의협신문
병원의사협의회 ⓒ의협신문

대한병원의사협의회는 5일 성명을 통해 질병관리본부가 만든 'HIV 감염인 의료차별 예방 가이드라인(안)'이 감염인들의 의료 차별을 더 심화시킨다며 즉각 폐기할 것을 요구하고 나섰다.

질병관리본부는 최근 HIV 감염인 및 AIDS 환자에 대한 의료차별 예방이 필요하다는 이유로 가이드라인(안)을 만들어 11월 6일까지 의견조회 중이다.

HIV 감염인에 대한 차별 문제는 2015년 5월 서울 보라매병원에서 "환자의 포말이 튀게 되어 감염의 우려가있다"며 HIV 감염인에 대한 치과 스케일링 거부 사건을 통해 문제 제기된 바 있다.

국가인권위원회는 2018년 1월 17일 인간면역결핍바이러스(HIV)·후천성면역결핍증(에이즈) 감염인의 수술·입원을 거부하는 행위는 합리적 이유 없는 차별이라고 판단하고, 의료차별 개선을 위한 대책을 마련하라고 보건복지부장관 등에게 권고했다.

정부의 가이드라인(안) 마련 및 의견조회는 해당 권고 개선을 위한 움직임으로 해석된다.

병원의사협의회는 해당 가이드라인(안)이 "실현 가능성에 대한 고찰도 없고, HIV 감염인들의 의료 차별을 오히려 심화시킬 우려가 있다"면서 "단순히 인권 시각으로만 접근해서는 안 된다. 질병 자체의 특수성과 사회 전반의 인식까지 고려돼야 한다"고 주장했다.

병의협은 질본이 제시한 가이드라인(안)에 대한 문제점을 먼저 지적했다.

가이드라인(안)에서는 "의료서비스 제공자는 HIV 감염인 및 의심 환자와 대면하는 모든 상황에서 혐오나 경멸 등을 뜻하는 언어적·비언어적 의사 표현을 하지 않아야 한다"고 규정하며 '동성애 등 성 정체성에 대한 혐오 발언이나 차별적 태도를 보이는 것'을 의료 차별의 예시로 들고 있다.

병의협은 "모든 진료에서 문진은 가장 기본적이고 필수적인 과정"이라며 HIV 감염인 진료에서 감염 경로를 파악하기 위한 구체적 질의와 사실 확인은 반드시 필요하다고 주장했다.

"의사들은 환자의 질병·상태에 대한 정확한 진단을 위해 환자의 민감한 사생활에 대한 정보도 얻을 수 있다"면서 "다만 이를 질병 진단·치료에만 사용할 뿐, 다른 목적으로 유출하는 것을 엄격히 금하고 있다"고 설명했다.

'동성애'와 같은 표현을 의료 차별로 규정한다면 구체적인 정보를 통한 진단을 어렵게 하며 제대로 치료받을 기회를 박탈할 위험성이 있다는 지적이다.

병의협은 의료 종사자들의 안전을 위한 식별은 필수적이라는 점도 짚었다.

가이드라인(안)은 "의료서비스 제공자는 의료기관 내에서 HIV 감염인 임을 식별할 수 있는 별도 표시는 하지 않는 것을 원칙으로 한다"고 규정한다.

병의협은 "의료종사자들은 직업 특성상 환자 체액·혈액 등 다양한 감염원에 노출될 수밖에 없는 환경에서 근무한다"면서 '주사침 자상'을 예로 들었다.

"감염을 일으킬 수 있는 질병을 가진 환자들을 구분해 의료진들만 알 수 있는 약속된 식별을 하도록 하고 있다"며 "이러한 조치를 통해 의료종사자들이 더욱 주의를 기울이고, 사고 시 즉각적인 대처를 할 수 있는 것"이라고 말했다.

의료차별 문제를 의료 제공자에 대한 처벌 강화에서 찾는 방법적 문제에 대한 지적도 이어졌다.

가이드라인(안)에서는 '의료차별' 발생 시 의료법 제15조 제1항 및 89조에 근거해 1년 이하의 징역이나 1천만원 이하의 벌금에 처할 수 있다고 말한다. 응급의료에 관한 법률 제6조 및 60조에 근거해 3년 이하의 징역이나 3000만원 이하의 벌금에 처할 수 있다고 언급돼 있다.

병의협은 "가이드라인을 강제로 지키게 하기 위해 의료기관과 의료 제공자를 겁박하는 것"이라며 "중소병원·의원급은 HIV 등 감염병 환자들을 위한 인프라 구축이 돼 있지 않다. 어쩔 수 없이 전원 해야 한다"면서 "일률적인 가이드라인 적용은 의료기관들이 HIV 감염자 방문을 꺼리게 만들고, 또 다른 방식으로의 차별로 이어질 공산이 크다"고 지적했다.

HIV 감염인들의 인권 신장과 차별 해소는 적극적인 대국민 캠페인과 교육 등을 통해 국가와 정부에서 철저히 책임져야 할 사안이라는 점을 분명히 했다.

병의협은 "가이드라인을 만들어 의료기관에 강제하는 것은 국가가 HIV 감염인에 대한 차별을 전담하지 않고, 민간에서 해결하라는 뜻"이라며 "해당 문제는 감염자에 대한 의료 서비스 제공을 위한 의료진 구축과 시설 구비 등을 통해 국가가 해결해야 한다"고 조언했다.

"근시안적인 접근과 의료현실에 대한 무지를 바탕으로 만들어진 동 가이드라인(안)을 즉각 폐기"하라며 국가 주도의 의료서비스 제공 계획 수립 및 현실성 있는 대안 마련을 촉구했다.

병의협은 "가이드라인 통과 후 HIV 감염사고 발생 시 질본을 상대로 손해배상 청구 등의 사법적 조치를 취할 것"이라며 "가이드라인 추진·시행과 관련해 질본에 다른 정치적 외압 등이 작용했는지 파악하기 위한 감사청구도 진행할 것임을 분명히 한다"고 선언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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